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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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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午]九年이라 〈趙主石弘延熙元年이라〉
成主雄이 卒하고 太子班이 卽位러니 其弟期 謀作亂하야 因班夜哭하야 弑之注+[通鑑要解]班未葬之前에 哭於殯宮이어늘 班之弟李越이 潛殺之殯宮하고 立其次弟期하야 卽位하니라하고 期卽皇帝位注+[原註]期後爲漢王壽所弑하고 壽卽位하야 改國號漢하니라하다
○ 加庾亮征西將軍, , 都督江, 荊, 豫, 益, 梁, 雍六州諸軍事하야 鎭武昌하니 亮이 辟殷浩注+[通鑑要解]浩는 羨之子니 陶侃旣沒에 亮이 始專制上流하니라하야 爲記室參軍하다
浩與豫章太守와 丹楊丞杜乂로 皆以識度淸遠하고 善談老, 易注+[釋義]老는 謂老子道德經이요 易은 謂周易也라이라하야 擅名江東이로되 而浩尤爲風流所宗이러라
桓彛嘗謂裒曰 季野注+[釋義]褚裒字라有皮裏春秋라하니 言其外無臧注+[釋義]否는 音鄙니 臧은 善也요 否는 不善也라나 而內有褒貶也요 謝安曰 裒雖不言이나 而四時之氣 已備矣라하니라
○ 十一月에 趙丞相虎注+[頭註]卽中山公虎라 廢趙主弘하야 爲海陽王하고 自稱居攝注+[通鑑要解]攝은 假也니 非其位而居之者를 謂之攝也라趙天王하다
○ 王導辟太原王濛하야 爲掾하고 王述爲中兵屬하다
述性沈靜하야 每坐(座)客이 辨(辯)論蜂起호되 而述은 處之恬如也러라
年三十에 尙未知名하니 人謂之癡라
導以門地辟之하야 旣見에 唯問在東米價한대 述이 張目不答이어늘 導曰 王掾이 不癡어늘 人何言癡也오
嘗見導每發言에 一坐莫不贊美어늘 述正色曰 人非堯, 舜이어니 何得每事盡善이리오하니 導改容謝之하니라
○ 九月에 趙王虎 遷都于鄴하다


함화咸和 9년(갑오 334) - 조주趙主 석홍石弘의 연희延熙 원년元年이다. -
〈6월에〉 성주成主 이웅李雄이 죽고 태자太子 이반李班이 즉위하였는데, 〈10월에〉 그의 아우 이기李期가 난을 일으킬 것을 모의하여 이반李班이 밤에 곡할 때를 틈타 이반李班을 시해하고注+[通鑑要解]이반李班이 이웅李雄을 장례하기 전에 빈궁殯宮에서 곡하였는데, 이반李班의 아우 이월李越이 몰래 빈궁殯宮에서 그를 시해하고 그의 다음 아우인 이기李期를 세워 즉위시켰다. 이기李期가 황제에 즉위하였다.注+[原註]이기李期는 뒤에 한왕漢王 이수李壽에게 시해당하였고, 이수李壽가 즉위하여 국호를 한漢으로 바꾸었다.
○ 유량庾亮을 정서장군征西將軍‧가절假節‧도독강주형주예주익주량주옹주제군사都督江州荊州豫州益州梁州雍州諸軍事에 임명하여 무창武昌에 진주鎭駐하게 하니, 유량庾亮이 은호殷浩를 불러注+[通鑑要解]은호殷浩는 은선殷羨의 아들이니, 도간陶侃이 죽은 뒤에야 유량庾亮이 비로소 건강建康의 상류上流에 주둔한 군대를 전제專制하였다. 기실참군記室參軍으로 삼았다.
은호殷浩는 예장태수豫章太守 저부褚裒, 단양승丹楊丞 두예杜乂와 함께 모두 식견과 도량이 깨끗하고 원대하며 《도덕경道德經》과 《주역周易》注+[釋義]노老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이요, 역易은 《주역周易》을 이른다. 을 잘 담론한다 하여 강동江東 지방에 명성을 날렸는데, 은호殷浩는 더욱이 풍류風流의 종주宗主가 되었다.
환이桓彛가 일찍이 저부褚裒를 평하여 이르기를 “계야季野注+[釋義]계야季野는 저부褚裒의 자字이다. 는 피리춘추皮裏春秋가 있다.” 하였으니, 겉으로는 잘잘못注+[釋義]비否는 음이 비이니, 장臧은 선善함이고 비否는 불선不善함이다. 을 분별함이 없으나 마음속에 포폄褒貶함이 있음을 말한 것이요, 사안謝安이 말하기를 “저부褚裒가 비록 말하지 않으나 사시四時의 기운이 이미 갖추어져 있다.” 하였다.
○ 11월에 조趙나라 승상丞相 석호石虎注+[頭註]승상丞相 호虎는 바로 중산공中山公 석호石虎이다. 가 조주趙主 석홍石弘을 폐위하여 해양왕海陽王으로 삼고 자칭 거섭居攝注+[通鑑要解]섭攝은 빌리는 것이니, 자기 자리가 아닌데 거하는 것을 일러 섭攝이라 한다. 趙天王이라 하였다.
○ 왕도王導가 태원太原의 왕몽王濛을 불러 아전을 삼고 왕술王述을 중병속中兵屬으로 삼았다.
왕술王述은 성품이 침착하고 고요해서 매번 좌객座客들이 다투어 변론하여 벌떼처럼 일어났으나 왕술王述은 태연하게 대처하였다.
나이 30세가 되어서도 이름이 알려지지 못하니 사람들이 바보라고 하였다.
왕도王導가 문벌로써 그를 초빙하여 만나 본 뒤에 다만 동쪽 지방에 있을 때의 쌀값을 묻자, 왕술王述이 〈그를 비루하다고 여겨〉 눈을 부릅뜨고 대답하지 않으니, 왕도王導가 말하기를 “왕술王述이 바보가 아닌데 사람들은 어찌하여 바보라 말하는가?” 하였다.
일찍이 왕도王導가 매번 말할 때마다 온 좌석에 있는 사람들이 찬미하지 않는 이가 없는 것을 보고 왕술王述이 정색하며 말하기를 “사람이 요堯‧순舜이 아니거늘 어찌 매사每事가 모두 선하겠는가.” 하니, 왕도王導가 얼굴빛을 고치고 사례하였다.
○ 9월에 조왕趙王 석호石虎가 업鄴으로 천도하였다.


역주
역주1 假節 : 節을 빌려 준다는 뜻으로 일종의 권한을 표시한다. 晉나라 때에 지방의 軍權을 맡은 장관은 都督‧監軍‧督軍의 세 등급이 있었으며 그 권한도 이에 상응하였다. 都督은 使持節‧持節‧假節의 구분이 있으며, 監軍과 督軍 역시 이와 같았다. 使持節은 二千石 이하를, 持節은 官位가 없는 사람을, 假節은 軍事가 있을 때 군령을 어긴 자를 죽일 수 있었다. 南北朝 때에도 이 제도를 사용하였다.
역주2 褚裒 : 저부
역주3 否 : 비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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