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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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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戌]九年이라
무덕武德 9년(병술 626)
太史令傅奕 上疏하야 請除佛法曰 佛在西域하야 言妖路遠이러니
태사령太史令 부혁傅奕이 상소하여 불법佛法을 제거할 것을 청하여 말하기를 “불법佛法서역西域에 있어서 말이 요망하고 중국과의 거리가 먼데,
漢譯胡書注+[釋義]西胡之書難曉 以漢語譯之하니 後秦姚興 使鳩摩羅什으로 翻譯西域經論하니라하야 恣其假託하야 使不忠不孝 削髮而揖君親하고 遊手遊食으로 易服以逃租賦하며
나라 사람이 서역西域 오랑캐의 불경佛經을 번역하면서注+[釋義]서역西域 오랑캐의 서책이 이해하기 어려우므로 한어漢語로 번역하였으니, 후진後秦요흥姚興구마라십鳩摩羅什으로 하여금 서역西域경론經論(經藏과 논장論藏)을 번역하게 하였다. 제멋대로 가탁假託하여, 임금에게 충성하지 않고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어서 군주와 어버이에게 만 하여 〈무릎 꿇고 절하지 않게 하고,〉 무위도식하는 자들로 하여금 의복을 바꾸어 승복僧服을 입고서 조세租稅전부田賦를 피하게 하며,
僞啓三途注+[頭註]釋氏 以地獄, 餓鬼, 畜生 爲三途라하여 言人之爲惡者 必墜此地라하니라하고 謬張六道注+[頭註]又添阿修羅, 天神, 地祇하야 遂使愚迷 妄求功德하고 不憚科禁하야 輕犯憲章하니이다
불교佛敎에서 삼도三途注+[頭註]불교에서는 지옥地獄아귀餓鬼축생畜生삼도三途라 하여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반드시 이곳에 떨어진다고 하였다. 를 거짓으로 열어놓고 육도六道注+[頭註]육도六道삼도三途에 다시 아수라阿修羅천신天神지기地祇를 더한 것이다. 를 잘못 펼쳐놓아서 마침내 어리석고 미혹된 자로 하여금 함부로 공덕功德을 바라고 금령禁令을 꺼리지 않아서 경솔하게 헌장憲章을 범하게 합니다.
且生死壽夭 由於自然이요 刑德威福 關之人主 貧富貴賤 功業所招어늘 而愚僧矯詐하야 皆云由佛이라하야 竊人主之權하고 擅造化之力하니 其爲害政 良可悲矣니이다
또 살고 죽고 장수하고 요절함은 자연에 연유하고, 형벌과 덕과 위엄과 복은 인주人主에게 달려 있고, 빈부貧富귀천貴賤공업功業이 부르는 것인데, 어리석은 승려들이 속여서 모두 부처에게서 연유된다고 말하여 인주人主의 권한을 훔치고 조화造化을 제멋대로 쥐고 있으니, 정사를 해침이 진실로 슬퍼할 만합니다.
自漢以前으로 初無佛法호되 君明臣忠하고 祚長年久러니
나라 이전에는 애당초 불법佛法이 없었지만 군주가 현명하고 신하가 충성하였으며, 국조國祚가 장구하고 역년歷年이 오래되었습니다.
自立胡神注+[頭註]謂佛也 漢明帝 始遣使하야 之天竺하야 求其道하고 得其書하니라으로 羌, 戎亂華하야 主庸臣佞하고 政虐祚短하니 梁武, 齊襄注+[頭註]北齊文襄이니 名澄이라[通鑑要解]梁武帝 餓死臺城하고 齊文襄 爲膳奴所弑也 足爲明鏡이라
그런데 〈나라 명제明帝가〉 서역西域에서 전래된 신불神佛注+[頭註]호신胡神은 부처를 이르니, 나라 명제明帝가 처음으로 사신을 보내어 천축국天竺國에 가서 그 를 구하고 그 책을 얻어오게 하였다. 을 세운 뒤로부터 강족羌族융족戎族이 중화를 어지럽혀 군주가 용렬하고 신하가 간사하며 정사가 포악해지고 국조國祚가 짧아졌으니, 나라 무제武帝(蕭衍)와 나라 문양제文襄帝(高澄)注+[頭註]齊襄은 북제北齊문양제文襄帝이니, 이름이 고징高澄이다. [通鑑要解]梁武帝는 대성臺城에서 굶어 죽었고, 북제北齊문양제文襄帝는 음식 만드는 종에게 시해당하였다. 가 충분히 밝은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
今天下僧尼 數盈十萬하니 請令匹配 卽成十萬餘戶
지금 천하에 승려의 수가 10만을 넘으니, 청컨대 이들로 하여금 각자 배필을 맞이하게 한다면 바로 10여만 를 이룰 수 있습니다.
産育男女하야 十年長養하고 一紀注+[頭註]十二年이라敎訓이면 可以足兵하리이다
아들딸을 낳고 길러서 10년 동안 기르고 12년注+[頭註]일기一紀는 12년이다. 동안 가르치고 훈련시킨다면 군대를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였다.
詔百官하야 議其事하니 唯太僕卿注+[通鑑要解]掌邦國廐牧車輿之政令이라張道源 稱奕言合理
백관百官에게 명하여 이 일을 의논하게 하니, 오직 태복경太僕卿注+[通鑑要解]태복경太僕卿은 나라의 구목廐牧(飼養과 방목放牧)과 수레의 정령政令을 관장하였다. 장도원張道源만이 부혁傅奕의 말이 이치에 부합한다고 말하였다.
蕭瑀曰 佛 聖人也어늘 而奕 非之하니 非聖人者 無法이니
소우蕭瑀가 말하기를 “부처는 성인聖人인데 부혁傅奕이 비방하니, 성인聖人을 비방하는 자는 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當治其罪니이다 奕曰 人之大倫 莫如君父어늘 佛以世嫡而叛其父하고 以匹夫而抗天子注+[通鑑要解]釋典 佛以王太子 出家故 言以世嫡叛其父 釋氏之法 不拜君親이라 故言以匹夫而抗天子라하니라
마땅히 그 죄를 다스려야 합니다.” 하니, 부혁傅奕이 말하기를 “사람의 큰 윤리가 군부君父만 한 것이 없는데, 부처는 를 이을 적자嫡子의 몸으로 아버지를 배반하였고 필부匹夫의 몸으로 천자天子에게 항거하였습니다.注+[通鑑要解]佛以世嫡而叛其父 이필부이항천자以匹夫而抗天子:불경佛經에 ‘부처는 왕태자王太子의 몸으로 출가했다.’ 하였기 때문에 대를 이을 적자嫡子의 몸으로 아버지를 배반했다고 말한 것이요, 불법佛法에 군주와 어버이에게 절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필부匹夫의 몸으로 천자天子에게 항거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蕭瑀不生於空桑注+[釋義]列子云 伊尹 生於空桑이라하고 傳記曰 伊尹母旣孕 夢神告之曰 臼出水어든 而東走하라 明日 視臼出水하고 東走十里하야 而顧其邑하니 盡爲水 身因化爲空桑이러니 有莘氏女採桑이라가 得嬰兒於空桑中하고 命之曰伊尹이라 長而賢하야 爲殷湯相이라하니라 按此 乃妄誕之說이어늘 引之 但以證傅奕之言耳이어늘 乃遵無父之敎하니 瑀之謂矣니이다
소우蕭瑀공상空桑에서 태어난 것이 아닌데注+[釋義]열자列子》에 이르기를 “이윤伊尹공상空桑에서 태어났다.” 하였고, 전기傳記에 이르기를 “이윤伊尹의 어머니가 이미 잉태하였을 적에 꿈속에 이 고하기를 ‘절구확에서 물이 나오거든 동쪽으로 달아나라.’ 하였다. 다음 날 절구확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동쪽으로 10리를 달아나서 그 고을을 돌아보니, 다 물바다가 되었다. 그리고 몸이 인하여 공상空桑(속이 빈 뽕나무)으로 하였는데, 유신씨有莘氏의 딸이 뽕잎을 따다가 공상空桑 속에서 어린아이를 얻고는 이름하기를 이윤伊尹이라 하였다. 이윤伊尹은 장성하자 어질어서 나라 탕왕湯王의 정승이 되었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이것은 망령되고 허탄한 말인데 이것을 인용한 것은 다만 부혁傅奕의 말을 증명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마침내 어버이를 무시하는 가르침을 따르고 있으니, ‘를 그르다고 하는 자는 어버이를 무시하는 것이다.’라는 것은 소우蕭瑀 같은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瑀不能對하고 但合手注+[通鑑要解]相合하야 表心敬이라地獄之設 正爲是人이로이다
소우蕭瑀가 대답하지 못하고 다만 합장合掌注+[通鑑要解]합수合手는 두 손을 모아서 마음속의 공경을 표시하는 것이다. 하고서 말하기를 “지옥地獄을 만든 것은 바로 이런 사람 때문입니다.” 하였다.
上亦惡沙門, 道士 苟避征徭하고 不守戒律하야 皆如奕言이라
사문沙門도사道士들이 구차하게 부역을 피하고 계율을 지키지 아니하여 모두 부혁傅奕의 말과 같음을 미워하였다.
乃下詔命有司하야 沙汰注+[通鑑要解] 擇也 謂選擇之有所棄斥者也天下僧, 尼, 道士注+[頭註] 事也 身心順理하야 唯道是從하야 從道爲事 故曰道士하다
이에 조서를 내려 유사有司에게 명해서 천하의 비구승‧비구니‧도사道士注+[頭註]는 일삼음이니, 몸과 마음이 이치를 따라 오직 만을 따라서 를 따르는 것을 일삼기 때문에 도사道士라고 한 것이다. 를 도태시키게注+[通鑑要解]는 가리는 것이니, 사태沙汰는 가려서 버리고 배척함이 있는 것이다. 하였다.
〈傅奕傳〉
- 《당서唐書 부혁전傅奕傳》에 나옴 -
○ 六月丁巳 하다
○ 6월 정사일丁巳日(1일)에 태백성太白星(金星)이 〈낮에 나타나〉 하늘에 뻗쳐 있었다.
秦王世民 旣與太子建成 齊王元吉 有隙이라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이 이미 태자太子 이건성李建成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과 틈이 있었다.
以洛陽形勝注+[頭註]得形勢之勝便이니 地形險固故 能勝人也之地一朝有變하야 欲出保之어늘
그리하여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낙양洛陽은 지형이 뛰어난注+[頭註]형승形勝은 형세의 우세함과 편리함을 얻은 것이니, 지형이 험하기 때문에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곳이니, 하루아침 도성(長安)에 변란이 있을까 두려워하여 나가서 낙양洛陽을 보전하고자 하였다.
亦謂世民曰 首建大謀하야 削平海內 皆汝之功이라
또한 이세민李世民에게 이르기를 “처음에 큰 계책을 세워서 해내海內를 평정한 것은 모두 너의 공이다.
吾欲立汝爲嗣러니 汝固辭하고 且建成 年長하야 爲嗣日久하니 吾不忍奪로라
내가 너를 세워 후사로 삼으려 하였는데 네가 한사코 사양하였고, 또 건성建成은 나이가 가장 많은데다 후사로 있었던 날짜가 오래니, 내가 차마 태자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다.
觀汝兄弟하니 似不相容注+[通鑑要解]建成 夜召世民하야 飮酒而酖之하니 世民 暴心痛하야 吐血數升이라가 更甦也 故云不相容也이라
네 형제들을 살펴보니 서로 용납하지 못할 듯하다.注+[通鑑要解]이건성李建成이 밤에 이세민李世民을 불러 술을 먹이면서 술에 짐독酖毒을 타니, 이세민李世民이 갑자기 가슴의 통증을 호소하며 피를 몇 되나 토하다가 소생하였다. 그러므로 서로 용납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同處京邑이면 必有紛競하리니 當遣汝還行臺하리니
경읍京邑(長安)에 함께 머물면 반드시 분쟁이 있을 것이니, 마땅히 너를 보내어 낙양洛陽행대行臺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居洛陽하야 自陝以東 皆主之하라
낙양洛陽에 머물면서 협주陜州 이동 지방을 다 주관하도록 하여라.
仍命汝建天子旌旗하야 如漢梁王故事注+[頭註]漢景帝同母弟也 賜天子旌旗하야 出警入蹕 擬於天子하리라 世民 涕泣하고 辭以不欲遠離膝下하다
그런 다음 너에게 명하여 천자의 정기旌旗를 세워 나라 양효왕梁孝王고사故事注+[頭註]양효왕梁孝王(劉武)은 나라 경제景帝동모제同母弟이니, 경제景帝천자天子의 깃발을 내려주어 양효왕梁孝王이 나가고 들어올 때에 사람들을 경계하고 벽제辟除하는 것을 천자天子에 견주게 하였다. 와 같이 하겠다.” 하니, 이세민李世民이 눈물을 흘리며 슬하膝下를 멀리 떠나고 싶지 않다고 사양하였다.
建成, 元吉 與後宮으로 日夜譖訴世民於上하니 上信之
이건성李建成이원길李元吉후궁後宮들과 함께 밤낮으로 에게 이세민李世民을 참소하니, 이 그 말을 믿었다.
元吉 密請殺秦王한대 上曰 彼有定天下之功하고 罪狀 未著하니 何以爲辭 元吉曰 但應速殺이니 何患無辭릿고
이원길李元吉이 은밀히 진왕秦王을 죽일 것을 청하자, 이 말하기를 “저 진왕秦王은 천하를 평정한 공이 있고 죄상이 드러나지 않았으니, 무엇을 구실로 삼겠는가?” 하니, 이원길李元吉이 말하기를 “다만 빨리 죽여야 하니, 어찌 구실이 없음을 근심하십니까?” 하였다.
不應하다
그러나 이 응하지 않았다.
世民 腹心長孫無忌, 高士廉, 尉遲敬德等 日夜勸世民하야 誅建成, 元吉이어늘 世民歎曰 骨肉相殘 古今大惡이라
이세민李世民심복心腹장손무기長孫無忌고사렴高士廉울지경덕尉遲敬德 등이 밤낮으로 이세민李世民에게 이건성李建成이원길李元吉을 죽이도록 권하니, 이세민李世民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골육간骨肉間에 서로 해침은 고금古今의 가장 큰 죄악이다.
吾誠知禍在朝夕이나 欲俟其發然後 以義討之하노니 不亦可乎
내 진실로 조석朝夕 사이에 있음을 알지만 그들이 먼저 발동하기를 기다린 뒤에 의리로써 토벌하고자 하니, 이것이 옳지 않겠는가.” 하였다.
衆曰 大王 以舜爲何如人이닛고 曰 聖人也시니라
사람들이 말하기를 “대왕大王임금이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십니까?” 하니, 이세민李世民이 대답하기를 “성인聖人이시다.” 하였다.
衆曰 使舜浚井不出注+[釋義]舜之母蚤死어늘 舜父瞽瞍 再娶而生象하니 愛之하야 常欲殺舜하다 嘗使舜穿井하고 舜旣入深 瞽瞍下土實井이나 舜乃爲匿空이라가 旁出去하니라이면 則爲井中之泥 塗廩不下注+[釋義]瞽瞍使舜上塗廩하고 舜旣上 瞽瞍從下焚廩이나 舜乃以兩笠自扞而下하야 獲免하니라 則爲廩上之灰 安能澤被天下하고 法施後世乎리잇고
사람들이 말하기를 “가령 고수瞽瞍임금으로 하여금 우물을 치러 들어가게 했을 때에 임금이 나오지 못했으면注+[釋義]의 어머니가 일찍 죽자 의 아버지 고수瞽瞍가 다시 장가들어 을 낳았는데, 을 몹시 사랑하여 항상 을 죽이고자 하였다. 뒤에 한번은 고수瞽瞍으로 하여금 우물을 치게 하고는 이 우물로 깊이 들어가자 고수瞽瞍가 흙을 쏟아부어 우물을 메웠으나 이 마침내 몸을 숨기기 위한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가 옆으로 나와서 죽음을 면하였다. 우물 속의 진흙이 되었을 것이요, 창고에 흙을 바르게 했을 때에 임금이 내려오지 못했으면注+[釋義]고수瞽瞍으로 하여금 창고에 올라가 흙을 바르게 하고는 이 올라간 뒤에 고수瞽瞍가 아래에서 〈사다리를 치우고〉 창고를 불태웠으나 이 마침내 삿갓 두 개로 스스로 막으면서 내려와 죽음을 면하였다. 창고 위의 재가 되었을 것이니, 어떻게 은택이 천하天下에 입혀지고 법이 후세에 베풀어질 수 있었겠습니까.
是以 하니 蓋所存者大故也니이다
이 때문에 부모父母가 작은 몽둥이로 때리면 받고 큰 몽둥이로 때리면 도망하는 것이니, 이는 보존하는 것이 중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世民 命卜之러니 幕僚張公謹 自外來라가 見之하고 取龜投地曰 卜以決疑어늘
이세민李世民이 점을 치도록 명하였는데, 막료幕僚장공근張公謹이 밖에서 오다가 이것을 보고는 점을 치는 거북껍질을 취하여 땅에 던지며 말하기를 “점을 치는 것은 의심나는 것을 결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今事在不疑러니 尙何卜乎잇가
지금 이 일은 의심할 것이 없는데 오히려 무슨 점을 친단 말입니까.
卜而不吉이라도 庸得已乎注+[通鑑要解] 豈也잇가 於是 定計하다
점을 쳐서 길하지 않다 해도 어찌注+[通鑑要解]은 어찌이다. 그만둘 수 있겠습니까.” 하니, 이에 계책을 정하였다.
己未 太白 復經天注+[釋義]王氏曰 按天官書컨대 太白出不經天하니 經天則天下革政이라 韓詩外傳云 太白 春見東方以晨 爲啓明이요 秋見西方以夕 爲長庚이라 晉氏曰 太白 陰星이니 上公, 大將軍之象이라 出東이면 當伏東이요 出西 當伏西 過午爲經天이니 謂晝見午上也[通鑑要解]經 謂如織經之往來也이어늘 傅奕 密奏호되 太白 見秦分注+[釋義]王氏曰 禮春官保章氏 以星土辨九州하야 所封 〈封〉域 皆有分星하야 以觀妖祥이라 鶉首 秦也 星經云 東井, 輿鬼 秦之分野 雍州也하니 秦王 當有天下하리이다
기미일己未日(6월 3일)에 태백성太白星이 다시 하늘에 뻗쳐 있자,注+[釋義]王氏가 말하였다. “《천관서天官書》를 살펴보건대 ‘태백성太白星은 나와서 하늘에 뻗쳐 있지 않으니 하늘을 뻗쳐 있으면 천하天下정권政權이 바뀐다.’ 하였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 이르기를 ‘태백성太白星은 봄철에 동방에 나타나 새벽에 보이는 것을 계명성啓明星이라 하고, 가을에 서방에 나타나 저녁에 보이는 것을 장경성長庚星이라 한다.’ 하였다.” 진씨晉氏(晉灼)가 말하였다. “태백성太白星음성陰星으로 상공上公대장군大將軍의 형상이다. 동쪽에서 나왔으면 동쪽으로 지고 서쪽에서 나왔으면 서쪽으로 져야 하는데 별이 오시午時가 넘도록 하늘에 뻗쳐 있는 것을 경천經天이라 하니, 낮에 별이 오상午上(남방 하늘)에 나타나는 것을 이른다.” [通鑑要解]經은 베를 짤 때 날실이 왕래하는 것과 같음을 이른다. 부혁傅奕이 은밀히 아뢰기를 “태백성太白星나라 분야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보장씨保章氏〉에 ‘성토星土(별이 주관하는 지역)를 가지고 구주九州를 분별하여 봉해 준 경계에는 모두 그 분야의 별이 있어 요망함과 상서로움을 관찰한다.’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순수鶉首나라(長安)의 분야이다.’ 하였고, 《성경星經》에 이르기를 ‘동정東井여귀輿鬼나라의 분야이니 옹주雍州이다.’ 하였다.” 에 나타났으니, 진왕秦王이 마땅히 천하를 소유할 것입니다.” 하였다.
以其狀授世民하니
부혁傅奕이 은밀히 아뢴 글을 이세민李世民에게 주었다.
於是 世民 密奏호되 建成, 元吉 淫亂後宮이라하고
이에 이세민李世民이건성李建成이원길李元吉이 후궁들과 음란하였음을 은밀히 아뢰고,
且曰 臣於兄弟 無絲毫負어늘 今欲殺臣하니 似爲世充, 建德報讐니이다
또 말하기를 “은 형제들에게 털끝만큼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지금 신을 죽이고자 하니, 형제들이 왕세충王世充두건덕竇建德을 위하여 복수하고자 하는 듯합니다.” 하니,
省之하고 愕然注+[頭註] 驚也報曰 明注+[頭註] 謂明日이라當鞫問하리니 汝宜早參注+[頭註]이라하라
이 이것을 살펴보고 깜짝 놀라注+[頭註]은 놀람이다. 말하기를 “내일注+[頭註]은 내일을 이른다. 마땅히 국문할 것이니, 너는 내일 일찍 조참朝參注+[頭註]조참朝參을 이른다. 하라.” 하였다.
庚申 世民 遂帥長孫無忌等하고하야 伏兵於玄武門이라가 世民 射建成殺之하고 尉遲敬德 將七十騎繼至하야 左右射元吉墜馬러니 世民馬逸入林下라가 爲木枝所하야 墜不能起
경신일庚申日(4일)에 이세민李世民이 마침내 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을 거느리고 들어가 현무문玄武門에 군대를 매복시켰다가 이세민李世民이건성李建成을 쏘아 죽였으며, 울지경덕尉遲敬德은 70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뒤따라 이르러서 좌우에서 이원길李元吉을 쏘아 말에서 떨어뜨렸는데, 이세민李世民의 말이 달아나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뭇가지에 걸리자 이세민李世民이 말에서 떨어져 일어나지 못하였다.
元吉 遽至하야 奪弓將扼注+[通鑑要解] 與搤同하니 捉也어늘 敬德 躍馬叱之하니
이원길李元吉이 급히 이르러 활을 빼앗고 목을 조르려注+[通鑑要解]과 같으니, 잡음이다. 하였는데, 울지경덕尉遲敬德이 말에 뛰어올라 크게 꾸짖었다.
元吉 步欲趨武德殿이어늘 敬德 追射殺之하다
이원길李元吉이 도보로 무덕전武德殿으로 달아나려 하자, 울지경덕尉遲敬德이 쫓아가 활을 쏘아 죽였다.
謂裴寂等曰 不圖今日 乃見此事하니 當如之何
배적裴寂 등에게 이르기를 “오늘에 이러한 일을 보게 될 줄은 생각지 못했으니, 마땅히 어찌해야 하는가?” 하니,
蕭瑀, 陳叔達曰 建成, 元吉 疾秦王功高望重하야 共爲姦謀러니 今秦王 已討而誅之하니
소우蕭瑀진숙달陳叔達이 아뢰기를 “이건성李建成이원길李元吉이, 진왕秦王이 공이 높고 명망이 중한 것을 미워하여 함께 간사한 계책을 세웠는데, 이제 진왕秦王이 이미 이들을 토벌하여 죽였으니,
秦王 功蓋宇宙하야 率土歸心이니이다
진왕秦王이 온 우주를 뒤덮어 온 우주宇宙 안의 민심이 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陛下若處以元良注+[頭註] 一人元良이면 萬國以貞이라하니 世子之謂也라하니라하야 委之國務 無復事矣리이다
폐하께서 만약 진왕秦王원량元良(太子)注+[頭註]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에 “‘한 사람이 크게 선량하면 만방萬邦이 바르게 된다.’ 하였으니, 세자世子를 두고 이른 것이다.” 하였다. 으로 처우하여 국가의 사무를 맡기신다면 다시는 아무 일이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善하다
이 말하기를 “좋다.
吾之夙心라하고
이는 내가 진작부터 마음먹은 것이다.” 하였다.
癸亥 立世民하야 爲皇太子하고 又詔호되 自今으로 軍國庶事 無大小 悉委太子處決然後 聞奏하라하다
계해일癸亥日(6월 7일)에 이세민李世民을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또 명하기를 “지금부터 군국軍國의 여러 정사政事대소大小를 막론하고 모두 태자에게 맡겨 처결하게 한 뒤에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出本紀及建成等傳〉
- 《당서唐書》의 〈고조본기高祖本紀〉와 〈이건성전李建成傳〉 등에 나옴 -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立嫡以長注+[釋義]公羊傳隱元年 立嫡以長이요 不以賢하며 立子以貴 不以長이라한대 注云 嫡 謂嫡夫人之子 尊無與敵이라 故以齒也 謂左右媵及娣姪之子 位有貴賤하고 又防其同時而生이라 故以貴也라하니라 禮之正也
적자嫡子를 세울 때에 연장자로써 하는 것은注+[釋義]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은공隱公 원년元年에 “적자嫡子를 세울 때에는 연장자로써 하고 어짊으로 하지 않으며, 서자庶子를 세울 때에는 어머니의 귀함으로써 하고 연장자로 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 에 이르기를 “(嫡子)은 적부인嫡夫人의 아들을 이르니 높음이 더불어 대적할 자가 없으므로 연치로써 하고, (庶子)는 좌우의 잉첩媵妾부인夫人의 여동생과 조카의 아들을 이르니 지위에 귀천貴賤이 있고 또 동시에 태어났을 경우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어머니의 귀함으로써 한다.” 하였다. 올바른 이다.
然高祖所以有天下 皆太宗之功이라
그러나 고조高祖(李淵)가 천하를 소유한 것은 모두 태종太宗(李世民)의 공이었다.
隱太子以庸劣居其右注+[釋義]隱太子 建成也 後追封息隱王하니라 庸劣 謂庸暗愚劣也 古者 일새 以右爲上也하니 地嫌勢逼하야 必不相容이라
은태자隱太子(李建成)가 용렬한 재주로써 이세민李世民의 위에 있었으니,注+[釋義]은태자隱太子이건성李建成이니, 뒤에 식은왕息隱王추봉追封되었다. 용렬庸劣은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고 못남을 이른다. 옛날에 지도地道는 왼쪽을 높이므로 오른쪽을 이라 한 것이다. 지위가 혐의스럽고 형세상 핍박하여 반드시 서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曏使高祖有文王之明注+[釋義]記檀弓云 昔者 文王 舍伯邑考而立武王이라한대 文王之立武王 權也 伯邑考 文王長子也하고 隱太子有泰伯之賢注+[釋義]周太王三子 長泰伯이요 次仲雍이요 次季歷이라 季歷 生子昌하니 有聖德이어늘 太王 欲傳位於季歷하야 以及昌한대 泰伯知之하고 卽與仲雍으로 逃之荊蠻하니라하고 太宗有子臧之節注+[釋義]春秋 曹宣公庶子子臧 乃負芻之兄이라 宣公卒 負芻殺其太子하고 自立이어늘 晉厲公執之하다 諸侯以子臧賢이라하야 欲立之한대 子臧辭而奔宋하니라이면 則亂何自而生哉
그때 만일 고조高祖문왕文王의 현명함이 있고注+[釋義]예기禮記》 〈단궁檀弓〉에 이르기를 “옛날에 문왕文王백읍고伯邑考를 버리고 무왕武王을 세웠다.” 하였는데, 그 에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세운 것은 권도權道이니, 백읍고伯邑考문왕文王장자長子이다.” 하였다. 은태자隱太子태백泰伯의 어짊이 있고注+[釋義]나라 태왕太王은 세 아들을 두었으니 장자長子태백泰伯이고, 그 다음은 중옹仲雍이고, 그 다음은 계력季歷이었다. 계력季歷이 아들 을 낳으니 성덕聖德이 있었으므로 태왕太王계력季歷에게 왕위王位를 전하여 에게 미치게 하고자 하였는데, 태백泰伯이 이것을 알고 즉시 중옹仲雍과 함께 형만荊蠻으로 도망하였다. 태종太宗자장子臧의 절개가 있었더라면注+[釋義]춘추좌전春秋左傳》에 나라 선공宣公서자庶子 자장子臧은 바로 부추負芻(成公)의 형이었다. 선공宣公이 죽자 부추負芻태자太子를 죽이고 스스로 즉위하였는데, 나라 여공厲公이 그를 사로잡았다. 제후諸侯들이 자장子臧이 어질다 하여 그를 세우고자 하였는데, 자장子臧이 사양하고 나라로 도망하였다. 이 어디로부터 생겨났겠는가.
旣不能然인댄 太宗始欲俟其先發然後 應之하니 如此 則事非獲已 猶爲愈也리라
이미 이와 같지 못할 바에는 태종太宗이 처음에 그들이 먼저 발동하기를 기다린 뒤에 응하고자 하였으니, 이와 같이 하였다면 형편상 부득이해서였으므로 그래도 나았을 것이다.
旣而 爲群下所迫하야 遂至蹀血注+[釋義] 履也 謂殺人(而)[血]流 履涉之也禁門하고 推刃同氣하야 貽譏千古하니 惜哉
그런데 얼마 뒤에 아랫사람들에게 압박을 받아 마침내 금문禁門에서 사람을 죽여 그 피를 밟고 갔으며注+[釋義]접혈蹀血:은 밟음이니, 접혈蹀血은 사람을 죽여서 유혈이 낭자함에 피를 밟고 건너감을 이른다. 동기간同氣間을 칼로 찔러 죽여서 천고에 비난을 남겼으니, 애석하다.
夫創業垂統之君 子孫之所儀刑也 彼中, 明, 肅, 代注+[頭註] 中宗이요 明皇이요 肅宗이요 代宗이니 竝以兵淸內難而繼統이라 明皇 不稱廟號之傳繼 得非有所指擬하야 以爲口實乎
국가를 창업創業하여 전통傳統을 드리운 군주는 자손들이 본보기로 삼는 바이니, 저 중종中宗명황明皇(玄宗)‧숙종肅宗대종代宗注+[頭註]中, , , :중종中宗이고 명황明皇이고 숙종肅宗이고 대종代宗이니, 모두 군대를 동원하여 내란內亂을 소탕하고 국통國統을 이었다. 명황明皇묘호廟號(玄宗)로 칭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를 피한 것이다. 이 왕위를 전하고 계승할 때에 이세민李世民을 가리키면서 견주어 구실로 삼은 바가 되지 않았겠는가.”
孫甫曰
손보孫甫가 말하였다.
立嫡以長者 所以止爭奪之心也 行之平世 固爲常法이어니와
적자嫡子를 세울 때에 연장자로써 하는 것은 왕위를 다투고 빼앗으려는 마음을 저지하려는 것이니, 태평한 세상에 이를 행하는 것은 진실로 상법常法이라고 할 수 있다.
若夫古之世子不賢이면 尙求聖人하야 以傳大位어든 況長子不賢하고 次子聖乎
그러나 옛날에 세자世子가 어질지 못하면 성인聖人을 찾아서 대위大位를 전하였는데, 하물며 장자長子가 어질지 못하고 차자次子스러움에 있어서랴.
安得局於常法也리오
어찌 상법常法에 구애될 것이 있겠는가.
唐有天下 本秦王之謀
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것은 본래 진왕秦王의 계책이었다.
功德之大하야 海內屬望하니 其勢可終爲人臣乎
공덕功德이 커서 해내海內가 촉망하니, 형세상 끝내 남의 신하가 될 수 있겠는가.
建成 自擧兵以來 無一事可道어늘 但以年長으로 使居聖子上하니 雖至愚者라도 知其不可也
이건성李建成은 군대를 일으킨 이래로 한 가지 일도 칭찬할 만한 것이 없는데, 단지 연장자라는 이유만으로 뛰어난 아들의 위에 있게 하였으니, 지극히 어리석은 자라 하더라도 그 불가함을 알 것이다.
胡不虛其位하야 待天命之定乎
어찌하여 자리를 비워두어 천명天命이 정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았는가.
況受禪之初 天下未定하니 何汲汲於立子也리오
더구나 고조高祖나라로부터 양위讓位 받은 초기에 천하가 아직 평정되지 못하였으니, 어찌 급급히 세자世子를 세울 필요가 있었겠는가.
善哉
훌륭하다!
寧王憲注+[附註]睿宗長子也 初名成器 嘗爲太子러니 玄宗 爲楚王하야 有大功한대 而憲讓之하니 封爲宋王이라 玄宗七年 徙宋王成器爲寧王하고 이라 二十九年薨하니 追諡讓皇帝하니라 讓太子之言曰 時平則先嫡長하고 世亂則先有功이라하니 萬世不易之論也니라
영왕寧王 이헌李憲注+[附註]영왕寧王 이헌李憲예종睿宗장자長子이니, 초명初名성기成器이다. 일찍이 태자가 되었는데, 현종玄宗초왕楚王이 되어 큰 공을 세우자 이헌李憲이 그에게 사양하니 이헌李憲을 봉하여 송왕宋王으로 삼았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7년(719)에 송왕宋王 이성기李成器를 옮겨 영왕寧王으로 삼고 이름을 으로 고쳤다. 현종玄宗 개원開元 29년(741)에 죽자 양황제讓皇帝추시追諡하였다. 태자太子의 자리를 사양한 말에 이르기를 ‘세상이 태평하면 적장자嫡長子를 먼저 하고 세상이 혼란하면 이 있는 자를 먼저 한다.’ 하였으니, 이는 만대토록 바꿀 수 없는 의론이다.”
洗馬魏徵 常勸太子建成하야 早除秦王이러니
처음에 태자세마太子洗馬 위징魏徵이 항상 태자太子 이건성李建成에게 진왕秦王을 일찌감치 제거하라고 권하였다.
及建成敗 世民 召徵하야 謂曰 汝何爲離間我兄弟
이건성李建成이 실패하자, 이세민李世民위징魏徵을 불러 말하기를 “너는 어찌하여 우리 형제를 이간질하였느냐?” 하니,
爲之危懼호되 擧止自若하야 對曰 先太子早從徵言이런들 必無今日之禍하리이다
사람들이 위징魏徵을 위하여 염려하고 두려워하였으나 위징魏徵은 행동거지가 태연자약하며 대답하기를 “선태자先太子(李建成)께서 진작 저의 말을 따랐더라면 필시 오늘날의 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世民 素重其才하야 改容禮之하고 引爲詹事注+[頭註] 省也, 供也主簿하고 亦召王珪, 韋挺於雋州注+[釋義]先是 楊文幹 與建成親善이러니 文幹反 珪, 挺 皆爲太子官屬이라 高祖委罪於二人而流於雋州하니라하야 皆以爲諫議大夫하다
이세민李世民이 평소 그의 재주를 중하게 여겨 용모를 고쳐 예우하고 그를 천거하여 첨사詹事注+[頭註]은 살핌이요, 이바지함이다. 主簿로 삼았으며, 또한 왕규王珪위정韋挺준주雋州에서 불러와注+[釋義]이에 앞서 양문간楊文幹이건성李建成과 친하였는데, 양문간楊文幹이 배반하자 왕규王珪위정韋挺이 모두 태자太子관속官屬이었으므로 고조高祖가 두 사람에게 죄를 돌려 준주雋州로 유배 보냈었다. 모두 간의대부諫議大夫로 삼았다.
范祖禹曰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齊桓公 殺公子糾하니 召忽 死之어늘 管仲 不死하고 又相桓公以霸 何哉
제환공齊桓公공자公子 를 죽이자, 소홀召忽은 죽었는데 관중管仲은 죽지 않고 또 환공桓公을 도와 패자霸者가 되게 한 것은 어째서인가?
桓公, 子糾 皆以公子出奔하니
환공桓公자규子糾는 모두 공자公子의 신분으로 다른 나라로 망명하였다.
子糾 未嘗爲世子也 桓公 先入而得齊 非取諸子糾也
자규子糾는 일찍이 세자世子가 된 적이 없으니, 환공桓公이 먼저 들어와 나라를 얻은 것은 자규子糾에게서 취한 것이 아니다.
桓公旣入 而殺子糾하니 惡則惡矣 然納桓公者 齊也
환공桓公이 이미 나라에 들어온 뒤에 자규子糾를 죽였으니, 악하기는 악하지만 환공桓公을 받아들인 것은 나라였다.
春秋 書公伐齊納糾라하야 不稱子하니 不當立者也 齊小白入于齊라하야 以小白繫之齊注+[釋義]小白 齊桓公之名이라 以小白繫之齊 謂春秋 以小白 繫于齊字下하니 當立者也
춘추春秋》에 ‘나라 장공莊公나라를 쳐서 를 본국으로 들여보냈다.[公伐齊納糾]’고 써서 〈‘’라고만 하고〉 ‘자규子糾’라고 칭하지 않았으니 세워서는 안 될 자라는 뜻이요, ‘나라 소백小白나라에 들어갔다.[齊小白入於齊]’고 써서 소백小白을 ‘’字 아래에 달아 놓았으니注+[釋義]소백小白나라 환공桓公의 이름이다. 소백小白을 ‘’字에 달아 놓았다는 것은 《춘추春秋》에 ‘제소백입어제齊小白入於齊’라 써서 소백小白을 ‘’字 아래에 두었음을 이른다. 세워야 할 자라는 뜻이다.
又曰齊人取子糾殺之라하야 稱子糾하니 所以惡齊也
그런데 또 말하기를 ‘나라 사람이 자규子糾를 잡아서 죽였다.[齊人取子糾殺之]’고 써서 ‘자규子糾’라 칭하였으니, 나라를 미워한 것이다.
是以 管仲 不得終讐桓公하고 而得以之爲君이라
이 때문에 관중管仲환공桓公을 끝까지 원수로 여기지 않고 그를 군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今建成 爲太子하고 且兄也 秦王 爲藩王하고 又弟也
지금 이건성李建成태자太子이자 형이고,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번왕藩王이자 동생이다.
王, 魏受命하야 爲東宮之臣이면 則建成 其君也 豈有人殺其君이어늘 而可北面爲之臣乎
왕규王珪위징魏徵을 받고서 동궁東宮의 신하가 되었으면 이건성李建成은 그의 군주이니, 어찌 남이 자기 군주를 시해하였는데 북면北面하고서 그의 신하가 될 수 있단 말인가.
且以弟殺兄하고 以藩王殺太子하야 而奪其位하니 王, 魏不事太宗 可也
또한 동생의 몸으로 형을 죽이고 번왕藩王의 신분으로 태자太子를 죽이고서 그 자리를 빼앗았으니, 왕규王珪위징魏徵태종太宗을 섬기지 않는 것이 옳았다.
夫食君之祿而不死其難하고 朝以爲讐라가 暮以爲君하야 於其不可事而事之하니 皆有罪焉이라
군주의 녹봉을 먹었으면서 그 난리에 죽지 않았고 아침에는 원수로 여겼다가 저녁에는 군주로 삼아서 섬겨서는 안 될 사람인데 그를 섬겼으니, 모두 죄가 있다.
臣之事君 如婦之從夫也 其義不可以不明이라
신하가 군주를 섬기는 것은 부인이 남편을 섬기는 것과 같으니, 의리를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
苟不明於君臣之義而委質於人이면 로라
만일 군신간君臣間의 의리를 분명히 하지 아니하여 다른 사람에게 몸을 맡겨 신하 노릇 한다면 〈사람들이〉 비록 이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더라도 나는 믿지 못하겠다.”
[史略 史評]朱子曰
[史略 사평史評]朱子가 말씀하였다.
관중管仲이 있고 죄가 없으므로 성인聖人이 그의 죽음을 꾸짖지 않고 그의 을 칭찬하신 것이다.
王, 魏 先有罪而後有功하니 則不以相掩 可也니라
그러나 왕규王珪위징魏徵은 먼저 죄가 있고 뒤에 이 있었으니, 을 가지고 를 덮어주지 않는 것이 옳다.”
世民 命縱禁苑鷹犬하고 罷四方貢獻하며 聽百官各陳治道하야 政令 簡肅하니 中外大悅이러라
이세민李世民이 명령을 내려 궁궐과 원유苑囿의 매와 개를 풀어주고 사방四方진공進貢(貢物을 바침)을 그만두게 하였으며, 백관百官들이 각각 정치政治하는 방도方道를 아뢰도록 허락하여 정사와 명령이 간결하고 엄숙하니, 중외中外가 크게 기뻐하였다.
○ 八月癸亥 詔傳位於太子하니 太宗 卽皇帝位於東宮顯德殿하고 赦天下注+[釋義]此已下稱上者 竝是太宗이라하다
○ 8월 계해일癸亥日(8일)에 조명을 내려 태자太子에게 전위하니, 태종太宗동궁東宮현덕전顯德殿에서 황제에 즉위하고 천하天下에 사면령을 내렸다.注+[釋義]이 이하로부터 이라고 칭한 것은 모두 태종太宗이다.
〈竝出太宗紀〉
- 모두 《당서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에 나옴 -
高祖贊曰
고조高祖에 말하였다.
唐有天下 幾三百年이니 可謂盛哉
나라가 천하를 소유한 것이 거의 300년에 이르렀으니, 융성하다고 이를 만하다.
豈非人厭隋亂而蒙德澤이리오
이는 어찌 사람들이 나라의 난리를 싫어하고 나라의 은택을 입은 때문이 아니겠는가.
繼以太宗之治 制度紀綱之法 後世有以憑藉扶持而能永其天命歟인저
뒤이어 태종太宗이 다스릴 때에 제도와 기강의 법도가 후세에 빙자하고 유지할 만한 것이 있어서 천명天命을 길게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唐之興 蓋以人厭隋亂이라
나라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이 나라의 난리를 싫어했기 때문이다.
高祖起太原하야 初伐西河하야 首斬佞臣하고 慰撫居民하야 秋毫無犯하니 義聲所曁 聞者響應이라
고조高祖태원太原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서하西河를 정벌하여 맨 먼저 아첨하는 신하(高德儒)를 목 베고 거주하는 백성들을 위무하여 추호도 범함이 없으니, 의로운 소문이 미치는 바에 듣는 자들이 모두 호응하였다.
於是 取霍邑하고 克汾, 絳하고 降馮翊하고 守潼關하고 徇渭北하야 乘勝攻圍하야 遂克長安하야 雄據京邑하니 興王之業 已定於此
이에 곽읍霍邑을 점령하고, 임분군臨汾郡강군絳郡을 이기고, 풍익馮翊을 함락하고, 동관潼關을 지키고, 위수渭水 북쪽 지역을 순행하여 승세를 타고 적을 공격, 포위해서 마침내 장안長安을 취하여 경읍京邑(長安)을 웅거하였으니, 왕업王業을 일으키는 것이 이때에 이미 결정되었다.
自時厥後 降李密於黎陽하고 俘建德於河北하고 擒世充於東都하고 芟武周於幷州하고 翦黑闥於山東하고 夷蕭銑於江陵하고 殄薛仁杲於涇水하야 六年之間 海內咸服하니 其成功 何其速哉
고조高祖가 이 뒤로 이밀李密여양黎陽에서 항복시키고, 두건덕竇建德하북河北에서 사로잡고, 왕세충王世充동도東都(洛陽)에서 사로잡고, 유무주劉武周병주幷州에서 베고, 유흑달劉黑闥산동山東에서 제거하고, 소선蕭銑강릉江陵에서 평정하고, 설인고薛仁杲경수涇水에서 죽여서 6년 만에 해내海內가 모두 복종하였으니, 성공함이 어쩌면 이리도 신속하였는가.
蓋以太宗爲之子也
이는 태종太宗을 아들로 두었기 때문이다.
惜其擧事之初 設詐罔衆하고 殺人利己
애석하다. 거사擧事하는 초기에 속임수를 써서 사람들을 속이고 남을 죽여서 자신을 이롭게 하였다.
況昵裴寂之邪而受宮女하고 聽劉文靜之說而臣突厥이온여
더구나 배적裴寂같이 간사한 자를 가까이하여 궁녀宮女를 받아들였고, 유문정劉文靜의 말을 듣고 돌궐突厥에게 신하 노릇 하였다.
以此貽謀하니 何以爲訓이리오
이로써 후손에게 계책을 남겨 주었으니 어떻게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있었겠는가.
是以 唐世 人主無正家之法하고 戎狄多猾夏之禍하니 蓋高祖以此始也일새라
이 때문에 나라 때에 군주가 집안을 바로잡는 법이 없고 오랑캐들이 중하中夏를 어지럽히는 가 많았으니, 이는 고조高祖가 이로써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이나 能定律令하고 置學校하고 旌擢孫伏伽, 李素立等하며 又錄隋之子孫하야 量才授任하니 由魏晉以降으로 最爲忠厚
그러나 율령律令을 정하고 학교를 설치하였으며, 손복가孫伏伽이소립李素立 등을 정표旌表하여 발탁하였고, 또 나라의 자손子孫들을 녹용錄用하여 재주에 따라 임무를 맡겼으니, 이후로 가장 충후忠厚하였다.
其享國久長 豈無自而然哉리오
나라가 오랫동안 나라를 누린 것이 어찌 아무 이유없이 그러하였겠는가.”
詔以宮女衆多하야注+[釋義]閉也可愍하니 宜簡注+[頭註]與揀通이라出之하야 各歸親戚하야 任其適人하라하다
조서를 내려 “궁녀가 많아 깊은 궁중注+[釋義]는 닫힘이다. 에 갇혀 있는 것이 가여우니, 골라서注+[頭註]과 통한다. 내보내어 각각 친척에게 돌아가 마음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게 하라.” 하였다.
〈出太宗紀〉
- 《당서唐書 태종본기太宗本紀》에 나옴 -
○ 己卯 突厥 進寇高陵이어늘 辛巳 涇州道行軍總管尉遲敬德 與突厥 戰於涇陽하야 大破之하다
기묘일己卯日(8월 24일)에 돌궐突厥이 진격하여 고릉현高陵縣을 침략하자, 신사일辛巳日(8월 26일)에 경주도행군총관涇州道行軍總管 울지경덕尉遲敬德경양涇陽에서 돌궐突厥과 싸워 크게 격파하였다.
癸未 頡利可汗 進至渭水便橋注+[釋義]王氏曰 長安城北面西頭門曰便門이니 卽平門也 古者 平, 便 字通이라 漢武於此作橋하야 跨渭水上하야 以趨茂陵하니 其道易直하고 橋正與便門相對할새 因號便橋하니라之北하야 遣其腹心執失思力注+[釋義]執失 虜複姓也 思力 名也하야 入見以觀虛實할새
계미일癸未日(8월 28일)에 힐리가한頡利可汗이 전진하여 위수渭水편교便橋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장안성長安城 북쪽의 서쪽 머리에 있는 문을 편문便門이라 하니 바로 평문平門이다. 옛날에 便은 글자가 통용되었다. 처음에 나라 무제武帝가 여기에 다리를 만들어서 위수渭水 위를 넘어 무릉茂陵으로 달려가게 하니, 그 길이 평평하고 곧으며 다리가 바로 편문便門과 서로 마주하였으므로 인하여 편교便橋라 이름하였다. 북쪽에 이르러서 심복인 집실사력執失思力注+[釋義]집실執失은 오랑캐의 복성複姓이며 사력思力은 이름이다. 을 보내어 입조入朝하게 해서 당군唐軍허실虛實을 관찰하게 하였다.
思力 盛稱頡利, 突利二可汗 將兵百萬하야 今至矣라하니
집실사력執失思力힐리頡利돌리突利가한可汗이 백만의 군대를 거느리고 이제 이를 것이라고 극구 말하자,
上讓之曰 吾與汝可汗으로 面結和親하고 贈遺金帛 前後無算이어늘
이 그를 꾸짖고 말하기를 “내가 너희 가한可汗과 대면하여 화친을 맺고 금과 비단을 선물로 준 것이 전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汝可汗 自負盟約하고 引兵深入하니 於我 無愧
너희 가한可汗이 스스로 맹약을 저버리고 군대를 이끌고 깊이 쳐들어오니, 나에게 부끄러움이 없는가.
汝雖戎狄이나 亦有人心이어늘 何得全忘大恩하고 自誇彊盛
네가 비록 오랑캐이지만 또한 사람의 마음이 있을 터인데, 어찌 큰 은혜를 전부 잊고 스스로 강성함을 과시한단 말인가.
我今先斬汝矣리라 思力 懼而請命注+[頭註]謂請貸其死命也이어늘
내 지금 너의 목부터 먼저 베겠다.” 하니, 집실사력執失思力이 두려워하여 목숨을 살려 줄 것을 청하였다.注+[頭註]청명請命은 죽을 목숨을 살려 달라고 청함을 이른다.
蕭瑀, 封德彛請禮遣之한대 上曰 我今遣還이면 虜謂我畏之라하야 愈肆憑陵이라하고 乃囚思力於門下省注+[通鑑要解] 音生이니 上聲이라 禁署也 漢以避元后父諱하야 改名省中하야 以禁中爲省中也하다
소우蕭瑀봉덕이封德彛가 그를 예우하여 돌려보낼 것을 청하자, 이 말하기를 “내 이제 집실사력執失思力을 살려 보내면 오랑캐들은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한다고 생각하여 더욱더 침략하여 능멸할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집실사력執失思力문하성門下省注+[通鑑要解]은 음이 ‘생(성)’이니 상성上聲이다. 금중禁中(궁중)의 관서官署이니, 나라 때에 원후元后 아버지의 왕금王禁을 피하여 성중省中이라 고쳐서 금중禁中성중省中이라 하였다. 에 가두었다.
自出玄武門하야 與高士廉, 房玄齡等六騎 徑詣渭水上하야 與頡利 隔水而語할새 責以負約하니 突厥 大驚하야 皆下馬羅拜러라
이 직접 현무문玄武門을 나가 고사렴高士廉방현령房玄齡 등 여섯 명의 기병騎兵과 함께 곧바로 위수渭水 가로 나아가서 힐리가한頡利可汗과 물을 사이에 두고 말할 적에 약속을 저버린 것을 꾸짖으니, 돌궐突厥이 크게 놀라 모두 말에서 내려 죽 늘어서서 절하였다.
俄而 諸軍 繼至하니 頡利見執失思力不返하고 而上挺身注+[通鑑要解] 超拔也輕出하며 軍容甚盛하고 有懼色이러라
이윽고 제군諸軍이 뒤이어 이르자 힐리頡利집실사력執失思力이 돌아오지 않았고 이 단신으로 뛰쳐나와注+[通鑑要解]은 뛰쳐나옴이다. 가볍게 나오며 군용軍容이 매우 성대한 것을 보고는 두려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麾諸軍注+[通鑑要解] 又與하니 以手指麾也하야 使却而布陳하고 獨留하야 與頡利語하다
제군諸軍을 지휘하여注+[通鑑要解]는 또 와 같으니, 손으로 지휘하는 것이다. 퇴각하여 포진하게 하고 홀로 남아 힐리가한頡利可汗과 말하였다.
蕭瑀以上輕敵이라하야 叩馬注+[頭註] 音扣 持也固諫이어늘 上曰 吾籌之已熟하니 非卿所知
소우蕭瑀이 적을 깔본다 하여 말고삐를 잡고注+[頭註]는 음이 구이니 붙잡음이다. 한사코 간하자, 이 말하기를 “내가 이미 익숙히 계획하였으니 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突厥 所以敢傾國而來하야 直抵 以我國內有難하고 朕新卽位하야 謂我不能扞禦故也
돌궐突厥이 감히 온 나라의 힘을 다 기울여 와서 곧바로 교전郊甸에 이른 까닭은 우리나라에 내란內亂이 있고 이 새로 즉위하여 내가 저들을 제대로 막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我若示之以弱하야 閉門拒守 虜必放兵大掠하야 不可復制
내가 만약 약함을 보여서 문을 닫고 항거하여 지키면 오랑캐들이 반드시 군대를 풀어 크게 노략질해서 다시는 제재할 수 없을 것이다.
輕騎獨出하야 示若輕之하고 又震耀軍容하야 使知必戰하야 出虜不意하야 使之失圖 虜入我地旣深하야 必有懼心이라
그러므로 이 경무장한 기병만 대동하고 홀로 나가서 마치 저들을 깔보는 것처럼 보이고, 또 군용軍容을 크게 떨쳐서 저들로 하여금 반드시 싸울 것임을 알게 하여 저들이 예상치 못하는 데로 나가서 적들로 하여금 계책을 잃게 한다면 적들은 우리 땅에 이미 깊이 들어왔으니 반드시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질 것이다.
與戰則克하고 與和則固矣리니
그러므로 저들과 싸우면 이기고 저들과 화친하면 견고할 것이다.
制服突厥 在此一擧 第觀之注+[頭註] 但也하라
돌궐突厥을 제어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이 한 번의 움직임에 달려 있으니, 은 다만注+[頭註]는 다만이다. 지켜보라.” 하였다.
是日 頡利請和어늘 詔許之하고 上卽日還宮하다
이날 힐리가한頡利可汗이 화친을 청하자 조명을 내려 허락하고 이 당일로 환궁還宮하였다.
乙酉 又幸城西하야 하야 與頡利 盟于便橋之上하니 突厥 引兵退하다
을유일乙酉日(8월 30일)에 또다시 서쪽으로 가서 백마白馬의 피를 내어 힐리가한頡利可汗편교便橋 위에서 맹약하니, 돌궐突厥이 군대를 이끌고 후퇴하였다.
蕭瑀請於上曰 突厥未和之時 諸將 爭請戰호되 陛下不許하시니 臣等 亦以爲疑러니
소우蕭瑀에게 묻기를 “돌궐突厥이 화친하지 않았을 때에 제장諸將들이 다투어 싸울 것을 청하였으나 폐하陛下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니, 신들 또한 의심하였습니다.
旣而 虜自退하니 其策 安在잇고
그런데 이윽고 오랑캐가 스스로 물러갔으니, 그 계책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였다.
上曰 吾觀突厥之衆하니 雖多而不整하고 君臣之志 唯賄是求
이 말하기를 “내가 돌궐突厥의 무리를 보니 비록 숫자는 많으나 정돈되지 못하였고, 군주와 신하의 뜻이 오직 재물을 구할 뿐이었다.
當其請和之時하야 可汗 獨在水西하고 達官 皆來謁我하니 我若醉而縛之하고 因襲擊其衆이면 勢如注+[頭註] 折也
그들이 화친을 청할 때를 당하여 가한可汗은 홀로 위수渭水 서쪽에 있고 달관達官들은 모두 와서 나를 알현하였으니, 내가 만약 이들에게 술을 먹여 취하게 해서 포박한 다음 이를 틈타 그 무리를 습격했다면 형세가 썩은 나무를 꺾는注+[頭註]은 꺾음이다. 것과 같이 쉬웠을 것이다.
又命長孫無忌, 李靖하야 伏兵於幽州以待之라가 虜若奔歸어든 伏兵 邀其前注+[通鑑要解] 遮也하고 大軍 躡其後 覆之如反掌로되
장손무기長孫無忌이정李靖에게 명하여 유주幽州에 군대를 매복시키고 기다렸다가 오랑캐가 만약 도망하여 돌아가거든 복병伏兵은 그 앞을 요격하고注+[通鑑要解]는 가로막음이다. 대군大軍은 그 뒤를 밟았다면 그들을 전복시키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웠을 것이다.
所以不戰者 吾卽位日淺하야 國家未安하고 百姓未富하니 且當靜以撫之
그런데 내가 저들과 싸우지 않은 까닭은, 내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국가가 아직 안정되지 못하고 백성들이 부유하지 못하니, 우선 백성들을 안정시키고 어루만져야 한다.
一與虜戰이면 所損 甚多 虜結怨旣深하고 懼而修備 則吾未可以得志矣
한 번 오랑캐와 싸우게 되면 손해가 매우 많고 오랑캐와 원한을 맺음이 이미 깊어지며, 저들이 두려워하여 수비를 잘 닦으면 내 뜻을 이룰 수 없다.
卷甲韜戈하야 以金帛이니
그러므로 갑옷과 창을 거두고 금과 비단으로 저들을 유인한 것이다.
彼旣得所欲이면 理當自退 志意驕惰하야 不復設備하리니 然後 養威俟釁이면 一擧可滅
저들이 이미 원하는 바를 얻게 되면 이치상 당연히 스스로 물러날 것이요, 뜻이 교만하고 느슨해져서 더이상 군비軍備를 갖추지 않을 것이니, 그런 뒤에 위엄을 기르고 기회를 기다린다면 일거에 멸망시킬 수 있다.
將欲取之인댄 必固與之注+[頭註]老子語 此之謂也
‘장차 취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우선 주어야 한다.’注+[頭註]將欲取之 필고여지必固與之:이는 노자老子의 말이다. 는 것은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卿知之乎 瑀再拜曰 非所及也니이다
은 이것을 아는가?” 하니, 소우蕭瑀가 두 번 절하고 말하기를 “제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하였다.
突厥頡利 獻馬三千匹 羊萬口어늘 不受하고 但詔歸所掠中國戶口하고 徵溫彦博하야 還朝注+[附註]乙酉七月 突厥寇邊이어늘 詔左衛大將軍張瑾禦之러니 敗績하니 長史溫彦博 被執이라 虜問國家兵糧虛實호되 彦博不對하니 虜遷之陰山하니라하다
이해 9월에 돌궐突厥힐리가한頡利可汗이 말 3천 필과 만 마리를 바쳤는데, 이 받지 않고 다만 조명詔命을 내려 약탈해 간 중국의 호구戶口를 돌려보내게 하고 온언박溫彦博을 불러서 조정으로 돌아오게 하였다.注+[附註]을유년(625) 7월에 돌궐突厥이 변경을 침략하자, 황제가 좌위대장군左衛大將軍 장근張瑾에게 명하여 돌궐突厥을 막게 하였는데 패전하니, 이때 장사長史 온언박溫彦博돌궐突厥에게 사로잡혔다. 적들이 국가(당나라)의 군량軍糧허실虛實을 물었으나 온언박溫彦博이 대답하지 않으니, 적들이 온언박溫彦博음산陰山으로 옮겼다.
〈出突厥傳及政要〉
- 《당서唐書 돌궐전突厥傳》과 오긍吳兢의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上 引諸衛將卒하야 習射於顯德殿庭할새 諭之曰 戎狄侵盜 自古有之하니 患在邊境小安이면 則人主逸遊忘戰이라
각위各衛장졸將卒들을 데리고 현덕전顯德殿 뜰에서 활쏘기를 익힐 적에 그들에게 유시하기를 “오랑캐가 침략하고 도둑질하는 것은 예로부터 있었으니, 근심(폐해)은 변경이 다소 편안해지면 인주人主가 안일하고 놀이에 빠져 싸움을 잊는 데에 있다.
是以 寇來 莫之能禦
이 때문에 도둑이 쳐들어왔을 때에 막지 못하는 것이다.
今朕 不使汝曹穿池築苑하고 專習弓矢하야 居閑無事 則爲汝師하고 突厥入寇 則爲汝將하노니 庶幾中國之民 可以少安乎인저
지금 은 너희들로 하여금 못을 파고 동산을 쌓게 하지 않고 오로지 활쏘는 것만을 익히게 해서, 한가히 거처하여 일이 없을 때에는 내가 너희들의 스승이 되고, 돌궐이 쳐들어왔을 때에는 내가 너희들의 장수가 될 것이니, 이렇게 하면 거의 중국中國의 백성들이 다소 편안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於是 日引數百人하야 敎射於殿庭할새 親臨試하야 中多者 賞以弓刀帛하고 其將帥 亦(可)[加]하니 群臣 多諫注+[通鑑要解]諫曰 於律 以兵刃至御在所者어늘 今使將卒習射殿庭하시니 萬一狂夫竊發하야 出於不意 非所以重社稷也니이다 上曰 王者 視四海云이라이라
이에 날마다 수백 명을 데리고 궁전의 뜰에서 활쏘기를 가르쳤는데, 이 직접 나와서 시험하여 많이 적중시킨 자에게는 활과 칼과 비단을 상으로 내려 주고 그 장수도 상등上等고과考課를 가해 주니, 여러 신하들이 많이 간하였다.注+[通鑑要解]여러 신하들이 간하기를 “법률에 ‘병기를 휴대하고 황제가 계신 곳에 이른 자는 교수형에 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장졸들로 하여금 궁전의 뜰에서 활쏘기를 익히게 하시니, 만에 하나 뜻하지 않게 미친 자가 몰래 뛰쳐나와 일이 예상치 못한 데서 나온다면 사직社稷을 중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이 말하기를 “왕자王者사해四海를 보기를 한 집안처럼 여긴다.……” 하였다.
皆不聽曰 王者 視四海 如一家하나니 封域之內 皆朕赤子注+[頭註]嬰兒 體色赤이라 故曰赤子
이 모두 듣지 않고 말하기를 “왕자王者는 온 천하 보기를 한 집안처럼 여기니, 봉역封域의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적자赤子(無知한 백성)注+[頭註]영아嬰兒는 피부색이 붉기 때문에 적자赤子라고 한다. 이다.
朕常推心하야 置其腹中하노니 奈何宿衛注+[頭註]宿 守也之士 亦加猜忌乎 由是 人思自勵하야 數年之間 悉爲精銳하니라
이 항상 진심을 미루어서 그들의 뱃속에 두니, 어찌 숙위宿衛注+[頭註]宿은 지킴이다. 하는 군사들에게 또한 시기猜忌(의심하고 꺼림)를 가한단 말인가.” 하니,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스스로 힘쓸 것을 생각하여 수년 사이에 모두 정예병이 되었다.
范祖禹曰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有國家者 雖不可忘戰이나 然而敎士卒習射者 有司之事 殿庭 非其所也
“국가를 소유한 자는 비록 전쟁을 잊어서는 안 되나 사졸士卒들에게 활쏘기를 익히도록 가르치는 것은 유사有司의 일이요, 궁전의 뜰은 적당한 장소가 아니다.
苟將師得其人이면 何患乎士之不勇 技之不精乎
만일 장수와 군사軍師가 적임자를 얻는다면 이 군사들이 용맹하지 못함과 기예가 정교하지 못함을 어찌 근심하겠는가.
夫以萬乘之主 而爲卒伍之師하니 非所以示德也
만승萬乘의 군주로서 졸오卒伍의 스승 노릇을 하였으니, 백성들에게 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且人君始卽位하야 不以敎化禮樂爲先務하고 而急於習射하니 志則陋矣
뿐만 아니라 인군人君이 처음 즉위하여 교화敎化예악禮樂을 급선무로 삼지 않고 활쏘기를 익히는 것을 급하게 여겼으니, 뜻이 비루하다.
雖士勵兵强하야 征伐四克하야 威加海外 非帝王之盛節이니 亦不足貴也니라
비록 군사들이 분발하고 군대가 강하여 정벌함에 사방에서 이겨 위엄이 해내海內에 가해졌으나 제왕帝王의 훌륭한 일이 아니니, 또한 귀하게 여길 만하지 못하다.”
嘗言호되 吾自少 經略四方하야 頗知用兵之要
이 일찍이 말하기를 “내가 젊어서부터 사방四方경략經略하여 자못 용병用兵하는 요점을 알고 있다.
每親敵陳이면 則知其彊弱하야 常以吾弱當其彊하고 彊當其弱하노니 彼乘吾弱이면 逐奔 不過數(千)[十]百步로되 吾乘其弱이면 必出其陳後하야 返擊之하니 無不潰敗
매번 적진을 볼 적이면 저들의 강약强弱을 알아서 항상 우리의 약한 것을 가지고 저들의 강한 것을 당해 내고 우리의 강한 것을 가지고 저들의 약한 것을 당해 내게 하였으니, 저들이 우리의 약한 점을 틈탔을 경우에는 추격하는 것이 수십 보나 백 보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가 저들의 약한 점을 틈탔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들 진영의 뒤로 나가서 반격하니, 이렇게 하면 궤멸되지 않음이 없었다.
所以取勝 多在此也로라
승리를 취한 이유가 대부분 여기에 있었다.” 하였다.
〈出政要〉
-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옴 -
○ 上 面定勳臣長孫無忌等爵邑할새 命陳叔達하야 於殿下 唱名示之하고
이 대면하고서 훈신勳臣장손무기長孫無忌 등의 작위爵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