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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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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寅]光熙元年이라 〈漢元熙三年이요 成晏平元年이라
東海王越 起兵討張方하고 收成都王穎하야 殺之하다
○ 成都王雄 卽皇帝位하야 國號 大成이라하다
○ 十一月 帝食䴵中毒崩注+[通鑑要解]或曰 太傅越鴆之也하니 太弟卽皇帝位하다
懷帝始遵舊制하야 於東堂聽政하고 每至宴會하야 輒與群官으로 論衆務하고 考經籍하니
黃門侍郞傅宣 歎曰 今日 復見武帝之世矣라하더라
[史略 史評]史斷曰
惠帝昏愚하야 不辨菽麥하야 權在群下하고 政出多門이라
忠賢路絶하고 讒諛得志하야 交相互市하며 皇(帝)[后]太子 四廢五復호되 莫能詰問하고 東奔西逸 受制他人하야 莫適爲主
上不保母后하고 次不保妻子하고 終不保其身하야 食餠中毒 弗知禍端하니 議者謂足以報曹氏受制於司馬懿者焉이라


광희光熙 원년元年(병인 306) - 나라 원희元熙 3년이고, 나라 안평晏平 원년元年이다. -
동해왕東海王 사마월司馬越이 군대를 일으켜 장방張方을 토벌하고 성도왕成都王 사마영司馬穎을 체포하여 죽였다.
성도왕成都王 이웅李雄이 황제의 지위에 올라 국호를 대성大成이라 하였다.
○ 11월에 황제가 떡을 먹다가 중독되어 죽으니,注+[通鑑要解]혹자는 말하기를 “태부太傅사마월司馬越짐독鴆毒으로 황제를 독살한 것이다.” 한다. 태제太弟(司馬熾)가 황제에 즉위하였다.
회제懷帝(司馬熾)가 처음으로 옛 제도를 따라 동당東堂에서 정사를 다스리고 매번 연회에 이르러서 그때마다 여러 관원들과 여러 가지 정무를 논하고 경적經籍을 상고하니,
황문시랑黃門侍郞 부선傅宣이 감탄하기를 “오늘에야 다시 무제武帝(司馬炎)의 세상을 보게 되었다.” 하였다.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혜제惠帝는 어둡고 어리석어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권력이 여러 신하에게 있었고 정사가 여러 부문部門에서 나왔다.
충성스럽고 어진 자를 등용하는 길이 끊어지고 참소하는 자와 아첨하는 자들이 뜻을 얻어 번갈아 서로 천거하고 청탁해서 벼슬을 마치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듯이 하였으며, 황후皇后태자太子가 네 번이나 폐해지고 다섯 번이나 복위復位되었으나 힐문詰問하지 못하였으며, 동쪽으로 달아나고 서쪽으로 숨음에 다른 사람에게 견제당해서 주장하여 주인이 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위로는 모후母后(楊太后)를 보전하지 못하고 그 다음으로는 처자妻子를 보전하지 못하고 끝에는 자기 몸을 보전하지 못하여 떡을 먹다가 독살당하면서도 의 실마리를 알지 못하였으니, 의론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조씨曹氏사마의司馬懿에게 견제당한 것을 갚기에 충분하다’ 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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