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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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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子]建初元年이라
楊終 上疏曰 間者 北征匈奴하고 西開三十六國하야 百姓 頻年服役 轉輸煩費하니 愁困之民 足以感動天地
陛下宜留念省察이니이다
帝下其章하니 第五倫 亦同終議
牟融, 鮑昱 皆以爲孝子 無改父之道하나니 征伐匈奴하며 屯戍西域 先帝所建이니 不宜回異라한대
復上書曰 秦築長城 功役 繁興이어늘 胡亥不革하야 卒亡四海
하고 하니 不以介鱗易我衣裳注+[頭註] 甲蟲也 喩遠夷하니 言其人魚鼈無異也 衣裳 謂中國也이니이다 帝從之하다
〈出終傳〉
○ 丙寅호되 二千石 勉勸農桑하고 罪非殊死注+[釋義] 異也, 絶也 言其身首異處也어든 須秋案驗하고 有司明愼選擧하야 進柔良, 退貪猾하며 順時令, 理寃獄하라
〈出本紀〉
是時 承永平故事하야 吏政 尙嚴切하니 尙書決事 率近於重이라
尙書陳寵 以帝新卽位하니 宜改前世苛俗이라하야 乃上疏曰 臣聞先王之政 賞不僭하고 刑不濫호되 與其不得已 寧僭無濫注+[通鑑要解]左傳蔡大夫聲子之言이라이라하니이다
往者 斷獄 嚴明 所以威懲姦이니 姦慝旣平이면 必宜濟之以寬이라
夫爲政 猶張琴瑟하야 大絃急者 小絃絶하나니
陛下宜隆先王之道하사 蕩滌煩苛之法하야 輕薄箠楚注+[原註] 謂鞭箠而苦楚之也하야 以濟群生하고 全廣至德하야 以奉天心하소서
帝深納寵言하야 每事 務於寬厚러라
〈出陳寵傳〉


건초建初 원년元年(병자 76)
양종楊終상소上疏하여 아뢰기를 “근간에 북쪽으로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서쪽으로 36개국을 개척해서 백성들이 여러 해 동안 부역을 함에 수송하느라 번거롭고 비용이 들었으니, 근심하고 곤궁한 백성들이 천지天地를 충분히 감동시킬 수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마땅히 유념하고 성찰하셔야 합니다.” 하였다.
황제가 이 글을 회부하니, 제오륜第五倫 또한 양종楊終의 의론과 같았다.
모융牟融포욱鮑昱이 모두 말하기를 “효자孝子는 아버지가 하시던 방법을 고치지 않으니, 흉노匈奴를 정벌하고 서역西域에 군대를 주둔시킴은 선제先帝께서 세우신 것이니, 어겨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양종楊終이 또다시 글을 올리기를 “나라가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느라 공역功役이 크게 일어났는데, 호해胡亥(二世 황제皇帝)가 이를 고치지 아니하여 끝내 천하天下를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효원황제孝元皇帝주애군珠厓郡을 버렸고 광무제光武帝서역西域의 나라들과 단절하였으니, 개린介鱗(오랑캐를 가리킴)을 가지고 우리 의상衣裳(中國)과 바꾸지 않은 것입니다.注+[頭註]갑충甲蟲이다. 개린介鱗은 먼 오랑캐를 비유한 것이니, 오랑캐들이 어별魚鼈과 차이가 없음을 말한 것이요, 의상衣裳중국中國을 이른다. ” 하자, 황제가 그 말을 따랐다.
- 《후한서後漢書 양종전楊終傳》에 나옴 -
병인일丙寅日조서詔書를 내리기를 “이천석二千石의 관원은 농업과 잠업을 권면하고 범한 죄가 사죄死罪注+[釋義]는 다름이고 끊어짐이니, 참수斬首하여 몸통과 머리가 따로 있음을 말한 것이다. 가 아니거든 가을을 기다려 자세히 조사하여 형옥刑獄을 정하고, 유사有司가 분명하고 신중하게 선택해서 유순하고 선량한 자를 등용하고 탐욕스럽고 교활한 자를 물리치며, 시령時令을 따르고 억울한 옥사를 다스리라.” 하였다.
- 《후한서後漢書 장제기章帝紀》에 나옴 -
이때 영평연간永平年間고사故事를 이어받아서 관리들의 정사가 엄하고 박절함을 숭상하니, 상서尙書에서 일을 결단하는 것이 대체로 형벌을 엄중하게 함에 가까웠다.
상서尙書 진총陳寵은 황제가 새로 즉위하였으니, 전대前代의 까다로운 풍속을 고쳐야 한다고 해서 마침내 상소하기를 “신이 들으니 ‘선왕先王의 정사는 이 지나치지 않고 형벌이 남용되지 않았으나, 부득이할 경우에는 차라리 을 함부로 내리고 형벌을 남용하지 않는다.注+[通鑑要解]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6년조年條에 나오는 바, 채대부蔡大夫 성자聲子의 말이다. ’ 하였습니다.
지난번에 옥사獄事를 결단함에 엄하고 분명하게 한 것은 위엄으로 간특함을 징계하기 위한 것이니, 간특함이 이미 평정되었으면 반드시 마땅히 너그러움으로 구제해야 합니다.
정사를 함은 거문고와 비파의 줄을 조율調律하는 것과 같아서 큰 줄이 너무 급하게 연주되면 작은 줄의 소리는 끊어지는 법이니,
폐하께서는 선왕先王를 높이셔서 번거롭고 까다로운 을 깨끗이 없애어 장형杖刑注+[原註]는 채찍질하여 고통을 줌을 이른다. 을 가볍게 하여 여러 생민生民들을 구제하고 지극한 을 온전히 넓혀서 천심天心을 받드소서.” 하였다.
황제가 진총陳寵의 말을 깊이 받아들여 매사를 너그럽고 후하게 하였다.
- 《후한서後漢書 진총전陳寵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孝元棄珠厓之郡 : 初元 2년(갑술 B.C.47)에 珠厓郡의 山南縣이 반란하자 元帝가 군대를 크게 징발하여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待詔 賈捐之가 “珠厓郡을 버리고 오로지 關東 지방을 구휼할 것을 걱정했으면 합니다.” 하니, 그 말을 따랐다.
역주2 光武絶西域之國 : 建武 21년(을사 45)에 莎車王 賢이 西域을 겸병하고자 하니, 여러 나라가 걱정하고 두려워하여 車師國 등 18개국이 모두 아들을 보내어 入侍하고 都護를 얻기를 원하였는데, 光武帝는 중국이 처음 평정되어 북쪽 변경이 복종하지 않는다 하여 侍子를 모두 돌려보내고 후하게 賞을 하사하였다.
역주3 : 특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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