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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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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丑]中和元年이라
三月 黃巢遣其將尙讓, 王播하야 衆五萬하고 寇鳳翔이어늘
使唐弘夫注+[頭註]前朔方節度使 伏兵擊之하니 大敗於龍尾陂
斬首二萬餘級하니 伏尸數十里
鄭畋 傳檄天下藩鎭하야 合兵討賊하다
天子在蜀하야 詔令不通이라 天下謂朝廷不能復振이러니 及得畋檄 爭發兵應之하니 賊懼하야 不敢復窺京西러니
未幾 鳳翔司馬李昌言 作亂하니 奔行在而薨注+[頭註]以畋爲司空同平章軍事하야 一以咨之하니라 하다
○ 黃巢所署同州防禦使朱溫 擧州降이어늘 賜名全忠하다
〈後爲梁太祖하니라
○ 黃巢兵勢尙强이라
河中留後王重榮 患之하야 謂行營都監楊復光曰 鴈門李僕射注+[頭註] 克用爲鴈門節度使 驍勇注+[頭註] 健也 武也 有强兵하고 彼亦有徇國之志하니
誠以朝旨召之 必來하리니 來則賊不足平리라
王鐸 在河中하야 乃墨勅注+[頭註]鐸爲都統하야 便宜從事러니 凡徵除授 皆得用墨勅하니라 召李克用하니 十一月 克用 將沙陁萬七千人하고 趣河中하다


중화中和 원년元年(신축 881)
3월에 황소黃巢가 그의 장수 상양尙讓왕파王播를 보내어 5만의 병력을 거느리고 봉상鳳翔을 침략하였다.
정전鄭畋당홍부唐弘夫로 하여금注+[頭註]당홍부唐弘夫 삭방진절도사朔方鎭節度使이다. 군대를 매복시켜 적을 공격하게 하니, 적군이 용미피龍尾陂에서 대패하였다.
이에 2만여 명의 수급首級을 베니, 엎어진 시신이 수십 리에 널려 있었다.
정전鄭畋이 천하의 번진藩鎭격문檄文을 돌려 병력을 규합해서 적을 토벌하자고 하였다.
이때 천자가 지방에 있어서 조령詔令이 통하지 못하자, 천하 사람들은 조정이 다시는 떨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는데, 정전鄭畋격문檄文을 얻자 다투어 군대를 동원하여 호응하니, 적이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는 장안의 서쪽을 엿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얼마 안 되어 봉상鳳翔사마司馬 이창언李昌言이 난을 일으키니, 정전鄭畋이 행재소로 달려가다가 죽었다.注+[頭註]정전鄭畋사공司空 동평장군사同平章軍事로 임명하여 정사를 일체 그에게 자문하였다.
황소黃巢가 임명한 동주방어사同州防禦使 주온朱溫동주同州를 가지고 투항하자, 전충全忠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였다.
- 주전충朱全忠은 뒤에 나라 태조太祖가 되었다. -
황소黃巢의 병력이 아직도 강성하였다.
하중유후河中留後 왕중영王重榮이 이를 근심하여 행영도감行營都監 양복광楊復光에게 이르기를 “안문鴈門이복야李僕射(李克用)는注+[頭註]당시 이극용李克用안문절도사鴈門節度使였다. 날래고 용맹하며注+[頭註]는 건장하고 용맹함이다. 강성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고, 그는 또한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는 뜻이 있습니다.
진실로 조정의 명령으로 부른다면 반드시 올 것이니, 그가 오면 적을 평정하는 것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하였다.
왕탁王鐸하중河中에 있으면서 마침내 묵칙墨勅으로注+[頭註]왕탁王鐸도통사都統使가 되어 조정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형편에 따라 종사從事하였는데, 무릇 사람을 불러서 관직을 제수할 적에 모두 묵칙墨勅을 사용하였다. 이극용李克用을 부르니, 11월에 이극용李克用사타병沙陁兵 1만7천 명을 거느리고 하중河中으로 달려왔다.


역주
역주1 : 솔
역주2 墨勅 : 황제가 친필로 쓴 조서이니, 해당 관서를 거치지 않고 황제가 직접 관직을 제수하는 것이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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