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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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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戌]永徽元年이라
正月 召朝集使注+[釋義]自外入朝하야 與朝班者 曰朝集使 하야 謂曰 朕初卽位하니 事有不便於百姓者어든 悉宜陳하고 不盡者 更封奏하라
自是 日引刺史十人入閣하야 問以百姓疾苦及其政治하다
有洛陽人李弘泰 誣告長孫無忌謀反이어늘 立命斬之하다
無忌與褚遂良으로 同心輔政하고 上亦尊禮二人하야 恭己以聽之
永徽之政 百姓阜安注+[頭註] 盛也 하야 有貞觀之遺風이러라


영휘永徽원년元年(경술 650)
정월에 조집사朝集使를 불러注+[釋義]밖에서 들어와 조회하여 조정의 반열에 참여한 자를 조집사朝集使라 한다. 이르기를 “이 처음 즉위하였으니 백성에게 불편한 일이 있거든 모두 아뢸 것이요, 미진한 것을 다시 봉사封事로 아뢰라.” 하였다.
이로부터 날마다 자사刺史 열 명을 인견하여 내각內閣에 들어오게 해서 백성의 고통과 정치의 상황을 물었다.
낙양洛陽 사람 이홍태李弘泰가, 장손무기長孫無忌가 모반했다고 무고誣告하자 이 그 자리에서 명하여 이홍태李弘泰를 참수하게 하였다.
이에 장손무기長孫無忌저수량褚遂良과 마음을 합하여 정사를 보필하였고, 또한 두 사람을 존경하고 예우하여 자기 몸을 공손히 하고서 따랐다.
그러므로 영휘永徽 연간의 정사가 백성들이 풍족하고 편안하여注+[頭註]는 성대함이다. 정관貞觀 연간의 유풍이 있었다.


역주
역주1 朝集使 : 漢나라 때 각 郡에서 매년 사자를 서울에 보내어 郡政과 재정 상황을 보고하였는데, 이들을 上計吏라 불렀다. 뒤에 이 제도를 답습하고 朝集使라 고쳐 불렀다.

통감절요(7)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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