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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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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四年이라
八月에 鎭魏奏邢, 洺, 磁三州降이어늘 宰相入賀라
李德裕曰 昭義根本은 盡在山東하니 三州降이면 則上黨注+[頭註]卽昭義也라 이 不日有變矣리이다
上曰 郭誼는 稹謀主也니 必梟劉稹하야 以自贖하리라 德裕曰 誠如聖料니이다
未幾에 誼果斬稹하고 收稹宗族하야 盡殺之하고 函稹首하야 降하다
宰相入賀한대 上曰 郭誼를 宜如何處之오 德裕對曰 劉稹은 孺子注+[頭註]騃는 癡也라 耳라
阻兵拒命은 皆誼爲之謀主러니 及勢孤力屈하야는 又賣稹以求賞하니 此而不誅면 何以懲惡이리잇고
宜及諸軍在境하야 幷誼等誅之니이다
上曰 朕意亦以爲然이로라
郭誼等이 至京師어늘 皆斬之하다
溫公曰
董重質之在淮西와 郭誼之在昭義에 吳元濟, 劉稹은 如木偶人注+[頭註]偶는 對也니 以土木爲人호되 對象於人形者也라 이 在伎兒之手耳라
彼二人者 始則勸人爲亂하고 終則賣主規利注+[頭註]規는 圖也라 하니 其死固有餘罪라
然이나 憲宗은 用之於前하고 武宗은 誅之於後하니 臣愚는 以爲皆失之라하노라
何則고
賞奸은 非義也요 殺降은 非信也니 失義與信이면 何以爲國이리오
昔에 漢光武待王郞注+[頭註]邯鄲卜者라 王霸斬之어늘 今云不死는 未詳이라 , 劉盆子에 止於不死하니 知其非力竭則不降故也라
樊崇, 徐宣, 王元, 牛之徒注+[頭註]王元, 牛邯은 皆隗囂將也라 王元奔蜀하고 又以其衆來降하니라 는 見十六卷하니라 가 豈非助亂之人乎리오마는 而光武弗殺하니 盖以旣受其降이면 則不可復誅故也니
若旣赦而復逃亡叛亂이면 則其死固無辭矣라
如誼等은 免死하고 流之遠方하야 沒齒不還이 可矣요 殺之는 非也니라


회창會昌 4년(갑자 844)
8월에 진기진鎭冀鎭과 위박진魏博鎭의 두 절도사節度使가 형주邢州‧명주洺州‧자주磁州 세 주州가 항복했다고 아뢰자, 재상들이 들어와 축하하였다.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기를 “소의昭義(澤潞)의 근본根本은 모두 산동山東에 있으니, 세 주州가 항복했으면 상당上黨은注+[頭註]상당上黨은 바로 소의군昭義軍이다. 하루가 못되어 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곽의郭誼는 유진劉稹의 모주謀主이니, 반드시 유진劉稹을 효시하여 스스로 속죄하려 할 것이다.” 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기를 “진실로 성상의 예측과 같을 것입니다.” 하였다.
얼마 안 되어 곽의郭誼가 과연 유진劉稹을 목베고 유진劉稹의 종족을 거두어서 모두 죽이고는 유진劉稹의 머리를 함에 넣어 가지고 와서 항복하였다.
재상들이 들어와 축하하자, 상上이 말하기를 “곽의郭誼를 마땅히 어떻게 처리해야 하겠는가?” 하니, 이덕유李德裕가 대답하기를 “유진劉稹은 미련한 어린 아이일 뿐입니다.注+[頭註]애騃는 어리석음이다.
군대를 믿고 조정의 명령을 거역한 것은 모두 곽의郭誼가 모주謀主가 되어 지시한 것이었는데, 세력이 고단하여 굽히게 되자 또다시 유진劉稹을 팔아 상賞을 내려주기를 바라니, 이러한데도 그를 죽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사악한 사람을 징계하겠습니까.
마땅히 여러 군대가 택로澤潞의 경내에 있을 때에 곽의郭誼 등과 함께 죽여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짐朕의 생각도 그러하다.” 하였다.
곽의郭誼 등이 경사京師에 이르자, 모두 목을 베었다.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동중질董重質이 회서淮西에 있어서와 곽의郭誼가 소의군昭義軍에 있어서는 오원제吳元濟와 유진劉稹은 나무로 만든 허수아비가注+[頭註]우偶는 상대함이니, 흙과 나무로 사람을 만들되 사람 모양을 상대하여 본딴 것이다. 재주부리는 아이의 손에 있는 것과 같을 뿐이었다.
저 두 사람이 처음에는 남에게 반란을 하도록 권하였고 끝에는 주인을 팔아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였으니,注+[頭註]규規는 도모하는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진실로 죽어도 남은 죄가 있다.
그러나 헌종憲宗은 앞에서 동중질董重質을 등용하였고 무종武宗은 뒤에서 곽의郭誼를 죽였으니, 나의 어리석은 생각에는 둘다 모두 잘못이라고 여겨진다.
어째서인가?
간사한 자에게 상을 주는 것은 의義가 아니고 항복한 자를 죽이는 것은 신信이 아니니, 의義와 신信을 잃는다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옛날 한漢나라 광무제光武帝는 왕랑王郞과注+[頭註]왕랑王郞은 한단邯鄲의 점쟁이이다. 왕패王霸가 그를 목베어 죽였는데, 지금 죽지 않았다고 말한 것은 미상이다. 유분자劉盆子를 대할 적에 그들을 죽이지 않음에 그쳤으니, 그들의 힘이 다하지 않으면 항복하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번숭樊崇, 서선徐宣, 왕원王元, 우한牛邯의 무리가注+[頭註]왕원王元과 우한牛邯은 모두 외효隗囂의 장수이다. 왕원王元은 촉蜀으로 달아났고 또 그 무리를 데리고 와서 항복하였다. 우한牛邯의 일은 16권에 보인다. 어찌 반란을 조장한 사람이 아니겠는가마는 광무제光武帝가 이들을 죽이지 않았으니, 이는 이미 그들의 항복을 받아들였으면 다시 죽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미 그들을 사면하였는데 다시 도망하여 반란을 일으킨다면 그들은 죽어도 진실로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곽의郭誼 등과 같은 자들은 죽이지 않고 먼 지방으로 유배보내어 종신토록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 옳고, 그들을 죽이는 것은 잘못이다.”


역주
역주1 騃 : 애
역주2 王郞 : 王莽 때에 成帝의 아들 子輿라고 자칭하는 자가 있으므로 王莽이 그를 죽였는데, 更始 元年(23)에 邯鄲의 점치는 자인 王郞이 자신이 진짜 子輿라고 사칭하자 백성들이 이를 많이 믿었다. 劉林과 李育 등이 王郞을 세워 천자로 삼으니, 趙 지방 以北과 遼東 이서 지방이 모두 풍문을 듣고 호응하였다. 光武帝 劉秀가 邯鄲으로 진격해서 王郞을 패주시키니, 光武帝의 장수인 王霸가 추격하여 그를 목베어 죽였다.
역주3 邯 : 한
역주4 牛邯事 : 隗囂는 王莽의 新나라 말기에 隴西에서 기병하여 漢나라에 호응하였다. 그 뒤 光武帝가 耿弇 등 7명의 장수를 파견하여 公孫述을 칠 때에 漢나라 군사를 가로막고는 公孫述에게 사신을 보내어 稱臣하였다. 얼마 뒤에 그의 부장인 牛邯 등이 10여 만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光武帝에게 투항하여 형세가 궁해지자, 분을 못 이겨 죽고 말았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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