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月
에 魏王操 自長安
으로 出斜谷
하야 軍遮要
注+[釋義]地名이니 在褒斜谷之南하야 與陽平關相近이라[通鑑要解]二意하니 初는 斜谷道險하니 操爲恐備所邀截하야 先以軍遮要害之處하고 乃進臨漢中이요 後意는 卽同此註라以臨漢中
이어늘 
                        		
                        		
                        		
	                     		
			                       	
			                       	
	                     		
	                     		
		                        
                        	
                        	
                        	
                        	
                        		
                        			
                        			
			                        
			                        	劉備曰 曹公雖來나 無能爲也리니 我必有漢川矣라하고 乃斂衆拒險하야 終不交鋒하다
			                         
                        		
                        		
                        		
	                     		
			                       	
			                       	
	                     		
	                     		
		                        
                        	
                        	
                        	
                        	
                        		
                        			
                        			
			                        
			                        	操運米北山下어늘 黃忠이 引兵欲取之러니 過期不還이어늘
			                         
                        		
                        		
                        		
	                     		
			                       	
			                       	
	                     		
	                     		
		                        
                        	
                        	
                        	
                        	
                        		
                        			
                        			
			                        
			                        	趙雲이 將數十騎하고 出營視之라가 値操揚兵大出이라
			                         
                        		
                        		
                        		
	                     		
			                       	
			                       	
	                     		
	                     		
		                        
                        	
                        	
                        	
                        	
                        		
                        			
                        			
			                        
			                        	雲이 猝與相遇하야 遂前突其陳하야 且鬪且却하니 魏兵이 散而復合하야 追至營下라
			                         
                        		
                        		
                        		
	                     		
			                       	
			                       	
	                     		
	                     		
		                        
                        	
                        	
                        	
                        	
                        		
                        			
                        			
			                        
			                        	雲이 入營하야 更大開門하고 偃旗息鼓하니 魏兵이 疑雲有伏하야 引去라
			                         
                        		
                        		
                        		
	                     		
			                       	
			                       	
	                     		
	                     		
		                        
                        	
                        	
                        	
                        	
                        		
                        			
                        			
			                        
			                        	雲
이 雷鼓震天
하고 惟以勁弩
로 於後射魏兵
하니 魏兵驚駭
하야 自相
하야 墮漢水中死者 甚衆
이러라 
                        		
                        		
                        		
	                     		
			                       	
			                       	
	                     		
	                     		
		                        
                        	
                        	
                        	
                        	
                        		
                        			
                        			
			                        
			                        	備明旦
에 自來至雲營
하야 視昨戰處
하고 曰 
子龍一身이 都是膽也
注+[頭註]子龍은 雲字라 膽은 言其膽大하야 能以孤軍抗操大兵也라로다 
                        		
                        		
                        		
	                     		
			                       	
			                       	
	                     		
	                     		
		                        
                        	
                        	
                        	
                        	
                        		
                        			
                        			
			                        
                        		
                        		
                        		
	                     		
			                       	
			                       	
	                     		
	                     		
		                        
                        	
                        	
                        	
                        	
                        		
                        			
                        			
			                        
                        		
                        		
                        		
	                     		
			                       	
			                       	
	                     		
	                     		
		                        
                        	
                        	
                        	
                        	
                        		
                        			
                        			
			                        
			                        	關羽自率衆하고 攻曹仁於樊한대 仁이 使于禁, 龐德으로 屯樊北이러니 八月에 大霖雨하야 漢水溢하니 禁等七軍이 皆沒이라
			                         
                        		
                        		
                        		
	                     		
			                       	
			                       	
	                     		
	                     		
		                        
                        	
                        	
                        	
                        	
                        		
                        			
                        			
			                        
			                        	禁이 與諸將登高避水어늘 羽乘船攻之하니 禁等이 窮迫遂降이라
			                         
                        		
                        		
                        		
	                     		
			                       	
			                       	
	                     		
	                     		
		                        
                        	
                        	
                        	
                        	
                        		
                        			
                        			
			                        
                        		
                        		
                        		
	                     		
			                       	
			                       	
	                     		
	                     		
		                        
                        	
                        	
                        	
                        	
                        		
                        			
                        			
			                        
			                        	魏王操 議徙許都하야 以避其銳러니 司馬懿, 蔣濟 言於操曰 劉備, 孫權이 外親內疎하니 關羽得志를 權必不願也리니
			                         
                        		
                        		
                        		
	                     		
			                       	
			                       	
	                     		
	                     		
		                        
                        	
                        	
                        	
                        	
                        		
                        			
                        			
			                        
			                        	可遣人勸權하야 躡其後하고 許割江南以封權이면 則樊圍自解하리이다 操從之하다
			                         
                        		
                        		
                        		
	                     		
			                       	
			                       	
	                     		
	                     		
		                        
                        	
                        	
                        	
                        	
                        		
                        			
                        			
			                        
			                        	○ 初
에 魯肅
이 嘗勸孫權
하야 以曹操尙存
하니 宜且撫輯
注+[釋義]與集同하니 和也라關羽
하야 與之同仇(逑)
注+[頭註]仇는 與逑通이라 詩에 修我戈矛하야 與子同仇호리라한대 注에 其歡愛之心이 足以相死라요 不可失也
라하더니 
                        		
                        		
                        		
	                     		
			                       	
			                       	
	                     		
	                     		
		                        
                        	
                        	
                        	
                        	
                        		
                        			
                        			
			                        
			                        	及呂蒙이 代魯肅하야 屯陸口에 以爲羽素驍雄하야 有兼幷之心하고 且居國上流하니 其勢難久라하야
			                         
                        		
                        		
                        		
	                     		
			                       	
			                       	
	                     		
	                     		
		                        
                        	
                        	
                        	
                        	
                        		
                        			
                        			
			                        
			                        	 密言於權曰 今令征虜
注+[釋義]孫皎爲征虜將軍하니라守南郡
하고 潘璋住白帝
注+[釋義]今夔州是라 周初에 爲魚復國이러니 公孫述이 更名白帝城하고 三國漢改永安하니라하고 蔣欽將游兵萬人
하야 循江上下
하야 應敵所在
하고 
                        		
                        		
                        		
	                     		
			                       	
			                       	
	                     		
	                     		
		                        
                        	
                        	
                        	
                        	
                        		
                        			
                        			
			                        
			                        	 蒙爲國家하야 前據襄陽이니 如此면 何憂於操며 何賴於羽리오
			                         
                        		
                        		
                        		
	                     		
			                       	
			                       	
	                     		
	                     		
		                        
                        	
                        	
                        	
                        	
                        		
                        			
                        			
			                        
			                        	且羽君臣이 矜其詐力하야 所在反覆하니 不可以腹心待也니
			                         
                        		
                        		
                        		
	                     		
			                       	
			                       	
	                     		
	                     		
		                        
                        	
                        	
                        	
                        	
                        		
                        			
                        			
			                        
			                        	不如取羽
하고 全據長江
하야 形勢益張
注+[釋義]心自侈大也라이면 易爲守也
리이다 權
이 善之
하다 
                        		
                        		
                        		
	                     		
			                       	
			                       	
	                     		
	                     		
		                        
                        	
                        	
                        	
                        	
                        		
                        			
                        			
			                        
			                        	權이 嘗爲其子하야 求昏(婚)於羽한대 羽罵其使하고 不許昏하니 權이 由是怒러라
			                         
                        		
                        		
                        		
	                     		
			                       	
			                       	
	                     		
	                     		
		                        
                        	
                        	
                        	
                        	
                        		
                        			
                        			
			                        
			                        	及羽攻樊에 呂蒙이 上疏曰 羽討樊而多留備兵하니 必恐蒙圖其後故也라
			                         
                        		
                        		
                        		
	                     		
			                       	
			                       	
	                     		
	                     		
		                        
                        	
                        	
                        	
                        	
                        		
                        			
                        			
			                        
			                        	蒙嘗有病하니 乞分士衆하고 還建業하야 以治疾爲名이면 羽聞之하고 必撤備兵하야 盡赴襄陽하리니
			                         
                        		
                        		
                        		
	                     		
			                       	
			                       	
	                     		
	                     		
		                        
                        	
                        	
                        	
                        	
                        		
                        			
                        			
			                        
			                        	 大軍
이 浮江
하야 晝夜馳上
하야 襲其空虛
면 則諸郡
注+[頭註]江陵諸郡이라을 可下
요 而羽
를 可禽也
리이다 
                        		
                        		
                        		
	                     		
			                       	
			                       	
	                     		
	                     		
		                        
                        	
                        	
                        	
                        	
                        		
                        			
                        			
			                        
                        		
                        		
                        		
	                     		
			                       	
			                       	
	                     		
	                     		
		                        
                        	
                        	
                        	
                        	
                        		
                        			
                        			
			                        
			                        	蒙이 至蕪湖하니 定威校尉陸遜이 謂蒙曰 關羽接境이어늘 如何遠下오
			                         
                        		
                        		
                        		
	                     		
			                       	
			                       	
	                     		
	                     		
		                        
                        	
                        	
                        	
                        	
                        		
                        			
                        			
			                        
			                        	後不當可憂
注+[頭註]言代蒙者 恐非羽敵也라也
잇가 
                        		
                        		
                        		
	                     		
			                       	
			                       	
	                     		
	                     		
		                        
                        	
                        	
                        	
                        	
                        		
                        			
                        			
			                        
			                        	羽矜其驍氣
하야 陵
注+[通鑑要解]轢은 音亦이니 車陵踐也라於人
하고 始有大功
에 意驕志逸하야 但務北進
하고 未嫌於我
하니 有相聞病
注+[頭註]綱目에 作今聞君病이라이면 必益無備
하리니 
                        		
                        		
                        		
	                     		
			                       	
			                       	
	                     		
	                     		
		                        
                        	
                        	
                        	
                        	
                        		
                        			
                        			
			                        
			                        	今出其不意면 自可禽制리이다 蒙曰 羽素勇猛하니 未易圖也니라
			                         
                        		
                        		
                        		
	                     		
			                       	
			                       	
	                     		
	                     		
		                        
                        	
                        	
                        	
                        	
                        		
                        			
                        			
			                        
			                        	蒙至都에 權問誰可代卿者오 蒙對曰 陸遜이 意思深長하고 才堪負重이라
			                         
                        		
                        		
                        		
	                     		
			                       	
			                       	
	                     		
	                     		
		                        
                        	
                        	
                        	
                        	
                        		
                        			
                        			
			                        
			                        	觀其規慮컨대 終可大任이요 而未有遠名하니 非羽所忌니 無復是過라
			                         
                        		
                        		
                        		
	                     		
			                       	
			                       	
	                     		
	                     		
		                        
                        	
                        	
                        	
                        	
                        		
                        			
                        			
			                        
			                        	若用之
면 當令外自韜
注+[通鑑要解]音滔니 藏也라隱
하고 內察形便
이니 然後
에 可克
하리이다 
                        		
                        		
                        		
	                     		
			                       	
			                       	
	                     		
	                     		
		                        
                        	
                        	
                        	
                        	
                        		
                        			
                        			
			                        
                        		
                        		
                        		
	                     		
			                       	
			                       	
	                     		
	                     		
		                        
                        	
                        	
                        	
                        	
                        		
                        			
                        			
			                        
			                        	遜至陸口에 爲書與羽하야 稱其功美하고 深自謙抑하야 爲盡忠自託之意하니 羽意大安하야 無復所嫌하고 稍撤兵以赴樊이라
			                         
                        		
                        		
                        		
	                     		
			                       	
			                       	
	                     		
	                     		
		                        
                        	
                        	
                        	
                        	
                        		
                        			
                        			
			                        
			                        	遜이 具啓形狀하야 陳其可禽之要하니 權이 遂發兵襲羽할새 令呂蒙으로 爲大都督하고 命征虜將軍孫皎하야 爲後繼하다
			                         
                        		
                        		
                        		
	                     		
			                       	
			                       	
	                     		
	                     		
		                        
                        	
                        	
                        	
                        	
                        		
                        			
                        			
			                        
			                        	呂蒙
이 至尋陽
하야 盡伏其精兵
注+[釋義]船名이라中
하고 使白衣
注+[頭註]言無兵甲也라搖
하고 作商賈人服
하야 晝夜兼行
하야 羽所置江邊屯候
를 盡收縛之
하니 是故
로 羽不聞知
러라 
                        		
                        		
                        		
	                     		
			                       	
			                       	
	                     		
	                     		
		                        
                        	
                        	
                        	
                        	
                        		
                        			
                        			
			                        
			                        	麋芳, 傅士仁
注+[通鑑要解]二人姓名이라 傳云 傅士仁이라하고 蒙傳云 士仁이라하니 士亦姓也라이 素皆嫌羽輕己
하야 開門出降하니 
                        		
                        		
                        		
	                     		
			                       	
			                       	
	                     		
	                     		
		                        
                        	
                        	
                        	
                        	
                        		
                        			
                        			
			                        
			                        	 蒙入江陵
하야 釋于禁之囚
注+[釋義]初에 曹操之將曹仁이 使于禁屯樊北한대 關羽攻降禁而囚之於江陵이러니 今呂蒙釋之하니라하고 得關羽及將士家屬
하야 皆撫慰之
하고 約令軍中
호되 不得干歷人家
하야 有所求取
하다 
                        		
                        		
                        		
	                     		
			                       	
			                       	
	                     		
	                     		
		                        
                        	
                        	
                        	
                        	
                        		
                        			
                        			
			                        
                        		
                        		
                        		
	                     		
			                       	
			                       	
	                     		
	                     		
		                        
                        	
                        	
                        	
                        	
                        		
                        			
                        			
			                        
			                        	取民家一笠
注+[通鑑要解]笠은 所以禦雨라하야 以
官鎧
注+[通鑑要解]鎧는 音蓋니 甲也라러니 官鎧
는 雖公
이나 蒙
이 猶以爲犯軍令
하니 不可以鄕里故而廢法
이라하고 遂垂涕斬之
하니 
                        		
                        		
                        		
	                     		
			                       	
			                       	
	                     		
	                     		
		                        
                        	
                        	
                        	
                        	
                        		
                        			
                        			
			                        
                        		
                        		
                        		
	                     		
			                       	
			                       	
	                     		
	                     		
		                        
                        	
                        	
                        	
                        	
                        		
                        			
                        			
			                        
			                        	○ 羽聞南郡破하고 卽走南還하야 數使人하야 與呂蒙相聞하니 蒙이 輒厚遇其使하고 周游城中하야 家家致問하고 或手書示信하니
			                         
                        		
                        		
                        		
	                     		
			                       	
			                       	
	                     		
	                     		
		                        
                        	
                        	
                        	
                        	
                        		
                        			
                        			
			                        
			                        	羽人還에 私相參訊하야 咸知家門無恙하고 見待過於平時라 故로 羽吏士無鬪心이러라
			                         
                        		
                        		
                        		
	                     		
			                       	
			                       	
	                     		
	                     		
		                        
                        	
                        	
                        	
                        	
                        		
                        			
                        			
			                        
                        		
                        		
                        		
	                     		
			                       	
			                       	
	                     		
	                     		
		                        
                        	
                        	
                        	
                        	
                        		
                        			
                        			
			                        
			                        	羽自知孤窮
하고 乃西保麥城
하야 因遁走
어늘 馬忠
注+[頭註]吳將潘璋司馬也라이 獲羽及其子平於章鄕
하야 斬之
하고 遂定荊州
하다 
                        		
                        		
                        		
	                     		
			                       	
			                       	
	                     		
	                     		
		                        
                        	
                        	
                        	
                        	
                        		
                        			
                        			
			                        
                        		
                        		
                        		
	                     		
			                       	
			                       	
	                     		
	                     		
		                        
                        	
                        	
                        	
                        	
                        		
                        			
                        			
			                        
                        		
                        		
                        		
	                     		
			                       	
			                       	
	                     		
	                     		
		                        
                        	
                        	
                        	
                        	
                        		
                        			
                        			
			                        
                        		
                        		
                        		
	                     		
			                       	
			                       	
	                     		
	                     		
		                        
                        	
                        	
                        	
                        	
                        		
                        			
                        			
			                        
                        		
                        		
                        		
	                     		
			                       	
			                       	
	                     		
	                     		
		                        
                        	
                        	
                        	
                        	
                        		
                        			
                        			
			                        
			                        	公瑾
注+[釋義]周瑜字也라은 雄烈
하고 膽略兼人
하야 遂
破孟德注+[頭註]曹操字라하고 開拓荊州
하니 邈焉寡儔요 
                        		
                        		
                        		
	                     		
			                       	
			                       	
	                     		
	                     		
		                        
                        	
                        	
                        	
                        	
                        		
                        			
                        			
			                        
			                        	子敬
注+[釋義]魯肅字也라은 因公瑾
하야 致達於孤
라 
                        		
                        		
                        		
	                     		
			                       	
			                       	
	                     		
	                     		
		                        
                        	
                        	
                        	
                        	
                        		
                        			
                        			
			                        
			                        	孤與宴語
에 便及大略帝王之業
하니 此一快也
요 後
에 孟德
이 因獲劉琮之勢
하야 張言
注+[頭註]張大而言也라方率數十萬衆
하고 水步俱下
라하니 孤普請諸將
하야 咨問所宜
호되 無適先對
요 至張子布
注+[頭註]張昭字라, 秦文表
注+[頭註]名松이라하야는 俱言宜遣使修檄迎之
라호되 子敬
이 卽駁言
注+[頭註]駁者는 執意不同이 如色之間雜也요 又駁異也니 立異議하야 以糾駁衆議之非라不可
하고 勸孤急呼公瑾
하야 付任以衆
하야 逆而擊之
하니 此二快也
라 
                        		
                        		
                        		
	                     		
			                       	
			                       	
	                     		
	                     		
		                        
                        	
                        	
                        	
                        	
                        		
                        			
                        			
			                        
			                        	後雖勸吾借玄德地
注+[頭註]玄德은 先主字라 備見權하야 求都督荊州어늘 魯肅勸權하야 借之拒操하니라하니 是其一短
이나 不足以損其二長也
라 
                        		
                        		
                        		
	                     		
			                       	
			                       	
	                     		
	                     		
		                        
                        	
                        	
                        	
                        	
                        		
                        			
                        			
			                        
                        		
                        		
                        		
	                     		
			                       	
			                       	
	                     		
	                     		
		                        
                        	
                        	
                        	
                        	
                        		
                        			
                        			
			                        
			                        	故
로 孤
忘其短而貴其長하야 常以比方鄧禹
注+[頭註]禹建策하야 以開光武中興之業이나 而其後에 不能定赤眉라 故로 以肅比禹라也
로라 
                        		
                        		
                        		
	                     		
			                       	
			                       	
	                     		
	                     		
		                        
                        	
                        	
                        	
                        	
                        		
                        			
                        			
			                        
			                        	子明
注+[釋義]呂蒙字라은 少時
에 孤謂
不辭劇易注+[釋義]謂艱與易也라하야 果敢有膽而已
러니 及身長大
에 學問이 開益하고 籌略이 奇至하야 可以次於公瑾
이나 但言議英發
이 不及之爾
요 圖取關羽
는 勝於子敬
이라 
                        		
                        		
                        		
	                     		
			                       	
			                       	
	                     		
	                     		
		                        
                        	
                        	
                        	
                        	
                        		
                        			
                        			
			                        
                        		
                        		
                        		
	                     		
			                       	
			                       	
	                     		
	                     		
		                        
                        	
                        	
                        	
                        	
                        		
                        			
                        			
			                        
			                        	羽는 不足忌라하니 此는 子敬이 內不能辦하고 外爲大言耳라
			                         
                        		
                        		
                        		
	                     		
			                       	
			                       	
	                     		
	                     		
		                        
                        	
                        	
                        	
                        	
                        		
                        			
                        			
			                        
                        		
                        		
                        		
	                     		
			                       	
			                       	
	                     		
	                     		
		                        
                        	
                        	
                        	
                        	
                        		
                        			
                        			
			                        
			                        	然
이나 其作軍屯營
에 不失
令行禁止하야 部界
에 無廢負
注+[頭註]廢職以爲負罪也라하고 道無拾遺
하니 其法
이 亦美矣
로다 
                        		
                        		
                        		
	                     		
			                       	
			                       	
	                     		
	                     		
		                        
                        	
                        	
                        	
                        	
                        		
                        			
                        			
			                        
			                        	○ 魏王操 表孫權하야 爲票(驃)騎將軍하고 假節領荊州牧한대 權이 遣校尉梁寓하야 入貢稱臣於操하고 稱說天命하다
			                         
                        		
                        		
                        		
	                     		
			                       	
			                       	
	                     		
	                     		
		                        
                        	
                        	
                        	
                        	
                        		
                        			
                        			
			                        
			                        	侍中陳群等
이 皆曰 漢祚已終
하니 非適注+[釋義]猶言非特也라今日이라 
                        		
                        		
                        		
	                     		
			                       	
			                       	
	                     		
	                     		
		                        
                        	
                        	
                        	
                        	
                        		
                        			
                        			
			                        
			                        	殿下功德巍巍
하야 群生
이 注望
注+[通鑑要解]注는 猶也라이라 
                        		
                        		
                        		
	                     		
			                       	
			                       	
	                     		
	                     		
		                        
                        	
                        	
                        	
                        	
                        		
                        			
                        			
			                        
			                        	故로 孫權이 在遠稱臣하니 此는 天人之應이 異氣齊聲이라
			                         
                        		
                        		
                        		
	                     		
			                       	
			                       	
	                     		
	                     		
		                        
                        	
                        	
                        	
                        	
                        		
                        			
                        			
			                        
			                        	殿下宜正大位
니 復何疑哉
잇고 操曰 若天命在吾
면 吾爲周文王
注+[頭註]文王이 三分天下에 有其二로되 以服事殷하니라矣
리라 
                        		
                        		
                        		
	                     		
			                       	
			                       	
	                     		
	                     		
		                        
                        	
                        	
                        	
                        	
                        		
                        			
                        			
			                        
                        		
                        		
                        		
	                     		
			                       	
			                       	
	                     		
	                     		
		                        
                        	
                        	
                        	
                        	
                        		
                        			
                        			
			                        
			                        	敎化는 國家之急務也어늘 而俗吏慢之하고 風俗은 天下之大事也어늘 而庸君忽之라
			                         
                        		
                        		
                        		
	                     		
			                       	
			                       	
	                     		
	                     		
		                        
                        	
                        	
                        	
                        	
                        		
                        			
                        			
			                        
			                        	夫惟明智君子는 深識遠慮하나니 然後에 知其爲益之大而收功之遠也라
			                         
                        		
                        		
                        		
	                     		
			                       	
			                       	
	                     		
	                     		
		                        
                        	
                        	
                        	
                        	
                        		
                        			
                        			
			                        
			                        	光武遭漢中衰
하야 群雄糜沸
注+[頭註]糜는 粥也라 如粥之沸는 言其亂擾也라에 奮起布衣
하야 紹恢前緖
하고 征伐四方
하야 日不暇給
이로되 乃能敦尙經術
하고 賓延儒雅
하며 開廣學校
하고 修明禮樂
하야 武功旣成
에 文德亦洽
이라 
                        		
                        		
                        		
	                     		
			                       	
			                       	
	                     		
	                     		
		                        
                        	
                        	
                        	
                        	
                        		
                        			
                        			
			                        
			                        	繼以孝明, 孝章
이 追先志
注+[釋義]遹은 遵이요 追는 隨也니 遠遵前人之志意也라하야 臨雍拜老
注+[釋義]臨幸辟雍하야 行養老禮也라하고 橫經問道
하며 自公卿大夫
로 至于郡縣之吏
히 咸選用經明行修之人
하야 
                        		
                        		
                        		
	                     		
			                       	
			                       	
	                     		
	                     		
		                        
                        	
                        	
                        	
                        	
                        		
                        			
                        			
			                        
                        		
                        		
                        		
	                     		
			                       	
			                       	
	                     		
	                     		
		                        
                        	
                        	
                        	
                        	
                        		
                        			
                        			
			                        
			                        	是以
로 敎立於上
하고 俗成於下
하니 其忠厚淸修之士 豈惟取重於
紳
注+[釋義]搢은 揷也요 紳은 大帶也니 搢紳은 謂揷笏於帶也라이리오 
                        		
                        		
                        		
	                     		
			                       	
			                       	
	                     		
	                     		
		                        
                        	
                        	
                        	
                        	
                        		
                        			
                        			
			                        
			                        	亦見慕於衆庶하며 愚鄙汚穢之人이 豈唯不容於朝廷이리오
			                         
                        		
                        		
                        		
	                     		
			                       	
			                       	
	                     		
	                     		
		                        
                        	
                        	
                        	
                        	
                        		
                        			
                        			
			                        
                        		
                        		
                        		
	                     		
			                       	
			                       	
	                     		
	                     		
		                        
                        	
                        	
                        	
                        	
                        		
                        			
                        			
			                        
                        		
                        		
                        		
	                     		
			                       	
			                       	
	                     		
	                     		
		                        
                        	
                        	
                        	
                        	
                        		
                        			
                        			
			                        
			                        	及孝和以降
하야는 貴戚擅權
注+[頭註]貴戚은 如和帝時竇憲, 順帝時梁商梁冀, 安帝時鄧隲, 靈帝時竇武之輩라하고 嬖倖
注+[頭註]賤而得幸曰嬖라하니 嬖倖은 如乳母宦官也라用事
하야 賞罰無章
하고 賄賂公行
하며 賢愚渾殽
하고 是非顚倒
하니 可謂亂矣
라 
                        		
                        		
                        		
	                     		
			                       	
			                       	
	                     		
	                     		
		                        
                        	
                        	
                        	
                        	
                        		
                        			
                        			
			                        
			                        	然猶綿綿不至於亡者
는 上則有公卿大夫袁安, 楊震, 李固, 杜喬, 陳蕃, 李膺之徒
가 面折廷爭
하야 用公義以扶其危
하고 下則有布衣之士符融, 郭泰, 范滂, 許劭之流
가 立私論以救其敗
注+[頭註]不得預議於朝하고 而私立論於下하야 以矯朝議之失也라라 
                        		
                        		
                        		
	                     		
			                       	
			                       	
	                     		
	                     		
		                        
                        	
                        	
                        	
                        	
                        		
                        			
                        			
			                        
			                        	是以
로 政治雖濁
이나 而風俗不衰
라 至有觸冒斧鉞
하야 於前
이나 而忠義奮發
이 繼起於後
하야 隨踵就戮
하야 視死如歸
하니 夫豈特數子之賢哉
리오 
                        		
                        		
                        		
	                     		
			                       	
			                       	
	                     		
	                     		
		                        
                        	
                        	
                        	
                        	
                        		
                        			
                        			
			                        
                        		
                        		
                        		
	                     		
			                       	
			                       	
	                     		
	                     		
		                        
                        	
                        	
                        	
                        	
                        		
                        			
                        			
			                        
			                        	當是之時하야 苟有明君作而振之면 則漢氏之祚를 猶未可量也라
			                         
                        		
                        		
                        		
	                     		
			                       	
			                       	
	                     		
	                     		
		                        
                        	
                        	
                        	
                        	
                        		
                        			
                        			
			                        
			                        	不幸承陵夷頹敝之餘하고 重以桓, 靈之昏虐하야 保養姦回를 過於骨肉하고 殄滅忠良을 甚於寇讐하야 積多士之憤하고 蓄四海之怒라
			                         
                        		
                        		
                        		
	                     		
			                       	
			                       	
	                     		
	                     		
		                        
                        	
                        	
                        	
                        	
                        		
                        			
                        			
			                        
			                        	於是
에 何進召戎
하고 董卓乘釁
하고 袁紹之徒 從而構難
하야 遂使乘輿播越
하고 宗廟丘墟
注+[釋義]丘는 空也요 墟는 大丘也라 墟本作虛하니 虛者는 毁滅無後之地라하야 王室蕩覆
하고 烝民塗炭
하야 大命殞絶
하야 不可復救
라 
                        		
                        		
                        		
	                     		
			                       	
			                       	
	                     		
	                     		
		                        
                        	
                        	
                        	
                        	
                        		
                        			
                        			
			                        
			                        	然州郡擁兵專地者 雖互相呑噬로되 猶未嘗不以尊漢爲辭라
			                         
                        		
                        		
                        		
	                     		
			                       	
			                       	
	                     		
	                     		
		                        
                        	
                        	
                        	
                        	
                        		
                        			
                        			
			                        
			                        	以魏武之暴戾强
注+[釋義]謂强暴伉健也라으로 加有大功於天下
하야 其蓄無君之心
이 久矣
로되 乃至沒身
토록 不敢廢漢而自立
하니 豈其意之不欲哉
아 
                        		
                        		
                        		
	                     		
			                       	
			                       	
	                     		
	                     		
		                        
                        	
                        	
                        	
                        	
                        		
                        			
                        			
			                        
                        		
                        		
                        		
	                     		
			                       	
			                       	
	                     		
	                     		
		                        
                        	
                        	
                        	
                        	
                        		
                        			
                        			
			                        
                        		
                        		
                        		
	                     		
			                       	
			                       	
	                     		
	                     		
		                        
                        	
                        	
                        	
                        	
                   			
                        	
                        	
                        	
                        	
	                       	
	                       	
	                       	
	                       	
							                       	
	                        
	                        
	                        	
	                        
	                        	
	                        
	                        	
	                        
	                        	
	                        
	                        	
	                        
	                        	
	                        
	                        	
	                        
	                        	
	                        
	                        	
	                        
	                        	
	                        
	                        	
	                        
	                        	
	                        
	                        	
	                        
	                        	
	                        
	                        	
	                        
	                        	
	                        
	                        	
	                        
	                        	
	                        
	                        	
	                        
	                        	
	                        
	                        	
	                        
	                        	
	                        
	                        	
	                        
	                        	
	                        
	                        	
	                        
	                        	
	                        
	                        	
	                        
	                        	
	                        
	                        	
	                        
	                        	
	                        
	                        	
	                        
	                        	
	                        
	                        	
	                        
	                        	
	                        
	                        	
	                        
	                        	
	                        
	                        	
	                        
	                        	
	                        
	                        	
	                        
	                        	
	                        
	                        	
	                        
	                        	
	                        
	                        	
	                        
	                        	
	                        
	                        	
	                        
	                        	
	                        
	                        	
	                        
	                        	
	                        
	                        	
	                        
	                        	
	                        
	                        	
	                        
	                        	
	                        
	                        	
	                        
	                        	
	                        
	                        	
	                        
	                        	
	                        
	                        	
	                        
	                        	
	                        
	                        	
	                        
	                        	
	                        
	                        	
	                        
	                        	
	                        
	                        	
	                        
	                        	
	                        
	                        	
	                        
	                        	
	                        
	                        	
	                        
	                        	
	                        
	                        	
	                        
	                        	
	                        
	                        	
	                        
	                        	
	                        
	                        	
	                        
	                        	
	                        
	                        	
	                        
	                        	
	                        
	                        	
	                        
	                        	
	                        
	                        	
	                        
	                        	
	                        
	                        	
	                        
	                        	
	                        
	                        	
	                        
	                        	
	                        
	                        	
	                        
	                        	
	                        
	                        	
	                        
	                        	
	                        
	                        	
	                        
	                        	
	                        
	                        	
	                        
	                        	
	                        
	                        	
	                        
	                        	
	                        
	                        	
	                        
	                        	
	                        
	                        	
	                        
	                        	
	                        
	                        	
	                        
	                        	
	                        
	                        	
	                        
	                        	
	                        
	                        	
	                        
	                        	
	                        
	                        	
	                        
	                        	
	                        
	                        	
	                        
	                        	
	                        
	                        	
	                        
	                        	
	                        
	                        	
	                        
	                        	
	                        
	                        	
	                        
	                        	
	                        
	                        	
	                        
	                        	
	                        
	                        	
	                        
	                        	
	                        
	                        	
	                        
	                        	
	                        
	                        	
	                        
	                        	
	                        
	                        	
	                        
	                        	
	                        
	                        	
	                        
	                        	
	                        
	                        	
	                        
	                        	
	                        
	                        	
	                        
	                        	
	                        
	                        	
	                        
	                        	
	                        
	                        	
	                        
	                        	
	                        
	                        	
	                        
	                        	
	                        
	                        	
	                        
	                        	
	                        
	                        	
	                        
	                        	
	                        
	                        	
	                        
	                        	
	                        
	                        	
	                        
	                        	
	                        
	                        	
	                        
	                        	
	                        
	                        	
	                        
	                        	
	                        
	                        	
	                        
	                        	
	                        
	                        	
	                        
	                        	
	                        
	                        	
	                        
	                        	
	                        
	                        	
	                        
	                        	
	                        
	                        	
	                        
	                        	
	                        
	                        	
	                        
	                        	
	                        
	                        	
	                        
	                        	
	                        
	                        	
	                        
	                        	
	                        
	                        	
	                        
	                        	
	                        
	                        	
	                        
	                        	
	                        
	                        	
	                        
	                        	
	                        
	                        	
	                        
	                        	
	                        
	                        	
	                        
	                        	
	                        
	                        	
	                        
	                        	
	                        
	                        
	                        
                        	
		                        
		                        
		                        
		                        
                        		
                        	
		                        
		                        
		                        
		                        	
		                        	
		                        
		                        
                        		
                        		
                        			
			                             
                        			
                        		
                        		
	                     		
			                       	
			                       	
	                     		
		                        
                        	
		                        
		                        
		                        
		                        
                        		
                        	
		                        
		                        
		                        
		                        	
		                        	
		                        
		                        
                        		
                        		
                        			
			                        
			                        	3월에 
위왕魏王 조조曹操가 
장안長安에서 
사곡斜谷으로 진출해서 
차요遮要注+[釋義]遮要는 지명이니, 포사곡褒斜谷의 남쪽에 있어 양평관陽平關과 서로 가깝다. [通鑑要解]遮要는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첫 번째는 사곡斜谷이 길이 험하므로 조조曹操가 유비劉備에게 요격邀擊당할까 두려워하여 먼저 군대로써 요해처를 차단하고 비로소 전진하여 한중漢中에 임하였다는 것이요, 나중의 뜻은 바로 이 주註(釋義)와 같은 것이다. 에 주둔하여 
한중漢中에 임하였다. 
      
                        			
                        		
                        		
	                     		
			                       	
			                       	
	                     		
		                        
                        	
		                        
		                        
		                        
		                        
                        		
                        	
		                        
		                        
		                        
		                        	
		                        	
		                        
		                        
                        		
                        		
                        			
			                        
			                        	유비劉備가 말하기를 “조공曹公이 비록 왔으나 어찌할 수가 없을 것이니, 우리가 반드시 한천漢川을 소유할 것이다.” 하고, 마침내 병력을 거두어 험한 곳을 막고서 끝내 교전하지 않았다. 
			                              
                        			
                        		
                        		
	                     		
			                       	
			                       	
	                     		
		                        
                        	
		                        
		                        
		                        
		                        
                        		
                        	
		                        
		                        
		                        
		                        	
		                        	
		                        
		                        
                        		
                        		
                        			
			                        
			                        	조조曹操가 북산北山 아래로 쌀을 수송해 가자 황충黃忠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빼앗고자 하였는데, 기한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조운趙雲이 수십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진영을 나가 시찰하다가 위용威容을 과시하는 조조曹操의 대군大軍과 맞닥뜨렸다. 
			                              
                        			
                        		
                        		
	                     		
			                       	
			                       	
	                     		
		                        
                        	
		                        
		                        
		                        
		                        
                        		
                        	
		                        
		                        
		                        
		                        	
		                        	
		                        
		                        
                        		
                        		
                        			
			                        
			                        	조운趙雲은 갑자기 조조曹操의 대군과 마주치게 되자, 마침내 그 진영으로 돌진하여 한편으로 싸우고 한편으로 퇴각하니, 위魏나라 군대가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진영 아래까지 쫓아왔다. 
			                              
                        			
                        		
                        		
	                     		
			                       	
			                       	
	                     		
		                        
                        	
		                        
		                        
		                        
		                        
                        		
                        	
		                        
		                        
		                        
		                        	
		                        	
		                        
		                        
                        		
                        		
                        			
			                        
			                        	조운趙雲이 진영으로 들어와서 다시 성문을 크게 열고 깃발을 눕히고 북소리를 그치니, 위魏나라 군사들은 조운趙雲이 군사를 매복해 두었을까 의심하여 군대를 이끌고 떠나갔다. 
			                              
                        			
                        		
                        		
	                     		
			                       	
			                       	
	                     		
		                        
                        	
		                        
		                        
		                        
		                        
                        		
                        	
		                        
		                        
		                        
		                        	
		                        	
		                        
		                        
                        		
                        		
                        			
			                        
			                        	조운趙雲이 북을 울려 북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다만 강한 쇠뇌를 사용하여 후면에서 위魏나라 군사들을 향해 발사하니, 위魏나라 군사들이 놀라 자기들끼리 서로 밟혀 한수漢水 가운데 빠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유비劉備가 다음 날 아침 직접 와서 
조운趙雲의 진영에 이르러 전날 전투했던 곳을 순시하고는 말하기를 “
자룡子龍의 온몸은 모두 
담膽뿐이다.”
注+[頭註]자룡子龍은 조운趙雲의 자字이다. 조운趙雲이 담膽이 커서(大膽하여) 고립된 군대를 가지고 조조曹操의 대군大軍에 맞설 수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조조曹操가 군대를 이끌고 장안長安으로 돌아가니, 유비劉備가 마침내 한중漢中을 소유하였다.
			                              
                        			
                        		
                        		
	                     		
			                       	
			                       	
	                     		
		                        
                        	
		                        
		                        
		                        
		                        
                        		
                        	
		                        
		                        
		                        
		                        	
		                        	
		                        
		                        
                        		
                        		
                        			
			                        
			                        	○ 7월에 유비劉備가 한중왕漢中王을 자칭하고 돌아와서 성도成都에 치소治所를 정하였다. 
			                              
                        			
                        		
                        		
	                     		
			                       	
			                       	
	                     		
		                        
                        	
		                        
		                        
		                        
		                        
                        		
                        	
		                        
		                        
		                        
		                        	
		                        	
		                        
		                        
                        		
                        		
                        			
			                        
			                        	관우關羽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번성樊城에서 조인曹仁을 공격하자, 조인曹仁은 우금于禁과 방덕龐德으로 하여금 번성樊城 북쪽에 주둔하게 하였는데, 8월에 큰 장맛비가 내려서 한수漢水가 범람하니, 우금于禁 등 일곱 군영이 모두 물에 잠겼다. 
			                              
                        			
                        		
                        		
	                     		
			                       	
			                       	
	                     		
		                        
                        	
		                        
		                        
		                        
		                        
                        		
                        	
		                        
		                        
		                        
		                        	
		                        	
		                        
		                        
                        		
                        		
                        			
			                        
			                        	우금于禁이 여러 장수들과 높은 지대에 올라가 홍수를 피하였는데, 관우關羽가 배를 타고 공격하니 우금于禁 등이 곤궁하고 급박하여 마침내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허도許都로부터 이남으로 왕왕 멀리 관우關羽에게 응하니, 관우關羽의 위엄이 화하華夏에 진동하였다.
			                              
                        			
                        		
                        		
	                     		
			                       	
			                       	
	                     		
		                        
                        	
		                        
		                        
		                        
		                        
                        		
                        	
		                        
		                        
		                        
		                        	
		                        	
		                        
		                        
                        		
                        		
                        			
			                        
			                        	위왕魏王 조조曹操가 허도許都를 옮겨서 그 예봉銳鋒을 피할 것을 의논하였는데, 사마의司馬懿와 장제蔣濟가 조조曹操에게 말하기를 “유비劉備와 손권孫權이 겉으로는 친하나 속으로는 소원하니, 관우關羽가 소원을 이루는 것을 손권孫權은 반드시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을 보내 손권孫權에게 권해서 관우關羽의 뒤를 밟게 하고, 강남 지방을 떼어서 손권孫權에게 봉해 줄 것을 허락하신다면 번성樊城의 포위가 저절로 풀릴 것입니다.” 하니, 조조曹操가 그 말을 따랐다.
			                              
                        			
                        		
                        		
	                     		
			                       	
			                       	
	                     		
		                        
                        	
		                        
		                        
		                        
		                        
                        		
                        	
		                        
		                        
		                        
		                        	
		                        	
		                        
		                        
                        		
                        		
                        			
			                        
			                        	○ 처음에 
노숙魯肅이 일찍이 
손권孫權에게 권하여 이르기를 “
조조曹操가 아직도 남아 있으니, 우선 
관우關羽를 어루만지고 
화호和好하여
注+[釋義]집輯은 집集과 같으니 화함이다.  그와 더불어 한 짝이 되어야
注+[頭註]구仇는 구逑와 통한다. 《시경詩經》에 “우리 과모戈矛를 수선하여 그대와 한 짝이 되리라.” 하였는데, 주注에 “그 기뻐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서로를 위하여 죽을 수 있는 것이다.” 하였다.  할 것이요, 반목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여몽呂蒙이 노숙魯肅을 대신하여 육구陸口에 주둔하게 되자, 생각하기를 ‘관우關羽는 평소 용맹스럽고 웅건雄健하여 겸병할 마음이 있고 더구나 나라의 상류上流 지역에 있으니, 형세상 우호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하여
			                              
                        			
                        		
                        		
	                     		
			                       	
			                       	
	                     		
		                        
                        	
		                        
		                        
		                        
		                        
                        		
                        	
		                        
		                        
		                        
		                        	
		                        	
		                        
		                        
                        		
                        		
                        			
			                        
			                        	 은밀히 
손권孫權에게 말하기를 “이제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注+[釋義]손교孫皎가 정로장군征虜將軍으로 있었다. 로 하여금 
남군南郡을 지키게 하고, 
반장潘璋은 
백제성白帝城注+[釋義]백제白帝는 지금의 기주夔州이다. 주周나라 초기에 어복국魚復國이라 하였는데 공손술公孫述이 이름을 백제성白帝城으로 바꾸었고 삼국시대三國時代에 촉한蜀漢이 영안永安으로 고쳤다. 에 주둔하게 하고 
장흠蔣欽은 
유병游兵(유격대) 만 명을 거느리고 강을 따라 오르내리다가 적들이 출몰하는 곳에 응전하게 하고,
      
                        			
                        		
                        		
	                     		
			                       	
			                       	
	                     		
		                        
                        	
		                        
		                        
		                        
		                        
                        		
                        	
		                        
		                        
		                        
		                        	
		                        	
		                        
		                        
                        		
                        		
                        			
			                        
			                        	 저는 국가를 위해 전진하여 양양襄陽을 점거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어찌 조조曹操를 걱정하며 어찌 관우關羽에게 의뢰할 것이 있겠습니까?
			                              
                        			
                        		
                        		
	                     		
			                       	
			                       	
	                     		
		                        
                        	
		                        
		                        
		                        
		                        
                        		
                        	
		                        
		                        
		                        
		                        	
		                        	
		                        
		                        
                        		
                        		
                        			
			                        
			                        	또 관우關羽의 군주와 신하는 속임수와 무력을 뽐내어 있는 곳마다 번복하니, 진심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관우關羽를 잡고 완전히 
장강長江을 전부 점거하여 형세가 더욱 커지는
注+[釋義]장張은 마음속으로 스스로 큰 체하는 것이다.  것만 못하니, 이렇게 되면 지키기가 쉬울 것입니다.” 하니, 
손권孫權이 그 말을 좋게 여겼다.
 
			                              
                        			
                        		
                        		
	                     		
			                       	
			                       	
	                     		
		                        
                        	
		                        
		                        
		                        
		                        
                        		
                        	
		                        
		                        
		                        
		                        	
		                        	
		                        
		                        
                        		
                        		
                        			
			                        
			                        	손권孫權이 일찍이 그의 자식을 위하여 관우關羽에게 혼인할 것을 요구하였는데, 관우關羽가 그 사자使者를 꾸짖고 혼인을 허락하지 않으니, 손권孫權이 이로 말미암아 노하였다. 
			                              
                        			
                        		
                        		
	                     		
			                       	
			                       	
	                     		
		                        
                        	
		                        
		                        
		                        
		                        
                        		
                        	
		                        
		                        
		                        
		                        	
		                        	
		                        
		                        
                        		
                        		
                        			
			                        
			                        	관우關羽가 번성樊城을 공격하자, 여몽呂蒙이 상소하기를 “관우關羽가 번성樊城을 토벌하면서 수비병을 많이 남겨 두었으니, 이는 반드시 제가 그 후미를 도모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찍이 병이 있으니, 바라건대 병력을 분산시키고 건업建業으로 돌아가 병을 치료한다고 구실을 삼으면 관우關羽가 이 말을 듣고 반드시 수비병을 철수하여 모두 양양襄陽으로 달려갈 것이니,
			                              
                        			
                        		
                        		
	                     		
			                       	
			                       	
	                     		
		                        
                        	
		                        
		                        
		                        
		                        
                        		
                        	
		                        
		                        
		                        
		                        	
		                        	
		                        
		                        
                        		
                        		
                        			
			                        
			                        	 대군大軍이 강에 배를 띄워 밤낮으로 달려 
상류上流로 올라가서 그의 빈 진영을 습격한다면 
강릉江陵의 여러 
군郡注+[頭註]제군諸郡은 강릉江陵의 여러 고을이다. 을 함락시키고 
관우關羽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마침내 병이 위독하다고 칭하니, 손권孫權이 급히 격문檄文을 보내 여몽呂蒙을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여몽呂蒙이 무호蕪湖에 이르니, 정위교위定威校尉 육손陸遜이 여몽呂蒙에게 이르기를 “관우關羽와 인접하고 있는데, 어찌 먼 곳까지 내려오십니까? 
			                              
                        			
                        		
                        		
	                     		
			                       	
			                       	
	                     		
		                        
                        	
		                        
		                        
		                        
		                        
                        		
                        	
		                        
		                        
		                        
		                        	
		                        	
		                        
		                        
                        		
                        		
                        			
			                        
			                        	후임자後任者가 
관우關羽를 감당하지 못할까 우려할 만합니다.
注+[頭註]여몽呂蒙을 대신한 자가 관우關羽의 적수가 못 될까 우려됨을 말한 것이다.  
			                              
                        			
                        		
                        		
	                     		
			                       	
			                       	
	                     		
		                        
                        	
		                        
		                        
		                        
		                        
                        		
                        	
		                        
		                        
		                        
		                        	
		                        	
		                        
		                        
                        		
                        		
                        			
			                        
			                        	관우關羽가 용맹한 기운을 자랑하여 사람들을 능멸
注+[通鑑要解]역轢은 음이 역이니, 수레에 치여 깔리는 것이다. 하고, 처음 큰 공을 세우자 뜻이 교만하고 마음이 방탕하여 다만 
북진北進만을 힘쓰고 우리를 혐의하지 않으니, 지금 
장군將軍께서 병이 계시다는 말을 들으면
注+[頭註]‘유상문병有相聞病’은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금문군병今聞君病’으로 되어 있다.  반드시 더욱 대비가 없을 것입니다.
 
			                              
                        			
                        		
                        		
	                     		
			                       	
			                       	
	                     		
		                        
                        	
		                        
		                        
		                        
		                        
                        		
                        	
		                        
		                        
		                        
		                        	
		                        	
		                        
		                        
                        		
                        		
                        			
			                        
			                        	이제 그가 예상하지 못한 데로 나오면 자연히 사로잡아 제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여몽呂蒙이 말하기를 “관우關羽는 평소 용맹하니, 쉽게 도모할 수 없다.” 하였다.
			                              
                        			
                        		
                        		
	                     		
			                       	
			                       	
	                     		
		                        
                        	
		                        
		                        
		                        
		                        
                        		
                        	
		                        
		                        
		                        
		                        	
		                        	
		                        
		                        
                        		
                        		
                        			
			                        
			                        	여몽呂蒙이 도성(建業)에 이르자, 손권孫權이 묻기를 “누가 경卿을 대신할 만한 자인가?” 하니, 여몽呂蒙이 대답하기를 “육손陸遜은 사려가 매우 깊으며 재주가 중임重任을 감당할 만합니다.
			                              
                        			
                        		
                        		
	                     		
			                       	
			                       	
	                     		
		                        
                        	
		                        
		                        
		                        
		                        
                        		
                        	
		                        
		                        
		                        
		                        	
		                        	
		                        
		                        
                        		
                        		
                        			
			                        
			                        	그의 계책과 생각하는 것을 살펴보건대 마침내 큰 책임을 맡길 만하고, 아직 원대한 명성이 없어서 관우關羽가 꺼리는 바가 아니니, 이보다 더 나은 자가 없습니다.
			                              
                        			
                        		
                        		
	                     		
			                       	
			                       	
	                     		
		                        
                        	
		                        
		                        
		                        
		                        
                        		
                        	
		                        
		                        
		                        
		                        	
		                        	
		                        
		                        
                        		
                        		
                        			
			                        
			                        	만약 그를 쓰신다면 겉으로는 자신의 의도를 감추고
注+[通鑑要解]도韜는 음이 도이니, 감춤이다.  마음속으로 형세를 살피게 해야 할 것이니, 그런 뒤에야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손권孫權이 마침내 육손陸遜을 불러서 편장군偏將軍에 제수하고 여몽呂蒙을 대신하게 하였다. 
			                              
                        			
                        		
                        		
	                     		
			                       	
			                       	
	                     		
		                        
                        	
		                        
		                        
		                        
		                        
                        		
                        	
		                        
		                        
		                        
		                        	
		                        	
		                        
		                        
                        		
                        		
                        			
			                        
			                        	육손陸遜은 육구陸口에 이르자 편지를 써서 관우關羽에게 보내어 그의 공로와 아름다운 덕을 칭찬하고 깊이 스스로 겸양하여 충심을 다해 스스로 의탁하려는 뜻을 표명하니, 관우關羽의 마음이 크게 안심되어 다시는 혐의하는 바가 없었고 차츰 수비병을 철수하여 번성樊城으로 달려갔다.
			                              
                        			
                        		
                        		
	                     		
			                       	
			                       	
	                     		
		                        
                        	
		                        
		                        
		                        
		                        
                        		
                        	
		                        
		                        
		                        
		                        	
		                        	
		                        
		                        
                        		
                        		
                        			
			                        
			                        	육손陸遜이 이러한 상황을 자세히 아뢰어 사로잡을 수 있는 요점을 말하니, 손권孫權이 마침내 군대를 내어 관우關羽를 습격하게 할 적에 여몽呂蒙을 대도독大都督으로 삼고 정로장군征虜將軍 손교孫皎에게 명하여 뒤를 잇게 하였다. 
			                              
                        			
                        		
                        		
	                     		
			                       	
			                       	
	                     		
		                        
                        	
		                        
		                        
		                        
		                        
                        		
                        	
		                        
		                        
		                        
		                        	
		                        	
		                        
		                        
                        		
                        		
                        			
			                        
			                        	여몽呂蒙이 
심양尋陽에 이르러서 정예병을 배
注+[釋義]𦩷𦪇:𦩷𦪇은 배의 이름이다. 안에 모두 숨겨 두고, 
백의白衣注+[頭註]백의白衣는 병기와 갑옷이 없음을 말한다. 를 입은 자들로 하여금 노를 젓게 하고 장사꾼의 의복을 만들어 입혀서 밤낮으로 행군 속도를 
배가倍加하여 
관우關羽가 배치한 강변에 주둔한 병사들을 모두 포박하니, 이 때문에 
관우關羽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미방麋芳과 
부사인傅士仁注+[通鑑要解]미방麋芳과 부사인傅士仁은 두 사람의 성명이다. 〈관우전關羽傳〉에는 ‘부사인傅士仁’이라 하였고, 〈여몽전呂蒙傳〉에는 ‘사인士仁’이라 하였으니, 사士 또한 성姓이다. 은 평소 모두 
관우關羽가 자신들을 멸시함을 혐의하여 성문을 열고 나와 항복하니,
 
			                              
                        			
                        		
                        		
	                     		
			                       	
			                       	
	                     		
		                        
                        	
		                        
		                        
		                        
		                        
                        		
                        	
		                        
		                        
		                        
		                        	
		                        	
		                        
		                        
                        		
                        		
                        			
			                        
			                        	 여몽呂蒙은 
강릉江陵으로 들어가서 갇혀 있던 
우금于禁을 석방하고,
注+[釋義]蒙入江陵 석우금지수釋于禁之囚:처음에 조조曹操의 장수 조인曹仁이 우금于禁으로 하여금 번성樊城 북쪽에 주둔하게 하자, 관우關羽가 우금于禁을 공격하여 항복받고 그를 강릉江陵에 가두었는데, 이제 여몽呂蒙이 풀어준 것이다. 관우關羽와 장병들의 가솔을 찾아 다 어루만지고 위로하였으며, 
군중軍中에 명령을 내려 약속하기를 “
인가人家에 들어가서 물건을 요구하거나 탈취하지 말라.” 하였다.
 
			                              
                        			
                        		
                        		
	                     		
			                       	
			                       	
	                     		
		                        
                        	
		                        
		                        
		                        
		                        
                        		
                        	
		                        
		                        
		                        
		                        	
		                        	
		                        
		                        
                        		
                        		
                        			
			                        
			                        	여몽呂蒙의 휘하 병사가 여몽呂蒙과 같은 고을 사람이었다.
			                              
                        			
                        		
                        		
	                     		
			                       	
			                       	
	                     		
		                        
                        	
		                        
		                        
		                        
		                        
                        		
                        	
		                        
		                        
		                        
		                        	
		                        	
		                        
		                        
                        		
                        		
                        			
			                        
			                        	그가 
민가民家의 삿갓
注+[通鑑要解]입笠은 비를 막는 것이다.  하나를 취하여 
관官의 갑옷
注+[通鑑要解]개鎧는 음이 개이니, 갑옷이다. 을 덮었는데, 
관官의 갑옷은 비록 공적인 물건이지만 
여몽呂蒙은 오히려 이르기를 “
군령軍令을 범하였으니, 
동향同鄕 사람이라 해서 법을 폐할 수 없다.” 하고는 마침내 눈물을 흘리며 그의 목을 베었다.
      
                        			
                        		
                        		
	                     		
			                       	
			                       	
	                     		
		                        
                        	
		                        
		                        
		                        
		                        
                        		
                        	
		                        
		                        
		                        
		                        	
		                        	
		                        
		                        
                        		
                        		
                        			
			                        
			                        	이에 군중軍中이 두려워하여 길에 흘린 것도 줍지 않았다.
			                              
                        			
                        		
                        		
	                     		
			                       	
			                       	
	                     		
		                        
                        	
		                        
		                        
		                        
		                        
                        		
                        	
		                        
		                        
		                        
		                        	
		                        	
		                        
		                        
                        		
                        		
                        			
			                        
			                        	○ 관우關羽가 남군南郡이 격파되었다는 말을 듣고 즉시 달려 남쪽으로 돌아와서 자주 사람을 보내어 여몽呂蒙과 서로 연락하니, 여몽呂蒙이 그때마다 관우關羽의 사자使者를 후대하고 성城 안을 두루 다니면서 집집마다 위문하고 혹은 친서親書를 보내어 신의를 보였다. 
			                              
                        			
                        		
                        		
	                     		
			                       	
			                       	
	                     		
		                        
                        	
		                        
		                        
		                        
		                        
                        		
                        	
		                        
		                        
		                        
		                        	
		                        	
		                        
		                        
                        		
                        		
                        			
			                        
			                        	관우關羽의 사자使者가 돌아오자, 사람들이 은밀히 서로 물어서 자기 집안에 아무 탈이 없고 대우를 받음이 평상시보다 더하다는 것을 모두 알게 되었으므로 이 때문에 관우關羽의 군사와 백성들이 싸울 마음이 없었다.
			                              
                        			
                        		
                        		
	                     		
			                       	
			                       	
	                     		
		                        
                        	
		                        
		                        
		                        
		                        
                        		
                        	
		                        
		                        
		                        
		                        	
		                        	
		                        
		                        
                        		
                        		
                        			
			                        
			                        	마침 손권孫權이 강릉江陵에 이르니, 형주荊州의 장수와 관리들이 모두 다 귀부歸附하였다. 
			                              
                        			
                        		
                        		
	                     		
			                       	
			                       	
	                     		
		                        
                        	
		                        
		                        
		                        
		                        
                        		
                        	
		                        
		                        
		                        
		                        	
		                        	
		                        
		                        
                        		
                        		
                        			
			                        
			                        	관우關羽는 스스로 고립되어 곤궁함을 알고 마침내 서쪽으로 
맥성麥城을 확보하고 인하여 
맥성麥城으로 도망하였는데, 
마충馬忠注+[頭註]마충馬忠은 오吳나라 장수 반장潘璋의 사마司馬이다. 이 
관우關羽와 그의 아들 
관평關平을 
장향章鄕에서 사로잡아 목을 베고 마침내 
형주荊州를 평정하였다.
 
			                              
                        			
                        		
                        		
	                     		
			                       	
			                       	
	                     		
		                        
                        	
		                        
		                        
		                        
		                        
                        		
                        	
		                        
		                        
		                        
		                        	
		                        	
		                        
		                        
                        		
                        		
                        			
			                        
			                        	여몽呂蒙은 미처 봉작을 받기도 전에 병이 나서 죽으니, 나이가 42세였다. 
			                              
                        			
                        		
                        		
	                     		
			                       	
			                       	
	                     		
		                        
                        	
		                        
		                        
		                        
		                        
                        		
                        	
		                        
		                        
		                        
		                        	
		                        	
		                        
		                        
                        		
                        		
                        			
			                             
                        			
                        		
                        		
	                     		
			                       	
			                       	
	                     		
		                        
                        	
		                        
		                        
		                        
		                        
                        		
                        	
		                        
		                        
		                        
		                        	
		                        	
		                        
		                        
                        		
                        		
                        			
			                        
			                        	- 《삼국지三國志 오지吳志 여몽전呂蒙傳》에 나옴 -
			                              
                        			
                        		
                        		
	                     		
			                       	
			                       	
	                     		
		                        
                        	
		                        
		                        
		                        
		                        
                        		
                        	
		                        
		                        
		                        
		                        	
		                        	
		                        
		                        
                        		
                        		
                        			
			                        
			                        	○ 손권孫權은 뒤에 육손陸遜과 함께 주유周瑜와 노숙魯肅 및 여몽呂蒙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하였다.
			                              
                        			
                        		
                        		
	                     		
			                       	
			                       	
	                     		
		                        
                        	
		                        
		                        
		                        
		                        
                        		
                        	
		                        
		                        
		                        
		                        	
		                        	
		                        
		                        
                        		
                        		
                        			
			                        
			                        	“
공근公瑾(周瑜)
注+[釋義]공근公瑾은 주유周瑜의 자字이다. 은 
웅건강렬雄健剛烈하고 담력과 지략이 남보다 뛰어나서 마침내 
맹덕孟德(曹操)
注+[頭註]맹덕孟德은 조조曹操의 자字이다. 을 격파하고 
형주荊州를 개척하였으니 아득히 높아 필적할 만한 자가 드물다. 
      
                        			
                        		
                        		
	                     		
			                       	
			                       	
	                     		
		                        
                        	
		                        
		                        
		                        
		                        
                        		
                        	
		                        
		                        
		                        
		                        	
		                        	
		                        
		                        
                        		
                        		
                        			
			                        
			                        	자경子敬(魯肅)
注+[釋義]자경子敬은 노숙魯肅의 자字이다. 은 
공근公瑾을 통하여 나에게 이르렀다.
 
			                              
                        			
                        		
                        		
	                     		
			                       	
			                       	
	                     		
		                        
                        	
		                        
		                        
		                        
		                        
                        		
                        	
		                        
		                        
		                        
		                        	
		                        	
		                        
		                        
                        		
                        		
                        			
			                        
			                        	내가 그와 사사로이 말할 때에 큰 도략과 제왕의 
업業을 언급하였으니 이것이 첫 번째 통쾌한 일이요, 뒤에 
맹덕孟德이 
유종劉琮의 세력을 얻고서 막 수십만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수군水軍과 
보병步兵이 함께 내려온다고 장담
注+[頭註]장언張言은 떠벌려(과장하여) 말하는 것이다. 하므로, 내가 여러 장수들에게 널리 청하여 마땅한 대책을 자문하였으나 먼저 나서서 대답하는 자가 없었고, 
장자포張子布(張昭)
注+[頭註]자포子布는 장소張昭의 자字이다. 와 
진문표秦文表(秦松)
注+[頭註]문표文表는 이름이 송松이다. 에 이르러는 모두 
맹덕孟德에게 
사자使者를 보내어 
격문檄文을 올려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자경子敬이 즉시 논박
注+[頭註]박駁은 의견이 똑같지 않음이 색깔이 섞여 있는 것과 같은 것이요, 또 이론異論을 반박하는 것이니, 다른 의견을 내세워 여러 의논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고 반박하는 것이다. 하여 불가함을 말하고, 나에게 급히 
공근公瑾을 부르도록 권하여 군대를 맡겨 주어서 그로 하여금 
맹덕孟德의 군대를 맞이해 싸우게 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통쾌한 일이다.
      
                        			
                        		
                        		
	                     		
			                       	
			                       	
	                     		
		                        
                        	
		                        
		                        
		                        
		                        
                        		
                        	
		                        
		                        
		                        
		                        	
		                        	
		                        
		                        
                        		
                        		
                        			
			                        
			                        	뒤에 비록 나에게 권하여 
유현덕劉玄德에게 땅을 빌려 주게 하였으니,
注+[頭註]현덕玄德은 선주先主(劉備)의 자字이다. 유비劉備가 손권孫權을 보고 형주荊州의 도독都督이 될 것을 요구하자, 노숙魯肅이 손권孫權에게 권하여 형주荊州를 유비劉備에게 빌려 주어 함께 조조曹操를 막게 하였다.  이것이 한 가지 단점이나 두 가지 장점을 덜 수 없다. 
      
                        			
                        		
                        		
	                     		
			                       	
			                       	
	                     		
		                        
                        	
		                        
		                        
		                        
		                        
                        		
                        	
		                        
		                        
		                        
		                        	
		                        	
		                        
		                        
                        		
                        		
                        			
			                        
			                        	주공周公은 한 사람에게 완비하기를 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단점을 잊고 그의 장점을 훌륭하게 여겨서 항상 
등우鄧禹注+[頭註]등우鄧禹가 계책을 세워 광무제光武帝의 중흥中興의 업적을 열었으나 그 뒤에 적미赤眉를 평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노숙魯肅을 등우鄧禹에 비교한 것이다. 에 비교하는 바이다.
      
                        			
                        		
                        		
	                     		
			                       	
			                       	
	                     		
		                        
                        	
		                        
		                        
		                        
		                        
                        		
                        	
		                        
		                        
		                        
		                        	
		                        	
		                        
		                        
                        		
                        		
                        			
			                        
			                        	자명子明(呂蒙)
注+[釋義]자명子明은 여몽呂蒙의 자字이다. 이 젊었을 때에 나는 그가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注+[釋義]극역劇易는 어려움과 쉬움을 이른다.  사양하지 않아 과감하고 담력이 있을 뿐이라고 여겼는데, 사람이 성숙해지자 학문이 진전되고 지략이 남달라서 
공근公瑾의 다음이 될 수 있으나, 다만 언론이 그에게 미치지 못할 뿐이고, 
관우關羽를 도모하여 잡은 것은 
자경子敬보다 낫다.
 
			                              
                        			
                        		
                        		
	                     		
			                       	
			                       	
	                     		
		                        
                        	
		                        
		                        
		                        
		                        
                        		
                        	
		                        
		                        
		                        
		                        	
		                        	
		                        
		                        
                        		
                        		
                        			
			                        
			                        	자경子敬이 나에게 답한 글에 이르기를 ‘제왕帝王이 일어날 때에는 모두 제왕帝王을 위하여 적들을 몰아 제거해 주는 자가 있었습니다. 
			                              
                        			
                        		
                        		
	                     		
			                       	
			                       	
	                     		
		                        
                        	
		                        
		                        
		                        
		                        
                        		
                        	
		                        
		                        
		                        
		                        	
		                        	
		                        
		                        
                        		
                        		
                        			
			                        
			                        	관우關羽는 꺼릴 만한 상대가 못 됩니다.’ 하였으니, 이는 자경子敬이 내심으로 일을 다스리지 못하고는 겉으로 큰소리 친 것일 뿐이다.
			                              
                        			
                        		
                        		
	                     		
			                       	
			                       	
	                     		
		                        
                        	
		                        
		                        
		                        
		                        
                        		
                        	
		                        
		                        
		                        
		                        	
		                        	
		                        
		                        
                        		
                        		
                        			
			                        
			                        	내가 또한 그를 용서하여 구차하게 꾸짖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군대를 일으켜 싸우고 
영營에 주둔하여 지킬 때에 명령하면 명령이 행해지고 금하면 금하는 것이 그쳐짐을 잃지 아니하여, 
부部의 경계 안에 직임을 폐함으로써 죄를 지은 사람이 없고
注+[頭註]폐부廢負는 직무를 폐하여 죄를 짓는 것이다.  도로에 흘린 물건도 줍지 않았으니, 그 법이 또한 아름다웠다.”
      
                        			
                        		
                        		
	                     		
			                       	
			                       	
	                     		
		                        
                        	
		                        
		                        
		                        
		                        
                        		
                        	
		                        
		                        
		                        
		                        	
		                        	
		                        
		                        
                        		
                        		
                        			
			                        
			                        	○ 위왕魏王 조조曹操가 표문을 올려 손권孫權을 표기장군驃騎將軍으로 삼고 부절符節을 빌려 주어 형주목荊州牧을 겸하게 하자, 손권孫權은 교위校尉 양우梁寓를 보내어 들어가 공물貢物을 바치고 조조曹操에게 신臣를 칭하고는 천명天命이 조조曹操에게 있다고 말하였다. 
			                              
                        			
                        		
                        		
	                     		
			                       	
			                       	
	                     		
		                        
                        	
		                        
		                        
		                        
		                        
                        		
                        	
		                        
		                        
		                        
		                        	
		                        	
		                        
		                        
                        		
                        		
                        			
			                        
			                        	시중侍中 진군陳群 등이 모두 말하기를 “
한漢나라의 국운이 이미 끝났으니, 단지
注+[釋義]비적非適은 비특非特(非但)이라는 말과 같다.  오늘 뿐만이 아닙니다. 
 
			                              
                        			
                        		
                        		
	                     		
			                       	
			                       	
	                     		
		                        
                        	
		                        
		                        
		                        
		                        
                        		
                        	
		                        
		                        
		                        
		                        	
		                        	
		                        
		                        
                        		
                        		
                        			
			                        
			                        	전하殿下의 
공덕功德이 높아서 여러 
생민生民들이 희망을 걸고 있습니다.
注+[通鑑要解]주注는 모음과 같다.  
			                              
                        			
                        		
                        		
	                     		
			                       	
			                       	
	                     		
		                        
                        	
		                        
		                        
		                        
		                        
                        		
                        	
		                        
		                        
		                        
		                        	
		                        	
		                        
		                        
                        		
                        		
                        			
			                        
			                        	 그러므로 손권孫權이 먼 곳에 있으면서 신臣을 칭하였으니, 이는 하늘과 사람의 응함이 기운은 다르나 소리는 같은 것입니다. 
			                              
                        			
                        		
                        		
	                     		
			                       	
			                       	
	                     		
		                        
                        	
		                        
		                        
		                        
		                        
                        		
                        	
		                        
		                        
		                        
		                        	
		                        	
		                        
		                        
                        		
                        		
                        			
			                        
			                        	전하殿下께서 마땅히 
대위大位에 오르셔야 하니, 다시 무엇을 의심하겠습니까?” 하니, 
조조曹操가 말하기를 “만약 
천명天命이 내 몸에 있다면 나는 
주周나라 
문왕文王注+[頭註]문왕文王은 천하天下를 셋으로 나눌 적에 그 둘을 소유하였으나 복종하여 은殷나라 주왕紂王을 섬겼다. 이 되겠다.” 하였다.
 
			                              
                        			
                        		
                        		
	                     		
			                       	
			                       	
	                     		
		                        
                        	
		                        
		                        
		                        
		                        
                        		
                        	
		                        
		                        
		                        
		                        	
		                        	
		                        
		                        
                        		
                        		
                        			
			                             
                        			
                        		
                        		
	                     		
			                       	
			                       	
	                     		
		                        
                        	
		                        
		                        
		                        
		                        
                        		
                        	
		                        
		                        
		                        
		                        	
		                        	
		                        
		                        
                        		
                        		
                        			
			                        
			                        	“교화敎化는 국가의 급선무인데 세속의 관리들이 태만히 하고, 풍속風俗은 천하의 큰일인데 용렬한 군주가 소홀히 한다.
			                              
                        			
                        		
                        		
	                     		
			                       	
			                       	
	                     		
		                        
                        	
		                        
		                        
		                        
		                        
                        		
                        	
		                        
		                        
		                        
		                        	
		                        	
		                        
		                        
                        		
                        		
                        			
			                        
			                        	오직 밝고 지혜로운 군자君子는 깊이 알고 멀리 생각하니, 그런 뒤에야 유익함이 크고 공을 거둠이 원대함을 안다.
			                              
                        			
                        		
                        		
	                     		
			                       	
			                       	
	                     		
		                        
                        	
		                        
		                        
		                        
		                        
                        		
                        	
		                        
		                        
		                        
		                        	
		                        	
		                        
		                        
                        		
                        		
                        			
			                        
			                        	광무제光武帝는 
한漢나라가 중간에 쇠락할 때를 만나 영웅들이 죽 끓듯
注+[頭註]미糜는 죽이다. 죽이 끓는 것과 같음은 어지러움을 말한다.  할 때에 
포의布衣(평민)의 신분으로 분발하여 일어나 
전인前人들이 남겨 놓은 
기업基業의 실마리를 이어 회복하고 
사방四方을 
정벌征伐하여 날마다 한가할 겨를이 없었으나, 마침내 
경학經學을 돈독히 숭상하고 선비들을 손님의 
예禮로 맞이하며 학교를 열어 넓히고 
예악禮樂을 닦고 밝혀서 
무공武功이 이미 이루어지자 
문덕文德 또한 흡족하였다.
 
			                              
                        			
                        		
                        		
	                     		
			                       	
			                       	
	                     		
		                        
                        	
		                        
		                        
		                        
		                        
                        		
                        	
		                        
		                        
		                        
		                        	
		                        	
		                        
		                        
                        		
                        		
                        			
			                        
			                        	뒤를 이어 
효명제孝明帝와 
효장제孝章帝는 
선조先祖의 
유지遺志를 따라
注+[釋義]휼遹은 따름이요 추追는 따름이니, 앞 사람의 뜻을 멀리 따르는 것이다. 벽옹辟雍에 친히 임하여 
노인老人(三老五更)에게 절하고
注+[釋義]벽옹辟雍에 행차하여 노인을 봉양하는 예禮를 행한 것이다. 경서經書를 옆에 펼쳐 놓고 
도道를 물었으며, 
공경대부公卿大夫로부터 
군현郡縣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두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이 닦여진 사람을 선발하였다.
      
                        			
                        		
                        		
	                     		
			                       	
			                       	
	                     		
		                        
                        	
		                        
		                        
		                        
		                        
                        		
                        	
		                        
		                        
		                        
		                        	
		                        	
		                        
		                        
                        		
                        		
                        			
			                        
			                        	그리하여 호위하는 군사들도 모두 《효경孝經》을 익혔고 흉노匈奴의 자제들 또한 태학太學에 유학하였다.
			                              
                        			
                        		
                        		
	                     		
			                       	
			                       	
	                     		
		                        
                        	
		                        
		                        
		                        
		                        
                        		
                        	
		                        
		                        
		                        
		                        	
		                        	
		                        
		                        
                        		
                        		
                        			
			                        
			                        	이 때문에 교육이 위에서 확립되고 풍속이 아래에서 이루어졌으니, 충후하고 행실이 결백한 선비들이 어찌 다만 
사대부士大夫들
注+[釋義]진搢은 꽂음이고 신紳은 큰 띠이니, 진신搢紳은 띠에 홀을 꽂음을 이른다. 사이에서 존중을 받을 뿐이었겠는가.
      
                        			
                        		
                        		
	                     		
			                       	
			                       	
	                     		
		                        
                        	
		                        
		                        
		                        
		                        
                        		
                        	
		                        
		                        
		                        
		                        	
		                        	
		                        
		                        
                        		
                        		
                        			
			                        
			                        	또한 여러 백성들에게 흠모를 받았으며, 어리석고 비루하고 더러운 사람이 어찌 다만 조정에서 용납되지 못할 뿐이었겠는가.
			                              
                        			
                        		
                        		
	                     		
			                       	
			                       	
	                     		
		                        
                        	
		                        
		                        
		                        
		                        
                        		
                        	
		                        
		                        
		                        
		                        	
		                        	
		                        
		                        
                        		
                        		
                        			
			                             
                        			
                        		
                        		
	                     		
			                       	
			                       	
	                     		
		                        
                        	
		                        
		                        
		                        
		                        
                        		
                        	
		                        
		                        
		                        
		                        	
		                        	
		                        
		                        
                        		
                        		
                        			
			                        
			                        	삼대三代가 멸망한 이후로 풍속과 교화의 아름다움이 동한東漢처럼 성대한 적이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효화제孝和帝 이후로는 
귀척貴戚들
注+[頭註]귀척貴戚은 화제和帝 때의 두헌竇憲, 순제順帝 때의 양상梁商‧양기梁冀, 안제安帝 때의 등즐鄧隲, 영제靈帝 때의 두무竇武와 같은 무리이다. 이 권력을 독점하고 총애받는 자(乳母와 
환관宦官)들
注+[頭註]신분이 천하면서 총애를 받는 것을 폐嬖라 하니, 폐행嬖倖은 유모와 환관 같은 자들이다. 이 
용사用事하여 상벌에 기준이 없고 뇌물이 공공연히 성행하였으며,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뒤섞이고 
시비是非가 전도되었으니, 혼란하다고 이를 만하였다.
      
                        			
                        		
                        		
	                     		
			                       	
			                       	
	                     		
		                        
                        	
		                        
		                        
		                        
		                        
                        		
                        	
		                        
		                        
		                        
		                        	
		                        	
		                        
		                        
                        		
                        		
                        			
			                        
			                        	그러나 오히려 면면히 이어져 멸망함에 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위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인 
원안袁安‧
양진楊震‧
이고李固‧
두교杜喬‧
진번陳蕃‧
이응李膺의 무리가 황제의 면전에서 꺾고 조정에서 간쟁하여 
공의公義로써 국가의 위태로움을 
부지扶持하고, 아래로는 
포의布衣의 선비인 
부융符融‧
곽태郭泰‧
범방范滂‧
허소許劭의 무리가 
사론私論을 세워 
한漢나라 조정의 잘못을 바로잡았기
注+[頭註]조정에 참여하여 의논하지 못하고 아래에서 사사로이 의논을 세워 조정의 의논의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것이다.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정치가 비록 혼탁하였으나 풍속이 쇠하지 않아서 심지어는 부월斧鉞을 범하여 앞에서 쓰러져 죽었으나 충의忠義에 분발하는 자가 뒤를 이어 나와 앞사람을 따라 계속해서 죽음에 나아가 죽음을 보기를 돌아가는 것처럼 여겼으니, 어찌 다만 몇 사람이 어질었기 때문이었겠는가?
			                              
                        			
                        		
                        		
	                     		
			                       	
			                       	
	                     		
		                        
                        	
		                        
		                        
		                        
		                        
                        		
                        	
		                        
		                        
		                        
		                        	
		                        	
		                        
		                        
                        		
                        		
                        			
			                        
			                        	이 또한 광무제光武帝와 명제明帝와 장제章帝가 남긴 교화 때문이었다.
			                              
                        			
                        		
                        		
	                     		
			                       	
			                       	
	                     		
		                        
                        	
		                        
		                        
		                        
		                        
                        		
                        	
		                        
		                        
		                        
		                        	
		                        	
		                        
		                        
                        		
                        		
                        			
			                        
			                        	이때를 당하여 만일 현명한 군주가 나와서 진작振作시켰다면 한漢나라의 국운國運은 오히려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침체하고 무너진 뒤를 이었고, 또 환제桓帝와 영제靈帝가 혼우하고 포악해서 간사한 자들을 보호하고 기르기를 자기 골육보다 더 심하게 하고, 충신과 어진 자를 죽이고 멸하기를 원수보다 더 심하게 하여 많은 선비들의 울분을 쌓이게 하고 온 천하 백성들의 노여움을 쌓이게 하였다.
			                              
                        			
                        		
                        		
	                     		
			                       	
			                       	
	                     		
		                        
                        	
		                        
		                        
		                        
		                        
                        		
                        	
		                        
		                        
		                        
		                        	
		                        	
		                        
		                        
                        		
                        		
                        			
			                        
			                        	이에 
하진何進이 군대를 부르고 
동탁董卓이 틈을 타며 
원소袁紹의 무리가 따라서 난을 일으켜, 마침내 
천자天子의 수레가 
파천播遷하고 
종묘宗廟가 빈터
注+[釋義]구丘는 빔이요, 허墟는 큰 언덕이다. 허墟는 본래 허虛로 되어 있으니, 허虛는 허물어지고 멸망하여 뒤를 잇는 자가 없는 곳이다. 가 되게 하여, 
왕실王室이 전복되고 
생민生民들이 도탄에 빠져서 
대명大命(天命)이 끊어져 다시는 구원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주군州郡에서 병력을 보유하고 땅을 차지한 자들이 비록 서로 삼키고 물어뜯었으나 그래도 일찍이 한漢나라를 존숭尊崇함을 구실로 삼지 않은 적이 없었다.
			                              
                        			
                        		
                        		
	                     		
			                       	
			                       	
	                     		
		                        
                        	
		                        
		                        
		                        
		                        
                        		
                        	
		                        
		                        
		                        
		                        	
		                        	
		                        
		                        
                        		
                        		
                        			
			                        
			                        	위魏 무제武帝(曹操)는 사납고 강포
注+[釋義]강항强伉은 강포하고 굳셈을 이른다. 한데다가 천하 사람들에게 큰 공이 있어서 군주를 무시하는 마음을 쌓은 지가 오래되었으나 마침내 종신토록 감히 
한漢나라 황제를 폐하고 스스로 서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 마음속에 이를 원하지 않았겠는가?
 
			                              
                        			
                        		
                        		
	                     		
			                       	
			                       	
	                     		
		                        
                        	
		                        
		                        
		                        
		                        
                        		
                        	
		                        
		                        
		                        
		                        	
		                        	
		                        
		                        
                        		
                        		
                        			
			                        
			                        	그래도 명분과 의리를 두려워하여 스스로 억제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건대 교화를 어찌 태만히 할 수 있으며 풍속을 어찌 소홀히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