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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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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未]元熙元年이라 〈魏泰常四年이요 夏眞興元年이라
七月 宋公裕 進爵爲王하다
歷年圖曰
晉室旣衰 中原雲擾하니 戎狄腥羶之氣 瀰漫河, 洛하고 薰蒸岱, 華하야 宮闕蕪沒하고 陵廟隳焚이라
元帝注+[頭註]琅琊王睿以宗室疎屬으로 遯居江表하니 天下士民有思晉者 皆裹糧而歸之하야 國於荊揚之間하야 子孫相承하야 不絶如線이라
獨明帝注+[頭註] 元帝長子英武하야 克淸大注+[頭註] 惡也 謂王敦이라러니 不幸享國不永하고 自餘 孱弱孤危하야 外陵內叛하야 寄命於虎狼之口하야 幾遇呑食者
이나 卒能保其位號하야 宗廟血食 百有餘年 何哉
有王導, 卞壼, 溫嶠, 陶侃, 謝安, 謝幼度注+[頭註]玄字爲之臣也일새라
群賢旣沒 而道子, 元顯之徒輔之하니 敗亡 不亦宜乎
[史略 史評]史斷曰
劉裕弑安帝而立恭帝러니 卒爲裕所簒하니 而昌明後二帝之讖 應矣로다
[史略 史評]胡氏曰
元帝 忘國大讐하야 無恢復之志하고 惟明帝 才略最優호되 又降年不永하고 餘皆碌碌하야 不足算也
嘗怪王敦, 蘇峻構亂하고 桓溫廢立하야 屢起逆謀하고 桓玄已簒이라이나 猶綿歷百有餘年之久者 尙賴王導, 祖逖, 溫嶠, 謝安, 謝玄, 王坦之諸賢 忠義奮發하야 平內難하고 却强秦하야 以扶持之也일새라
然而卒莫能恢拓中原者 蓋以導知寬簡植國하야 而不能從祖逖雍丘益兵之語하고 安知和靜鎭國하야 而不能從謝玄乘勝自往彭城之謀故也
群賢旣沒 而道子, 元顯之徒輔之하니 敗亡 不亦宜乎
右東西二晉 合一百五十六年이니 凡一十五帝


원희元熙 원년元年(기미 419) - 나라 태상泰常 4년이고, 나라 진흥眞興 원년元年이다. -
7월에 송공宋公 유유劉裕가 작위가 승진되어 송왕宋王이 되었다.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나라 황실이 이미 쇠약해지자 중원中原이 소란하니, 오랑캐의 비린내 나는 기운(야만스러운 풍속)이 황하黃河낙수洛水 지역에 가득히 퍼지고 대산岱山화산華山까지 올라가서 궁궐이 황폐해지고 능묘가 무너지고 불탔다.
원제元帝注+[頭註]원제元帝낭야왕琅琊王 사마예司馬睿이다. 가 종실의 먼 친족으로 도망하여 강동江東 지방에 거주하니, 나라를 그리워하는 천하의 선비와 백성들이 모두 양식을 싸가지고 그에게 귀부하여 형주荊州양주揚州의 사이에 나라를 세워서 자손들이 서로 계승하여 실낱같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
오직 명제明帝注+[頭註]명제明帝사마소司馬紹이니, 원제元帝의 장남이다. 만이 영명英明하고 무용武勇이 있어서 악의 원흉인 왕돈王敦注+[頭註]는 악이니, 대대大憝왕돈王敦을 이른다. 을 깨끗이 제거하였으나 불행히도 국가를 소유한 햇수가 길지 못하였고, 그 밖에는 잔약하고 외롭고 위태로워서 밖에서는 능멸하고 안에서는 배반하여 호랑이의 입에 목숨을 맡겨서 거의 먹힐 뻔한 것이 여러 번이었다.
그러나 마침내 지위와 명호를 보전하여 종묘宗廟혈식血食을 올린 것이 백여 년이나 이어진 것은 어째서인가?
왕도王導변곤卞壼온교溫嶠도간陶侃사안謝安사유도謝幼度(謝玄)注+[頭註]유도幼度사현謝玄이다. 가 신하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 죽자 사마도자司馬道子사마원현司馬元顯의 무리가 보필하였으니, 패망함이 또한 당연하지 않은가.”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유유劉裕안제安帝를 시해하고 공제恭帝를 세웠는데, 끝내 유유劉裕에게 찬탈당하였으니, 창명昌明의 뒤에 두 황제가 있다는 참언讖言이 맞은 것이다.”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원제元帝는 국가의 큰 원수를 잊어 중원中原을 회복할 뜻이 없었고, 명제明帝는 재주와 지략이 가장 넉넉하였으나 또 하늘이 내려 준 수명이 길지 못하였으며, 그 밖에는 모두 녹록碌碌하여 따질 것이 못 된다.
내 일찍이 왕돈王敦소준蘇峻이 난리를 일으키고 환온桓溫이 자기 마음대로 군주를 폐위하고 세워서 여러 번 역모를 일으켰으며 환현桓玄이 이미 찬탈하였는데도 오히려 나라의 국통國統이 백여 년 동안이나 면면히 이어진 것을 괴이하게 여겼으니, 이는 왕도王導조적祖逖온교溫嶠사안謝安사현謝玄왕탄지王坦之 등 여러 현인賢人들이 충의심忠義心을 분발하여 내란을 평정하고 강한 나라를 물리쳐서 나라를 부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내 중원中原을 회복하지 못한 것은 왕도王導는 너그러움과 간략함으로 나라를 세울 줄만 알아서 옹구雍丘에 병력을 더 증원해 달라는 조적祖逖의 말을 따르지 못하였고, 사안謝安은 온화함과 고요함으로 나라를 진정鎭定할 줄만 알아서 승세를 타고 직접 팽성彭城으로 가겠다는 사현謝玄의 계책을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여러 현자들이 죽자 사마도자司馬道子사마원현司馬元顯의 무리가 보필하였으니, 패망함이 당연하지 않은가.”
이상 동진東晉서진西晉은 합하여 156년이니, 모두 15이다.


역주
역주1 : 대
역주2 : 삭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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