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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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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巳] 〈宋主子業景和元이요 太宗泰始元年이요 魏和平六年이라
五月 魏主殂하다
魏世祖注+[頭註]太武帝燾經營四方하니 國頗虛耗하고 重以內難注+[頭註]內難 謂見弑也 在上壬辰年이라[通鑑要解]內難 하야 朝野楚楚注+[頭註]苦楚不安之貌러니 高宗注+[頭註]文成帝濬이라 嗣之하야 與時消息하야 靜以鎭之하야 懷集中外하니 民心 復安이라
顯祖弘注+[原註]高宗長子也 是爲顯祖獻文皇帝 卽位하니 時年十二
馮太后臨朝稱制하다
○ 宋沈慶之 復啓聽民私鑄錢하니 由是 錢貨亂敗하야
千錢 長不盈三寸이요 大小稱此하니 謂之鵝眼錢이라하고 劣於此者 謂之環錢注+[通鑑要解]綖與線同하니 私箭切이라 貫之綖하면 其狀如環故 曰綖環이라이라
貫之以縷하야 入水不沈하고 隨手破碎하니 市井 不復料數注+[頭註] 計也
十萬錢 不盈一掬注+[通鑑要解]今俗謂兩手所捧 爲一掬이니 則數合耳하고 斗米一萬이라 商貨不行이러라
○ 宋主子業 殘暴日甚하니 宗室百官 濫被誅殺이라
壽寂之注+[頭註]子業之左右弑之하고 迎湘東王彧하야 卽位하고하고 禁鵝眼, 綖環錢하고 餘皆通用하다
[史略 史評]史斷曰
廢帝之立 凶悖轉甚하야 誅殺無度하야 內外反目이라
假使中才之君 有一于此라도 足殞其軀 況兼此衆惡하니 不亡其何待乎


을사(465) - 송주宋主 유자업劉子業경화景和 원년元年이고, 태종太宗(劉彧)의 태시泰始 원년元年이며, 나라 화평和平 6년이다. -
5월에 위주魏主가 죽었다.
처음에 나라 세조世祖注+[頭註]세조世祖태무제太武帝 탁발도拓跋燾이다. 사방四方을 경영하니, 나라가 자못 허약해지고 내란까지 겹쳐서注+[頭註]內難은 시해당한 것을 이르니, 앞의 임진년조壬辰年條(452)에 보인다. [通鑑要解]內難은 종애宗愛가 이미 세조世祖를 시해하고, 또다시 남안왕南安王 탁발여拓跋余를 시해한 것이다. 조야朝野가 고통으로 신음하였는데,注+[頭註]초초楚楚는 고생하여 편안하지 않은 모양이다. 고종高宗注+[頭註]고종高宗문성제文成帝 탁발준拓跋濬이다. 이 왕위를 이어받은 뒤에는 시세時世에 따라 변화하여 고요함으로 국가를 진정시켜 중외中外를 회유하고 편안하게 하니, 민심民心이 다시 안정되었다.
현조顯祖 탁발홍拓跋弘注+[原註]탁발홍拓跋弘고종高宗장자長子이니, 이가 바로 현조顯祖 헌문황제獻文皇帝이다. 이 즉위하니 이때 나이가 열두 살이었다.
풍태후馮太后가 조정에 임어臨御하여 를 칭하였다.
나라 심경지沈慶之가 다시 아뢰어 백성들이 사사로이 돈을 주조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니, 이로 말미암아 화폐가 문란해지고 조악해졌다.
천전千錢을 꿴 길이가 채 세 치가 못 되고 돈의 크기가 이와 서로 걸맞으니, 이것을 아안전鵝眼錢이라 일렀으며 이보다 못한 것은 연환전綖環錢注+[通鑑要解]과 같으니, 음이 私箭切(선)이다. 돈을 끈으로 꿰면 돈을 꿴 모양이 고리와 같으므로 연환綖環이라고 한 것이다. 이라 일렀다.
이것을 끈으로 꿰어 물속에 넣으면 가라앉지 않고 손으로 만지면 부서지니, 시정市井에서 돈을 사용할 때 다시는 다소多少를 헤아리지注+[頭註]는 계산하는 것이다. 않았다.
십만 전이 한 줌注+[通鑑要解]지금 풍속에 양손으로 받는 것을 한 움큼[一掬]이라 하니, 몇 홉일 뿐이다. 이 못 되고 쌀 한 말의 값이 1만 전이니, 장사와 무역이 제대로 행해지지 못하였다.
송주宋主 유자업劉子業이 잔인하고 포악함이 날로 심하니, 종실宗室백관百官들이 〈죄가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고〉 함부로 주살당하였다.
수적지壽寂之注+[頭註]수적지壽寂之유자업劉子業근신近臣이다. 송주宋主를 시해하고 상동왕湘東王 유욱劉彧을 맞이하여 즉위하게 하고는 이수전二銖錢을 없애고 아안전鵝眼錢연환전綖環錢을 금하였으며 나머지는 모두 그대로 통용하였다.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폐제廢帝(劉子業)가 즉위하자 흉악함과 패역함이 더욱 심하여 사람을 죽이는 것이 한도가 없어서 내외內外가 반목하였다.
가령 중등의 재주를 지닌 군주가 이 중에 한 가지만 있어도 족히 목숨을 잃을 터인데, 하물며 이 여러 가지 을 겸하였으니, 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역주
역주1 宗愛旣弑世祖 又弑南安王余 : 宗愛는 형벌을 받고 거세당한 뒤에 中常侍가 되었는데, 世祖가 자신을 죽일까 염려하여 世祖를 시해하고 南安王 拓跋余를 세웠다가, 拓跋余가 다시 자신의 권세를 뺏으려 하자 또 살해하였으나, 그 뒤 文成帝(拓跋濬)가 즉위하여 바로 伏誅하고 三族을 멸하였다.
역주2 顯祖 : 魏나라 獻文帝 拓跋弘의 廟號이다.
역주3 : 선
역주4 二銖錢 : 永光 元年(465) 2월에 주조하였는데, 무게가 2銖였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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