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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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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周太祖郭威廣順元年이라
○ 北漢主劉崇乾祐四年이라
○ 是歲 周代漢하고 北漢建國하니 凡五國, 三鎭이라
春正月 漢監國 卽皇帝位하야 國號라하다
○ 初 漢河東節度使兼中書令劉崇注+[頭註]漢高祖母弟 聞隱帝遇害하고 欲起兵南向이러니 聞迎立湘陰公하고 乃止曰 吾兒爲帝하니 吾又何求리오
及贇廢 崇乃卽皇帝位於晉陽하야 更名旻하고 仍用乾祐注+[通鑑要解]隱帝年號 年號하다
〈是爲北漢이라
○ 初 周主討河中注+[頭註]己酉年 節度使李守貞反이어늘 討殺之하니라 하니 已爲人望所屬이라
李穀 時爲轉運使러니 周主數以微言諷之호되 但以人臣盡節 爲對
周主以是賢之하야 卽位 首用爲相하니라
國家新造하야 四方多故어늘 王峻注+[頭註]左僕射兼門下侍郞이라 夙夜盡心하야 知無不爲하야 軍旅之謀 多所裨益하고 范質注+[頭註]戶部侍郞判三司 明敏彊記하야 謹守法度하고 李穀注+[頭註]中書侍郞 同平章事 沈毅有器略하야 在周主前論議할새 辭氣忼(慷)慨注+[頭註] 亦作慷하니 竭誠也 又倜儻貌 하고 善譬諭하야 以開主意하니라
○ 唐主遣邊鎬注+[頭註]唐主長子璟也 邊鎬 信州刺史 하야 平湖南注+[頭註]湖南 楚馬氏 하고 以鎬 爲武安節度使하다


신해(951) - 나라 태조太祖 곽위郭威광순廣順 원년元年이다.
북한주北漢主 유숭劉崇건우乾祐 4년이다.
○ 이해에 나라가 나라를 대신하고 북한北漢이 건국하였으니, 모두 다섯 나라이고 세 이다. -
봄 정월에 나라의 감국監國(郭威)이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라 하였다.
처음에 나라 하동절도사河東節度使 겸중서령兼中書令 유숭劉崇注+[頭註]유숭劉崇나라 고조高祖(劉知遠)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은제隱帝(劉承祐)가 시해당했다는 말을 듣고 군대를 일으켜 남쪽으로 향하고자 하였는데, 상음공湘陰公(劉贇)을 맞이하여 황제로 삼았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중지하며 말하기를 “내 아들이 황제가 되었으니, 내가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였다.
그러다가 유빈劉贇이 폐위되자, 유숭劉崇진양晉陽에서 황제에 즉위하여 이름을 으로 고치고 건우乾祐라는注+[通鑑要解]건우乾祐은제隱帝의 연호이다.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였다.
- 이것이 북한北漢이다. -
처음에 주주周主(郭威)가 하중河中을 토벌하니,注+[頭註]기유년己酉年(949)에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 이수정李守貞이 반란하자 주주周主가 토벌하여 죽였다. 이미 사람들에게 촉망을 받았다.
이곡李穀이 당시 전운사轉運使로 있었는데, 주주周主가 여러 번 은미한 말로 넌지시 말하였으나 이곡李穀은 단지 ‘신하는 충절을 다해야 한다.’고 대답하였다.
주주周主가 이 때문에 그를 어질게 여겨서 즉위한 뒤에 첫 번째로 등용하여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이때 국가를 새로 세워 사방에 사고가 많았는데, 왕준王峻注+[頭註]왕준王峻좌복야左僕射 겸문하시랑兼門下侍郞이다. 밤낮으로 마음을 다하여 아는 것을 시행하지 않음이 없어 군대의 계책에 도움이 되는 바가 많았고, 범질范質注+[頭註]범질范質호부시랑戶部侍郞 판삼사判三司이다. 밝고 민첩하고 기억력이 뛰어나 법도를 삼가 지켰고, 이곡李穀注+[頭註]이곡李穀중서시랑中書侍郞 동평장사同平章事이다. 침착하고 굳세고 기국과 지략이 있어 주주周主 앞에서 의논할 적에 말소리가 비분강개하고注+[頭註]은 또한 으로도 쓰니, 정성을 다하고 또 기개가 있는 모양이다. 비유를 잘하여 군주의 마음을 열어주곤 하였다.
당주唐主변호邊鎬를 보내어注+[頭註]당주唐主이변李昪장자長子이경李璟이고, 변호邊鎬신주자사信州刺史이다. 호남湖南을 평정하고注+[頭註]호남湖南나라 마씨馬氏이다. 변호邊鎬무안절도사武安節度使로 임명하였다.


역주
역주1 : 변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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