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2)

통감절요(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丑]七年이라
秋八月에 帝崩하니 하다
班固贊曰
孝惠內修親親하고 外禮宰相하고 優寵齊悼注+[頭註]齊王肥來朝한대 以帝兄也라하야 置之座上하니라 諡曰悼라趙隱注+[頭註]趙王如意來朝한대 帝迎入宮掖하야 與起居飮酒하니라 諡曰隱也라하야 恩敬篤矣요 聞叔孫通之諫則懼然注+[附註]帝以朝長樂宮으로 數蹕煩民이어늘 乃築複道武庫南이러니 通諫曰 此는 高帝月出遊衣冠之道也니 子孫이 奈何乘宗廟道上行哉잇가 帝懼然曰 急壞之하라하니라 高寢이 在高廟西하니 高帝衣冠藏焉이라 每月一出하야 備法駕하야 遊於高廟하고 名曰遊衣冠이라하니 遊衣冠之道가 正値新作複道下라 故言乘宗廟道上行이라하고 納曹相國之對而心悅하니 可謂寬仁之主어늘 遭呂太后하야 虧損至德하니 悲夫라


7년(계축 B.C.188)
가을 8월에 황제가 붕崩하니, 태후太后가 조정에 임하여 제制를 칭하였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혜제기惠帝紀〉 찬贊에 말하였다.
“효혜제孝惠帝는 안으로는 친척들을 친애하고 밖으로는 재상을 예우하였으며, 제齊나라 도왕悼王과注+[頭註]제왕齊王비肥가 조회 오자, 혜제惠帝는 자신의 형이라 하여 상좌上座에 앉혔다. 시호를 도悼라 하였다. 조趙나라 은왕隱王을注+[頭註]조왕趙王여의如意가 조회 오자, 혜제惠帝는 그를 맞이하여 궁중으로 들여서 함께 기거하고 술을 마셨다. 시호를 은隱이라 하였다. 우대하여 은혜와 공경이 지극하였고, 숙손통叔孫通의 간함을 듣자 두려워하고注+[附註]혜제惠帝가 태후太后가 계신 장락궁長樂宮에 조회함으로 인해 자주 주필駐蹕하여 백성을 번거롭게 한다고 하자, 마침내 무고武庫의 남쪽에 복도複道를 건축하였는데, 등통鄧通이 간하기를 “이는 고제高帝의 의관衣冠을 매월 꺼내어 유의관遊衣冠하시는 길이니, 자손이 어떻게 종묘의 길 위를 타고 다니시겠습니까?” 하니, 황제가 두려워하며 “급히 복도複道를 부수라.” 하였다. 고침高寢(高祖의 능침陵寢)이 고묘高廟의 서쪽에 있으니, 고제高帝의 의관衣冠을 보관하였다. 매월 한 번 고제高帝의 의관衣冠을 꺼내어서 법가法駕를 갖추어 고묘高廟에 유람하고 이름하기를 ‘유의관遊衣冠’이라 하였으니, 유의관遊衣冠하는 길이 바로 새로 만든 복도複道 아래에 있었으므로 종묘의 길 위를 타고 다닌다고 말한 것이다. 조상국曹相國(曹參)의 대답을 받아들여 마음으로 기뻐하였으니, 관후하고 인자한 군주라고 이를 만한데, 여태후呂太后를 만나 지극한 덕德을 훼손하였으니, 슬프다.”


역주
역주1 太后臨朝稱制 : 稱制는 천자의 일을 대행함을 이른다. 顔師古가 말하였다. “天子의 말을 制書라 하고 詔書라 한다. 制書는 制度의 命을 이르니, 皇后가 칭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지금 태후가 조정에 임하여 천자의 일을 행하였기 때문에 稱制라고 한 것이다.”
동영상 재생
1 [계축] 7년
동영상 재생
2 [계축] 7년 14

통감절요(2)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