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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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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五年이라 〈秦甘露三年이라
○ 燕建熙二年이라
○ 是歲 涼奉升平之號하니라
五月 帝崩하니 無嗣
琅邪(琊)王丕 卽皇帝位注+[通鑑要解]帝崩하니 無嗣 皇太后令曰 이니 義望情地 莫與爲比 其以爲王하야 奉大統하라하다하다
○ 范寗 好儒學하고 性質直이라 常(嘗)謂王弼, 何晏注+[頭註]魏人이니 見二十五卷己巳年이요 又見二十六卷丁巳年이라之罪 深於桀, 注+[頭註]諡法 賊人多殺曰桀이요 殘義損善曰紂
或以爲貶之太過라한대 寗曰 王, 何 蔑棄典文하고 幽沈仁義하야 游辭浮說 波蕩後生하야
使搢紳注+[頭註] 揷也 大帶也 謂揷笏於紳也 周禮註 讀作薦이니 謂揷之於紳帶之間也之徒 翻然改轍하야 以至禮壞樂崩하고 中原傾覆하니 遺風餘俗 至今爲患이라
桀, 紂 縱暴一時 適足以喪身覆國하야 爲後世戒하니 豈能迴百姓之視聽哉리오
吾以爲一世之禍하고 歷代之患하며 自喪之惡하고 迷衆之罪 大也라하노라
○ 十二月 秦王堅 命牧伯守宰하야 各擧孝悌廉直 文學政事호되 察其所擧하야 得人者 賞之하고 非其人者 罪之하니 由是 人莫敢妄擧하고 而請託不行이라
當是之時하야 內外之官 率皆稱職하야 田疇修闢하니 倉庫充實하고 盜賊 屛息注+[頭註] 蔽也 鼻息也 屛藏其氣息 言懼甚也이러라
[史略 史評]史斷曰
康帝 降年不永하니 無足多者 穆帝 襁褓之資 母后하야 中外無事 十有餘年이라
維時 石虎死하야 胡中大亂이어늘 朝廷 乃用殷浩하야 蕩平關河
이나 用違其才하야 卒致하니 晉之威權 自此 一歸桓溫矣
蓋溫與浩 少而齊名하니 晉人之用浩 本圖抗溫이라
其敗也 溫之勢浸以熾焉하니라


승평升平 5년(신유 361) 〈나라 감로甘露 3년이다.
나라 건희建熙 2년이다.
○ 이해에 나라가 동진東晉 목제穆帝의 연호인 승평升平을 받들어 사용하였다.〉
5월에 황제가 하니, 후사가 없었다.
낭야왕琅琊王 사마비司馬丕가 황제에 즉위하였다.注+[通鑑要解]목제穆帝하니 후사가 없었다. 황태후皇太后가 명령하기를 “낭야왕琅琊王 사마비司馬丕중흥中興 후의 정통正統이니, 의리와 명망, 인정과 지위로 볼 때 비길 만한 자가 없다. 그를 황제로 삼아 대통大統을 받들게 하라.” 하였다.
범녕范寗유학儒學을 좋아하며 성질이 질박하고 정직하였는데, 일찍이 말하기를 “왕필王弼하안何晏注+[頭註]왕필王弼하안何晏나라 사람이니, 25권 기사년조己巳年條(249)에 보인다. 하안何晏은 또 26권 정사년조丁巳年條(297)에 보인다. 의 죄가 注+[頭註]시법諡法에 “사람을 해치고 많이 죽이는 것을 이라 하고, 의로운 사람을 해치고 선한 사람을 손상시키는 것을 라 한다.” 하였다. 보다도 심하다.” 하였다.
혹자가 말하기를 “폄하하기를 너무 지나치게 한다.” 하자, 범녕范寗이 말하기를 “왕필王弼하안何晏경전經典문헌文獻을 멸시하며 인의仁義를 인멸시켜 근거 없는 말과 부화한 말로 후생들을 미혹시켰다.
그리하여 사대부士大夫注+[頭註]은 꽂음이고 은 큰 띠이니, 진신搢紳을 큰 띠에 꽂는 것을 이른다. 《주례周禮에 “은 천(진)으로 읽으니, 신대紳帶의 사이에 꽂는 것을 이른다.” 하였다. 들로 하여금 번연히 발자취를 고치게 하여 예악禮樂이 붕괴되고 중원中原이 전복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으며 남은 풍속이 지금까지도 폐해가 되고 있다.
는 비록 한 때에 방종하고 포학하였으나 다만 자기 몸을 죽이고 나라를 전복시켜서 후세의 경계가 될 뿐이니, 어찌 백성들의 보고 들음을 바꿀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생각건대 한 대의 화환禍患은 가볍고 역대의 화환禍患은 중하며, 자기 몸을 망치는 죄악은 작고 무리를 미혹시키는 죄악은 크다고 여긴다.” 하였다.
○ 12월에 진왕秦王 부견苻堅에게 명하여 각각 효제孝悌염직廉直문학文學정사政事 등의 과목科目으로 인재를 천거하게 하되 천거된 사람을 살펴서 적임자인 경우에는 천거한 사람에게 상을 내리고 적임자가 아닌 경우에는 죄를 주니, 이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감히 망령되이 천거하지 못하고 청탁이 행해지지 않았다.
이때를 당하여 내외內外의 관직이 모두 잘 수행되어 전야田野가 닦여지고 개간되니, 창고가 충실하고 도적들이 숨을 죽였다.注+[頭註]은 가리는 것이요 은 코로 숨을 쉬는 것이다. 숨을 죽였다는 것은 두려움이 심함을 말한다.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강제康帝는 수명이 길지 못하였으니 칭찬할 만한 점이 없고, 목제穆帝는 포대기에 싸인 어린 아이로 모후母后칭제稱制하여 나라 안팎이 무사한 것이 십여 년이었다.
이때에 석호石虎가 죽어 오랑캐가 크게 어지러웠는데, 조정에서 은호殷浩를 등용하여 관하關河(요해처)를 완전히 평정하였다.
그러나 인재를 잘못 등용하여 끝내 산상山桑의 패배를 불러 왔으니, 나라의 위세와 권력이 이로부터 한결같이 환온桓溫에게로 돌아갔다.
환온桓溫은호殷浩는 젊어서부터 명성이 대등하였으니, 나라에서 은호殷浩를 등용한 것은 본래 환온桓溫에게 대적하려 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은호殷浩가 패배하자 환온桓溫의 세력이 점차 강성해진 것이다.”


역주
역주1 琅琊王丕 中興正統 : 元帝‧明帝‧成帝는 모두 正統으로 帝位를 서로 전하였다. 琅琊王 司馬丕는 成帝의 長子이므로 中興(東晉) 후의 正統이라고 이른 것이다.
역주2 稱制 : 황제를 대신하여 정사를 행함을 이른다.
역주3 山桑之敗 : 穆帝가 殷浩를 불러 나오게 하여 楊州剌史로 삼았는데, 군대를 이끌고 北伐하다가 桑山縣에 이르러서 姚襄에게 패배당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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