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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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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巳]十五年이라 〈魏景初元年이요 吳嘉禾六年이라
魏主叡 詔散騎常侍劉邵하야 作考課法하니 邵作都官考課法七十二條어늘
詔下百官하야한대 崔林曰 考課之法 存乎其人하니 若大臣 能任其職하야 式是百辟이면 則孰敢不肅이릿고 烏在考課哉릿고
杜恕曰 明試以功하야 三考黜陟 誠帝王之盛制也
이나 歷六代注+[頭註]唐, 虞, 夏, 商, 周, 漢이라而考績之法 不著하고 關七聖注+[頭註] 通也, 過也 七聖 堯, 舜, 禹, 湯, 文, 武, 周公이라而課試之文 不垂
語曰 世有亂人而無亂法注+[頭註]治亂曰亂이라이라하니 若使法可專任이면 則唐, 虞可無須稷, 契之佐 殷, 周無貴伊, 呂之輔矣리이다
議久不決하니 事竟不行하다
溫公曰
爲治之要 莫先於用人이로되 而知人之道 聖賢所難也
是故 求之於毁譽 則愛憎競進하야 而善惡渾殽하고 考之於功狀이면 則巧詐橫生하야 而眞僞相冒하니 要之컨대 本在於至公至明而已矣
爲人上者 至公至明이면 則群下之能否 焯然形於目中하야 無所復逃矣어니와 苟爲不公不明이면 則考課之法 適足以爲曲私欺罔之資也
或曰 考績之法 唐, 虞所爲
京房注+[頭註]漢元帝時人이라, 劉邵述而修之耳 烏可廢哉
曰 唐, 虞之官 其居位也久하고 其受任也專하며 其立法也寬하고 其責成也遠이라
故鯀之治水 九載績用不成然後 治其罪하고 禹之治水 九州攸同하고 四隩旣宅然後 賞其功하니 非若京房, 劉邵之法 校其之課하고 責其旦夕之效也
事固有名同而實異者하니 不可不察也니라
考績 非可行於唐, 虞而不行於漢, 魏 由京房, 劉邵不得其本하고 而奔趨其末故也니라
七月 皇后張氏崩하다


건흥建興 15년(정사 237) - 나라 경초景初 원년元年이고, 나라 가화嘉禾 6년이다. -
위주魏主 조예曹叡산기상시散騎常侍 유소劉邵에게 명하여 고과법考課法을 만들게 하니, 유소劉邵가 《도관고과법都官考課法》 72개 조항을 만들었다.
조서를 백관에게 내려 의논하게 하자, 최림崔林이 말하기를 “고과考課하는 법은 그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만약 대신大臣이 자신의 직무를 잘 맡아서 백관百官들에게 본보기가 된다면 누가 감히 엄숙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고과考課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두서杜恕가 말하기를 “으로써 분명히 시험하여 세 번 상고한 다음 내치고 올림은 진실로 제왕帝王의 훌륭한 제도입니다.
그러나 여섯 왕조王朝注+[頭註]여섯 (王朝)는 이다. 가 지나도록 고과考課하는 법이 드러나지 않았고, 일곱 성인聖人을 거쳤어도注+[頭註]은 통하는 것이고 지나가는 것이다. 일곱 성인聖人주공周公이다. 과시課試하는 글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세상에 다스리는 사람은 있으나 다스리는 법은 없다.’注+[頭註]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것을 이라고 한다. 하였으니, 만약 에만 전적으로 맡길 수 있다면 의 보좌가 필요 없었을 것이요, 이윤伊尹여상呂尙의 보필을 귀하게 여길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였다.
의논이 오랫동안 결정되지 않으니, 일이 끝내 시행되지 못하였다.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정치하는 요점은 인물을 등용하는 것보다 더 먼저 할 것이 없지만 인물을 알아보는 방법은 성현聖賢도 어렵게 여겼다.
이 때문에 만약 사람들의 훼방과 칭찬하는 말에서 인재를 구하면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가 다투어 나와서 선악善惡이 뒤섞이고, 만약 공장功狀(공로를 기록한 글)에서 인물을 고과考課하면 잔꾀와 속임수가 제멋대로 나와서 진위眞僞가 분명치 못하니, 요컨대 근본은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분명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
남의 윗사람이 된 자가 지극히 공정하고 지극히 분명하면 여러 아랫사람들의 능력의 유무有無가 환하게 안중에 나타나서 다시 회피할 곳이 없겠지만 만일 공정하지 못하고 분명하지 못하면 고과考課하는 법은 다만 부정하고 기망欺罔하는 자료가 될 뿐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고과考課하는 법은 시대에 만든 것이다.
경방京房注+[頭註]경방京房나라 원제元帝 때 사람이다. 유소劉邵는 이것을 계승해서 보충하였을 뿐이니, 어찌 폐할 수 있겠는가.’라고 한다.
그러나 시대의 관원은 지위에 있는 기간이 오래고 임무를 받은 것이 전일하였으며, 법을 세움이 관대하였고 성공을 책임 지움이 원대하였다.
그러므로 홍수洪水를 다스릴 때에 9년 동안 공적功績을 이루지 못한 뒤에야 그 죄를 다스려 벌을 주었고,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에 구주九州가 똑같이 잘 다스려지고 사오四隩(사해의 물가)가 이미 집을 짓고 살 수 있게 된 뒤에야 그 공을 칭찬하여 상을 주었으니, 경방京房유소劉邵처럼 자질구레한 일을 따지고 조석간에 효험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일은 진실로 명칭은 같으나 실제는 다른 경우가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다.
고과考課하는 법을 시대에는 행할 수 있고 시대에는 행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경방京房유소劉邵가 그 근본根本을 알지 못하고 말절末節만 급히 따랐기 때문이다.”
7월에 황후 장씨張氏하였다.


역주
역주1 米鹽 : 쌀과 소금이라는 뜻으로, 잗달고 번거로운 일을 비유하는 말이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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