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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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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昭烈注+[頭註]聖聞周達曰昭 執德進業曰烈이라皇帝※ 名備 字玄德이니 涿郡人이라
漢景帝孫中山靖王劉勝之後
在位三年이요 壽六十三이라
※ 嘗奉密詔하야 討曹操不克하고 後曹丕簒漢 遂正位于蜀하니라
[新增]尹氏曰
三代而下 惟漢 得天下爲正이라
誅無道秦하고 討逆賊羽하야 傳祚踰四百年하니 尺地一民 莫非漢有
至桓靈不君하고 董卓煽禍하야 英雄群起而攻之하니 卓旣誅戮이면 則天下 固漢之天下어늘
曹操乘時擅命하야 脅制天子하고 戕殺國母하니 義士爲之歎憤이라
苟有一夫倡義於天下 皆君子之所予注+[頭註] 與與通이라하니 況於堂堂帝室之冑 英名蓋世者乎
丕旣簒立 漢祀無主
昭烈 正位蜀漢하야 親承大統하니 名正言順하야 本無可疑
自陳壽志三國注+[頭註]陳壽 晉人이라으로 全以天子之制予魏하고 而以列國待漢이라
通鑑因之하야 以魏紀年이러니 至綱目하야 始以昭烈 承獻帝之後하야 紹漢遺統하야 取春秋之義하야 以示天下하니 萬世之正論也
愚承師命注+[頭註]番陽松塢王先生이니 名逢이라하야 一遵朱子例而正之于左하노라


소열昭烈注+[頭註]성명聖明하다는 명성이 두루 알려짐을 라 하고, 을 잡아 공업功業에 나아감을 이라 한다. 皇帝※는 이름이 이고 현덕玄德이니, 탁군涿郡 사람이다.
나라 경제景帝의 손자인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손이다.
재위가 3년이고 가 63세이다.
※ 일찍이 밀조密詔를 받들어 조조曹操를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고, 뒤에 조비曹丕나라를 찬탈하자 마침내 에서 천자의 지위에 올랐다.
[新增]尹氏(尹起莘)가 말하였다.
삼대三代 이후로 오직 나라만이 천하를 올바르게 얻었다.
무도한 나라를 멸망시키고 역적인 항우項羽를 토벌하여 제위帝位를 전한 것이 400년을 넘었으니, 한 자의 땅과 한 명의 백성도 나라의 소유가 아님이 없었다.
환제桓帝영제靈帝에 이르러 군주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동탁董卓를 일으키자 영웅들이 떼지어 일어나 공격하였으니, 동탁董卓이 이미 주륙誅戮당했으면 천하天下는 진실로 나라의 천하天下인 것이다.
그런데 조조曹操가 때를 타고 명령을 독단해서 천자天子를 위협하고 제재하며 국모國母를 시해하니, 의사義士들이 이 때문에 탄식하고 격분하였다.
만약 한 명의 지아비라도 천하에 창의倡義하는 자가 있었다면 모두 군자君子가 허여注+[頭註](許與)와 통한다. 하였을 것이니, 하물며 당당한 황실皇室후예後裔로서 뛰어난 명성이 세상을 뒤덮을 만한 자(劉備)에 있어서이겠는가.
조비曹丕가 이미 찬탈하여 즉위한 뒤에 나라 제사를 주관할 사람이 없었다.
소열昭烈촉한蜀漢에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친히 대통大統을 이으니,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여 본래 의심할 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注+[頭註]진수陳壽나라 사람이다. 로부터 완전히 천자天子의 제도를 나라에게 주고 열국列國으로써 촉한蜀漢을 대우하였다.
그러므로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이를 인습하여 나라로 연도年度를 기록했는데,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이르러서 비로소 소열昭烈헌제獻帝의 뒤를 계승하여 나라의 남은 정통正統을 이어서 《춘추春秋》의 의리義理를 취하여 천하에 보였으니, 이는 만세萬世의 올바른 의논이다.
나는 선생의 말씀注+[頭註]스승은 번양番陽송오松塢 왕선생王先生이니, 이름은 이다. 을 받들어 한결같이 주자朱子를 따라 아래에 바로잡았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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