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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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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午] 〈宋元嘉七年이요 魏神䴥三年이라
宋主有恢復注+[頭註] 大也河南之志
三月 詔簡甲卒五萬注+[頭註] 與揀通이라하야 給右將軍到彦之하고 遣使告魏主曰 河南 舊是宋土러니 이라
今當修復舊境하리니 不關河北이니라 魏主大怒曰 我生髮未燥注+[釋義] 乾也하야 已聞河南是我地어늘 此豈可得이리오
必若進軍인대 今當權斂戍注+[通鑑要解]魏主大怒하야 欲擊之어늘 浩乃陳天時不利하야 하니 明君 順三才而發之 故萬全云云하니 當權斂戍也라하니라相避라가 須冬寒地凍注+[頭註] 待也하고 河冰堅合하야 自更取之호리라
到彦之自淮入泗하야 至須昌하야河西上注+[原註]逆流而上曰泝한대
魏主以河南四鎭注+[頭註]碻磝, 滑臺, 洛陽, 虎牢兵少라하야 命諸軍하야 收衆北渡하니 碻磝, 滑臺, 洛陽, 虎牢戍兵 皆棄城去
於是 司兗 旣平이어늘 諸軍 皆喜호되 王仲德 獨有憂色하야 曰 諸賢 不諳北土情僞하니 必墮其計하리라
虜雖仁義不足이나 而凶狡有餘注+[原註] 狡獪也하니 今斂戍北歸 必幷力完聚
若河冰旣合이면 將復南來하리니 豈可不以爲憂乎
[新增]胡氏曰
王仲德 身爲副帥하니 見可知難하야 進退在己者也 知其不可 則宜遍白諸將하고 悉以上聞이라
文帝 親決萬機하고 又非昏主 固可爲忠言者
使之知彼己形勢하야 早爲善後之圖 斯不負委寄之意矣어늘 乃私言之하고 而不告于上하야 知難而不退하야 竟以取敗하니 非忠臣也니라
十月 宋到彦之等 沿河置守어늘 魏河北諸軍 會於七女津하야 進攻虎牢拔之하니 尹沖及滎陽太守崔模 降魏하다
○ 十一月 加檀道濟都督征討諸軍事하야 帥衆伐魏하니 魏長孫道生等 引兵而南이라
到彦之 聞洛陽, 虎牢不守하고 引兵還하니 靑, 兗 大擾
彦之坐免官하다


경오(430) - 나라 원가元嘉 7년이고, 나라 신가神䴥 3년이다. -
송주宋主하남河南 지방을 회복注+[頭註]는 큼이다. 할 뜻이 있었다.
3월에 명하여 갑졸甲卒 5만 명을 선발注+[頭註]간자簡字간자揀字와 통한다. 하여 우장군右將軍 도언지到彦之에게 주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위주魏主에게 고하기를 “하남河南은 예로부터 나라 영토였는데 중간에 저들에게 침략을 당하였다.
이제 마땅히 옛 영토를 수복하려는 것일 뿐이니, 너희 하북河北의 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하니, 위주魏主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내가 태어나서 머리털이 채 마르기注+[釋義]는 마름이다. 전부터 이미 하남河南은 우리 영토라고 들었는데, 이제 와서 어찌 얻을 수 있겠는가.
만약 저들이 반드시 진군하여 공취攻取하려 한다면 이제 마땅히 우리는 잠시 지키는 병사들을 거두어注+[通鑑要解]나라 태무제太武帝가 크게 노하여 나라를 공격하려 하자, 최호崔浩가 마침내 아뢰기를 “천시天時가 불리하여 진군進軍하면 다섯 가지 패할 징조가 있으니, 현명한 군주는 삼재三才를 따라 행하므로 만전萬全한 것입니다. …… 이제 마땅히 지키는 병사들을 잠시 거두십시오.” 하였다. 피했다가 겨울철에 날씨가 추워져서 땅이 얼고 하수河水에 얼음이 단단히 얼기를 기다려注+[頭註]는 기다림이다. 그때 다시 공취攻取하겠다.” 하였다.
도언지到彦之회수淮水로부터 사수泗水로 들어가 수창須昌에 이르러서 마침내 황하黃河를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갔다.注+[原註]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라 한다.
위주魏主하남河南의 네 진영注+[頭註]확오碻磝활대滑臺낙양洛陽호뢰虎牢이다. 에 병력이 적다고 해서 제군諸軍에 명하여 무리를 거두어 북쪽으로 건너오게 하니, 확오碻磝활대滑臺낙양洛陽호뢰虎牢를 지키던 병사들이 모두 을 버리고 떠났다.
이에 사주司州연주兗州가 이미 평정되자 제군諸軍이 모두 기뻐하였으나 왕중덕王仲德만은 홀로 근심하는 기색을 띠며 말하기를 “제현諸賢은 북쪽 지방 사람의 진위眞僞(사정)를 알지 못하니, 반드시 그들의 계책에 넘어갈 것이다.
오랑캐들이 인의仁義는 부족하나 흉악하고 교활함注+[原註]는 교활함이다.은 충분하니, 이제 저들이 지키는 병사들을 거두어 북쪽으로 돌아가는 것은 반드시 힘을 합하고 한군데로 모이는 것이다.
만약 황하에 얼음이 얼고 나면 장차 다시 남쪽으로 내려올 것이니, 어찌 이것을 근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왕중덕王仲德부원수副元帥의 몸으로 가능함을 보면 전진하고 어려움을 알면 후퇴하여 전진하고 후퇴함이 자기에게 달려 있는 자였으니, 싸움이 불가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마땅히 여러 장수들에게 두루 아뢰고 모두 다 임금에게 보고했어야 한다.
문제文帝는 직접 만기萬機를 결단하였고 또 어두운 군주가 아니었으니, 진실로 충언忠言을 올릴 수 있는 자였다.
문제文帝로 하여금 피아彼我의 형세를 알게 해서 뒷갈망을 잘할 계책을 일찍 세우게 했더라면 임무를 맡기고 부탁한 뜻을 저버리지 않았을 터인데, 마침내 사사로이 말하고 군주에게는 아뢰지 않아 어려움을 알고도 후퇴하지 않아서 끝내 패망함을 취하였으니, 충신이 아니다.”
10월에 나라 도언지到彦之 등이 황하黃河를 따라 수비하는 병력을 배치하였는데, 나라 하북河北의 여러 군사들이 칠녀진七女津에 집결해서 호뢰虎牢로 진격하여 함락시키니, 윤충尹沖형양태수滎陽太守 최모崔模나라에 항복하였다.
○ 11월에 나라가 단도제檀道濟에게 도독정토제군사都督征討諸軍事를 가하여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공격하게 하니, 나라 장손도생長孫道生 등이 군대를 이끌고 황하黃河를 건너 남쪽으로 갔다.
도언지到彦之낙양洛陽호뢰虎牢가 지켜지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오니, 청주靑州연주兗州가 크게 소요하였다.
도언지到彦之가 죄에 걸려 면직되었다.


역주
역주1 中爲彼所侵 : 營陽王 景平 元年(423)에 宋나라 군대가 대패하여 河南 일대를 魏나라에게 뺏긴 일을 가리킨다.
역주2 進兵有五敗 : 魏나라 崔浩가 말하기를 “이제 해로운 기운이 揚州(宋나라 지역)에 있는 것이 첫 번째요, 庚午年의 庚午는 庚의 金과 午의 火가 스스로를 刑殺하는 형상이어서 멀리 출동하는 자가 해로운 것이 두 번째요, 日食이 있어서 낮이 어둡고 별자리가 斗星과 牛星을 만난 것이 세 번째요, 熒惑星이 翼星과 軫星에 숨어 있는 바 이렇게 되면 혼란과 초상이 일어나는 것이 네 번째요, 太白星이 나오기 전에 進軍하면 패하는 것이 다섯 번째입니다. 나라를 융성하게 일으키는 현명한 군주는 먼저 人事(사람이 해야 할 일)를 닦고 그 다음에 地利를 다하고 나중에 天時를 관찰하기 때문에 만 번 일을 하면 만 번 온전한 것입니다. 지금 劉義隆(文帝)의 宋나라는 새로 세워진 나라여서 人事가 흡족하지 못하고, 災變이 자주 나타나서 天時가 좋지 못하고, 배를 타고 가는데 물이 말라 있어서 地利를 다하지 못한 것입니다. 天‧地‧人 세 가지 중에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는데 劉義隆이 이것을 행하니, 패할 것이 틀림없습니다.[今玆害氣在揚州一也 庚午自刑 先發者傷二也 日食晝晦 宿値斗牛三也 熒惑伏于翼軫 主亂及喪四也 太白未出 進兵者敗五也 夫興國之君 先修人事 次盡地利 後觀天時 故萬擧萬全 今劉義隆新造之國 人事未洽 災變屢見 天時不協 舟行水涸 地利不盡 三者無一可 而義隆行之 必敗無疑]” 하였다. 첫 번째 해로운 기운이 揚州에 있다는 것은 揚州는 12分野의 丑方(동남쪽)에 해당하는데 丑은 金庫이며 宋나라 元嘉 7년(430)은 庚午年인데 午는 火旺이니 火는 金을 해치기 때문이요, 두 번째 庚午日이 스스로 刑殺하는 형상이라는 것은 火가 金을 이기기 때문이요, 세 번째 日食이 있어서 낮이 어둡고 별자리가 斗星과 牛星을 만났다는 것은 元嘉 6년(429) 11월 초하루에 일식이 星紀의 분야에 있었고 28수 중에 斗星과 牛星을 만났기 때문이요, 네 번째 熒惑星이 翼星과 軫星에 숨어 있으면 혼란과 초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28수 중 翼星과 軫星은 楚나라(荊州)의 分野인데 熒惑星이 翼星과 軫星에 숨어 있으니 이렇게 되면 혼란과 초상이 일어난다고 하는 바 熒惑星은 벌을 주관하는 별이므로 이 별이 있는 나라는 재앙을 받아서 멸망하거나 침략을 받아 어지러워지기 때문이요, 다섯 번째 太白星이 나오기 전에 進軍하면 패한다는 것은 太白星이 전쟁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역주3 : 소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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