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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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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酉]二十五年이라
馬援 至臨鄕하야 擊破蠻兵하고 斬獲二千餘人하다
兄子嚴, 敦 竝喜譏議하고 通輕俠注+[頭註] 去聲이니 不持重也 俠之言이니 以權力俠輔人者이어늘 前在交趾하야 遺書戒之曰
吾欲汝曹 聞人過失 如聞父母之名하야 耳可得聞이언정 口不可得言也하노라
好議人長短하며 妄是非政法 此吾所大惡也 寧死언정 不願聞子孫有此行也하노라
龍伯高注+[頭註]山都長龍述이라 敦厚周愼하야 口無擇言하며 謙約節儉하고 廉公有威하니 吾愛之重之하야 願汝曹效之하노라
杜季良注+[頭註]越騎司馬杜保 豪俠好義하야 憂人之憂하고 樂人之樂하야 父喪致客 數郡 畢至하니 吾愛之重之어니와 不願汝曹效也하노라
效伯高不得이라도 猶爲謹勅之士 所謂刻鵠不成이라도 尙類注+[通鑑要解] 胡沃反이니 鳥名이라 亡遇, 莫卜二切이니 可畜而不能高飛者鴨이요 野生而高飛者鶩也者也어니와
效季良不得이면 陷爲天下輕薄子하리니 所謂畫虎不成이면 反類狗者也니라
在交趾 常餌薏苡注+[釋義]藥名이라 味甘微寒하고 主風濕瘴下氣하니 久服하면 輕身延年이라하야 能輕身勝瘴氣
軍還 載之一車러니 及卒後 有上書譖之者注+[附註]虎賁中郞將梁松 拜床下어늘 援不答하니 松意不平하다 杜保仇人 上書訟保爲行浮薄하야 亂群惑衆일새 馬援 萬里遣書하야 戒兄子라하니 而梁松以之交結이라 帝召松하야 以訟書及援戒書示之한대 松叩頭流血하야 得不罪하고 詔免保官하다 어늘 帝使梁松責問援하고 因代監軍이러니 會援卒이라 松遂構陷援하니 帝怒하야 追收援新息侯印綬하니라 又有譖其明珠文犀者한대 帝乃益怒러니 因朱勃之諫하야 稍解하니라하야 以爲前所載還 皆明珠文犀注+[釋義] 南徼外獸 爾雅註 形似水牛하니 猪頭二角이니 一在頂하고 一在鼻 文犀 卽通天犀 角上白縷 直至端이라라한대 帝怒하니
妻孥注+[釋義] 子孫也惶懼하야 不敢以喪還舊塋하고 槀葬注+[釋義]猶言草葬이니 草草(言)[其]葬也城西하다
〈以上出援本傳〉
[史略 史評]胡氏曰
光武平日 料敵制勝 明見萬里之外러니 乃於此擧 屢失事宜하니 得非春秋旣高하야 智有所困邪
不然이면 有臣如援而不保令終하니 其爲君德之累 豈小小哉


건무建武 25년(기유 49)
마원馬援의 군대가 임향臨鄕에 이르러서 만군蠻軍을 격파하고 2천여 명을 베거나 사로잡았다.
마원馬援의 형의 아들인 이 모두 비판하고 논평하기를 좋아하고 경박한 협객俠客들과 교제하였는데,注+[頭註]거성去聲이니 몸가짐이 진중하지 못한 것이요, 이니 권세와 힘으로써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마원馬援이 전에 교지交趾에 있으면서 글을 보내어 이들을 경계하였다.
“나는 너희 무리들이 남의 과실을 들으면 부모의 이름을 들은 것처럼 하여 귀로는 얻어 들을지언정 입으로는 말하지 않기를 바라노라.
남의 장단점을 논평하기를 좋아하며 정사政事을 함부로 시비함은 내가 크게 싫어하는 바이니, 차라리 죽을지언정 자손 중에 이러한 행실이 있다는 말을 듣기를 원하지 않노라.
용백고龍伯高注+[頭註]용백고龍伯高산도장山都長 용술龍述이다. 는 돈후하고 치밀하고 삼가서 입에 가릴 말이 없으며 겸약謙約하고 절검節儉하며 청렴하고 공정하고 위엄이 있으니, 나는 그를 애지중지하여 너희들이 본받기를 원하노라.
두계량杜季良注+[頭註]두계량杜季良월기사마越騎司馬 두보杜保이다.은 호협하여 를 좋아해서 남의 근심을 근심하고 남의 즐거움을 즐거워하여 〈청류淸流(좋은 사람)에게나 탁류濁流(나쁜 사람)에게나 잃은 바가 없어서〉 아버지의 초상에 조문객이 옴에 몇 고을이 모두 왔으니, 나는 그를 애지중지하지만 너희들이 본받기를 원하지는 않노라.
용백고龍伯高를 본받다가 되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삼가고 조심하는 선비가 될 것이니, 이른바 ‘고니를 조각하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오히려 오리를 닮는다.’注+[通鑑要解]刻鵠不成 상류목尙類鶩:은 胡沃反(혹)이니 새 이름이다. 이 亡遇切(무) 또는 莫卜切(목)이니, 집에서 기를 수 있고 높이 날지 못하는 것은 이고, 야생이고 높이 날 수 있는 것은 이다. 는 것이다.
두계량杜季良을 본받다가 되지 못하면 빠져서 천하의 경박한 사람이 될 것이니, 이른바 ‘호랑이를 그리다가 이루지 못하면 도리어 개를 닮는다.’는 것이다.”
처음에 마원馬援교지交趾에 있을 때에 항상 의이薏苡(율무)注+[釋義]의이薏苡는 약 이름이다. 맛이 달고 약간 차며 풍습風濕장독瘴毒을 주로 치료하고 기운을 내리게 하니, 오랫동안 복용하면 몸을 가볍게 하고 수명을 연장한다. 열매를 먹어서 몸을 가볍게 하고 장기瘴氣를 이겨냈다.
군대가 돌아올 때에 이것을 한 수레에 가득히 싣고 왔는데, 그가 죽은 뒤에 글을 올려 참소하는 자가 있어서注+[附註]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 양송梁松평상平床 아래에서 마원馬援에게 절하였으나 마원馬援이 답례하지 않으니, 양송梁松이 불평하는 마음이 있었다. 마침 두보杜保(杜季良)의 원수가 글을 올려 고발하기를 “두보杜保가 행실이 경박하여 사람들을 어지럽히고 무리를 미혹시키므로 마원馬援이 만 리 먼 곳에서 글을 보내어 형의 아들을 경계했다.” 하였는데, 양송梁松두보杜保와 교분을 맺었다. 황제가 양송梁松을 불러 고발한 글과 마원馬援이 조카들을 경계한 편지를 보여 주었다. 양송梁松은 머리를 땅에 찧어 피가 흐르도록 사죄하여 죄를 받지 않게 되었고, 황제가 명하여 두보杜保의 벼슬을 면직하였다. 마원馬援무릉만武陵蠻을 토벌할 때에 경서耿舒와 공격로를 다투어 경서耿舒마원馬援을 참소하니, 황제가 양송梁松으로 하여금 마원馬援을 문책하게 하고 인하여 대신 감군監軍으로 삼았는데, 마침 마원馬援이 죽었다. 양송梁松이 마침내 마원馬援을 모함하니, 황제가 노하여 마원馬援의 봉호인 신식후新息侯인수印綬를 뒤따라 환수하게 하였다. 또 마원馬援교지交阯에서 명주明珠문서文犀를 실어왔다고 참소하는 자가 있자, 황제가 이에 더욱 노여워하였는데, 주발朱勃의 간언으로 인하여 다소 노여움이 풀렸다. 이르기를 “지난번 수레에 가득히 싣고 온 것이 모두 명주明珠문서文犀(무늬있는 서각犀角)注+[釋義]는 남쪽 변방 밖에 있는 짐승이다. 《이아爾雅》의 에 “모습이 물소와 비슷하니, 돼지머리에 뿔이 둘인데 하나는 정수리에 있고 하나는 코에 있다.” 하였다. 문서文犀는 바로 통천서通天犀이니, 뿔 위에 있는 흰 선이 곧바로 끝에 이른다. 입니다.”라고 하자, 황제가 노하였다.
마원馬援의 아내와 자손子孫注+[釋義]자손子孫이다. 은 황송하여 감히 옛 고향의 선산先山으로 돌아가 장례하지 못하고 서쪽에 박장薄葬注+[釋義]고장槀葬초장草葬이란 말과 같으니, 장례를 매우 간략히 치르는 것이다. 하였다.
- 이상은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옴 -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광무제光武帝가 평소 적을 헤아려 승기勝機를 잡을 때에는 만 리 밖을 밝게 보았는데, 마침내 이 일에 있어서는 일의 마땅함을 여러 번 잃었으니, 춘추春秋(연세)가 높아서 지혜가 곤궁한 바가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마원馬援과 같은 신하가 있었는데도 끝을 잘 마침을 보호하지 못하였으니, 군주의 에 누가 됨이 어찌 작겠는가?”


역주
역주1 龍伯高 : 伯高는 龍述의 字이다.
역주2 : 목
역주3 及援討武陵蠻……譖之 : 馬援이 武陵蠻을 토벌할 때에 공격로가 둘이 있었는데, 壺頭로 가면 거리는 가까우나 물길이 험하고, 充道로 가면 길은 평탄하나 멀어서 물자를 운반하기에 불편하였다. 耿舒가 充道로 가려고 하자, 馬援이 이르기를 “날짜를 허비하고 식량을 소모하니 壺頭로 진격하여 적의 목줄기를 조르는 것만 못하다.” 하고 이 일을 上言하니, 황제가 馬援의 계책을 따랐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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