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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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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巳]光啓元年이라
春二月 車駕至京師하다
○ 秦宗權注+[附註]上蔡人이니 爲許牙將하다 黃巢涉淮 許軍亂하니 宗權 據蔡以叛하야 與巢和러니 巢死 宗權兵勢張甚하야 有呑噬四海之志하니라 稱帝於蔡州하다
〈宗權 中和元年 起兵하니라
○ 李克用 表請誅令孜어늘 詔和解之호되 克用 不聽하다
十二月 克用 進逼京城하니 令孜夜奉天子하고 自開遠門으로 出幸鳳翔하다
黃巢焚長安宮室而去한대 諸道兵 入城縱掠하야하니 民居什六七이라
京兆尹王徽 累年補葺하야 僅完一二러니 至是하야 復爲亂兵焚掠하야遺矣러라


광계光啓 원년元年(을사 885)
봄 2월에 황제의 거가車駕경사京師에 이르렀다.
진종권秦宗權注+[附註]진종권秦宗權상채上蔡 사람이니, 허주許州아장牙將이 되었다. 황소黃巢회수淮水를 건너가자 허주許州의 군사들이 반란을 일으키니, 진종권秦宗權채주蔡州를 점거하고 배반하여 황소黃巢와 연합하였는데, 황소黃巢가 죽자 진종권秦宗權의 병력이 매우 커져 천하를 병탄하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채주蔡州에서 황제를 칭하였다.
- 진종권秦宗權중화中和 원년元年(881)에 군대를 일으켰다. -
이극용李克用표문表文을 올려 전령자田令孜를 처형할 것을 청하자, 황제가 명하여 화해하게 하였으나 이극용李克用이 듣지 않았다.
12월에 이극용李克用이 전진하여 경성京城을 핍박하니, 전령자田令孜가 밤에 천자를 받들고 개원문開遠門으로 나가 봉상鳳翔으로 파천하였다.
이보다 앞서 황소黃巢장안長安의 궁실을 불태우고 떠나가자, 여러 도의 군사들이 도성에 들어와 멋대로 노략질하여 관부官府를 불태우니, 그 가운데 민가가 10분에 6, 7이었다.
경조윤京兆尹 왕휘王徽가 여러 해 동안 보수하여 겨우 10분에 1, 2를 완전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다시 난병亂兵에게 불태워지고 노략질당하여 하나도 남은 것이 없게 되었다.


역주
역주1 府寺(시) : 公卿의 관사를 이르는 바, 三公이 거처하는 곳을 府라 하고, 九卿이 거처하는 곳을 寺라 한다.
역주2 : 시
역주3 : 혈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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