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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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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午]五年이라 〈秦建元六年이라
○ 燕建熙十一年이라
○是歲 燕亡하니
正月 燕荊州刺史武威王 以洛陽降秦하다
六月 秦王堅 復遣王猛하야 督鎭南將軍楊安等하야 將步騎六萬하고 以伐燕하다
八月 燕主暐 命太傅上庸王評하야 將中外精兵三十萬하고 以拒秦하다
克壺關하니 所過郡縣 皆望風降附 燕人 大震이러라
黃門侍郞封孚 問司徒長史申胤曰 事將何如 胤歎曰 鄴必亡矣 吾屬 今玆將爲秦虜로다
이나 越得歲而吳伐之하야 卒受其禍注+[釋義]左傳昭三十二年 吳伐越한대 史墨曰 不及四十年하야 越其有吳乎인저 越得歲而吳伐之하니 必受其凶이라하니라 杜預註曰 此年 歲在星紀하니 星紀 吳, 越之分也 歲星所在 其國有福이어늘 吳先用兵故 反受其殃이라하더니 哀二十二年 越果滅吳하니라 索隱曰 天官占云 歲星 一曰應星이요 一曰經星이요 一曰紀星이라 歲星 東方木之精이니 蒼帝之象也 所在之國 不可伐이요 可以伐人이라하니라하니
今福德 在燕注+[釋義]福德 一曰德星이니 出於有道之國이라 索隱曰 德星 卽歲星이니 歲星所在 其國有福이니라하니 秦雖得志 而燕之復建 不過一紀耳라하더라
九月 秦王猛 進兵潞川하니 太傅評 以猛縣(懸)軍注+[通鑑要解] 與懸同이니 孤軍遠征하야 其勢懸絶하야 不能相及故 懸軍也深入이라하야 欲以持久制之어늘 陳於渭源而誓之하니 衆皆踊躍하야 破釜棄糧하고 大呼競進이라
燕兵 大敗하야 俘斬五萬餘人하고 乘勝追擊하니 所殺及降者 又十萬餘人이라
單騎走還鄴하니 秦兵 長驅而東하야 丁卯 圍鄴하다
十一月 秦王堅 自帥精銳十萬하고 赴鄴하다
戊寅 燕散騎侍郞餘蔚 夜開鄴北門하고 納秦兵하니 燕主暐 與上庸王評等으로 奔龍城이어늘
秦王堅 使遊擊將軍郭慶으로 追及於高陽하야 執以詣秦王堅하다
哀而釋之하고 令還宮하니 帥文武出降하고 諸州牧守及六夷注+[頭註]胡, 羯, 鮮卑, 氐, 羌, 巴蠻也 或曰 烏桓이요 非巴蠻也渠帥 盡降於秦하다
○ 十二月 秦王堅 遷慕容暐及王公百官 幷鮮卑四萬餘戶于長安한대
燕故太史黃泓 歎曰 燕必中興이니 其在吳王注+[通鑑要解]吳王 慕容垂인저
恨吾老하야 不及見耳라하더라
汲郡趙秋曰 天道在燕이어늘 而秦滅之하니 不及十五年하야 必復爲燕有하리라


태화太和 5년(경오 370) - 나라 건원建元 6년이다.
나라 건희建熙 11년이다.
○ 이해에 나라가 망하였다.
대국大國이 하나이고 소국小國이 둘이니, 참국僭國이 모두 셋이다. -
정월에 나라 형주자사荊州刺史 무위왕武威王 모용축慕容筑낙양洛陽을 가지고 나라에 항복하였다.
6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다시 왕맹王猛을 보내어 진남장군鎭南將軍 양안楊安 등을 독려해서 보병과 기병 6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치게 하였다.
8월에 연주燕主 모용위慕容暐태부太傅 상용왕上庸王 모용평慕容評에게 명하여 중외中外의 정예병 30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맞아 싸우게 하였다.
왕맹王猛호관壺關을 함락시키니, 지나는 곳의 군현郡縣들이 모두 기세만 보고도 항복하여 붙었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황문시랑黃門侍郞 봉부封孚사도장사司徒長史 신윤申胤에게 묻기를 “일이 장차 어떻게 되겠는가?” 하니, 신윤申胤이 탄식하며 말하기를 “업도鄴都가 반드시 망할 것이니, 우리들은 이제 나라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나라가 세성歲星을 얻었는데 나라가 정벌하여 끝내 그 를 받았다.注+[釋義]춘추좌전春秋左傳소공昭公 32년조年條나라가 나라를 정벌하자, 사묵史墨이 말하기를 “40년이 못 되어 나라가 나라를 소유할 것이다. 나라가 세성歲星을 얻었는데 나라가 정벌하니, 반드시 를 받을 것이다.” 하였다. 두예杜預에 이르기를 “이해에 세성歲星성기星紀에 있으니, 성기星紀의 분야이다. 세성歲星이 있는 곳에는 그 나라에 이 있는데, 나라가 먼저 군대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도리어 그 앙화殃禍를 받은 것이다.” 하였는데, 애공哀公 22년조年條나라가 과연 나라를 멸망시켰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말하였다. “《천관점天官占》에 이르기를 ‘세성歲星은 일명 응성應星이요, 일명 경성經星이요, 일명 기성紀星이다. 세성歲星동방東方 정기精氣이니, 창제蒼帝이다. 이 별이 있는 나라는 정벌할 수 없고, 이 나라가 다른 나라를 정벌할 수는 있다.’ 하였다.”
지금 복덕성福德星나라에 있으니,注+[釋義]복덕성福德星은 일명 덕성德星이니, 가 있는 나라에 출현한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복덕성福德星은 곧 세성歲星이니, 세성歲星이 있는 곳에는 그 나라에 이 있다.” 하였다.나라가 비록 뜻을 얻더라도 나라의 중건重建은 1(12년)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9월에 나라 왕맹王猛노천潞川으로 진군하자, 태부太傅 모용평慕容評왕맹王猛현군懸軍(외로운 군대)注+[通鑑要解]과 같으니, 고립된 군대가 멀리 싸우러 가서 그 형세가 현격하여 서로 미칠 수가 없으므로 현군懸軍이라 한 것이다. 을 이끌고 적지에 깊이 들어왔다 하여 지구전으로 제압하고자 하였는데, 왕맹王猛위원渭源에서 군대를 진열하고 맹세하니, 군사들이 모두 기뻐서 날뛰며 결사의 각오로 가마솥을 부수고 양식을 버리고서 크게 고함치며 함께 진격했다.
나라 군대를 대패시켜 5만여 명을 포로로 사로잡고 목을 베었으며 승세를 타고 추격하니, 죽인 자와 항복받은 자가 또 10만여 명이었다.
모용평慕容評단기單騎로 달아나 업도鄴都로 돌아오니, 나라 군대가 승승장구하여 동쪽으로 와서 정묘일(10월 26일)에 업도鄴都를 포위하였다.
11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이 스스로 정예병 10만 명을 거느리고 업성鄴城으로 달려갔다.
무인일(11월 7일)에 나라 산기시랑散騎侍郞 여울餘蔚이 밤중에 업성鄴城북문北門을 열고 나라 병사를 받아들이니, 연주燕主 모용위慕容暐상용왕上庸王 모용평慕容評 등과 함께 용성龍城으로 달아났다.
진왕秦王 부견苻堅유격장군遊擊將軍 곽경郭慶으로 하여금 추격하게 하여 곽경郭慶고양高陽에서 이들을 사로잡아 진왕秦王 부견苻堅에게 보냈다.
부견苻堅이 가엾게 여겨 이들을 놓아주고 궁으로 돌아가게 하니 문무관文武官을 거느리고 나와서 항복하였고, 여러 목수牧守와 여섯 오랑캐족注+[頭註]육이六夷선비鮮卑파만巴蠻이니, 혹자가 이르기를 “오환烏桓이고 파만巴蠻이 아니다.”라고 한다. 거수渠帥(추장)들이 모두 나라에 항복하였다.
○ 12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모용위慕容暐나라의 왕공王公백관百官선비족鮮卑族 4만여 가호를 장안長安으로 옮겼다.
나라 옛 태사太史황홍黃泓이 탄식하기를 “나라가 반드시 중흥할 것이니, 오왕吳王(慕容垂)注+[通鑑要解]오왕吳王모용수慕容垂이다. 에게 있을 것이다.
내가 늙어서 미처 보지 못하는 것이 한스럽다.” 하였다.
급군汲郡 사람 조추趙秋가 말하기를 “천도天道나라에 있는데 나라가 멸망시켰으니, 15년이 못 되어 나라는 반드시 다시 나라의 소유가 될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大一小二 凡三僭國 : 大國 하나는 苻堅의 前秦이고, 小國 둘은 張天錫의 前涼과 拓跋什翼犍의 代이다.
역주2 : 축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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