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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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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卯] 〈梁太淸元年이요 魏大統十三年이요 東魏武定五年이라
正月 東魏高歡하다
性深密하야 終日儼然하니 人不能測이라
機權之際 變化若神하고 制馭軍旅 法令嚴肅하며 聽斷明察하니 不可欺犯이라
由是 文武樂爲之用이러라
○ 侯景 素輕高澄이라
自念己與高氏有隙하고 內不自安하야 據河南叛하야 歸于魏하고
又遣丁和來하야 上表言호되 臣與高澄注+[頭註]歡之子 洋之兄이라有隙하니 請擧十三州하야 內附하노이다 召群臣廷議하니
尙書僕射謝擧等 皆曰 頃歲 與魏通和하야 邊境 無事어늘
今納其叛臣이면 竊謂非宜라하노이다 上曰 得景則塞北 可淸이니 機會難得이라
豈宜膠柱리오
이나 意未決하야 嘗獨言호되 我國家如金甌注+[頭註] 小盆也하야 無一傷缺이어늘
今忽受景地 詎是事宜리오
脫致注+[頭註] 或然之辭紛紜이면 悔之何及이리오揣知上意하고 對曰 聖明御宇 南北歸仰하니 拒而不內(納)이면 恐絶後來之望하노이다
乃定議納景하야
以景爲大將軍하고 封河南王하다
周弘正注+[通鑑要解] 平西諮議也 善占候러니
前此 謂人曰 國家數年後 當有兵起라하더니 及聞納景하고亂階在此라하니라
○ 東魏高澄 入朝于鄴注+[頭註]東魏都鄴하니 見上甲寅年이라하다
○ 東魏(靖)[靜]帝注+[頭註]靜字之誤 美容儀하고 膂力過人하야 射無不中하고 好文學하야 從容沈雅하니 時人 以爲有孝文風烈注+[頭註]靜帝善見 乃文帝宏之孫이라이라
大將軍澄 深忌之어늘 帝謀誅澄이라가 事覺하니 幽帝於含章堂하다
○ 東魏使軍司杜弼 作檄移梁注+[頭註]魏侯景 以河南降魏라가 又以河南으로 叛附于梁하니 梁封景爲河南王하고 遣兵援之하니라曰 侯景 自生하야 遠託關, 隴하고
依憑奸僞注+[頭註]關隴 奸僞 皆指西魏하야 逆主注+[頭註]指魏主寶炬 定君臣之分하고 僞相注+[頭註]指宇文泰으로 結兄弟之親하니 豈曰無恩이리오마는 終成難養이어늘
今乃授之以利器注+[頭註]威權也하고 하니 使其勢得容奸하고 時堪乘便이면 則必自據淮南하야 亦欲稱帝注+[頭註]用黥布事하니 見漢高乙巳年이라하리니
但恐楚國亡猿 禍延林木하고 城門失火 殃及池魚注+[附註]池魚 人姓名이라 風俗通 有池仲魚러니 城門失火하야 仲魚燒死 諺曰 城門失火 殃及池魚라하니라 一云汲池救火하야 患及於魚也라하더니 其後 梁室禍敗 皆如弼言하니라


정묘(547) - 나라 태청太淸 원년元年이고, 나라 대통大統 13년이고, 동위東魏 무정武定 5년이다. -
정월에 동위東魏 헌무왕獻武王 고환高歡이 죽었다.
고환高歡은 성품이 침착하고 과묵하여 종일토록 엄숙하니, 사람들이 그 깊이를 측량하지 못하였다.
임기응변할 때에는 변화함이 신출귀몰하고, 군대를 제어할 때에는 법령이 엄숙하며, 정사를 처단함에 분명히 살피니, 속이거나 범하지 못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문무백관들이 모두 그를 위해 쓰여지는 것을 좋아하였다.
후경侯景이 평소 고징高澄을 경시하였다.
그러므로 〈고환高歡이 죽자〉 자신과 고씨高氏가 틈이 있음을 염려하고 내심 스스로 불안해하여 하남河南을 점거하고 반란을 일으켜 서위西魏귀부歸附하였으며,
정화丁和를 보내어 나라에 와서 표문表文을 올려 말하기를 “신이 고징高澄注+[頭註]고징高澄고환高歡의 아들이고, 고양高洋의 형이다. 과 틈이 있으니, 13를 들어 내응內應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이 여러 신하들을 불러 조정에서 의논하였다.
상서복야尙書僕射 사거謝擧 등이 모두 말하기를 “지난해 서위西魏와 화친하여 변경에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반역한 신하를 받아들이는 것은 삼가 생각건대 옳지 않습니다.” 하니, 이 말하기를 “후경侯景을 얻으면 변방 북쪽을 깨끗이 평정할 수 있으니 이런 기회는 얻기 어렵다.
어찌 고지식하여 변통할 줄 모르는가.” 하였다.
그러나 마음에 아직 결정하지 못하여 일찍이 혼잣말로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금구金甌注+[頭註]는 작은 동이이다.와 같아서 한 곳도 흠난 곳이 없다.
이제 갑자기 후경侯景의 땅을 받는다면 이것이 어찌 사리에 맞는 것이겠는가.
만일 이로 인하여 혼란을 야기한다면注+[頭註]은 혹시 그럴까 의심하는 말이다. 후회한들 어찌 미칠 수 있겠는가.” 하였는데, 주이朱异가 임금의 뜻을 미루어 헤아리고는 대답하기를 “성명聖明하신 군주께서 천하를 다스리심에 남쪽과 북쪽에서 귀부歸附하여 우러러 사모하니, 이들을 막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후로 귀부歸附하려는 자들의 희망을 끊어버리게 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이 이에 후경侯景을 받아들이기로 의론을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후경侯景을 대장군으로 삼고 하남왕河南王에 봉하였다.
주홍정周弘正注+[通鑑要解]주홍정周弘正은 이 당시 평서자의참군平西諮議參軍이었다. 천상天象의 변화를 보고 길흉을 잘 점쳤다.
이 일에 앞서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수년 뒤에 병란이 일어날 것이다.” 하였는데, 후경侯景을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화란禍亂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하였다.
동위東魏고징高澄업성鄴城에 들어가 조회하였다.注+[頭註]동위東魏업성鄴城에 도읍하였으니, 앞의 갑인년조甲寅年條(534)에 보인다.
동위東魏정제靜帝注+[頭註]정자靜字오자誤字이다. 는 용모가 아름답고 힘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서 활을 쏘면 백발백중이었으며, 문학文學을 좋아하여 행동거지가 조용하고 침착하며 고상하니, 당시 사람들이 “효문제孝文帝의 풍채가 있다.”注+[頭註]정제靜帝 원선견元善見은 바로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 원굉元宏의 손자이다. 고 하였다.
대장군 고징高澄이 그를 매우 시기하였으므로 황제가 고징高澄을 도모하여 죽이고자 하다가 일이 발각되니, 고징高澄이 황제를 함장당含章堂에 유폐하였다.
동위東魏에서 군사軍司 두필杜弼을 시켜 격문檄文을 지어 나라에 보내어注+[頭註]동위東魏후경侯景하남河南을 가지고 서위西魏에 항복했다가 또 하남河南을 가지고 배반하여 나라에 붙으니, 나라가 후경侯景을 봉하여 하남왕河南王으로 삼고 군대를 보내어 구원하였다. 이르기를 “후경侯景이 스스로 의심하여 두마음을 품어서 멀리 관중關中 지방에 몸을 의탁하며
간사하고 참람한 조정(西魏)에 의지하여注+[頭註]遠託關隴 의빙간위依憑奸僞:간위奸僞는 모두 서위西魏를 가리킨다. 반역한 군주인 서위西魏문제文帝(元寶炬)注+[頭註]반역한 군주는 위주魏主원보거元寶炬를 가리킨다. 와 군신간의 분수를 정하고 가짜 조정의 정승인 우문태宇文泰注+[頭註]가짜 재상은 우문태宇文泰를 가리킨다. 와 형제간의 친분을 맺었으니, 어찌 은혜가 없다고 말하겠는가마는 반역한 소인小人은 끝내 기르기가 어려운 법인데,
이제 도리어 저들에게 예리한 병기注+[頭註]이기利器는 위세와 권력을 이른다. 를 주고 허술하게 관리하여 도심盜心을 불러일으키니, 만약 형세상 간교한 계책을 행할 수 있고 시기가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에 편리하다고 판단되면 반드시 스스로 회남淮南을 점거하여 또한 황제라 칭하고자 할 것이다.注+[頭註]경포黥布고사故事를 인용한 것이니, 나라 고조高祖 을사년조乙巳年條(B.C.196)에 보인다.
다만 나라에서 원숭이를 잃자 화가 숲의 나무에 뻗치고, 성문에 불이 나자 재앙이 지어池魚에게 미칠까注+[附註]지어池魚는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풍속통의風俗通義》에 “지중어池仲魚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문城門에 불이 나서 지중어池仲魚가 불에 타 죽었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성문城門에 불이 나자 재앙이 지어池魚에게 미쳤다.’ 한다.” 하였다. 일설一說에는 “연못의 물을 길어다 불을 꺼서 재앙이 물고기에게 미쳤다.”고 한다. 두렵다.” 하였는데, 그 뒤에 나라의 화패禍敗가 모두 두필杜弼의 말처럼 되었다.


역주
역주1 獻武王 : 獻武는 시호이다. 諡法에 “聰明하고 叡智가 있는 것을 獻이라 하고 능히 禍亂을 평정한 것을 武라 한다.[聰明叡哲曰獻 克定禍亂曰武]” 하였다.
역주2 金甌 : 금으로 만든 작은 사발(술잔)로 결함이 없는 것을 비유하는 바, 국가의 기반이 공고함을 이르며 疆土를 의미하기도 한다.
역주3 : 이
역주4 : 시
역주5 奸僞 : 간사한 傀儡정권을 이른다.
역주6 授之以利器 誨之以慢藏 : 利器는 《老子》에 “나라의 날카로운 병기는 남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國之利器 不可以授人]”라고 보이는 바, 군대와 병권을 가리키고, 慢藏은 《周易》 〈繫辭傳〉에 “재물을 허술하게 보관함은 盜心을 불러일으키고, 짙은 화장은 음심을 불러일으킨다.[慢藏誨盜 冶容誨淫]”라고 보이는 바, 재물관리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도둑을 불러들인다는 말이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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