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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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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戌]興平元年이라
曹操之攻陶謙也 平原相劉備 將兵救之하고 遂歸謙하다
疾篤하야 謂別駕東海曰 非劉備 不能安此州也라하더니
謙卒 率州人迎備한대 備遂領徐州하다
○ 初 孫堅 生四男하니 策, 權, 翊, 匡이라
年十餘歲 已交結知名하니 舒人周瑜 與策同年으로英達夙成이라
聞策聲問注+[頭註] 與聞通하니 聲所至也하고 自舒來造焉하야 便推結分好注+[原註]分, 好 竝去聲이라[釋義]謂推結交分愛好也러니 及堅死 策年十七이라
乃渡江居江都하야 結納豪俊하야 有復讐之志러라
到壽春하야 見袁術한대 甚奇之하야 以堅餘兵千餘人으로 還策하고 表爲懷義校尉하다


흥평興平 원년元年(갑술 194)
조조曹操도겸陶謙을 공격할 때에 평원상平原相 유비劉備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그를 구원하고 마침내 도겸陶謙에게 귀의하였다.
도겸陶謙이 병이 위독해지자 별가別駕동해東海 미축糜竺에게 이르기를 “유비劉備가 아니면 이 를 안정시키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도겸陶謙이 죽자 미축糜竺이 고을 사람을 거느리고 유비劉備를 맞이하니, 유비劉備가 마침내 서주徐州를 거느리게 되었다.
○ 처음에 손견孫堅이 네 아들을 낳으니, 손책孫策손권孫權손익孫翊손광孫匡이었다.
손책孫策은 나이 십여 세에 이미 명성이 알려진 사람들과 교분을 맺으니, 서현舒縣 사람 주유周瑜손책孫策동년同年으로 또한 영명英明하고 활달豁達하며 숙성夙成하였다.
손책孫策의 명성注+[頭註]과 통하니, 명성名聲이 이르는 것이다.을 듣고는 서주舒州로부터 와서 두 사람이 곧 성심誠心을 미루어 분호分好(友誼)를 맺었는데,注+[原註]分과 는 모두 거성去聲이다.[釋義]誠心을 미루어 교분과 우호를 맺음을 이른다. 손견孫堅이 죽을 적에 손책孫策의 나이가 17세였다.
마침내 양자강揚子江을 건너 강도江都에 거주하면서 호걸들과 교분을 맺어 〈아버지를 위해〉 복수할 뜻이 있었다.
수춘壽春에 이르러 원술袁術을 뵙자, 원술袁術이 매우 기특하게 여겨서 손견孫堅의 남은 병력 천여 명을 손책孫策에게 돌려주고 표문表文을 올려 그를 회의교위懷義校尉로 삼았다.


역주
역주1 糜竺 : 미축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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