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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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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四年이라
春正月 南方 旱饑어늘 命左司郞中鄭敬等하야 爲江, 淮, 二浙, 荊, 湖, 襄, 鄂等道宣慰使하야 賑恤之注+[釋義] 止忍反이니 贍也 하다
將行할새 戒之曰 朕 宮中用帛一匹 皆籍其數로되 惟賙救注+[釋義] 之由反이니 賑贍也 百姓則不計費하노니
卿輩 宜(誠)[識]此意하야 勿效潘孟陽注+[頭註]憲宗 以孟陽으로 爲鹽鐵轉運副使러니 所至 留連倡樂하야 殫財酣飮하고 遊山寺하니라 飮酒遊山而已니라
〈潘孟陽傳〉
○ 上 欲革河北諸鎭世襲之弊注+[釋義] 因也 子孫 世世因祖父之爵土而有之也 하야 乘王士眞注+[頭註]成德節度使 하야 欲自朝廷除人하고 不從則興師討之러니
裴垍曰 李納 跋扈不恭注+[釋義]跋扈 音拔戶 跳梁也 一說 籬也 水居者 於水未至 爲扈하나니 水去 則大魚跋扈而出하고 小魚獨留也 하고 王武俊注+[頭註]士眞之父 有功於國이라
陛下前許師道注+[釋義] 容也 元年 李師古卒이어늘 其弟師道自立한대 杜黃裳 請乘其未定而分之러니 上以劉闢未平이라하야 遂容師道爲留後하니라[頭註] 師道 納之子 하시니 今奪承宗注+[頭註]士眞之子 이면 沮勸 違理하야 彼必不服이라하니
由是 議久不決이라
以問諸學士하니 李絳 對曰 河北 不遵聲敎하니 誰不憤歎이리오마는
然今日取之 或恐未能이요 成德軍 自武俊以來 父子相承四十餘年 人情貫(慣)習注+[釋義] 古患反이니 貫習 謂習熟也 하야 不以爲非어든
況承宗已摠軍務하니 一旦易之 恐未卽奉詔리이다
又范陽, 魏博, 易定, 淄靑注+[釋義]范陽 劉濟 魏博 田季安이요 易定 張茂昭 淄靑 李師道 以地相傳하야 與成德同體하니 彼聞成德除人이면 必內不自安하야 陰相黨助하리니 未可輕議니이다
〈出絳等傳〉
○ 時 吳少誠注+[頭註]彰義節度使也 卽淮西藩鎭也 病甚이어늘
李絳等 上言호되 少誠 病必不起하리니 淮西事體 與河北不同이라
四旁 皆國家州縣으로 不與賊隣하야 無黨援注+[通鑑要解] 音員이니 平聲이니 鉤援也 若救助 則于怨切이니 去聲이라 相助하니 朝廷命帥 今正其時
萬一不從이면 可議征討 願赦承宗하야 以收鎭冀之心하고 坐待機宜 必獲申蔡注+[頭註]有州三하니 曰申光蔡 之利하리이다
〈出本傳〉
○ 冬十月하야 削奪王承宗官爵하고 以左神策中尉吐突承注+[頭註]吐突 複姓이니 宦官也 爲招討處置等使하다
翰林學士白居易 上奏하야 以爲 國家征伐 當責成將帥어늘 近歲 始以中使爲監軍하니
自古及今 未有徵天下之兵하야 專令中使統領者也니이다
今神策軍 旣不置行營節度使하니 卽承璀乃制將也 又充諸軍招討處置使하니 卽承璀乃都統也
陛下忍令後代相傳云호되 以中官爲制將注+[通鑑要解]言諸軍進退 皆受制於承璀也 都統 自陛下始乎잇가
己亥 吐突承璀將神策兵하야 發長安할새 命恒州四面藩鎭하야 各進兵招討注+[通鑑要解] 擧也 하다
〈出居易傳及承璀傳〉


원화元和 4년(기축 809)
봄 정월에 남부 지방이 가물어 기근이 들자, 황제가 명하여 좌사낭중左司郞中 정경鄭敬 등을 , , 절동浙東, 절서浙西, , , , 선위사宣慰使로 임명하여 백성들을 구휼하게 하였다.注+[釋義]지인반止忍反(진)이니, 넉넉함이다.
이들이 장차 길을 떠나려 할 적에 이 경계하기를 “이 궁중에서 비단 한 필을 쓸 적에도 모두 그 숫자를 장부에 적지만 오직 백성을 구휼하는 것은注+[釋義]지유반之由反(주)이니, 구휼하는 것이다.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니,
경들은 마땅히 짐의 이러한 뜻을 알아서 반맹양潘孟陽注+[頭註]헌종憲宗반맹양潘孟陽염철전운부사鹽鐵轉運副使로 임명하였는데, 이르는 곳마다 머물면서 기생과 음악을 즐겨 재물을 탕진하고 술을 즐기며 산사山寺를 유람하였다. 술이나 마시고 산에 유람하기만 한 것을 본받지 말라.” 하였다.
- 《구당서舊唐書 반맹양전潘孟陽傳》에 나옴 -
하북河北 지방의 여러 군진軍鎭이 세습하는 폐단을 개혁하고자 하여注+[釋義]은 인습하는 것이니, 자손子孫들이 대대로 조부祖父의 작위와 토지를 물려받아 소유하는 것이다. 성덕군절도사成德軍節度使 왕사진王士眞注+[頭註]왕사진王士眞성덕군절도사成德軍節度使이다. 죽은 틈을 타 조정에서 사람을 보내 절도사節度使에 제수하고, 만약 조정의 명을 따르지 않으면 군대를 일으켜 토벌하고자 하였다.
배기裴垍가 말하기를 “이납李納발호跋扈하여 조정에 공손하지 않고,注+[釋義]발호跋扈는 음이 발호拔戶이니, 날뛰는 것이다. 일설一說에 “는 통발이니, 물가에 사는 자들이 큰물이 이르기 전에 통발을 만들어 놓는데, 큰물이 지나가면 큰 고기는 통발을 뛰어 나가고 작은 고기만 남는다.” 하였다. 왕무준王武俊注+[頭註]왕무준王武俊왕사진王士眞의 아버지이다. 국가에 공로가 있습니다.
폐하께서 지난번에 이사도李師道이사고李師古의 지위를 세습하도록 허락하셨으니,注+[釋義]는 허용하는 것이다. 원년元年(806)에 이사고李師古가 죽고 아우인 이사도李師道가 스스로 섰는데, 두황상杜黃裳이사도李師道가 안정되지 않았을 때를 틈타서 그의 권력을 분산시킬 것을 청하였으나 유벽劉闢이 아직 평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마침내 이사도李師道유후留後가 되도록 허용하였다. [頭註]이사도李師道이납李納의 아들이다. 이제 왕승종王承宗의 지위를 빼앗으면注+[頭註]왕승종王承宗왕사진王士眞의 아들이다. 저지하고 권면하는 것이 이치에 위배되어 저들이 반드시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의논이 오랫동안 결정되지 못하였다.
이 이것을 여러 학사學士들에게 물으니, 이강李絳이 대답하기를 “하북河北군진軍鎭은 폐하의 성교聲敎를 따르지 않으니, 누군들 분개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오늘날 하북河北을 점령하는 것은 혹 불가능할까 두려우며, 성덕군成德軍왕무준王武俊 이래로 부자父子가 서로 계승한 지가 40여년이라서 인정人情이 이미 익숙해져注+[釋義]고환반古患反(관)이니, 관습貫習은 익혀서 익숙함을 이른다. 이것을 잘못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더구나 왕승종王承宗군무軍務를 총괄하고 있으니, 하루아침에 그를 바꾸면 즉시 조령詔令을 따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범양范陽위박魏博역정易定치청淄靑注+[釋義]범양范陽, 위박魏博, 역정易定, 치청淄靑:범양군절도사范陽軍節度使유제劉濟이고, 위박군절도사魏博軍節度使전계안田季安이고, 역정군易定軍(義武軍)節度使는 장무소張茂昭이고, 치청군절도사淄靑軍節度使이사도李師道이다. 등의 군진軍鎭은 부자간에 서로 물려주어 성덕군成德軍과 사체가 서로 똑같으니, 저들이 성덕군成德軍에 다른 사람을 제수한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내심 스스로 불안해하여 은밀히 서로 이 되어 도울 것이니, 가볍게 의논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 《신당서新唐書 이강전李絳傳》 등에 나옴 -
이때 창의절도사彰義節度使 오소성吳少誠注+[頭註]오소성吳少誠창의군절도사彰義軍節度使이니, 창의彰義는 곧 회서淮西번진藩鎭이다. 병이 위독하였다.
이에 이강李絳 등이 상언上言하기를 “오소성吳少誠이 병이 들어 반드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회서淮西사체事體하북河北과 똑같지 않습니다.
사방이 모두 조정에서 통제하는 주현州縣으로서 반역한 자들과 이웃하고 있지 않아서 서로 도와줄 당과 원조가 없으니,注+[通鑑要解]은 음이 원이니 평성平聲이니 끌어당긴다는 뜻이요, 구원하여 도와준다는 뜻일 때에는 우원절于怨切(원)이니 거성去聲이다. 조정에서 회서淮西의 장수를 임명하는 것은 지금이 바로 그 시기입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복종하지 않으면 정토征討를 의논할 수 있으니, 바라건대 왕승종王承宗을 사면하여 진기鎭冀 지방의 민심을 수습하고 앉아서 적당한 기회를 기다리시면 반드시 신채申蔡(淮西) 지방의注+[頭註]회서淮西에는 세 가 있으니, 신주申州광주光州채주蔡州이다.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 《구당서舊唐書 이강전李絳傳》에 나옴 -
겨울 10월에 황제가 제서制書를 내려 왕승종王承宗의 관직과 작위를 삭탈하고 좌신책중위左神策中尉토돌승최吐突承璀注+[頭註]토돌吐突복성複姓이니, 환관이다. 초토처치등사招討處置等使로 임명하였다.
이에 한림학사翰林學士 백거이白居易상주上奏하여 아뢰기를 “국가의 정벌은 마땅히 장수에게 성공을 책임지워야 하는데, 근세에 처음으로 중사中使감군監軍으로 삼았습니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천하의 군사를 징발하여 오로지 중사中使로 하여금 통령統領하게 한 적은 없었습니다.
지금 신책군神策軍에 이미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를 두지 않았으니 그렇다면 토돌승최吐突承璀가 바로 제장制將인 것이요, 또 제군초토처치사諸軍招討處置使로 충원하였으니 그렇다면 토돌승최吐突承璀가 바로 도통都統인 것입니다.
폐하陛下께서는 어찌 차마 후대 사람들로 하여금 ‘중관中官으로써 제장制將도통都統을 삼은 것이注+[通鑑要解]제군諸軍이 진퇴할 때에 모두 토돌승최吐突承璀에게 제재를 받음을 말한다. 폐하陛下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서로 전하게 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기해일己亥日(27일)에 토돌승최吐突承璀신책군神策軍을 거느리고 장안長安을 출발할 적에 항주恒州(成德軍)의 사면四面에 있는 번진藩鎭에게 명을 내려 각각 군대를 조발調發하여 왕승종王承宗을 토벌하게 하였다.注+[通鑑要解]거병擧兵하는 것이다.
- 《구당서舊唐書》의 〈백거이전白居易傳〉과 〈토돌승최전吐突承璀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 최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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