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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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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申]〈晉咸寧二年이요 吳天璽元年이라
十月 晉羊祜請伐吳曰 先帝西平巴, 蜀하고 南和吳, 會하야 庶幾海內得以休息이러니 而吳復背信하야 使邊事更興하니
夫期運 雖天所授 而功業 必因人而成이니 不一大擧掃滅하면 則兵役 無時得息也
蜀平之時 天下皆謂吳當幷亡이라하더니 自是以來 十有三年矣니이다
謀之雖多 決之欲獨이니 凡以險阻注+[頭註]阻亦險也得全者 謂其勢鈞(均)力敵耳
輕重不齊하고 强弱異勢 雖有險阻 不可保也니이다
蜀之爲國 非不險也
皆云一夫荷戟 千人莫當이라하더니 及進兵之日하야 曾無藩籬之限하고 乘勝席卷하야 徑至成都하니이다
今江, 淮之險 不如劍閣하고 孫皓之暴 過於劉禪하고 吳人之困 甚於巴蜀하고 而大晉兵力 盛於往時하니 不於此際 平一四海하고 而更阻兵注+[通鑑要解] 恃也相守하야 使天下困於征戍하야 經歷盛衰注+[通鑑要解]謂將兵以盛壯之年 出戍하야 經歷營陣이라가 至衰老也 不可長久也니이다
今若引梁, 益注+[頭註]王濬, 唐彬所統이라之兵하야 水陸俱下하고 荊, 楚注+[頭註]羊祜所統이라之衆 進臨江陵하고 平南, 豫州注+[頭註]平南 胡奮爲平南將軍이요 豫州 王戎爲刺史 直指夏口하고 徐, 揚, 靑, 兗注+[頭註]徐, 揚 王渾所統이요 靑, 兗 琅邪王伷所統이라 竝會秣陵이면 以一隅之吳 當天下之衆하야 勢分形散하야 所備皆急하리니 巴, 漢奇兵 出其空虛하야 一處傾壞 則上下震蕩하야 雖有智者라도 不能爲吳謀矣리이다
孫皓恣情任意하야 與下多忌하고 其俗 急速하야 不能持久
弓弩戟楯 不如中國이요 唯有水戰 是其所便이니 一入其境이면 則長江 非復所保
還趣城池하야 去長入短이면 非吾敵也 如此 軍不踰時하야 克可必矣리이다
晉主深納之로되 而朝議方以秦, 涼爲憂注+[附註] 鄧艾納鮮卑降者數萬하야 置雍, 涼之間하야 與民雜居러니 晉恐其爲患하야 乃分雍, 涼, 梁州하야 置秦州한대 遂爲亂하니 見二十六卷庚子年하니라어늘
祜復表曰 吳平則胡自定이니 但當速濟大功耳니이다
議者多有不同호되 賈充, 荀勗, 馮紞 尤以伐吳爲不可라하야늘 祜歎曰 天下不如意事十常居八九로다
天與不取하니 豈非事者 恨於後時注+[通鑑要解]言吳可取而不取하야 機會一失이면 經見其事 豈不有後時之恨哉
支尙書杜預 中書令張華 與晉主意合하야 贊成其計하니라


병신(276) - 나라 함녕咸寧 2년이고, 나라 천새天璽 원년元年이다. -
10월에 나라 양호羊祜나라를 정벌할 것을 청하여 말하기를 “선제先帝께서 서쪽으로 을 정벌하고 남쪽으로 회계會稽와 화합하여 온 천하가 휴식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나라가 다시 배반하여 변방의 전투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시운時運은 비록 하늘이 주는 것이지만 공업功業은 반드시 사람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니, 한번 크게 군대를 일으켜 소탕하고 멸망시키지 않으면 병역兵役이 그칠 때가 없을 것입니다.
촉한蜀漢이 평정되었을 때 천하 사람들이 모두 ‘나라도 함께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그로부터 13년이 지났습니다.
모의는 비록 많이 하나 결단은 홀로 하고자 하니, 무릇 지형의 험고함注+[頭註] 또한 험함이다. 을 이용하여 온전함을 얻는 것은 형세가 비슷하고 힘이 대등한 경우를 이를 뿐입니다.
만약 형세의 경중이 똑같지 않고 강약의 형세가 다르면 비록 험조險阻한 지형이 있더라도 보장할 수가 없습니다.
이란 나라가 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두들 말하기를 ‘한 지아비가 창을 메고 있으면 천 명이 당해내지 못한다.’ 하였는데, 진군進軍하는 날에 이르러서는 〈무인지경을 통과하듯〉 일찍이 울타리의 한계가 없었고 승세를 타고 석권해서 곧바로 성도成都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양자강揚子江회수淮水의 험고함이 검각劍閣만 못하고 손호孫皓의 포악함이 유선劉禪보다 더하며 나라 사람의 곤궁함이 보다 심하고 대진大晉의 병력이 지난날보다 강성하니, 이러한 때에 사해四海를 평정하여 통일하지 않고 다시 군대를 믿고注+[通鑑要解]는 믿음이다. 서로 지켜서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변경에 가서 수자리 사느라 고생하여 성년盛年부터 노년老年에 이르기까지 진영陣營을 두루 경력經歷注+[通鑑要解]성쇠盛衰를 두루 거친다는 것은 장병將兵이 혈기 왕성한 한창 나이에 수자리 살러 나와서 영진營陣을 두루 경력하여 노쇠함에 이름을 이른다. 하게 하는 것은 장구한 방법이 아닙니다.
지금 만약 양주梁州익주益州注+[頭註]양주梁州익주益州왕준王濬당빈唐彬이 통솔하였다. 의 군대를 이끌고 수륙水陸으로 함께 내려가고, 형주荊州注+[頭註]형주荊州 지방은 양호羊祜가 통솔하였다. 지방의 병력은 전진하여 강릉江陵에 임하고, 평남平南예주豫州注+[頭註]평남平南호분胡奮평남장군平南將軍이 되었고, 예주豫州왕융王戎자사刺史가 되었다. 의 병력은 곧바로 하구夏口로 향하고, 서주徐州양주揚州청주靑州연주兗州注+[頭註]서주徐州양주揚州왕혼王渾이 통솔하고, 청주靑州연주兗州낭야왕琅邪王 사마주司馬伷가 통솔하였다. 의 병력은 함께 말릉秣陵에 모인다면 궁벽한 한 모퉁이의 나라를 가지고 천하의 군대를 상대하게 되어 세력이 나누어지고 형세가 흩어져서 방비하는 것이 모두 급하게 될 것이니, 기병奇兵이 그 빈틈을 공격하여 한 곳이 기울어지고 무너지면 상하가 진동하여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나라를 위해 도모하지 못할 것입니다.
손호孫皓는 감정대로 하고 뜻대로 하여 아랫사람들을 대함에 시기함이 많고 풍속이 급하여 오랫동안 버티지 못합니다.
활과 쇠뇌와 창과 방패는 중국中國만 못하고 오직 수전水戰만이 그들의 익숙한 바이니, 우리가 한번 그들의 경내에 들어가면 장강長江이 다시는 그들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 성지城池로 달려가서 그들의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쓴다면 우리의 적수가 못 될 것이니, 이와 같으면 군대가 한 철을 지나지 않아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진주晉主는 그 말을 깊이 받아들였으나 조정의 의논은 한창 진주秦州양주涼州를 걱정하고 있었다.注+[附註]먼저 등애鄧艾선비족鮮卑族의 항복한 자 수만 명을 받아들여 옹주雍州양주涼州의 사이에 두고 백성들과 섞여 살게 하였는데, 나라에서 이들이 우환이 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옹주雍州양주涼州양주梁州에서 약간의 군현郡縣을 나누어 진주秦州를 설치하자 마침내 난을 일으켰는 바, 뒤의 26권 경자년조庚子年條(280)에 보인다.
그러자 양호羊祜가 다시 표문表文을 올려 아뢰기를 “나라가 평정되면 오랑캐가 저절로 안정될 것이니, 다만 속히 큰 공을 이루어야 할 뿐입니다.” 하였다.
의논하는 자들이 대부분 동의하지 않았는데, 가충賈充순욱荀勗풍담馮紞이 더욱 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하자, 양호羊祜가 탄식하기를 “천하에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열 중에 항상 여덟아홉을 차지한다.
하늘이 주는데도 취하지 않으니, 어찌 일을 경험하여 아는 자가 때에 뒤늦음을 한하지注+[通鑑要解]때에 뒤늦음을 한다는 것은 나라를 취할 수 있는데 취하지 않아서 기회를 한 번 놓치게 되면 그 일을 경험하여 알 자가 어찌 시기에 늦음을 한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않겠는가.” 하였다.
오직 탁지상서度支尙書 두예杜預중서령中書令 장화張華진주晉主와 뜻이 합하여 양호羊祜의 계책에 찬동하였다.


역주
역주1 : 경
역주2 : 탁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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