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通鑑節要(5)

통감절요(5)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寅]三年이라
帝問司隷校尉劉毅曰 朕 可方漢之何帝 對曰 桓, 靈이니이다
帝曰 何至於此 對曰 桓, 靈 賣官錢入官庫어니와 陛下 賣官錢入私門하시니 以此言之컨대 殆不如也니이다
帝大笑曰 桓, 靈之世에는 不聞此言이러니 今朕 有直臣하니 固爲勝之로다
○ 後將軍注+[頭註]有前, 後將軍하니라 文明皇后注+[頭註]帝皇母后之弟也 散騎常侍石崇 苞之子也
二人 皆富於財하야 競以奢侈相高할새 注+[釋義]𥹋는 米餹이니 卽餳이라注+[頭註]以水沃釜爲澳이라하고 以蠟代薪하며紫絲步障注+[附註] 以小竹交結爲之하야 衣以布或帛하야 可卷可舒 韻會 音卦이요 音司 絲也 謂織絲之文 輕疎浮虛之貌 夾道設之하야 以爲屛障者四十里하고錦步障五十里하며 塗屋以椒注+[頭註]以椒和泥塗壁하니 取其溫煖而辟除하고 用赤石脂注+[頭註]藥名이니 本草 大溫하니 養心氣라하니라
帝每助愷하야 嘗以珊瑚樹賜之하니 高二尺許 愷以示崇한대 便以鐵如意注+[頭註]執之所以供指揮者 以鐵爲之하니 碎之어늘
愷怒하야 以爲疾己之寶라하니 崇曰 不足爲恨이라
今還卿호리라하고 乃令左右 悉取其家珊瑚注+[通鑑要解]生海中하니 色赤也하니 高三四尺者六七株 如愷比者 甚衆이러라


태강太康 3년(임인 282)
황제가 사례교위司隷校尉 유의劉毅에게 묻기를 “짐은 나라의 어떤 황제에게 견줄 만한가?” 하니, 유의劉毅가 대답하기를 “환제桓帝영제靈帝입니다.”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어찌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겠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환제桓帝영제靈帝는 관직을 판 돈을 국고國庫에 넣었으나 폐하陛下는 관직을 판 돈을 사가私家로 들이시니, 이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자못 환제桓帝영제靈帝만도 못합니다.” 하였다.
황제가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환제桓帝영제靈帝 때에는 이러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데, 이제 짐은 그대와 같은 직언하는 신하가 있으니, 진실로 그들보다 낫다.” 하였다.
후장군後將軍注+[頭註]전장군前將軍후장군後將軍이 있다. 왕개王愷문명황후文明皇后注+[頭註]문명황후文明皇后무제武帝모후母后이다. 의 아우이고, 산기상시散騎常侍 석숭石崇석포石苞의 아들이다.
두 사람이 모두 재물이 풍족하여 다투어 사치함을 가지고 서로 고저를 비교할 적에 왕개王愷미당米餹注+[釋義]以𥹋:미이米台미당米餹이니, 바로 엿이다. 으로 솥을 닦고注+[頭註]물을 솥에 붓는 것을 이라 한다. 석숭石崇은 밀랍을 장작 대신 사용하였으며, 왕개王愷는 붉은색 명주로 40리 길이의 보장步障注+[附註]보장步障은 지금의 괘시罣罳이니, 작은 대나무를 서로 엮어 만들어 삼베나 비단을 입혀서 말 수도 있고 펼 수도 있는 것이다. 《운회韻會》에 “는 음이 괘이니 그물이고 는 음이 사(시)이니 실이다. 괘시罣罳는 실로 짠 무늬가 가볍고 성글며 하늘거리는 모양을 이르니, 이것을 길 좌우에 설치하여 병풍으로 삼는 것이다.” 하였다. 을 만들고 석숭石崇은 비단으로 50리 길이의 보장步障을 만들었으며, 석숭石崇은 집을 산초로 칠하였고注+[頭註]산초를 진흙에 개어 벽에 발랐으니, 기운이 따뜻하며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뜻을 취한 것이다. 왕개王愷적석지赤石脂注+[頭註]적석지赤石脂의 이름이니, 《증류본초證類本草》에 “매우 따뜻하니, 심기心氣를 기른다.” 하였다. 를 사용하였다.
황제가 매번 왕개王愷를 도와주어 그에게 일찍이 높이가 두 자가 넘는 산호수珊瑚樹를 하사하였는데, 왕개王愷가 이것을 석숭石崇에게 보여 주니 석숭石崇이 곧 철여의鐵如意注+[頭註]철여의鐵如意는 손에 잡고서 지휘指揮하는 데에 사용하는 것으로 쇠로써 만드니, 곧 골타자骨朵子이다. 로 이것을 부수었다.
왕개王愷가 노하여 석숭石崇이 자신의 보물을 질투한 것이라고 말하자, 석숭石崇이 말하기를 “족히 한할 것이 없다.
이제 에게 돌려주겠다.” 하고는 마침내 좌우의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집에 있는 산호珊瑚注+[通鑑要解]산호珊瑚는 바다 속에서 나오니, 색깔이 붉다. 樹를 전부 가지고 오게 하니, 높이가 3, 4척에 이르는 것이 6, 7개였고 왕개王愷의 것과 비슷한 것은 아주 많았다.


역주
역주1 : 개
역주2 𥹋 : 이
역주3 : 욱
역주4 步障 : 옛날 귀족들이 밖에 나가 머물 때 설치하던 병풍 같은 行幕을 이르는 바, 바람과 먼지를 막기 위해 대나무를 세워 간살을 만들고 비단을 드리워 길 양쪽에 치는 막이다.
역주5 罣罳 : 괘시
역주6 : 산초는 당시 西域에서 들여온 것으로 매우 비싼 물건이어서 황궁에서만 이것으로 벽을 발랐기 때문에 황후의 거처를 椒房이라 하였다.
역주7 骨朵(타)子 : 古代 兵器의 일종으로, 긴 棒처럼 생겼는데 끝에 마늘 모양이나 혹은 蒺藜 모양의 머리가 달려 있다. 唐나라 이후에는 刑杖으로 사용하였고 宋나라 이후에는 천자의 거둥 때에 宿衛하는 자들이 儀仗으로 사용하였다. 《宋史 儀衛志》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