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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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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卯]六年이라
淮南厲王長 謀反이어늘 廢處蜀郡한대不食死하다
〈本傳云
民有作歌하야 歌之曰 一尺布 尙可縫이요 一斗粟 尙可舂이어늘 兄弟二人 不相容이라하니라
○ 梁太傅賈誼上疏曰
〈本傳云 是時 匈奴彊侵邊하고 諸侯王僭擬하야 淮南, 濟北 皆以逆誅어늘 誼乃上疏曰이라하니라
竊惟今之事勢컨대 可爲痛哭者一이요 可爲流涕者二 可爲長太息者六이로소니 若其他背理而傷道者 難徧以疏擧로소이다
進言者皆曰 天下已安已治矣라호대 獨以爲未也라하노이다
夫抱火厝(措)之積薪之下하고 而寢其上하야 火未及燃이어든 因謂之安이라하나니 方今之勢 何以異此리잇고
陛下何不壹令臣으로 得熟數之於前하시고 因陳治安之策하야 試詳擇焉이니잇고
夫建久安之勢하고 成長治之策하야 以幸天下하고 以育群生하야 立經陳紀하야 輕重同得이면 後可以爲萬世法程 至明也니이다
以陛下之明達 因使少知治體者 得佐이시면 致此非難也리이다
夫樹國 固必相疑之勢注+[釋義]師古曰 立國泰大 其勢必固相疑 甚非所以安上而全下也
今或親弟 謀爲東帝注+[原註]淮南王反誅하고 親兄之子 西鄕而擊注+[原註]謂齊悼惠王子興居 因濟北王反하야 欲擊取滎陽也하고 今吳又見告注+[原註] 吳王 不遵漢法하야 有告之者
天子春秋鼎盛하사 行義未過하시고 德澤有加焉이사도 猶尙如此어든 況莫大諸侯權力 且十此者乎잇가
屠牛坦 一朝 解十二牛로되 而芒刃不鈍者 其排擊剝割 皆衆理解也 至於之所하야는 非斤則斧 夫仁義恩厚 人主之芒刃也 權勢法制 人主之斤斧也
今諸侯王 皆衆髖髀注+[原註]이요 股骨也 言其骨大 故須用斤斧也어늘 釋斤斧之用하고 而欲嬰以芒刃이면 臣以爲不缺則折이라하노이다
欲天下之治安인댄 莫若衆建諸侯而少其力이니 力少則易使以義 國小則亡(無)邪心이라
令海內之勢 如身之使臂 臂之使指하야 莫不制從이면 諸侯之君 莫敢有異心하야 輻湊注+[釋義] 輻輳也 凡輪有三十輻하야 共輳於一轂하니 以喩四方皆來竝進而歸命天子하리이다
割地定制하야 地制一定이면 宗室子孫 莫慮不王이라
下無背畔之心하고 上無誅伐之志하야 法立而不犯하고 令行而不逆하야 臥赤子天下之上而安하고 遺腹, 朝委裘注+[頭註]言天子未坐朝하야 事先帝裘衣라도 而天下不亂하리니 陛下誰憚而久不爲此시니잇고
天下之勢 方病大瘇하야 一脛之大 幾如腰하고 一指之大幾如하야 平居 不可屈伸하니 失今不治 必爲痼疾이라
後雖有扁鵲注+[通鑑要解]春秋時良醫也 姓秦이요 名越人이니 與軒轅時扁鵲相類故 因號扁鵲이라 又家於盧國故 因名盧醫하니라이나 不能爲已注+[通鑑要解] 治也 語辭 可爲痛哭者 此也로소이다
天下之勢 方倒하니
天子者 天下之首 何也 上也 蠻夷者 天下之足이니 何也 下也
匈奴嫚侮侵掠하야 至不敬也어늘 而漢 歲致金絮采繒以奉之하야 足反居上하고 首顧居下
倒縣 如此로되 莫之能解하니 猶爲國有人乎잇가
可爲流涕者此也로소이다
竊料匈奴之衆컨대 不過漢一大縣이어늘 以天下之大 困於一縣之衆하니 甚爲執事者羞之하노이다
陛下何不試以臣爲屬國之官而主匈奴시니잇고
行臣之計인댄 請必繫單于之頸而制其命하고 伏中行注+[原註]降匈奴하야 常爲漢患하니라[通鑑要解] 中行說 說音悅이라 中行 複姓이요 名也 本漢人이라 匈奴老上單于請和한대 許之하고 遂遣宗室女翁主하야 爲單于閼氏하고 使宦者中行說 傅翁主러니 不肯行이어늘 强使之 說至 降單于하니 甚親幸하야 細條漢事하야 爲害至大하니라而笞其背하고 擧匈奴之衆하야 唯上所令호리이다
不獵猛敵而獵田하고 不搏反寇而搏畜菟(兎)하야 翫細娛而不圖大患하야 德可遠施 威可遠加로되 而直數百里外 威令 不伸하니 可爲流涕者此也로소이다
庶人屋壁 得爲帝服하고 倡優下賤 得爲后飾하고
且帝之身 自衣어늘 而富民牆屋 被紋繡하고 天子之后 以緣其領이어늘 庶人 以緣其履하니 此臣所謂니이다
夫百人 作之하야 不能衣一人이면 欲天下亡(無)寒이나 胡可得也 一人 耕之하야 十人 聚而食之 欲天下亡飢 不可得也
飢寒 切於民之肌膚 欲其亡爲姦邪 不可得也 可爲長太息者此也로소이다
商君注+[釋義]公孫鞅也 事見周顯王十年이라 遺禮義, 棄仁恩하고 幷心於進取하니 行之二歲 秦俗 日敗
秦人 家富子壯則出分하고 家貧子壯則出贅注+[釋義]謂之贅壻 言不當出妻家 猶人身之有肬贅하야 借父注+[原註] 音憂 犂田器也[釋義] 王氏曰 慮 疑也 謂疑其容色自矜爲恩德也 慮有德色하고 母取箕箒 立而하고 抱哺其子하야 與公倂倨注+[釋義]王氏曰 謂〈與〉公對敵而相拒也[頭註] 婦謂舅曰公이요 倨通作踞하니 乃與其舅 倂踞하니 無禮之甚也 又傲也하고 婦姑不相說이면 則反(翻)脣而相稽注+[釋義]王氏曰 反 音翻이니 反脣 調口也 相稽 謂相與計校也하니 其慈子耆(嗜)利注+[頭註]謂秦人不知孝義하고 但知愛子貪利而已 不同禽獸者 亡(無)幾矣
今其遺風餘俗 猶尙未改하야 棄禮義, 捐廉恥 日甚하니 可謂月異而歲不同矣
今之盜者 剟寢戶之簾하고 兩廟之器注+[頭註] 割取也 謂陵上之寢이라 取也하고 白晝大都之中 剽吏而奪之金하니 此其無行義之尤至者也어늘
而大臣 特以簿書不報期會注+[頭註]簿書 謂簿籍文書也 期會 猶程限이라之間으로 以爲大故注+[通鑑要解]大事 言公卿大臣 特以簿書期會爲急하고 不知正風俗厲行義也 文章正宗註 是時 張蒼爲漢宰相하니 故秦吏故 所知止此하고 至於俗流失, 世壞敗하야는 因恬而不知怪하야 慮不動於耳目하야 以爲是適然耳라하니 夫移風易俗하야 使天下回心而鄕(向)道 類非俗吏之所能爲也
俗吏之所務 在於刀筆注+[釋義]所以盛文書하야 而不知大體하니 竊爲陛下惜之하노이다
筦(管)子注+[釋義] 與管同하니 管仲所著書 名管子曰 禮義廉恥 是謂 四維不張이면 國乃滅亡이라하니
使筦子愚人也則可커니와 筦子而小知治體 則是豈可不爲寒心哉잇가
今四維猶未備也하니 豈如今定經制하야 令君君臣臣하야 上下有差하고 父子 各得其宜리잇고
此業 壹定이면 世世常安하야 而後有所持循矣리이다
若夫經制不定이면 猶渡江河 亡維楫注+[釋義]王氏曰 亡 失也 所以繫舟 所以進舟也이라 中流而遇風波 船必覆矣리니 可爲長太息者 此也로소이다
夏, 殷, 周 爲天子 皆數十世하고 爲天子 二世而亡하니 人性 不甚相遠也어늘 何三代之君 有道之長하고 而秦無道之
其故 可知也니이다
古之王者 太子乃注+[釋義]王氏曰 乃 始也라하니 下同이라이어든 固擧以禮하야 有司齊注+[釋義] 讀作齋하니 戒潔也肅端冕하야 之南郊注+[釋義]王氏曰 見之南郊 言以太子見于天也하며 過闕則下하고 過廟則趨
自爲赤子 而敎固已行矣 孩提注+[頭註] 小兒笑也 謂知孩笑可提抱有識이어든 固明孝仁禮義하야 以道(導)習之하고 逐去邪人하야 不使見惡行이라
於是 皆選天下之端士孝悌博聞有道術者하야 以衛翼之하야 使與太子居處出入이라
太子乃生 而見正事하며 聞正言하며 行正道하야 左右前後 皆正人也
夫三代之所以長久者 以其輔翼太子 有此具也러니
及秦則不然하야 使趙高 傅胡亥而敎之獄하야 所習者非斬이면 則夷人之三族也
胡亥今日卽位而明日射人하야 忠諫者 謂之誹謗이라하고 深計者 謂之妖言이라하야 其視殺人草菅注+[原註] 讀曰刈 音奸이라[釋義] 菅 似茅而滑澤이라하니 豈惟胡亥之性惡哉잇가
彼其所以道(導)之者 非其理故也니이다
凡人之智 能見已然하고 不能見將然하나니
夫禮者 禁於將然之前이요 而法者 禁於已然之後
是故 法之所爲用 易見이요 而禮之所爲生 難知也니이다
若夫慶賞以勸善하고 刑罰以懲惡 先王執此之政 堅如金石하고 行此之令 信如四時하고 據此之公 無私如天地하니 豈顧不用哉잇가
然而曰禮云禮云者 貴絶惡於未萌而起敎於微眇하야 使民日遷善遠辜而不自知也니이다
인저하시니 爲人主計者컨대 莫如先審取舍 取舍之極 定於內 而安危之萌 應於外矣리이다
秦王之欲尊宗廟而安子孫 與湯, 武同이나
然而湯, 武 廣大其德하사 行六七百歲而弗失하시고 秦王 治天下十餘歲 則大敗하니 亡(無)他故矣
湯, 武之定取舍이요 而秦王之定取舍 不審矣일새니이다
夫天下 大器也
今人之置器 置諸安處則安하고 置諸危處則危하나니 天下之情 與器無以異하야 在天子之所置之니이다
湯, 武 置天下於仁義禮樂하야 累子孫數十世하니 天下所共聞也 秦王 置天下於法令刑罰하야 禍幾及身하고 子孫誅絶하니 天下之所共見也
是非其明效大驗邪잇가
人之言曰 聽言之道 必以其事觀之 則言者莫敢妄言이라하니
今或言禮義之不如法令하고 敎化之不如刑罰이어든 人主胡不引殷, 周, 秦事以觀之也잇고
人主之尊 譬如堂하고 群臣 如陛하고 衆庶 如地
陛九級注+[頭註]九等也 天子之堂 九尺이요 諸侯七尺이요 大夫五尺이요 士三尺이라 廉遠地則堂高하고 陛無級하야 廉近地則堂卑注+[釋義]王氏曰 書顧命 夾兩階라한대 堂廉曰戺라하니 稜也 漢書顔師古註 側隅也 孫氏曰 (切)[竊]詳顔注컨대 側隅也 以廉近地 對廉遠地而言之 則廉隅無所謂上下矣 當讀陛九級上爲句 近歲 大(太)學 出上廉遠地則堂高賦하니 豈一時未加討論歟 蘇文曰 奧廉遠則堂陛峻이라하고 林鉞漢雋亦曰 廉遠地則堂高라하여 而竝不言上廉하니라하니 高者 難攀이요 卑者 易陵이니 理勢然也
古者聖王 制爲等列하야 內有公卿大夫士하고 外有公侯伯子男然後小吏하고 延及庶人하야 等級分明而天子加焉이라
其尊 不可及也니이다
里(俚)諺曰 欲投鼠而忌器라하니 善諭也
鼠近於器라도 尙憚不投하야 恐傷其器어든 況於貴臣之近主乎잇가
廉恥節禮 以治君子 故有賜死而亡(無)戮辱하니
是以 之辜 不及大夫注+[釋義]王氏曰 黥 文面也 割鼻也 記曲禮 刑不上大夫라한대 不與賢者犯法이라 其犯法則在輕重하고 不在刑書 音預 大戴禮 冉有問於孔子曰 先王制法 刑不上於大夫하니 然則大夫犯罪 不可以加刑乎잇가 子曰 不然하다 凡治君子 以禮御其心하나니 所以厲之以廉恥之節也 古之大夫 其有坐不廉汚穢而退放之者 不謂之不廉汚穢라하고 則曰簠簋不飾이라하며 有坐淫亂男女無別者 不謂之淫亂男女無別이라하고 則曰帷薄不修라하며 有坐罔上不忠者 不謂之罔上不忠이라하고 則曰臣節未著라하며 有坐罷軟不勝任者 不謂之罷軟不勝任이라하고 則曰下官不職이라하며 有坐干國之紀者 不謂之干國之紀라하고 則曰行事不請이라하니 此五者 所以愧恥之也니라 又見家語五刑篇하니라 以其離主上不遠也일새니이다
臣聞之호니 履雖鮮이나 不加於枕하고 冠雖敝 不以라하니
夫嘗已在貴寵之位하야 天子改容而體貌之矣 吏民 嘗俯伏以敬畏之矣 今而有過어든 帝令廢之可也 退之可也 賜之死可也 滅之可也어니와
若夫束縛之하고注+[釋義] 一作絏하니 謂以長繩連係之也하야 輸之司寇注+[釋義]司寇 二歲刑이니 輸作司寇일새 因名焉이라 或作輸之司空이라 百官表 宗正屬官 有左右都司空하고 上林 有水司空하니 皆主囚(都)[徒]官이라하고 編之徒官注+[釋義] 謂以罪輸贖而役作者 謂列次名籍也하야 司寇小吏罵詈而榜笞之하니 殆非所以令衆庶見也니이다
夫卑賤者習知尊貴者之一旦 吾亦乃可以加此也하니 非所以尊尊貴貴之化也니이다
古者 大臣 有坐不廉而廢者 不曰不廉이라하고不飾注+[釋義]簠簋 皆禮器 外方內圓하니 以盛稻粱이요 外圓內方하니 以盛黍稷이라 竝有蓋하니 形象龜 音甫 音軌 整齊也이라하며
坐汙穢淫亂하야 男女無別者 不曰汙穢라하고 曰帷薄(箔)不修注+[釋義] 幔也 一作箔하니 簾也 風俗通曰 卿大夫帷 士以簾이니 所以自障蔽修理也라하며
不勝任者 不曰罷軟이라하고 曰下官不職이라하니
貴大臣 定(正)有其辜矣라도 猶未斥然正以呼之也니이다
上設廉恥禮義하야 以遇其臣이어늘 而臣不以節行報其上者 則非人類也
化成俗定이면 則爲人臣者 皆顧行而忘利하고 守節而仗義
可以託不御之權注+[頭註]言念主忘身하고 憂國忘家하야 可托權柄하야 不須復制御也이요 厲廉恥行禮義之所致也어늘
注+[釋義] 猶反也 言何不爲投(羅不可)[鼠忌器]之法하고 而反久行彼無(人行)[陛級]之事하시니 曰 可爲長太息者此注+[釋義]東萊曰 可爲痛哭者一 謂諸侯强大也 可謂流涕者二 謂匈奴嫚侮 有可制之策而不用也 可謂長太息者有六 見於史者有三하니 變風俗也 敎太子也 體貌大臣也로소이다
誼以絳侯前逮繫獄 卒無事實이라 故以此譏上이러니 深納其言하야 養臣下有節하니
是後 大臣有罪 皆自殺하고 不受刑하니라
〈出賈誼傳〉
班固贊曰
劉向 稱賈誼言三代與秦治亂之意 其論甚美하고 通達國體하니 雖古之伊管이라도 未能遠過也
使時見用이면 功化必盛이어늘 爲庸臣所害하니 甚可悼痛이라
追觀孝文 元(玄)黙躬行하야 以移風俗하니 誼之所陳 略施行矣
及欲改定制度 以漢爲土德이라하야 色上黃하고 數用五하고 又欲試屬國하야 施五餌三表注+[附註]愛人之狀하고 好人之伎 仁道也 信爲大操 常義也 愛好有實하고 已諾可期하면 十死一生이라도 彼將必至 此三表也 賜之盛服車乘하야 以壞其目하고 盛食珍味 以壞其口하고 音樂婦人으로 以壞其耳하고 高堂邃宇 倉庫奴婢 以壞其腹하고 來降者 上召幸之하야 娛樂親酌하고 手食之하야 以壞其心이니 此五餌也하야 以係單于하니 其術 固已疏矣
誼以天年早終하야 雖不至公卿이나 未爲不遇也니라
[新增] 養心吳氏曰
按誼傳 後爲梁王太傅러니 王墜馬死하니 誼自傷爲傅無狀이라하야 常哭泣이라가 後歲餘亦死하니라
王安石詩曰 懷王自墮馬 賈傅至死悲
古人事一職하니 豈敢苟然爲리오
哭死非爲生이니 吾心良不欺
滔滔聲利間 絳灌亦何知리오
若賈生者 非漢文之不用生이요 生之不能用於漢文也
〈夫絳侯 親握天子璽하야 而授之文帝하고 灌嬰 連兵數十萬하야 以決劉呂之雄雌하고 又皆高帝之舊將이니〉 此其君臣相得之分 豈特父子骨肉手足哉
賈生 洛陽之少年이어늘 欲使其一朝之間 盡棄其舊而謀其新이면 亦已難矣
爲賈生者 上得其君하고 下得其大臣하야 如絳灌之屬 優游浸漬而深交之하야 〈使天子不疑하고 大臣不忌〉然後 〈擧天下而〉唯吾之所欲爲 〈不過十年이면 可以得志리니
安有立談之間 而遽爲人痛哭哉
觀其過湘爲賦하야 以弔屈原하면 〈紆鬱憤悶하야〉 趯然有遠去之志러니 其後 卒以自傷哭泣하야 至於夭絶하니 是亦不善處窮者也
〈夫謀之一不見用이라도 安知終不復用也리오
不知黙黙以待其變하고 而自殘至此하니〉 嗚呼 賈生 志大而量小하고 才有餘而識不足也니라
東萊先生 謂合王蘇二說하야 觀之 則生之醇疵 可見也라하니라


6년(정묘 B.C.174)
회남여왕淮南厲王유장劉長이 반란을 도모하였는데, 폐하여 촉군蜀郡에 처하게 하자 분하여 먹지 않고 죽었다.
- 《사기史記》 〈회남형산열전淮南衡山列傳〉에 말하였다.
“백성이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한 자의 삼베도 오히려 꿰매어 입을 수 있고, 한 말의 곡식도 오히려 방아 찧어 먹을 수 있는데, 형제 두 사람이 서로 용납하지 못한다.’ 하였다.” -
양태부梁太傅가의賈誼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 《한서漢書》 〈가산전賈山傳〉에 이르기를 “이때 흉노匈奴가 강하여 변경을 침략하고, 제후왕諸侯王이 참람하여 황제에 비견해서 회남왕淮南王제북왕濟北王이 모두 역모로 죽임을 당하자, 가의賈誼가 이에 상소上疏를 올렸다.” 하였다. -
이 삼가 지금의 사세事勢를 생각해 보건대, 통곡痛哭할 만한 것이 한 가지이고,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이고, 길게 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이니, 기타 이치를 위배하고 도리를 해치는 것으로 말하면 두루 열거하기가 어렵습니다.
말씀을 아뢰는 자들이 모두 이르기를 ‘천하가 이미 편안하고 이미 다스려졌다.’고 하지만 은 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불을 안아다가 쌓아놓은 나무섶의 아래에 두고 그 위에 자면서 불이 미처 타오르지 않으면 인하여 이것을 편안하다고 말하니, 지금의 형세가 어찌 이와 다르겠습니까?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한번 으로 하여금 앞에서 자세히 이를 따지고, 인하여 치안治安할 계책을 아뢰게 해서 한번 자세히 가려보지 않으십니까?
오랫동안 편안할 형세를 세우고 장구하게 다스려질 계책을 이루어서, 천하를 행복하게 하고 여러 생민生民들을 길러서 큰 을 세우고 기강紀綱을 펴서 경중輕重이 모두 맞으면 뒤에 만세萬世법정法程이 될 수 있음이 지극히 분명합니다.
폐하陛下의 총명하고 통달하심으로써 인하여 다소 정치하는 체통을 아는 자로 하여금 아래에서 돕게 하신다면 이것을 이룸은 어렵지 않습니다.
큰 나라(제후국)를 세워주는 것은 진실로 반드시 서로 의심하는 형세이니,注+[釋義]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제후의 나라를 너무 크게 세우면 그 형세가 반드시 진실로 서로 의심하게 된다.” 하였다. 심히 윗사람(천자)을 편안히 하고 아랫사람(제후)을 온전히 하는 방법이 아닙니다.
지금 혹 친아우가 동제東帝가 되기를 도모하고,注+[原註]회남왕淮南王(劉厲)이 모반謀反하다가 죽은 일을 가리킨다. 친형의 아들이 서향西向하여 공격하고,注+[原註]親兄之子 서향이격西鄕而擊:나라 도혜왕悼惠王의 아들 흥거興居제북왕濟北王이 반란한 틈을 타서 형양滎陽을 공격하여 점령하고자 하였다. 이제 나라가 또 고발을 당하였습니다.注+[原註]이때 오왕吳王나라 법을 따르지 않아 고발하는 자가 있었다.
천자天子께서 춘추가 젊으시어 품행에 허물이 없으시고 덕화德化은택恩澤이 더해지는데도 오히려 이와 같은데, 하물며 막대한 제후의 권력이 또 이보다 열 배나 되는 자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소를 도살하는 이 하루아침에 열두 마리의 소를 해체解體해도 칼날이 무디어지지 않는 것은 그 밀어 치고 가죽을 벗기는 것이 다 모든 결대로 해체하기 때문이요, 관비髖髀(엉치뼈와 넓적다리뼈)가 있는 곳에 이르러서는 자귀가 아니면 도끼를 사용하니, 인의仁義은후恩厚인주人主의 칼날이고 권세權勢법제法制인주人主의 자귀와 도끼입니다.
지금 제후왕諸侯王은 모두 여러 관비髖髀인데注+[原註]이 관이고 이 폐이니, 다리의 뼈이다. 그 뼈가 크기 때문에 반드시 자귀와 도끼를 써야 함을 말한 것이다., 자귀와 도끼의 사용을 버려 두고 칼날로 다스리고자 하시니, 은 생각하건대 칼날이 망가지지 않으면 부러질 것입니다.
천하가 다스려지고 편안하기를 바란다면 제후를 많이 세워서 그 힘을 적게 하는 것만 못하니, 힘이 적으면 의리義理로 부리기가 쉽고, 나라가 작으면 간사한 마음을 품지 않게 됩니다.
해내海內의 형세로 하여금 몸이 팔뚝을 부리고 팔뚝이 손가락을 부리는 것과 같이 해서 제재하여 따르지 않음이 없게 한다면 제후의 군주가 감히 딴 마음을 두지 못하여 바퀴살이 바퀴통으로 모이듯注+[釋義]복주輻輳와 같다. 무릇 바퀴에는 30개의 바퀴살이 있어서 함께 한 으로 모여드니, 사방에서 모두 옴을 비유한 것이다. 함께 나와 천자天子에게 목숨을 맡길 것입니다.
땅을 떼어 주는 제도를 정하여 봉지封地의 제도가 한 번 정해지면 종실宗室의 자손들이 왕이 되지 못함을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아래에서는 배반背反하려는 마음이 없고 위에서는 주벌誅伐하려는 뜻이 없어서, 법이 확립되어 범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어 거스르지 않아서, 적자赤子를 천하의 위에 눕혀 놓아도 편안하며 유복자遺腹子를 세우고 선제先帝가 남기신 갖옷에注+[頭註]위구委裘천자天子가 아직 조정에 앉지 못하여, 선제先帝의 갖옷을 섬김을 말한 것이다. 조회朝會하게 하더라도 천하가 어지럽지 않을 것이니, 폐하陛下께서는 무엇을 꺼리시어 오랫동안 이것을 하지 않으십니까?
천하의 형세가 막 큰 종기를 앓아서 한 다리의 크기가 거의 허리통만 하고 한 발가락의 크기가 거의 다리만 하여, 평소에 굴신屈伸을 할 수가 없으니, 지금 기회를 잃고 치료하지 않으면 반드시 고질병이 될 것입니다.
뒤에 비록 편작扁鵲注+[通鑑要解]편작扁鵲춘추시대春秋時代의 훌륭한 의원이니, 이고 이름이 월인越人인 바, 황제黃帝헌원씨軒轅氏 때의 의원인 편작扁鵲과 의술이 서로 비슷하였기 때문에 인하여 편작이라 이름하였다. 또 노국盧國에 살았으므로 인하여 노의盧醫라 이름하였다. 같은 명의名醫가 있더라도 능히 치료하지 못할 것이니,注+[通鑑要解]는 다스림이요 는 어조사이다. 통곡痛哭할 만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천하天下의 형세가 바야흐로 거꾸로 매달려 있습니다.
천자天子는 천하의 머리이니 왜냐하면 위이기 때문이요, 만이蠻夷는 천하의 발이니 왜냐하면 아래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흉노匈奴가 거만하고 업신여기며 침략하여 지극히 불경不敬한데도 나라가 해마다 과 솜, 채색 비단을 바쳐 이들을 받들어서 발이 도리어 위에 있고 머리가 도리어 아래에 있습니다.
거꾸로 매달려 있음이 이와 같은데도 이것을 풀지 못하니, 이러고도 오히려 나라에 인물人物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눈물을 흘릴 만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 삼가 흉노匈奴의 무리를 헤아려 보건대 흉노의 무리는 나라의 한 큰 에 불과한데, 천하의 큼을 가지고 한 의 무리에게 곤욕을 당하니, 집사자執事者를 위하여 매우 부끄러워합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한번 속국屬國의 관리로 삼아 흉노匈奴를 주관하게 하지 않으십니까.
신의 계책을 시행한다면 반드시 선우單于의 목에 올가미를 매어 그 목숨을 제압하고, 중항열中行說注+[原註]중항열中行說흉노匈奴에 항복하여 항상 나라의 우환이 되었다. [通鑑要解]은 음이 열이다. 중항中行복성複姓이고 은 이름이니, 본래 나라 사람이었다. 흉노匈奴노상선우老上單于가 화친을 청하자, 황제皇帝가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종실宗室의 딸인 옹주翁主를 보내어 선우單于연지閼氏가 되게 하고는 환관인 중항열中行說로 하여금 옹주의 스승이 되게 하였다. 중항열中行說이 가려고 하지 않았는데 억지로 사신 보내자, 흉노匈奴에 이르러 선우單于에게 항복하니, 선우單于가 매우 친근히 하였다. 그리하여 중항열中行說나라 일(기밀)을 세세히 알려주어 나라의 폐해가 매우 컸다. 엎드리게 하여 그 등을 매질하며, 흉노匈奴의 무리를 들어 오직 께서 명령하시는 대로 따르게 하겠습니다.
이제 사나운 적은 사냥하지 않고 밭에 있는 돼지를 사냥하고, 반란한 도둑은 치지 않고 기르는 토끼를 쳐서 작은 즐거움을 구경하고 큰 환난을 도모하지 아니하여, 이 멀리 베풀어질 수 있고 위엄이 멀리 가해질 수 있는데도 다만 수백 리 밖에도 위엄과 명령이 펴지지 못하니, 눈물을 흘릴 만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지금 서인庶人의 지붕과 벽은 황제皇帝의 꾸밈을 할 수 있고, 창우倡優(광대)의 낮고 천한 자들은 황후皇后의 꾸밈을 할 수 있습니다.
황제皇帝 자신은 스스로 검은 비단을 입고 계신데 부유한 백성의 담장과 지붕은 문수紋繡를 입혀 꾸미고, 천자天子후비后妃는 비단으로 옷깃에 선을 두르고 계신데 서인庶人얼첩孼妾들은 문수紋繡로써 신에 선을 두르니, 이것이 이 말하는 바 어그러졌다는 것입니다.
백 사람이 일하여 한 사람을 입히지 못한다면 천하에 추위에 떠는 자가 없기를 바라나 어찌 될 수 있겠으며, 한 사람이 농사지어 열 사람이 모여 먹는다면 천하에 굶주리는 자가 없기를 바라나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굶주림과 추위가 백성의 피부에 절박하면 간사한 짓을 하지 않기를 바라나 될 수가 없을 것이니, 길게 탄식할 만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상군商君(衛鞅)이注+[釋義]상군商君공손앙公孫鞅이니, 일이 나라 현왕顯王 10년조年條에 보인다. 예의禮義를 버리고 인은仁恩을 버리고는 진격하여 점령하는 데에만 마음을 쏟으니, 이를 행한 지 2년 만에 나라 풍속이 날로 허물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나라 사람들이 집이 부유하고 자식이 장성하면 분가分家하여 내보내고, 집이 가난하고 자식이 장성하면 처가살이를注+[釋義]는 처가살이 하는 사위를 이르니, 처가살이를 나가서는 안 되니, 이는 사람의 몸에 혹이나 사마귀가 있음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내보내서, 아버지에게 곰방메와 호미를注+[原註]이 우이니, 밭을 김매는 농기구이다. [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는 의심함이니, 그 용색容色이 스스로 자랑하여 은덕恩德이라고 여기는 듯함을 이른다.” 빌려주면서도 은덕恩德을 베푸는 듯한 기색이 있고 어머니가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가져가는데도 서서 군말을 하며, 〈며느리가〉 그 자식을 안고 젖먹이면서 시아버지와 함께 걸터앉고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병거倂倨는 시아버지와 맞서서 서로 대항함을 이른다.” [頭註]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일러 이라 하고, 와 통한다. 바로 시아버지와 함께 걸터앉는 것이니, 무례함이 심한 것이다. 는 또 오만하다는 뜻이 있다. 며느리와 시어미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입술을 삐죽거리며 서로 따지니,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이 번이니, 번순反脣은 입을 놀리는 것이다. 상계相稽는 서로 더불어 잘잘못을 따짐을 이른다.” 그 자식만 사랑하고 이익을 좋아함이注+[頭註]나라 사람들이 효도와 의리를 알지 못하고 단지 자식을 사랑하고 이익을 탐할 줄만 알 뿐임을 말한 것이다. 금수禽獸와 같지 않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지금 그 남은 풍속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아서 예의禮義를 버리고 염치廉恥를 버림이 날로 심해지니, 다달이 달라지고 해마다 같지 않다고 이를 만합니다.
지금의 도둑질하는 자는 능침陵寢 문의 주렴을 거두어가고 두 사당의 기물器物을 거두어가며,注+[頭註]剟寢戶之簾 건양묘지기搴兩廟之器:은 베어 가는 것이고, 위의 을 이른다. 은 취함이다. 대낮에 큰 도회지 가운데에서 관리를 노략질하여 금을 빼앗아가니, 이는 행실과 의리가 없는 중에도 더욱 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신大臣들은 다만 문서가 기약한 기일 안에 보고되지 않는注+[頭註]부서簿書는 장부와 문서를 이르고, 기회期會는 기한과 같다. 것만을 큰 변고라注+[通鑑要解]대사기大事記》에 “공경公卿대신大臣들이 다만 문서의 기한을 맞추는 것만 시급하게 여기고, 풍속을 바로잡고 행의行義에 힘쓸 줄은 알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 《문장정종文章正宗》의 에 “이때에 장창張蒼나라의 정승이 되었으니, 장창張蒼은 옛 나라의 관리였으므로 아는 바가 여기에 그친 것이다.” 하였다. 여기고, 풍속이 흘러 잘못 되고 세상이 무너짐에 이르러서는 인하여 편안히 여기고 괴이하게 여길 줄을 알지 못해서 생각함이 귀와 눈을 움직이지 않아서 이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니, 풍속을 바꾸어서 천하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을 돌려 를 향하게 하는 것은 세속의 관리들이 능히 할 수 있는 바가 아닙니다.
세속의 관리들이 힘쓰는 것은 칼과 붓과 문서상자에注+[釋義]광협筐篋은 문서를 담는 것(도구)이다. 있어서 대체大體를 알지 못하니, 삼가 폐하를 위하여 애석하게 여깁니다.
관자管子》에注+[釋義]과 같으니, 관중管仲이 지은 책을 《관자管子》라 한다. 이르기를 ‘예의렴치禮義廉恥는 이것을 사유四維라 하니, 사유四維가 펴지지 않으면 나라가 마침내 멸망한다.’ 하였습니다.
만일 관자管子가 어리석은 사람이라면 괜찮지만 관자管子가 조금이라도 정치하는 요체를 알았다고 한다면 이 어찌 한심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사유四維가 아직도 구비되지 못하였으니, 어찌 지금에 큰 제도制度를 정하여 임금은 임금 노릇 하고 신하는 신하 노릇 하여 상하上下에 차등이 있고 부자父子육친六親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게 하는 것만 하겠습니까.
이 사업이 한번 정해지면 대대로 항상 편안하여 뒤에 지켜 따를 바가 있을 것입니다.
만일 떳떳한 제도가 정해지지 않으면 이는 강하江河를 건너면서 닻줄과 노를 잃은 것과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은 잃음이다. 는 배를 매어 정박하는 것이요, 은 배를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같아 중류中流에서 풍파風波를 만나면 배가 반드시 전복顚覆될 것이니, 길게 탄식할 만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는 천자 노릇 한 것이 모두 수십 였고, 나라는 천자가 된 지 2대 만에 망하였으니, 사람의 성품이 크게 서로 다르지 않은데, 어찌하여 삼대三代의 군주는 가 있어 장구하였고 나라는 무도하여 갑자기 망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옛날 왕자王者태자太子가 처음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기를 “는 비로소이다.” 하였으니, 아래도 같다. 태어나면 진실로 로써 거행하여 유사有司가 재계하고注+[釋義]로 읽으니, 경계하고 깨끗함이다. 엄숙히 하며 현단복玄端服을 입고 면류관을 쓰고서 남쪽 교외에서 하늘을 뵙게 하였으며,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남쪽 교외郊外에서 뵙게 한다는 것은 〈교제郊祭를 지낼 때에〉 태자太子를 데리고 하늘에 뵈옴을 말한 것이다.” 대궐을 지나가면 수레에서 내리고 사당을 지나면 종종걸음으로 걷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갓난아이注+[頭註]는 어린아이가 웃는 것이니, 웃을 줄을 알아 안아줄 만한 자를 이른다. 때부터 가르침이 진실로 이미 행해졌으며, 두세 살이 되어 지식이 있으면 삼공三公삼소三少가 진실로 를 밝혀서 인도하여 익히게 하고, 간사한 사람을 쫓아버려 태자太子로 하여금 악행을 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천하의 단정한 선비로서 효도하고 공경하고 문견이 넓으며 도술道術(道學)이 있는 자를 모두 뽑아서 태자太子를 호위하고 보익輔翼하게 하여 태자와 함께 거처하고 출입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태자가 비로소 태어나면 올바른 일을 보고 올바른 말을 듣고 올바른 도를 행하여 좌우와 전후가 모두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삼대三代가 장구했던 까닭은 그 태자를 보익輔翼함에 이러한 갖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라에 이르러서는 그렇지 아니하여 조고趙高호해胡亥의 스승으로 삼아 그에게 옥사獄事를 가르치게 해서 익힌 것이라곤 사람을 베고 코 베는 것이 아니면 사람의 삼족三族을 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호해胡亥가 오늘 즉위하고는 다음날 사람을 쏘아 죽여서, 충성스럽게 간하는 자를 비방한다 하고 깊이 계책하는 자를 요망한 말을 한다 하여, 사람 죽이는 것 보기를 풀이나 왕골을 베는 것처럼注+[原註]라 읽고, 이다. [釋義]은 띠풀과 비슷한데, 매끄럽고 윤택하다. 여겼으니, 어찌 다만 호해胡亥의 성품이 악해서이겠습니까.
저 인도한 것이 올바른 도리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무릇(대체로) 사람의 지혜는 이미 그러한 것은 보고, 장차 그러할 것은 보지 못합니다.
는 장차 그러하기 전에 금하는 것이요, 은 이미 그러한 뒤에 금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의 쓰임은 보기가 쉽고, 가 생겨난 이유는 알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경상慶賞으로써 을 권장하고 형벌刑罰로써 을 징계함으로 말하면 선왕先王께서 이 정사를 집행하기를 금석金石과 같이 견고하게 하였고, 이 명령을 시행하기를 사시四時와 같이 미덥게 하였으며, 이 공정함을 지키기를 천지天地와 같이 사사로움이 없게 하였으니, 어찌 도리어 을 쓰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도 라고 말하고 라고 말한 것은 을 싹트기 전에 끊고 가르침을 미세할 때에 일으켜서 백성들로 하여금 날마다 으로 옮겨 가고 죄를 멀리 하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게 함을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송사訟事를 다스림은 내 남과 같이 하겠으나 반드시 백성들로 하여금 송사訟事함이 없게 하겠다.’ 하셨으니, 인주人主를 위하여 헤아려 보건대 먼저 취사取舍를 자세히 살피는 것만 못하니, 취사取捨(표준)이 안에서 정해지면 안위安危의 싹이 밖에서 응합니다.
나라 종묘宗廟를 높이고 자손子孫을 편안히 하고자 함이 탕왕湯王무왕武王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탕왕湯王무왕武王은 그 덕을 광대히 베풀어서 6, 7백 년을 행해도 잃지 않으셨고 진왕秦王은 천하를 다스린 지 10여 년에 크게 패망하였으니, 이것은 딴 이유가 없습니다.
탕왕湯王무왕武王취사取捨를 정할 때 자세히 살폈고, 진왕秦王취사取捨를 정할 때 자세히 살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천하天下는 큰 그릇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그릇을 둘 때에 안전한 곳에 두면 안전하고 위태로운 곳에 두면 위태로우니, 천하의 실정이 그릇과 다름이 없어서 천자天子가 두는 바에 달려 있습니다.
탕왕湯王무왕武王은 천하를 인의仁義예악禮樂에 두어서 여러 자손이 수십 대를 전하였으니 이는 천하 사람들이 함께 들은 바이고, 진왕秦王은 천하를 법령法令형벌刑罰에 두어서 가 거의 자신에게 미쳤고 자손이 죽임을 당하여 끊겼으니 이는 천하 사람들이 함께 본 것입니다.
이것이 분명한 효험과 큰 징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의 말에 이르기를 ‘말을 듣는 방법은 반드시 그 일을 가지고 살펴보면 말하는 자가 감히 망언妄言을 못한다.’ 하였으니,
지금 혹 예의禮義법령法令만 못하고 교화敎化형벌刑罰만 못하다고 말하거든 임금께서는 어찌 의 일을 끌어다가 살펴보지 않으십니까.
임금의 존엄함은 비유하면 과 같고 여러 신하들은 뜰과 같고 여러 서민庶民들은 땅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뜰의 아홉 계단注+[頭註]구급九級구등九等이니, 천자天子은 9척이고 제후諸侯는 7척이고 대부大夫는 5척이고 는 3척이다. 위에 지붕의 모서리가 땅에서 멀면 이 높고, 뜰에 계단이 없어서 지붕의 모서리가 땅에서 가까우면 이 낮으니,注+[釋義]廉遠地則堂高……廉近地則堂卑: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서경書經》 〈고명顧命〉에 ‘두 계단의 섬돌에 좌우로 늘어섰다.’ 하였는데, 에 ‘의 모서리를 라 한다.’ 하였으니, 은 모서리이다. 《한서漢書》의 안사고顔師古에 ‘은 귀퉁이이다.’ 하였는데, 손씨孫氏(孫奕의 시아편示兒編)가 말하기를 ‘안사고顔師古를 살펴보면 은 귀퉁이(모서리)인 바, 귀퉁이가 땅에서 가까운 것을 가지고 귀퉁이가 땅에서 먼 것과 상대하여 말하였으니, 귀퉁이에는 이른바 위와 아래라는 것이 없다. 마땅히 폐구급상陛九級上에서 를 떼어 읽어야 한다. 근세에 태학太學에서 「上廉이 땅에서 멀면 이 높다.[上廉遠地則堂高]」는 것을 의 제목으로 내었으니, 어찌 한때에 토론하지 않은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그러나 소식蘇軾의 글에 이르기를 ‘아랫목의 모서리가 멀면 과 섬돌이 높다.’ 하였고, 임월林鉞의 《한준漢雋》에도 이르기를 ‘모서리가 땅에서 멀면 이 높다.’ 하여, 모두 상렴上廉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높은 것은 오르기가 어렵고 낮은 것은 능멸하기 쉬우니, 이는 이치와 형세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날 성왕聖王등렬等列(등급과 반열)을 제정해서 안으로는 대부大夫를 두고 밖으로는 을 두었으며, 그런 뒤에 관사官師소리小吏를 두었고 서인庶人에게까지 미쳐서, 등급이 분명하고 천자天子가 그 위에 더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존엄함에 미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쥐에게 물건을 던지고자 하나 그릇을 깰까 꺼린다.’ 하였으니, 이는 좋은 비유입니다.
쥐가 그릇에 가까이 있어도 오히려 꺼려서 물건을 던지지 아니하여 그 그릇을 상할까 두려워하는데, 하물며 군주君主에게 가까이 있는 귀한 신하에 있어서이겠습니까.
염치廉恥예절禮節군자君子를 다스리므로 사사賜死함은 있어도 죽이고 욕보임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자자刺字하고 코 베는 죄가 대부大夫에게 미치지 않는 것이니,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은 얼굴에 문신하는 것이요, 는 코를 베는 것이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에 이르기를 ‘형벌은 대부大夫에까지 올라가지 않는다.’ 하였는데, 에 ‘현자賢者를 법을 범함에 참여하지 않게 한 것이다. 법을 범하면 팔의八議경중輕重을 논하고 형법서刑法書에 나와 있지 않다. 이 예이다.’ 하였다. 《대대례大戴禮》에 ‘염유冉有공자孔子께 묻기를 「先王이 법을 만들 때에 형벌이 위로 대부大夫에게 미치지 않게 하였으니, 그렇다면 대부大夫가 죄를 범하면 형벌을 가할 수 없습니까?」 하니,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그렇지 않다. 무릇 군자君子를 다스릴 때에는 로써 그 마음을 제어하니, 이는 염치廉恥의 일을 장려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에 대부大夫가 청렴하지 못하여 더럽고 탐욕스러운 죄에 걸려 추방당한 자가 있으면 청렴하지 못하여 더럽고 탐욕스럽다고 말하지 않고 보궤簠簋(禮器)가 정돈되지 못했다고 하며, 음란하여 남녀간에 분별이 없는 죄에 걸린 자가 있으면 음란하여 남녀간에 분별이 없다고 말하지 않고 유박帷薄(휘장)이 닦여지지 못했다고 하며, 윗사람을 기망欺罔하여 충성스럽지 않은 자가 있으면 윗사람을 기망하여 충성스럽지 않다고 말하지 않고 신하의 절개가 드러나지 못했다고 하며, 연약하고 무능하여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죄에 걸린 자가 있으면 연약하고 무능하여 임무를 감당하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고 부하 관원들이 직책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하며, 국가의 기강을 범한 죄에 걸린 자가 있으면 국가의 기강을 범했다고 말하지 않고 일을 행함에 묻지 않았다고 하니, 이 다섯 가지는 죄인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다.」 했다.’ 하였다.” 이 내용은 또 《공자가어孔子家語》 〈오형편五刑篇〉에 보인다. 이는 주상主上과의 거리가 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들으니 ‘신발이 비록 고우나 베개 위에 올려놓지 않고, 이 비록 해졌으나 신발의 깔창으로 삼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일찍이 이미 귀하고 총애받는 지위에 있어서 천자天子가 용모를 고쳐 예모禮貌로 대했었고, 관리와 백성들이 일찍이 그 앞에 엎드려 존경하고 두려워했었으니, 이제 만일 허물이 있으면 황제皇帝께서 버리시는 것도 괜찮고 물러나게 하시는 것도 괜찮으며, 사약을 내리시는 것도 괜찮고 삼족三族을 멸하시는 것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그를 속박하고 동여매어서注+[釋義]일본一本에는 로 되어 있으니, 긴 노끈을 가지고 이어 묶음을 이른다. 사구司寇에게 보내고注+[釋義]사구司寇는 2년의 형벌이니, 사구司寇에 실려가서 일하므로 사구司寇라 이름한 것이다. 혹은 ‘수지사공輸之司空’으로 되어 있다. 《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종정宗正속관屬官 중에 좌우도사공左右都司空이 있고 상림上林수사공水司空이 있으니, 모두 죄수罪囚도역徒役을 맡은 관원이다. 도관徒官에 편입시켜,注+[釋義]는 죄를 짓고 실려가서 일하는 자를 이르고, 은 이름을 장부에 차례로 적음을 이른다. 사구司寇와 낮은 관리들이 꾸짖으며 매질을 하니, 이것은 자못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낮고 천한 자들이 ‘존귀한 자도 하루아침에 〈죄를 지어 벌을 받게 되면〉 나도 마침내 이것(모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을 익숙히 아니, 이것은 높은 사람을 높이고 귀한 사람을 귀하게 대우하는 교화敎化가 아닙니다.
옛날에 대신大臣이 청렴하지 못한 죄에 걸려서 버려진 자를 청렴하지 못하다고 말하지 않고 ‘보궤簠簋가 정돈되지 못했다’고注+[釋義]는 모두 예식禮式에 사용하는 그릇이다. 는 밖은 네모지고 안은 둥그니 벼와 기장을 담고, 는 밖은 둥글고 안은 네모지니 서직黍稷을 담는다. 모두 뚜껑이 있으니, 모양이 거북과 비슷하다. 는 음이 보이고 는 음이 궤이다. 정제整齊(정돈)함이다. 하며,
더럽고 음란하여 남녀간에 분별이 없는 죄에 걸린 자를 더럽고 지저분하다고 말하지 않고 ‘유박帷薄(휘장)이 닦여지지 못했다’고注+[釋義]는 휘장이고, 일본一本에는 으로 되어 있으니 주렴이다. 《풍속통風俗通》에 “경대부卿大夫는 장막을 사용하고 는 주렴을 사용하니, 스스로 가리고 수리하는 것이다.” 하였다. 하며,
연약하고 무능하여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죄에 걸린 자를 연약하고 무능하다고 말하지 않고 ‘부하 관원들이 직책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귀한 대신大臣들이 참으로 그 죄가 있더라도 오히려 지적하여 바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염치廉恥예의禮義를 베풀어 신하를 대우하는데도 신하가 충절忠節의 행실로 그 임금에게 보답하지 않는 자는 사람의 무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교화敎化가 이루어지고 풍속風俗이 정해지면 신하된 자가 모두 행실을 돌아보고 이익을 잊으며 절개를 지키고 를 지킵니다.
그러므로 신하에게 제어하지 못할 권한을注+[頭註]군주를 생각하고 자신을 잊으며 나라를 걱정하고 자신의 집안을 잊어서, 권력을 맡길 만하여 굳이 다시 제어할 것이 없음을 말한다. 맡길 수 있고 6척의 고아孤兒를 부탁할 수가 있는 것이니, 이는 염치廉恥를 장려하고 예의禮義를 행한 소치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지 않고注+[釋義]과 같으니, 어찌하여 쥐를 잡으려 하여도 그릇을 깰까 염려하는 (군주를 가까이 모시는 귀한 신하를 예우하는 법)을 만들지 않고, 도리어 저 뜰의 계단이 없는 일(上下의 구분이 없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는 일)을 오랫동안 행하느냐고 말한 것이다. 도리어 저것을 오랫동안 행하시니, 그러므로 길게 탄식할 만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注+[釋義]동래여씨東萊呂氏(呂祖謙)가 말하였다. “통곡할 만한 것이 한 가지라는 것은 제후諸侯들이 강대强大함을 이르고, 눈물을 흘릴 만한 것이 두 가지라는 것은 흉노匈奴가 거만하고 업신여기는데 제어할 수 있는 계책이 있으나 쓰지 않음을 이르고, 길게 탄식할 만한 것이 여섯 가지라는 것은 역사책에 보이는 것은 세 가지만 있으니, 풍속을 바꾸고 태자太子를 가르치고 대신大臣들을 로 대우하는 것이다.”
가의賈誼강후絳侯가 전에 체포되어 옥에 갇혔을 때에 끝내 사실이 없었으므로 이것을 가지고 에게 풍자한 것인데, 이 그 말을 깊이 받아들여서 신하를 기름에 예절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후에는 대신大臣이 죄가 있으면 모두 자살하고 형벌을 받지 않았다.
- 《한서漢書가의전賈誼傳》에 나옴 -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에 말하였다.
유향劉向가의賈誼를 칭찬하여 ‘삼대三代나라의 치란治亂을 말한 뜻은 그 의논이 매우 아름답고 국가의 체통體統을 통달하였으니, 비록 옛날의 이윤伊尹관중管仲이라도 그보다 크게 뛰어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하였으니,
만일 당시에 등용되었다면 교화敎化가 반드시 훌륭하였을 터인데, 용렬한 신하에게 방해를 당하였으니, 매우 애통하다.
살펴보면 효문제孝文帝가 침묵하고 몸소 실천하여 풍속風俗을 바꾸었으니, 가의賈誼가 아뢴 것이 대략 시행되었다 할 것이다.
제도制度를 개정하고자 할 때에 나라를 토덕土德이라 하여 색깔은 황색을 숭상하고 는 5를 사용하였으며, 또 속국屬國을 시험하고자 해서 다섯 가지 미끼와 세 가지 注+[附註]남의 모습을 사랑하고 남의 기예技藝를 좋아함은 요, 을 큰 조행操行으로 여김은 떳떳한 요, 사랑함에 진실이 있고 이미 허락한 것을 실천할 수 있으면 열 번 죽고 한 번 살더라도 저들이 장차 반드시 올 것이니, 이것이 세 가지 이다. 성복盛服과 수레와 말을 주어서 그 눈을 파괴하고, 아름다운 음식과 진귀한 맛으로 그 입을 파괴하고, 음악과 부인으로 그 귀를 파괴하고, 높은 과 깊은 집과 창고와 노비로 그 배를 파괴하고, 와서 항복하는 자들을 황제가 불러 총애해서 즐겁게 하고 친히 술을 따르며 손수 먹여 주어서 그 마음을 파괴하는 것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 미끼이다. 시행하여 선우單于를 속박하려 하였으니, 그 방법이 진실로 너무 소략하다.
가의賈誼가 천수로 일찍 죽어 공경公卿의 지위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불우함이 되지 않는다.”
양심오씨養心吳氏가 말하였다.
“《한서漢書》 〈가의전賈誼傳〉을 살펴보면 가의賈誼가 뒤에 양회왕梁懷王태부太傅가 되었는데 회왕懷王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가의賈誼는 자신이 사부師傅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함을 서글퍼하여 항상 울다가 한 해 남짓만에 또한 죽었다.
왕안석王安石에 이르기를 ‘회왕懷王이 스스로 말에서 떨어져 죽자 태부太傅가의賈誼는 슬퍼하여 죽음에 이르렀네.
옛사람은 한 군주를 섬겨 직책을 다하였으니 어찌 감히 구차한 짓을 하였겠는가.
죽은 이를 위하여 곡하는 것이 산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니 내 마음 진실로 속이지 않노라.
도도滔滔한 사람들 명성과 이익을 쫓으니 강후絳侯관영灌嬰이 어찌 알겠는가.[懷王自墮馬 賈傅至死悲 古人事一職 豈敢苟然爲 哭死非爲生 吾心良不欺 滔滔聲利間 絳灌亦何知]’ 하였다.
동파東坡는 말하기를 ‘가생賈生(賈誼)과 같은 자는 나라 문제文帝가생賈生을 쓰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가생賈生나라 문제文帝를 쓰지 못한 것이다.
강후絳侯는 직접 천자天子옥새玉璽를 잡고서 문제文帝에게 주었고 관영灌嬰은 수십만의 병력을 연합하여 유씨劉氏여씨呂氏웅자雄雌을 결단하였으며 또 모두 고제高帝의 옛 장수이니, 군신간君臣間의 친분이 어찌 다만 부자간父子間골육간骨肉間수족手足과 같을 뿐이었겠는가.
가생賈生낙양洛陽소년少年이었는데 하루아침에 옛 신하들을 다 버리고 새로운 것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또한 이미 어려운 것이다.
가생賈生의 입장에서는 위로는 군주의 신임을 얻고 아래로는 대신大臣들의 도움을 얻어서 강후絳侯관영灌嬰 같은 무리와 오랫동안 교유하고 서서히 친하여 깊이 맺어서 천자天子가 의심하지 않고 대신大臣이 시기하지 않게 한 뒤에야 온 천하의 일을 오직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니, 이렇게 하였으면 10년을 지나지 않아 뜻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어찌 당장 말하는 사이에 대번에 남을 위하여 통곡할 만한 일이 있다고 한단 말인가.
그가 상수湘水를 지나다가 를 지어서 굴원屈原을 조문한 것을 보면 답답한 마음과 울분을 품어서 멀리 떠나가려는 뜻이 있었는데, 그 뒤에 끝내 스스로 서글퍼하여 통곡하고 울다가 요절함에 이르렀으니, 이는 또한 곤궁함에 잘 대처하지 못한 것이다.
계책이 한번 쓰이지 못한다 하더라도 어찌 끝내 다시 쓰이지 못할 줄을 알겠는가.
묵묵히 변화하기를 기다릴 줄 모르고 스스로 몸을 해쳐서 죽음에 이르렀으니, 아 가생賈生은 뜻이 크나 국량이 작고 재주가 유여하나 식견이 부족하였다.’ 하였다.
이에 대하여 동래선생東萊先生은 이르기를 ‘왕씨王氏소씨蘇氏 두 사람의 을 관찰하면 가생賈生의 순수함과 병통을 볼 수 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 에
역주2 下風 : 바람의 아랫 방면에 있는 것으로, 높은 사람에 대한 겸칭이다.
역주3 樹國 固必相疑之勢 : ‘樹國固必相疑之勢’로 구두를 떼어 ‘제후의 나라를 견고한 곳에 세우면 그 형세가 반드시 진실로 서로 의심하게 된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역주4 髖髀 : 관폐
역주5 : 치
역주6 : 고
역주7 : 懸
역주8 : 열
역주9 : 체
역주10 皂綈 : 조제
역주11 : 얼
역주12 : 천
역주13 耰鉏 : 우서
역주14 : 쇄
역주15 : 건
역주16 筐篋 : 광협
역주17 四維 : 禮‧義‧廉‧恥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네 가지 기강임을 말한 것이다.
역주18 六親 :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父‧母‧兄‧弟‧妻‧子를 이르며 모든 친척의 대명사로 쓰인다.
역주19 : 폭
역주20 : 현
역주21 三公, 三少 : 三公은 太師‧太傅‧太保를 이르고 三少는 少師‧少傅‧少保를 이른다.
역주22 : 의
역주23 : 예
역주24 : 관
역주25 孔子曰……必也使無訟乎 : 이 내용은 《論語》 〈顔淵篇〉에 보인다.
역주26 : 사
역주27 官師 : 작은 관청의 우두머리를 이른다.
역주28 黥劓 : 경의
역주29 八議 : 단죄할 적에 형벌을 감해 주는 여덟 가지 조목으로, 議親, 議故, 議賢, 議能, 議功, 議貴, 議勤, 議賓을 이른다.
역주30 : 저
역주31 : 설
역주32 簠簋 : 보궤
역주33 罷軟 : 피연
역주34 可以寄六尺之孤 : 六尺之孤는 임금이 나이가 어려서 자립하지 못함을 이르는 바, 《論語》 〈泰伯篇〉에 보인다.
역주35 此之不爲 而顧彼之久行 : 이것이란 禮義와 廉恥로 신하를 대우함을 이르고, 저것이란 귀한 大臣을 욕보임을 이른다. 顧는 도리어의 뜻이다.
역주36 東坡曰 : 養心吳氏가 東坡의 〈賈誼論〉을 인용하면서 생략한 부분이 많으므로 《東坡全集》을 참고하여 〈 〉를 하고 생략된 부분을 보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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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묘]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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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정묘] 6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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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묘] 6년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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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정묘] 6년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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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묘] 6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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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정묘] 6년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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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정묘] 6년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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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묘] 6년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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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정묘] 6년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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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묘] 6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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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정묘] 6년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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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정묘] 6년 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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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정묘] 6년 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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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정묘] 6년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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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정묘] 6년 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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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정묘] 6년 453

통감절요(2)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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