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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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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二十年이라
九月 太子始得風疾하야 不能言하니라
范氏唐鑑曰
德宗卽位之初 銳然有平一天下志하니 四海之內 聞風震悚하야 以爲不世出之主也러니 不數年而致大亂 何哉
本夫志大而才小하고 心褊而意忌하야 不能推誠御物, 尊賢使能하고 以爲果敢聰明 足以成天下之務라하야
不務養民而先用武하고 軍食不足이면 則暴征橫斂以繼之하야 民愁兵怨하야 激成亂階
自古 邦本不固而戰攻不息이면 必有意外之患하니 此後王之深戒也니라
[史略 史評]范氏曰
德宗享國 粃政尤多而大弊有三하니 曰姑息藩鎭이요 曰委任宦者 曰聚斂貨財
蓋本夫志大而才小하고 心褊而意忌하야 不能推誠御物하고 尊賢使能하야 以爲果敢聰明 足以成天下之務
初欲削平僭叛하고 剗滅藩鎭이라가 一有奉天之亂 而心隕膽破하야 惟恐生事
旣猜防臣下 則專任宦者하고 思其窮窘이면 則聚斂掊克 益甚於初하니 自古 治愈久而政愈弊하고 年彌進而德彌退 鮮有如德宗者
是以 藩鎭强而王室弱하고 宦者專而國命危하고 貪政多而民心離하야 唐室之亡 卒以是三者하니 其所從來者漸矣니라


정원貞元 20년(갑신 804)
9월에 태자太子가 처음으로 풍병風病(中風)에 걸려서 말을 하지 못하였다.
범씨范氏(范祖禹)의 《당감唐鑑》에 말하였다.
덕종德宗이 즉위하던 초기에는 정예하게 천하를 평정하려는 뜻이 있으니, 온천하가 풍문을 듣고 두려워하여 불세출의 군주라고 여겼는데, 몇 년이 못 되어서 큰 혼란을 초래함은 어째서인가?
본래 뜻이 크지만 재주가 작고 마음이 편협하고 시기심이 많아서, 정성을 미루어 남을 어거하지 못하고 어진 이를 높이고 유능한 사람을 부리지 못하고는 자신의 과감함과 총명함이 충분히 천하의 사업을 이룰 수 있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백성을 기르기를 힘쓰지 않고 먼저 무력을 사용하였으며, 군량이 부족하면 포악하게 거두고 제멋대로 징수하여 백성들이 근심하고 군사들이 원망하여 난의 계제階梯를 격발시켜 이루었다.
예로부터 나라의 뿌리(백성)가 견고하지 못하면서 전쟁과 공격을 그치지 않으면 반드시 뜻밖의 환난이 있었으니, 이는 후세의 제왕들이 깊이 경계해야 할 바이다.”
[史略 사평史評]范氏(范祖禹)가 말하였다.
덕종德宗이 나라를 다스릴 적에 잘못된 정사가 더욱 많았는데 큰 병폐가 세 가지가 있었으니, 번진藩鎭을 고식적으로 대한 것과 환관宦官들에게 위임한 것과 재물을 가렴주구한 것이다.
이는 뜻이 크지만 재주가 작고 마음이 편협하고 시기심이 많아서, 정성을 미루어 남을 대하지 못하고 어진 이를 높이고 능력 있는 자를 부리지 못하고는 자신의 과감함과 총명함이 충분히 천하의 사업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 데에서 연유하였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참람하고 배반한 자들을 평정하고 번진藩鎭을 멸망시키고자 하다가 한번 봉천奉天의 난리를 만나자 간담이 서늘해져서 오직 일이 생길까 두려워하였다.
신하들을 시기하여 이를 방어하려 하면 오로지 환관에게 맡기고, 재정의 궁핍함을 생각하면 가렴주구가 처음보다 더욱 심하였으니, 예로부터 오래 다스릴수록 정사가 더욱 피폐해지고 나이를 먹을수록 이 더욱 후퇴하기를 덕종德宗과 같이 한 자는 드물다.
이 때문에 번진藩鎭이 강하고 왕실王室이 약하며 환관宦官들이 전횡하고 국가의 운명이 위태로우며 탐욕스런 정사가 많아지고 민심民心이 이반하여 나라 왕실이 멸망한 것은 끝내 이 세 가지 때문이었으니, 그 소종래所從來가 점점 이루어진 것이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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