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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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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酉]九年이라
楊玄感注+[原註]楊素子 反於黎陽하야 以李密注+[附註]隋開皇中 襲父寬爵蒲山公하다 少有才略하고 傾財好士하야러니 煬帝見之하고 謂宇文述曰 左仗下黑色小兒 視瞻異常하니 勿令宿衛하라 述乃諷密하야 使稱病하니 遂屛人事하고 專務讀書 與玄感으로 爲刎頸之交하니라[通鑑要解]李密 弼之曾孫也爲謀主하고 引兵向洛陽이어늘
帝遣宇文述, 屈突通注+[頭註]宇文述 左翊衛大將軍이요 屈突通 左僕衛將軍이라하야 討之하니 玄感 兵敗死하다
○ 帝使裴蘊注+[頭註]御史大夫으로 推玄感黨與할새 謂蘊曰 玄感一呼 而從者十萬하니 益知天下人不欲多
多則相聚爲盜爾라하더라
玄感之圍東都也 開倉賑給百姓이러니 凡受米者 皆坑之하다
○ 帝以衛尉少卿李淵注+[頭註]是爲唐高祖으로 爲弘化郡留守하고 關右十三郡兵 皆受徵發이러니 御衆寬簡하니 人多附之러라


대업大業 9년(계유 613)
양현감楊玄感注+[原註]양현감楊玄感양소楊素의 아들이다. 여양黎陽에서 배반하여 이밀李密注+[附註][附註]李密은 나라 개황開皇 연간에 아버지 이관李寬의 작위를 물려받아 포산공蒲山公이 되었다. 젊어서부터 재주와 지략이 있고 재물을 털어 선비 기르기를 좋아해서 좌친시左親侍가 되었는데, 양제煬帝가 그를 보고 우문술宇文述에게 이르기를 “좌익위左翊衛 아래에 얼굴빛이 검은 소자小子의 눈길이 수상하니, 숙위宿衛를 시키지 말라.” 하였다. 우문술宇文述이 이에 이밀李密에게 넌지시 타일러서 병을 칭탁하게 하니, 이밀李密이 마침내 인사人事를 버리고 독서에 전념하였다. 양현감楊玄感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었다. [通鑑要解]李密은 이필李弼증손曾孫이다. 모주謀主로 삼고는 군대를 이끌고 낙양洛陽으로 향하였다.
황제가 우문술宇文述굴돌통屈突通注+[頭註]宇文述 굴돌통屈突通:우문술宇文述좌익위대장군左翊衛大將軍이고, 굴돌통屈突通좌복위장군左僕衛將軍이었다. 을 보내어 토벌하게 하니, 양현감楊玄感이 군대가 패하여 죽었다.
○ 황제가 배온裴蘊注+[頭註]배온裴蘊어사대부御史大夫였다. 으로 하여금 양현감楊玄感당여黨與들을 추고하게 할 적에 배온裴蘊에게 이르기를 “양현감楊玄感이 한 번 고함치자 따르는 자가 10만 명이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지 말아야 함을 알게 되었다.
사람이 많으면 서로 모여서 도둑이 될 뿐이다.” 하였다.
양현감楊玄感동도東都를 포위할 적에 곡식 창고를 열어 백성들을 진휼하였는데, 모든 쌀을 받은 자들을 다 묻어 죽였다.
○ 황제가 위위소경衛尉少卿 이연李淵홍화군유수弘化郡留守로 삼고 관서關西 13개 의 군대가 모두 그의 징발을 받게 하였는데, 이연李淵注+[頭註]이연李淵은 바로 나라 고조高祖이다. 이 부하들을 통솔함에 너그럽고 간략하니 사람들이 많이 따랐다.


역주
역주1 左親侍 : 관직명으로, 16軍 중 第一軍인 左翊衛府의 속관이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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