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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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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午]乾符元年이라
年少하야 政在臣下하니 南牙(衙), 北司互相矛楯()注+[釋義] 時允反이니 互相矛楯 謂不相合也 [附註] 韓非子 有鬻(牙)[矛]楯者 自譽其矛曰 吾矛之利 物無不陷也라하고 又譽其楯曰 吾楯之堅 物莫能陷也라한대 或謂之曰 以子之矛 陷子之楯이면 可乎아하니 其人 不能答이라 後世 謂議論自相反及爲事自相反者 爲矛楯이라하니라 이라
自懿宗以來 奢侈日甚하고 用兵不息하야 賦斂愈急하며 關東 連年水旱호되 州縣 不以實聞하고 上下相蒙하야 百姓流하야 無所控訴하니 相聚爲盜하야 所在蜂起러라
是歲 濮州人王仙芝 始聚衆數千하야 起於長垣하니라


건부乾符 원년元年(갑오 874)
이 나이가 어려서 정사가 신하에게 달려 있으니, 남아南衙북사北司가 서로 창과 방패처럼 대립하였다.注+[釋義]시윤반時允反(순)이니, 서로 창과 방패가 된다는 것은 서로 화합하지 못함을 이른다. [附註] 《한비자韓非子》에 “창과 방패를 파는 자가 스스로 창을 자랑하기를 ‘내 창의 예리함은 뚫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 하고, 또 방패를 자랑하기를 ‘내 방패의 견고함은 어떤 물건도 뚫지 못한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그대의 창을 가지고 그대의 방패를 뚫는다면 어찌 되겠는가?’ 하니, 그 사람이 대답하지 못했다.” 하였다. 그러므로 후세에 의논이 서로 상반되거나 일을 할 때에 서로 상반되는 것을 일러 모순矛楯이라 한다.
의종懿宗 이래로 사치가 날로 심해지고 군대를 동원하는 일이 그치지 아니하여 부세를 징수하는 것이 갈수록 더욱 급해졌으며, 관동關東 지방에 해마다 수재水災한재旱災가 들었으나 주현州縣이 사실대로 조정에 보고하지 않고 상하가 서로 은폐하여 백성들이 유리하고 굶어 죽어서 하소연할 곳이 없으니, 백성들이 서로 모여 도둑이 되어서 곳곳마다 봉기하였다.
이해에 복주濮州 사람 왕선지王仙芝가 처음으로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장원長垣에서 일어났다.


역주
역주1 : 표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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