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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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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延光元年이라
皇太后鄧氏崩注+[頭註]宮人誣告太后兄弟悝弘閶等 謀立平原君이라하니 帝怒하야 遂廢西平侯廣宗等하야 爲庶人하니라커늘 帝始親政事하다
帝少號聰明故 鄧太后立之러니 及長 多不德하야 稍不可注+[通鑑要解]言意不以爲可也太后意
及太后崩 鄧氏五侯注+[頭註]西平侯廣宗, 葉侯廣德, 西華侯忠, 陽安侯珍, 都鄕侯甫德이니 皆安帝之舅之子也 皆廢爲庶人하고 以閻皇后兄弟 竝爲卿校注+[頭註] 九卿이요 校尉하야 典禁兵하니 於是 內寵 始盛이라
中常侍江京等 扇動內外하야 競爲侈虐이러라
○ 汝南太守王龔 好才愛士하야 以袁閬爲功曹하고 引進郡人陳蕃, 黃憲注+[頭註]初擧孝廉하고 又辟公府하니 人勸仕한대 暫至京師라가 卽還하야 四十八終하니라하니 不屈하고 遂就吏注+[頭註]就辟而爲吏也하다
世貧賤하야 父爲牛醫러니 潁川荀淑 遇憲於逆旅注+[頭註]客舍[通鑑要解]設館舍하야 迎客故 逆旅하니 時年 十四
竦然異之하야 揖與語하야 移日注+[頭註]日移晷也不能去하고 謂憲曰 吾之師表로다
旣而 前至注+[頭註] 進也袁閬所하야 問曰 子國 有顔子하니注+[頭註]豈也識之乎 閬曰 見吾叔度注+[原註] 字叔度
是時 同郡戴良 才高倨傲호되 而見憲이면 未嘗不正容하고 及歸 罔然若有失也어늘
其母問曰 汝復從牛醫兒來耶
對曰 良 不見叔度 自以爲無不及이러니 旣覩其人瞻之在前이라가 忽然在後하야 固難得而測矣라하더라
陳蕃及周擧 常相謂曰 時月之間注+[頭註]自朔至晦爲一月이요 三月爲一時 不見黃生이면 則鄙吝之萌注+[釋義]鄙吝之意[頭註]作事可卑賤者 謂之鄙 作事可羞愧者 謂之吝이라 復存乎心矣라하더라
太原郭泰注+[原註]郭泰 字林宗이라 少遊汝南할새 先過袁閬하야 不宿而退하고 進往從憲하야 累日方還이어늘
或以問泰한대 泰曰 奉高之器注+[釋義]奉高 袁閬字也 譬諸注+[釋義]王氏曰 氿音軌 字從九無點이라 或作汍하니 誤也 通作檻이라 爾雅註云 氿 泉仄出也 從傍出也 泉涌出也 雖淸而易注+[通鑑要解] 量也이어니와
叔度 汪汪若千頃波하야 澄之不淸하고 之不濁하야 不可量也라하더라
[史略 史評]范曄曰
黃憲 言論風旨 無所傳聞焉이로되 士君子見之者 靡不服深遠하야 去玼吝이라
予曾祖穆侯以爲 憲 하고 하니 若及門於孔氏 인저하시니라


연광延光 원년元年(임술 122)
황태후皇太后 등씨鄧氏가 별세하자,注+[頭註]궁인宮人등태후鄧太后형제兄弟, , 등이 평원군平原君을 황제로 세울 것을 모의한다고 무고誣告하니, 황제가 노하여 마침내 〈등홍鄧弘의 아들인〉 서평후西平侯 광종廣宗 등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았다. 황제가 비로소 정사를 직접 다스렸다.
황제가 어렸을 적에 총명하다고 이름이 났기 때문에 등태후鄧太后가 세운 것인데, 장성하자 부덕한 일이 많아서 차츰 태후太后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注+[通鑑要解]초불가稍不可는 마음에 하다고 여기지 않음을 말한다.
태후太后가 별세하자 등씨鄧氏오후五侯注+[頭註]오후五侯서평후西平侯 광종廣宗, 섭후葉侯 광덕廣德, 서화후西華侯 , 양안후陽安侯 , 도향후都鄕侯 보덕甫德이니, 모두 안제安帝의 외숙의 아들이다. 를 모두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염황후閻皇后의 형제를 모두 구경九卿교위校尉注+[頭註]구경九卿이고, 교위校尉이다. 로 삼아서 금병禁兵을 맡게 하니, 이에 내총內寵이 비로소 성하였다.
중상시中常侍 강경江京 등이 내외內外를 선동하여 다투어 사치하고 포악한 짓을 하였다.
여남태수汝南太守 왕공王龔이 인재를 좋아하고 선비를 아껴서 원랑袁閬공조功曹로 삼고 고을 사람인 진번陳蕃황헌黃憲注+[頭註]황헌黃憲이 처음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고 또 공부公府에서 부르자 사람들이 벼슬할 것을 권하니, 잠시 경사京師에 이르렀다가 곧바로 돌아와 48세에 죽었다. 등을 이끌어 등용하니, 황헌黃憲은 절개를 굽히지 않았고 진번陳蕃은 마침내 관리에 취직注+[頭註]부름에 나아가 관리가 된 것이다. 하였다.
황헌黃憲은 집안이 대대로 가난하고 천하여 아버지가 우의牛醫(소의 병을 치료하는 의원)가 되었는데 영천潁川순숙荀淑황헌黃憲을 여관注+[頭註]逆旅는 객사이다. [通鑑要解]館舍를 설치하여 손님(나그네)을 맞이하기 때문에 역려逆旅라 한 것이다. 에서 만나니, 이때 나이가 14세였다.
순숙荀淑이 공경히 예우하여 읍하고서 더불어 말을 하되 한참이 지나도록注+[頭註]이일移日은 〈시간이 흘러〉 해 그림자가 옮겨 가는 것이다.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황헌黃憲에게 이르기를 “그대는 나의 사표師表이다.” 하였다.
이윽고 앞으로 나아가注+[頭註]은 나아감이다. 원랑袁閬의 처소에 이르러 묻기를 “그대의 고을에 안자顔子가 있으니, 그대는 알고 있는가?注+[頭註]이다. ” 하니, 원랑袁閬이 말하기를 “우리 숙도叔度(黃憲)注+[原註]황헌黃憲숙도叔度이다. 를 보았는가?” 하였다.
이때 같은 고을의 대량戴良이 재주가 뛰어나 거만하였으나 황헌黃憲을 보면 용모를 단정히 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돌아와서는 망연자실하였다.
그 어머니가 묻기를 “네가 또 우의牛醫의 아들을 따라 놀다가 왔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제가 숙도叔度를 보기 전에는 스스로 미치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미 그를 본 뒤에는 바라봄에 앞에 있다가 홀연히 뒤에 있어서 진실로 측량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였다.
진번陳蕃주거周擧가 항상 서로 이르기를 “한 철이나 한 달 동안注+[頭註]초하루부터 그믐까지를 한 달[月]이라 하고, 3개월을 한 철[時]이라 한다.황생黃生을 보지 않으면 비루하고 인색한 생각注+[釋義]鄙吝은 모색茅塞이라는 뜻과 같다.[頭註]일을 함에 낮고 천하게 여길 만한 것을 라 이르고, 일을 함에 부끄러워할 만한 것을 이라 이른다. 이 다시 마음속에 생긴다.” 하였다.
태원太原곽태郭泰注+[原註]곽태郭泰임종林宗이다. 가 젊어서 여남汝南에서 놀 때에 먼저 원랑袁閬을 방문했을 때에는 유숙留宿하지 않고 그대로 물러 나오고, 나아가서 황헌黃憲을 따라 놀 때에는 며칠이 지나서야 비로소 돌아왔다.
혹자가 곽태郭泰에게 그 이유를 묻자, 곽태郭泰가 말하기를 “봉고奉高(袁閬注+[釋義]봉고奉高원랑袁閬이다. )의 기국器局은 비유하면 궤람氿濫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氿는 음이 궤이니, 글자 모양이 구자九字를 따르고 점이 없다. 혹은 으로 쓰니, 잘못이다. 과 통한다. 《이아爾雅》의 에 이르기를 “氿는 샘물이 옆으로 나오니 곁에서 흘러나오는 것이고, 은 샘물이 용솟음쳐 곧바로 나오는 것이다.” 하였다. 이 비록 맑지만 측량하기 쉬운注+[通鑑要解]은 헤아림이다. 것과 같다.
그러나 숙도叔度는 넓디넓은 천경千頃의 물결과 같아서 맑게 해도 맑아지지 않고 흐리게 해도 흐려지지 않아 측량할 수가 없다.” 하였다.
[史略 사평史評]范曄이 말하였다.
황헌黃憲의 언론과 풍지風旨는 전하여 알려진 것이 없으나 선비와 군자君子 중에 그를 만나 본 자들은 그의 심원深遠함에 감복하여 자신의 잘못과 인색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므로 나의 증조曾祖이신 목후穆侯는 이르시기를 ‘황헌黃憲은 유순하여 순함에 처하고 마음이 깊어 와 같았으니, 만약 공씨孔氏의 문하에 이르렀다면 안회顔回처럼 거의 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茅塞 : 사람들이 다니는 산길이 잠시 사용하면 길을 이루지만 한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띠풀이 자라서 길을 막는 것으로, 마음이 물욕에 가려짐을 이른다. 《孟子》 〈盡心 下〉에 보인다.
역주2 氿濫 : 궤함
역주3 : 읍
역주4 : 효
역주5 隤然其處順 : 《周易》 〈繫辭傳〉에 “坤은 순하니 사람에게 간략함으로 보여 준다.[夫坤 隤然 示人簡矣]”라고 보이는 바, 隤는 유순한 모양이다.
역주6 淵乎其似道 : 《老子》에 ‘淵乎似萬物之宗’이라고 보이는 바, 마음이 깊어서 헤아릴 수 없음을 이른다.
역주7 其殆庶乎 : 《周易》 〈繫辭傳〉에 “顔氏의 아들(顔回)은 거의 道에 가까울 것이다.[顔氏之子 其殆庶幾乎]”라고 보이는 바, 후에 ‘殆庶’는 어진 덕이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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