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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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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亥]六載
以范陽平盧節度使安祿山으로 兼御史大夫하다
祿山 體充肥하야 腹垂過膝하니 嘗自稱重三百斤하니라
外若癡直이나 內實狡注+[頭註]狡黠 謂狂狡桀黠也 하야 在上前 應對敏給注+[頭註] 口捷也 하고 雜以詼諧注+[頭註] 譏戲也 和合也 러라
嘗戲指其腹曰 此胡注+[頭註]祿山 營州柳城胡種也 腹中 何所有완대 其大乃爾 對曰 更無餘物이요 止有赤心니이다하니하다
祿山 得出入禁中하야 因請爲貴妃兒
上與貴妃共坐러니 祿山 先拜貴妃어늘
上問 何故 對曰 胡人 先母而後父니이다하다
〈出本傳〉
○ 十二月 命百官하야 閱視天下歲貢物於尙書省이러니 旣而 悉以車載하야 賜李林甫家하다
或時 不視朝 百司悉集林甫第門하니 臺省 爲空注+[頭註]臺省 尙書御史謁者三臺 中書門下兩省也 去聲이라이라
陳希烈注+[附註]同平章事也 以講老莊으로 得進하야 取媚於上하니 林甫以上所愛 且柔佞易制 引以爲相이러니 凡政事 一決於林甫하고 希烈 但給唯諾書名而已하니라 雖坐府 無一人入謁者러라
○ 自唐興以來 邊帥 皆用忠厚名臣호되 不久任하고하고 不兼統하고 功名著者 往往入爲宰相하고 其四夷之將 雖才略 如阿史那社爾注+[頭註]阿史那 突厥三字姓이라 , 何力注+[原註] 音乞이니 契苾 虜複姓이요 何力 其名也 이라도 猶不專大將之任하고 皆以大臣爲使하야 以制之러니
及開元中하야 天子有呑四夷之志하야 爲邊將者 十餘年不易하야 始久任矣 皇子則慶, 忠諸王注+[釋義]慶王 名琮이요 忠王 卽肅宗也 名亨이라 竝領節度호되 不出閤하니라 宰相則蕭嵩, 牛仙客 始遙領矣 嘉運注+[頭註] 音盍이니 凡姓竝同이라 , 王忠嗣專制數道하야 始兼統矣러라
李林甫欲杜邊帥入相之路하야 以胡人不知書라하야 乃奏言호되 文臣爲將이면 怯當矢石하니 不若用寒族胡人이니이다
胡人則勇決習戰하고 寒族則孤立無黨하니 陛下誠以恩洽其心하시면 彼必能爲朝廷盡死하리이다
悅其言하야 始用安祿山이러라
至是 諸道節度使 盡用胡人하고 精兵 咸戍北邊하니 天下之勢偏重이라
卒使祿山傾覆天下 皆出於林甫專寵固位之謀也하니라
〈出本傳〉


천보天寶 6년(정해 747)
범양范陽평로절도사平盧節度使안녹산安祿山에게 어사대부御史大夫를 겸하게 하였다.
안녹산安祿山은 몸에 살이 쪄서 뱃살이 늘어져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였는데, 일찍이 체중이 300근이나 된다고 자칭하였다.
안녹산安祿山은 겉으로는 미련하고 정직한 듯하였으나 속으로는 실로 교활하고 약아서注+[頭註]교힐狡黠은 교활하고 음흉함을 이른다. 의 앞에 있을 적에 응대함에 민첩하고注+[頭註]은 말을 잘하는 것이다. 해학을 곁들였다.注+[頭註]는 놀리고 희롱하는 것이요, 는 화합함이다.
이 일찍이 그의 배를 가리키며 농담하기를 “이 오랑캐의注+[頭註]안녹산安祿山영주營州유성柳城의 오랑캐 종족이다. 뱃속에는 무엇이 들었기에 이렇게 큰가?” 하니, 대답하기를 “다시 딴 물건이 없고 오직 적심赤心(忠心)만이 있을 뿐입니다.” 하니, 이 기뻐하였다.
안녹산安祿山이 궁중을 출입할 수 있게 되자 이로 인해 귀비貴妃의 아들이 되기를 청하였다.
귀비貴妃와 함께 앉아 있는데, 안녹산安祿山귀비貴妃에게 먼저 절을 하였다.
이 무슨 이유냐고 묻자, 안녹산安祿山이 대답하기를 “호인胡人은 어머니에게 먼저 절하고 아버지에게 뒤에 절합니다.” 하니, 이 기뻐하였다.
- 《당서唐書안녹산전安祿山傳》에 나옴 -
12월에 백관에게 명하여 천하에서 해마다 국가에 바치는 공물貢物상서성尙書省에서 열람해 보게 하였는데, 이윽고 모두 수레에 실어서 이임보李林甫의 집에 하사하였다.
이 혹시 조회를 보지 않으면 백사百司들이 모두 이임보李林甫의 집 문 앞에 모이니, 어사대御史臺상서성尙書省이 이 때문에 텅 비었다.注+[頭註]대성臺省상서대尙書臺어사대御史臺알자대謁者臺중서성中書省문하성門下省이다. 거성去聲이다.
진희열陳希烈注+[附註]진희열陳希烈동평장사同平章事이다. 노장老莊을 강하는 것으로 출세하여 에게 잘 보이니, 이임보李林甫가, 진희열陳希烈이 총애하는 바이며 유순하고 아첨하여 제재하기 쉬운 인물이라고 여겼다. 그러므로 천거하여 정승으로 삼았는데, 모든 정사를 일체 이임보李林甫에게 결재받고 진희열陳希烈은 단지 대답이나 하고 서명署名만 할 뿐이었다. 비록 상부相府에 앉아 있으나 한 사람도 들어와 뵙는 자가 없었다.
나라가 건국한 이래로 변방의 장수를 모두 충후忠厚하고 명망있는 신하를 등용하였는데, 오랫동안 임무를 맡기지 않고 멀리서 요령遙領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을 겸하여 관할하지 못하게 하고, 공명功名이 드러난 자는 들어와 재상이 되게 하였으며, 사이四夷의 장수는 비록 재주와 지략이 아사나사이阿史那社爾注+[頭註]아사나阿史那돌궐突厥의 세 글자로 된 이다. 걸필하력契苾何力注+[原註]이 걸이니, 걸필契苾은 오랑캐의 복성複姓이고 하력何力은 그 이름이다. 같더라도 오히려 대장의 임무를 전담하지 못하게 하고 모두 대신을 使로 삼아서 그들을 제재하게 하였다.
개원開元 연간에 이르러 천자가 사이四夷를 병탄할 뜻을 두어서 변방의 장수가 된 자들을 10여 년 동안 바꾸지 아니하여 비로소 오랫동안 임무를 맡겼고, 황자皇子경왕慶王충왕忠王 등 여러 왕과注+[釋義]경왕慶王은 이름이 이고 충왕忠王은 바로 숙종肅宗이니 이름이 이다. 모두 절도節度(藩鎭)를 관할하였으나 궁궐을 나가지 않았다.재상宰相소숭蕭嵩우선객牛仙客이 비로소 멀리서 요령遙領하게 하였고, 개가운蓋嘉運注+[頭註]은 음이 합이니, 무릇 일 경우에는 모두 같다. 왕충사王忠嗣가 여러 를 전적으로 통제하여 비로소 다른 번진藩鎭을 겸하여 관할하게 하였다.
이임보李林甫는 변방의 장수들이 조정에 들어와 정승이 되는 길을 막고자 해서 ‘호인胡人들은 글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 마침내 아뢰기를 “문신文臣이 장군이 되면 화살과 돌을 맞는 것을 겁내니, 출신이 한미한 호인胡人들을 등용하는 것만 못합니다.
호인胡人들은 용맹하게 결단하고 전투에 익숙하며, 출신이 한미한 가문은 고립되어 이 없으니, 폐하께서 진실로 은혜로써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신다면 저들은 반드시 조정을 위하여 사력死力을 다할 것입니다.” 하였다.
이 그 말을 기뻐하여 비로소 안녹산安祿山을 등용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여러 절도사節度使호인胡人들을 모두 등용하고 정예병이 모두 북쪽 변방을 지키니, 천하의 형세가 북쪽으로 편중되었다.
그리하여 안녹산安祿山으로 하여금 천하를 전복하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 이임보李林甫가 은총을 독차지하고 지위를 견고히 하려는 계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 《당서唐書안녹산전安祿山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힐
역주2 遙領 : 멀리서 거느린다는 뜻으로, 중앙에 앉아서 멀리 지방의 직무를 겸임하고 있음을 말한다.
역주3 契苾 : 걸필
역주4 : 합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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