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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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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己丑]〈唐天成四年이라
○ 吳大和元年이라
○ 是歲 四國, 三鎭이라
九月 唐(王)[主]與馮道 從容語及年穀屢登하고 四方無事한대
道曰 臣常記昔在先皇幕府注+[通鑑要解]謂爲河東掌書記時也 하야 奉使中山하야 歷井陘之險할새 憂馬하야 執轡甚謹하야 幸而無失이러니
逮至平路하야 放轡自逸이라가 俄至顚隕하니 凡爲天下者 亦猶是也니이다
唐主深以爲然하다
又問道호되 今歲雖豐이나 百姓贍足否 道曰 農家歲凶則死於流殍하고 歲豐則傷於穀賤하니 豐凶皆病者 惟農家爲然이니이다
臣記進士聶夷中詩云 二月賣新絲하고 五月新穀하니
醫得眼前瘡이나 剜却心頭肉注+[通鑑要解] 烏官切이니 削也 謂絲穀未熟 農家艱食일새 先稱貸以自給하고 至於賣絲糶穀하야 僅足以償債耳 剔也라하니라 이라하니 語雖鄙俚 曲盡田家之情狀이라
農於四人注+[頭註]謂士農工商이라 之中 最爲勤苦하니 人主不可不知也니이다
○ 契丹 〈天顯四年이라


기축(929) - 나라 천성天成 4년이다.
나라 대화大和 원년元年이다.
○ 이해에 네 나라이고 세 이다. -
9월에 당주唐主풍도馮道와 함께 연사年事가 여러 번 풍년이 들고 사방이 무사함을 조용히 언급하자,
풍도馮道가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기억하건대, 옛날 선황제先皇帝막부幕府에 있으면서注+[通鑑要解]선황제先皇帝막부幕府에 있었다는 것은 하동부河東府 장서기掌書記가 되었을 때를 이른다. 중산中山으로 사명을 받들고 가느라 정형井陘의 험한 길을 지날 적에 신이 말이 넘어질까 염려해서 고삐를 꽉 잡고 매우 조심하여 다행히 실수가 없었는데,
평탄한 길에 이르자 고삐를 놓고 스스로 안일하다가 잠시 후 넘어지고 떨어짐에 이르렀으니, 무릇 천하를 다스리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하였다.
당주唐主는 그 말을 깊이 옳게 여겼다.
당주唐主가 또다시 풍도馮道에게 묻기를 “금년에 비록 풍년이 들었으나 백성들이 풍족한가?” 하니, 풍도馮道가 말하기를 “농가는 흉년이 들면 유리하여 굶어죽고 풍년이 들면 곡식값이 싸서 손해를 보니, 풍년이든 흉년이든 모두 폐해를 입는 것은 오직 농가만이 그렇습니다.
신이 기억하건대 진사進士 섭이중聶夷中에 이르기를 ‘이월에 새 고치실을 미리 팔고 오월에 새 곡식을 미리 판다오.
당장 눈앞의 상처는 치료할 수 있으나 심장의 살을 도려내는 것과 같구나.注+[通鑑要解]오관절烏官切(완)이니, 도려내는 것이다. 생사生絲가 나오지 않고 곡식이 성숙하기 전에 농가에서 먹고 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선 빚을 내어 스스로 공급하고, 생사를 팔고 곡식을 팔 때에 이르러서야 겨우 빚을 갚을 뿐임을 이른다. 에 “은 도려내는 것이다.” 하였다. [二月賣新絲 오월조신곡五月糶新穀 의득안전창醫得眼前瘡 완각심두육剜却心頭肉]’라고 하였으니, 이 말이 비록 비루하나 농가의 실정을 곡진히 다하였습니다.
농부는 사민四民注+[頭註]사인四人, , , 을 이른다. 중에 가장 고생하니, 인주人主가 이를 알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거란契丹 - 천현天顯 4년이다. -


역주
역주1 : 궐
역주2 : 조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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