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7)

통감절요(7)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戌]五載라
以王忠嗣로 爲河西, 隴右節度使하고 兼知朔方, 河東節度使하다
忠嗣仗四節하야 控制注+[頭註]控은 引也요 亦制也라 萬里하니 天下勁兵重鎭이 皆在掌握이라
與吐蕃注+[頭註]西羌屬이라 으로 戰於靑海, 積石注+[釋義]靑海는 在臨羌縣西하니 有卑禾海하야 謂之靑海라 地理志에 積石은 在金城河關縣西南羌中하니 今鄯州龍友縣界로 河所經也라 하야 皆大捷하고 又討吐谷渾注+[附註]三十五卷戊寅年注에 其先은 遼東鮮卑라 (徙)[徒]河涉歸之長子曰吐谷渾이니 其孫業延이 遂以吐谷渾爲氏하니라 晉四夷傳에 西戎也니 慕容廆之庶兄也라 其父涉歸卒에 廆嗣러니 於是에 乃行西附陰山하니 其子孫이 遂有西零以西하야 極乎白蘭數千里하니 本鐵勒諸部之號라 은 見三十八卷하니라 於墨離軍注+[釋義]括地志云 瓜州西北千里에 有墨離軍하니 卽其地也라 하야 虜其全部而歸하다
〈出本傳〉


천보天寶 5년(병술 746)
왕충사王忠嗣를 하서河西‧농우절도사隴右節度使로 임명하고 삭방朔方‧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를 겸하게 하였다.
왕충사王忠嗣가 네 개의 부절符節을 쥐고 만 리의 강역疆域을 공제控制하니,注+[頭註]공控은 당기는 것이고, 제어하는 것이다. 천하의 강한 군대와 중요한 진鎭이 모두 그의 손안에 있었다.
토번吐蕃과注+[頭註]토번吐蕃은 서강西羌(서쪽 오랑캐)의 족속이다. 청해靑海‧적석積石에서注+[釋義]청해靑海는 임강현臨羌縣 서쪽에 있으니, 비화해卑禾海가 있으므로 청해靑海라고 이름하였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적석積石은 금성金城하관현河關縣의 서남쪽 강중羌中에 있으니, 지금 선주鄯州의 용우현龍友縣 경계로 황하가 경유하는 곳이다.” 하였다. 싸워 모두 크게 승리하고, 또 토욕혼吐谷渾을注+[附註]35권 무인년(618) 주註에 “그 선대先代는 요동遼東의 선비족鮮卑族이다. 도하섭귀徒河涉歸의 장자長子가 토욕혼吐谷渾이니, 그 손자인 업연業延이 마침내 토욕혼吐谷渾을 씨氏로 삼았다.” 하였다. 진晉나라 《사이전四夷傳》에 “서쪽 오랑캐이니, 모용외慕容廆의 서형庶兄이다. 아버지 도하섭귀徒河涉歸가 죽자 모용외慕容廆가 그 뒤를 이었다. 이에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음산陰山에 붙으니, 그 자손들이 마침내 서령西零 이서를 소유하여 백란白蘭 수천 리에까지 이르렀다. 본래 철륵鐵勒의 여러 부락의 호칭이다.” 하였다. 철륵鐵勒은 38권에 보인다. 묵리군墨離軍에서注+[釋義]《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과주瓜州 서북쪽 천 리에 묵리군墨離軍이 있으니, 바로 그 지역이다.” 하였다. 토벌하여 그 전부全部를 포로로 사로잡아 돌아왔다.
- 《당서唐書왕충사전王忠嗣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吐谷渾 : 徒河涉歸는 아들이 두 명 있었는데, 맏아들은 吐谷渾이고 작은 아들은 若洛廆였다. 徒河涉歸가 죽자 若洛廆가 계승하여 부락을 통솔하고 따로 慕容氏가 되었다.
역주2 鐵勒 : 바로 勅勒이니, 勅勒은 元魏(北魏) 때에 高車部라고 이름하였는데, 그 뒤에 나누어 흩어져서 薛延陀‧回紇‧都播‧骨利幹‧多覽葛‧同羅‧僕固‧拔野古‧思結‧渾‧解薛‧奚結‧阿趺‧契苾‧白霫 등 15部가 되었으니, 이를 총칭하여 勅勒이라 하고 또 鐵勒이라고도 하였다.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