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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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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卯]三年이라
睢陽侯張昌이 坐爲太常乏祠하야 國除하다
初에 高祖封功臣하야 爲列侯 百四十有三人이러니 時에 兵革之餘라 大城, 名都에 民人이 散亡하야 戶口裁(纔)什에 二三이라
大侯는 不過萬家요 小者는 五六百戶러라
其封爵之誓에 曰 使黃河如帶하고 泰山若礪토록 國以永存하야 爰及苗裔라하더니
逮文, 景世하야 流民旣歸하고 戶口亦息하니 列侯大者는 至三四萬戶하고 小國은 自倍하야 富厚如之하니
子孫이 驕逸하야 多抵法禁하야 隕身失國이라
至是에 侯纔四人이요 罔(網)亦少密注+[釋義]言禁防이 如罔之密이라焉이러라
〈出漢書高惠功臣表〉
○ 貳師西行至宛하야 圍其城하니 宛貴人이 持王寡頭하고 出善馬하야 令漢自擇이어늘
乃下詔하야 封李廣利爲海西侯하다
〈出李廣利傳〉
○ 自大宛破後로 西域震懼하야 漢使入西域者 益得職이라
於是에 自燉煌으로 西至鹽澤히 往往起亭하고 而輪臺, 渠犁에 皆有田卒數百人하고 置使者校尉하야 領護注+[頭註]統領其衆하고 而保護營田之事하야 以給使外國者라러라
〈出西域傳〉
○ 天子因伐宛之威하야 欲遂困胡하야 下詔曰 高帝遺朕平城之憂注+[釋義]高帝七年에 擊匈奴라가 被圍平城하니라하시고 高后時에 單于書絶悖逆이라
昔에 齊襄公이 復九世之讐하니 春秋에 大之注+[釋義]公羊傳에 莊四年에 齊襄公滅紀하니 復讐也라 何讐爾오 遠祖也니 哀公이 烹乎周하니 紀侯譖之라 以襄公之爲於此焉者는 事祖禰之心이 盡矣라 遠祖者는 幾世乎아 九世矣라 九世猶可以復讐乎아 雖百世라도 可也니 先君之恥는 猶今君之恥也니라라하니라
時에 單于初立이라 恐漢襲之하야 乃曰 我는 兒子니 安敢望漢天子리오
漢天子는 我丈人注+[釋義]丈人은 尊老之稱이라 行은 胡浪反이니 輩行也라也라하고 因盡歸路充國等하고 遣使來獻하다
〈出匈奴傳〉


태초太初 3년(기묘 B.C.102)
수양후睢陽侯장창張昌이 태상太常이 되어 제사를 지내면서 빠뜨린 죄에 걸려 봉국封國을 회수당하였다.
처음에 고조高祖가 공신功臣들을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은 것이 143명이었는데, 이때는 전란을 겪은 뒤라서 큰 성城과 이름난 도시에도 백성들이 흩어지고 도망하여 호구戶口가 겨우 열에 두셋이었다.
그리하여 큰 후侯도 만가萬家를 넘지 못하였고 작은 자는 5, 6백 호였다.
봉작封爵하는 맹서에 이르기를 “황하黃河가 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泰山이 숫돌과 같이 닳아 없어지도록 나라를 영원히 보존하여 이에 후손에게 미치게 한다.” 하였는데,
문제文帝와 경제景帝 때에 이르러 유민流民들이 이미 돌아오고 호구도 또한 늘어나니, 열후列侯 가운데 큰 자는 3, 4만萬호戶에 이르고 작은 나라는 저절로 곱절이 되어서 부유함이 이와 비례하니,
자손들이 교만하고 안일해져서 법금法禁을 많이 저촉하여 몸을 죽이고 나라를 잃었다.
이때에 이르러서 현직 후侯는 겨우 네 명뿐이었고 법망法網이 또한 조금 치밀해졌다.注+[釋義]망역소밀罔亦少密은 금방禁防이 그물과 같이 치밀해짐을 말한 것이다.
- 《한서漢書고혜공신표高惠功臣表》에 나옴 -
이사장군貳師將軍(李廣利)이 서쪽으로 가서 대완국大宛國에 이르러 도성都城을 포위하니, 대완大宛의 귀인貴人이 왕인 관과毌寡의 머리를 가져오고 좋은 말을 내놓아 한漢나라로 하여금 스스로 골라가게 하였다.
이에 조서를 내려 이광리李廣利를 봉하여 해서후海西侯로 삼았다.
- 《한서漢書이광리전李廣利傳》에 나옴 -
대완국大宛國이 격파된 뒤로 서역西域이 떨고 두려워하여, 서역西域에 들어가는 한漢나라 사신들이 더욱 직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이에 돈황燉煌으로부터 서쪽으로 염택鹽澤에 이르기까지 왕왕 정장亭障을 설치하고, 윤대輪臺와 거리渠犁에 모두 둔전屯田하는 병졸 수백 명을 두고, 사자使者와 교위校尉를 두어서 이들을 통솔하고 보호하게注+[頭註]그 무리(군사)를 통솔하고 토지를 경영하는 일을 보호하여 〈여기에서 얻은 재물을 가지고〉 중국에서 외국으로 사신 온 자에게 주는 것이다. 하였다.
- 《한서漢書서역전西域傳》에 나옴 -
천자天子가 대완大宛을 정벌한 위세를 인하여 마침내 오랑캐를 곤궁하게 하고자 해서 조서를 내리기를 “고제高帝가 짐에게 평성平城의 근심을 물려주셨고,注+[釋義]고제高帝 7년에 흉노匈奴를 공격하였다가 평성平城에서 포위당하였다. 고후高后 때에 선우單于의 편지가 매우 패역悖逆하였다.
옛날에 제齊나라 양공襄公이 9대代의 원수를 갚으니, 《춘추春秋》에서 이것을 훌륭하게 여겼다.”注+[釋義]齊襄公……大之:《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장공莊公 4년에 제齊나라 양공襄公이 기紀나라를 멸망시켰으니, 원수를 갚은 것이다. 누구의 원수인가? 먼 선조이니, 제齊나라 애공哀公이 주周나라에서 팽형烹刑을 당하였는 바, 이는 기후紀侯가 참소하였기 때문이었다. 양공襄公이 이렇게 한 것은 선조와 아버지를 섬기는 마음이 극진한 것이다. 먼 선조라는 것은 몇 대인가? 9세世이다. 9세世가 지났는데도 오히려 복수할 수 있는가? 비록 백세百世라도 가하니, 선군先君의 치욕은 지금 군주의 치욕과 같은 것이다.” 하였다. 하였다.
이때 선우單于가 처음 즉위하였으므로 한漢나라가 습격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말하기를 “나는 어린아이이니, 어찌 감히 한漢나라 천자天子를 바라겠는가.
한漢나라 천자天子는 나의 어르신 항렬이다.”注+[釋義]장인丈人은 존귀한 노인의 칭호이다. 행行은 호랑胡浪이니, 연배年輩와 항렬行列이다. 하고는 인하여 사로잡았던 노충국路充國 등을 다 돌려보내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와서 조공朝貢을 바쳤다.
- 《한서漢書흉노전匈奴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見 : 현
역주2 毌 : 관
역주3 行 : 항
역주4 反 : 항
동영상 재생
1 [기묘]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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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묘] 3년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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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묘] 3년 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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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묘] 3년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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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묘] 3년 180

통감절요(2)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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