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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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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卯]二十年이라 〈周武氏長安三年〉
春正月 帝在東宮하다
○ 九月 魏元忠 爲相하야 嘗面奏호되 臣自先帝以來 蒙被恩渥이러니
宰相 不能盡忠死節하야 使小人在側注+[頭註]小人 言張易之兄弟 하니 臣之罪也니이다 太后不悅하니
由是 諸張注+[頭註]張昌宗, 張易之輩 深怨之러라
太后不豫어늘 張昌宗 恐太后一日晏駕注+[頭註]天子當晨起어늘 方崩 宮車晩出也 爲元忠所誅하야 乃譖호되 元忠 與高注+[頭註]이라 私議云 太后老矣 不若挾太子爲久長注+[頭註]言爲久長之計이라하니이다
太后怒하야 下元忠, 戩獄하고 將使與昌宗廷辨之러니 昌宗 密引鳳閣舍人張注+[頭註] 讀曰悅이라하야 賂以美官하고 使證元忠하니 許之러라
明日 太后召太子, 相王注+[頭註]太子 謂中宗也 相王 豫王旦이니 卽睿宗也及諸宰相하야 使元忠으로 與昌宗參對러니 往復不決이어늘 昌宗曰 張說 聞元忠言하니 請召問之하소서
太后召說한대 說將入할새 宋璟注+[頭註]鳳閣舍人이라 謂說曰 名義至重하니 鬼神難欺
不可黨邪陷正하야 以求苟免이니
若獲罪流竄이라도 其榮多矣 若事有不測이면 璟當叩閤力爭注+[通鑑要解]言叩閤門而爭也 凡內殿, 便殿 皆謂之閤이라하야 與子同死하리니 努力爲之하라
萬代瞻仰 在此擧니라
左史劉知幾曰 無汚靑史하야 爲子孫累하라
及入 太后問之한대 未對어늘 昌宗 從傍迫趣(促)說하야 使速言하니
說曰 陛下視之하소서
在陛下前에도 猶逼臣如是어든 況在外乎잇가
實不聞元忠有是言이요 但昌宗逼臣하야 使誣證之爾니이다
太后曰 張說 反覆小人이니 宜幷繫治之하라
他日 更引問하니 說對如前이어늘 遂貶元忠하야 爲高要尉하고 戩, 說 皆流嶺表하다
○ 太后嘗命朝貴宴集할새 張易之兄弟 皆位在宋璟上이로되 易之素憚璟하야 欲悅其意하야 虛位揖之曰
方今第一人이어늘 何乃下坐 璟曰 才劣位卑어늘 張卿以爲第一 何也
武三思以下 皆謹事易之兄弟호되 璟獨不爲之禮하니 諸張 積怒하야 常欲中傷之로되 太后知之 得免이러라


사성嗣聖 20년(계묘 703) - 나라 무씨武氏장안長安 3년 -
봄 정월에 황제가 동궁東宮에 있었다.
9월에 위원충魏元忠이 재상이 되어 일찍이 태후의 면전에서 아뢰기를 “신은 선제先帝 이래로 깊은 은혜를 입었는데,
지금 재상의 자리를 채우고 있으면서 충성을 다하고 절개에 죽지 못하여 소인을 태후의 곁에 있게 하였으니,注+[頭註]소인小人장역지張易之 형제를 말한다. 이는 신의 죄입니다.” 하니, 태후가 기뻐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여러 장씨張氏들이注+[頭註]여러 장씨張氏장창종張昌宗장역지張易之 무리이다. 그를 깊이 원망하였다.
마침 태후가 몸이 편치 않자, 장창종張昌宗이 태후가 어느 날 갑자기 승하하면注+[頭註]천자는 마땅히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붕어했을 때에는 어가御駕가 늦게 출발하는 것이다. 위원충魏元忠에게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참소하기를 “위원충魏元忠고전高戩注+[頭註]고전高戩사례승司禮丞이었다. 함께 은밀히 의논하기를 ‘태후가 늙었으니 태자를 옹립하여 장구한 계책을 세우는 것만 못하다.’고 했습니다.” 하였다.注+[頭註]장구한 계책을 세움을 말한다.
태후가 노하여 위원충魏元忠고전高戩을 하옥시키고 장차 그들로 하여금 장창종張昌宗과 조정에서 사실을 변론하게 하려 하였는데, 장창종張昌宗봉각사인鳳閣舍人장열張說注+[頭註]장열張說은 열로 읽는다. 은밀히 끌어들여 좋은 관직을 주겠다고 매수해서 거짓으로 증언하여 위원충魏元忠을 해치게 하니, 장열張說이 이를 허락하였다.
다음 날 태후가 태자 및 상왕相王注+[頭註]태자太子중종中宗(李顯)을 이르고, 상왕相王예왕豫王이단李旦이니 즉 예종睿宗이다. 여러 재상들을 불러 위원충魏元忠으로 하여금 장창종張昌宗과 대질하게 하였는데, 말이 오고 갔으나 결론이 나지 않자, 장창종張昌宗이 말하기를 “장열張說위원충魏元忠의 말을 들었으니, 청컨대 불러서 물으소서.” 하였다.
태후가 장열張說을 불러 장열張說이 들어가려 할 때에 송경宋璟注+[頭註]송경宋璟봉각사인鳳閣舍人이다.장열張說에게 이르기를 “명분과 의리가 지극히 중하니, 귀신을 속이기 어렵다.
간사한 자에게 편당하여 올바른 사람을 모함해서 구차히 화를 면하기를 구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이로 인하여 죄를 얻고 멀리 유배간다 해도 영화가 많을 것이요, 만약 일이 뜻밖에 일어나게 된다면 내가 마땅히 내전內殿에 나아가 합문閤門을 두드리고 강력히 간쟁하여注+[通鑑要解]합문閤門을 두드리며 간쟁하는 것을 말하니, 무릇 내전內殿편전便殿을 모두 이라 이른다. 그대와 함께 죽을 것이니, 노력하여 이 일을 하라.
만고萬古의 사람들에게 우러름을 받는 것이 이번 조처에 달려 있다.” 하였다.
좌사左史유지기劉知幾는 말하기를 “청사靑史를 더럽혀서 자손의 누가 되지 말라.” 하였다.
장열張說이 조정에 들어가자 태후가 물으니, 장열張說이 대답하기 전에 장창종張昌宗이 곁에서 핍박하여 빨리 말하게 하였다.
장열張說이 말하기를 “폐하께서 보소서.
폐하 앞에서도 신을 이렇게 핍박하는데 하물며 밖에서야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신은 위원충魏元忠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듣지 못했고, 다만 장창종張昌宗이 신을 핍박하여 거짓으로 증언하게 하였을 뿐입니다.” 하였다.
태후가 말하기를 “장열張說반복무상反覆無常한 소인이니 마땅히 함께 구속하여 치죄하라.” 하였다.
다른 날에 다시 끌어내어 물었는데, 장열張說이 전과 똑같이 대답하므로 마침내 위원충魏元忠을 좌천시켜 고요현高要縣로 삼고 고전高戩장열張說은 모두 영남嶺南 밖으로 유배 보냈다.
태후가 일찍이 조정의 권귀權貴들에게 명하여 잔치에 모이게 하였을 적에 장역지張易之 형제의 지위가 모두 송경宋璟의 위에 있었으나 장역지張易之가 평소 송경宋璟을 두려워해서 그의 뜻을 기쁘게 하고자 하여 상석上席을 비워놓고 송경宋璟에게 읍하며 말하기를
은 지금의 제일가는 인물인데, 어찌 도리어 아랫자리에 앉으신단 말입니까?” 하니, 송경宋璟이 말하기를 “재주가 용렬하고 지위가 낮은데 장경張卿이 나더러 제일가는 인물이라 함은 어째서입니까?” 하였다.
이 당시 무삼사武三思 이하의 관원이 모두 장역지張易之 형제를 삼가 섬겼는데, 송경宋璟이 홀로 그를 예우하지 않으니, 여러 장씨張氏가 노여움이 쌓여서 항상 그를 중상하고자 하였으나, 태후가 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역주
역주1 承乏 : 마땅한 인재가 없어서 재능이 없는 사람이 벼슬을 하였다는 뜻으로, 흔히 자신의 任官에 대한 겸사로 쓰인다.
역주2 : 전
역주3 司禮丞 : 太常寺丞을 가리킨다.
역주4 : 열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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