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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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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午]十三年이라
楚王英 與方士 造作圖書注+[通鑑要解]楚王英 與方士 造作金龜玉鶴하야 刻文字爲符瑞하니 男子燕廣 告英與漁陽王平, 顔忠等으로 造作圖書하야 有逆謀也하야 有逆謀어늘 廢徙丹陽하니 自殺하다
是時 窮治楚獄하야 至累年하니 其辭語相連하야 自京師親戚諸侯州郡豪傑 及考按吏阿附하야 坐死徙者以千數 而繫獄者尙數千人이라
是時 怒甚하니 吏皆惶恐하야 諸所連及 率一切陷入하고 無敢以情恕者
侍御史寒朗 心傷其寃하야 上疏力言其無辜한대 하야 詔遣朗出하고 後二日 車駕自幸洛陽獄하야注+[頭註]省錄之也囚徒하야 理出千餘人하니 天旱이라가 卽大雨하다
馬后亦以楚獄多濫이라하야 乘間注+[釋義]間隙之間이라爲帝言之한대 帝惻然感悟하고 夜起彷徨注+[釋義]彷徨 徘徊也[頭註]不自安之貌하니
由是 多所降宥러라


영평永平 13년(경오 70)
초왕楚王 방사方士들과 도서圖書를 조작하여 역모가 있자,注+[通鑑要解]초왕楚王 방사方士들과 황금黃金으로 거북을 만들고 으로 을 만들어서 여기에 문자를 새겨 부서符瑞를 만드니, 남자男子 연광燕廣어양漁陽왕평王平, 안충顔忠 등과 도서圖書를 조작하여 역모가 있다고 고변告變하였다. 폐위廢位하여 단양丹陽으로 옮기니, 이 자살하였다.
이때 초왕楚王의 옥사를 철저히 다스려서 몇 년에 이르니, 그 말이 서로 연루되어서 경사京師의 친척과 제후와 주군州郡호걸豪傑들로부터 옥사獄事를 규찰하는 관리에 이르기까지 초왕楚王을 좇아서 죄에 걸려 죽거나 귀양 간 자가 천 명으로 헤아려졌고 에 갇힌 자가 거의 수천 명이었다.
이때 이 매우 노여워하니, 관리들이 모두 두려워해서 여러 연좌된 자들을 모두 일체 죄에 몰아넣고 감히 정상을 참작하여 용서해 줌이 없었다.
시어사侍御史 한랑寒朗이 마음속으로 그들의 억울함을 서글퍼해서 상소하여 죄가 없음을 강력히 말하자, 황제의 노여워하는 뜻이 풀려서 한랑寒朗을 내보내고, 이틀 후에 거가車駕(황제)가 직접 낙양洛陽에 행차해서 죄수들을 심리審理注+[頭註]은 〈죄수들의 정상情狀을〉 살펴서 기록하는 것이다. 하여 천여 명을 출옥시키니, 이때 날이 가물다가 즉시 큰비가 내렸다.
마황후馬皇后 또한 나라의 옥사獄事가 지나친 것이 많다 하여 틈注+[釋義]간극間隙(시간의 한가로운 틈)의 이다. 을 타서 황제에게 말하니, 황제가 측연惻然히 감동하여 깨닫고 밤중에 일어나 방황注+[釋義]彷徨은 배회함이다.[頭註]彷徨은 스스로 불안해하는 모양이다.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죄를 낮추고 용서해 준 것이 많았다.


역주
역주1 帝意解 : 一說에는 “황제가 寒朗의 본뜻을 알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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