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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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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巳]建平三年이라
四月 王嘉爲丞相하다
嘉以時政苛急하야 郡國守相 數有變動이라하야 乃上疏曰
孝文時 하야 以官爲氏注+[釋義]以官爲姓氏 如下文倉氏庫氏是也하니 倉氏, 庫氏 則倉庫吏之後也
其二千石長吏 亦安官樂職하니 然後 上下相望하야 莫有苟且之意니이다
其後 稍稍變易하야 公卿以下或居官數月而退注+[釋義]言不敢操持群下也하니 中材 苟容求全하고 下材 懷危內顧注+[通鑑要解]言常恐獲罪하야 每爲私計也
唯陛下留神於擇賢하사 記善忘過하소서
此方今急務也니이다


건평建平 3년(정사 B.C.4)
4월에 왕가王嘉가 승상이 되었다.
왕가王嘉는 당시의 정사가 가혹하고 급박하여 군국郡國태수太守이 자주 변동이 있다 해서 마침내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효문제孝文帝 때에는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혹 자손이 장성함에 이르러 관직을 로 삼았으니,注+[釋義]이관위씨以官爲氏는 관직을 성씨姓氏로 삼은 것이니, 아래 글에 창씨倉氏고씨庫氏와 같은 것이 이것이다. 창씨倉氏고씨庫氏는 바로 창고 관리의 후손입니다.
이천석二千石장리長吏(郡國의 ) 또한 관직을 편안히 여기고 즐거워하였으니, 그런 뒤에야 상하가 서로 기대하여 구차한 뜻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 차츰 바뀌어서 공경公卿 이하가 혹 관직에 있은 지 수개월 만에 물러나니,注+[釋義]公卿以下……數月而退:공경公卿 이하가 관직에 있은 지 수개월 만에 물러난다는 것은 감히 아랫사람들을 장악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보통 재주는 구차히 용납하여 온전하기만을 구하고, 낮은 재주는 위태로운 마음을 품고 사사로운 일만을 돌아봅니다.注+[通鑑要解]항상 죄를 얻을까 두려워하여 매양 사사로운 계책을 세움을 말한 것이다.
오직 폐하께서는 현자賢者를 가려 뽑는 일에 유념하시어 잘한 것은 기억하고 잘못한 것은 잊으소서.
이것이 지금의 급선무입니다.”


역주
역주1 吏居官者或長子孫 : 一說에는 長子孫을 長子와 子孫으로 보아 관직에 있는 관리들이 관직을 長子와 子孫에게 물려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통감절요(3)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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