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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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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寅]十五年이라
曹操下令曰 孤始於譙東 築精舍注+[頭註]講讀之所曰精舍 又佛寺也 息心所棲曰精舍 精練行者之所居하야 欲秋夏讀書하고 冬春射獵하야 爲二十年規注+[釋義]規爲句하니 圖也라가 待天下淸하야 乃出仕
然不能得如意하야 徵爲典軍校尉하니 意遂更欲爲國家하야 討賊立功하야 使題墓道 言漢故征西將軍曹侯之墓 此其志也러니
而遭値董卓之難하야 興擧義兵하고 後領兗州하야 破降黃巾三十萬衆하고 又討袁術하야 使窮沮而死하고 摧破袁紹하야 其二子注+[頭註]二子 袁譚, 袁尙이라하고 復定劉表하야 遂平天下하고 身爲宰相하니 人臣之貴已極이요 意望已過
設使國家 無有孤런들 不知當幾人稱帝 幾人稱王이라
或者人 見孤彊盛하고 恐妄相하야 言有不遜之志注+[頭註]言其將簒也라하니 每用耿耿注+[釋義]詩耿耿不寐라한대 注云耿耿 猶儆儆也 錢氏曰 耿耿 小明이니 心有所存하야 不能忘之貌이라
爲諸君하야 陳道此言하노니 皆肝鬲(膈)注+[頭註] 與膈通하니 胸膈也之要
이나 欲孤便爾委捐所典兵衆 實不可也 何者
誠恐己離兵이면 爲人所禍 己敗 則國家傾危하리니
是以 不得慕虛名而處實禍也하노라
○ 劉表 故吏士 多歸劉備하니 備以周瑜所給地少하야 不足以容其衆이라하야 乃自詣京注+[通鑑要解] 非京師也하야 見孫權하고 求都督荊州어늘
瑜上疏於權曰 劉備以梟雄之姿注+[頭註] 勇健也 武稱也 而有關羽, 張飛熊虎之將하니 必非久屈爲人用者
蛟龍得雲雨 終非池中物라한대 不從하다
備還聞之하고 歎曰 天下智謀之士 所見略同이로다
孔明 諫孤莫行하니 其意亦慮此也니라
○ 周瑜詣京見權하고 乞與奮威注+[原註]權從弟孫瑜[通鑑要解]奮威 奮威將軍也 時權從弟孫瑜爲也 俱進取蜀注+[原註]劉璋據蜀하니라而幷張魯注+[原註]魯據漢中하니라하고 因留奮威하야 固守其地하야 與馬超結援注+[原註]超據關中하니라하고
瑜還하야 與將軍據襄陽하야 北方 可圖也리이다 許之하니
瑜還江陵이라가 道病하고 與權牋曰 方今 曹操在北하야 未靜하고 劉備寄寓하야 有似養虎하니 天下之事 未知終始니이다
魯肅 忠烈注+[頭註]功之光且盛者曰烈이라하야 臨事不苟하니 可以代瑜
儻所言 可采 瑜死不朽矣라하고 卒於巴丘注+[釋義]巴丘 漢長沙郡下雋縣地 三國 吳始名巴丘하니라[通鑑要解]國志 三度氣殺周瑜한대 瑜臨死歎曰 天生瑜하고 豈生亮아하고 發憤死하니 年三十六也하다
○ 初 程普頗以年長이라하야 陵侮瑜한대 瑜折節下之하야 終不與校注+[頭註] 計校(較)也 言不與之校曲直也하니
普後自敬服而親重之하야 乃告人曰 與周公 若飮醇注+[通鑑要解]酒不澆曰醇醪하야 不覺自醉라하더라
○ 權以魯肅으로 代瑜領兵하니 魯肅 勸權하야 以荊州借劉備하야 與共拒曹操한대 權從之하다
○ 初 孫權 謂呂蒙曰 卿 今當塗注+[釋義] 路道也 張綱曰 어늘 安問狐狸리오하니라掌事하니 不可不學이니라
辭以軍中多務한대 權曰 孤豈欲卿治經爲博士耶
但當涉獵注+[釋義]涉獵 謂泛覽流觀이니 譬如涉水獵獸하야 不精專也하야 見往事耳니라
卿言多務하나 孰若孤
孤常讀書 自以爲大有所益이로라
乃始就學이러니 及魯肅 過尋陽이라가 與蒙論議하고 大驚曰 卿 今者才略 非復吳下이로다
蒙曰 士別三日이면 卽更刮目相待注+[頭註]刮目 拭目也어니 大兄 何見事之晩乎잇가
遂拜蒙母하고 結友而別하다
○ 劉備以從事龐統으로 守耒陽注+[釋義]縣名이니 屬桂陽이러니 今改耒陽하니 州在湖南衡州路하니라이러니 在縣不治어늘 免官한대
魯肅 遺備書曰 龐士元 非百里才
使處治中別駕注+[頭註]始於後漢하니 本刺史自辟除也 從刺史行部할새 別乘一 謂之別駕 治中別駕 皆州之紀綱이라之任이라야 始當展其驥足耳라하고 諸葛亮 亦言之하니
備見統하고 與善譚注+[頭註] 與談同이라 一本 善作言하고 龐統傳無善字하야 大器之하야 遂用統爲治中하고 親待 亞於諸葛亮이러라


건안建安 15년(경인 210)
조조曹操가 명령을 내리기를 “나는 처음에 초군譙郡 동쪽에 정사精舍注+[頭註]유학儒學경전經傳을〉 강독하는 곳을 정사精舍라 이른다. 정사精舍는 또 사찰寺刹을 가리킨다. 식심息心(승려)이 거처하는 곳을 정사精舍라 하니, 하게 수련修練하는 행자行者들이 거처하는 곳이다.를 짓고서 가을과 여름에는 책을 읽고 겨울과 봄에는 활을 쏘고 사냥하면서 20년을 살다가注+[釋義]에서 구두를 떼니, 는 도모함이다. 천하가 깨끗해지기를 기다려 비로소 세상에 나와 벼슬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뜻처럼 되지 않아 부름을 받고 전군교위典軍校尉가 되니, 마음이 마침내 바뀌어 국가를 위해서 역적을 토벌하고 공을 세워 묘도墓道에 ‘나라 정서장군征西將軍 조후曹侯’라고 쓰게 하고자 하는 것이 본래 뜻이었다.
그런데 동탁董卓의 난을 만나 의병義兵을 일으켰고, 뒤에 연주목兗州牧을 겸하여 황건적黃巾賊 30만 명을 격파하여 항복을 받았으며, 또 원술袁術을 토벌하여 그로 하여금 곤궁하고 저상沮喪하여 죽게 하였고, 원소袁紹를 꺾어 그의 두 아들注+[頭註]원소袁紹의 두 아들은 원담袁譚원상袁尙이다. 효수梟首하였으며 다시 유표劉表를 평정하여, 마침내 천하를 평정하고 몸이 재상이 되었으니, 인신人臣의 귀함이 이미 지극하고 나의 기대를 이미 넘었다.
가령 국가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았던들 몇 사람이 황제皇帝를 칭하고 몇 사람이 을 칭했을지 알 수 없다.
혹자들이 내가 강성한 것을 보고는 망령되이 서로 헤아려서 불손不遜한 뜻注+[頭註]불손不遜한 뜻이란 조조曹操가 장차 황제皇帝의 자리를 찬탈하려 함을 말한다.이 있다고 말할까 두려우니, 나는 항상 이 때문에 자나깨나 마음이 불안하다.注+[釋義]경경耿耿은 《시경詩經》에 “경경耿耿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하였는데 에 “경경耿耿경경儆儆과 같다.” 하였다. 전씨錢氏가 말하기를 “경경耿耿은 조금 밝은 것이니, 마음에 간직한 것이 있어 잊지 못하는 모양이다.” 하였다.
그러므로 제군諸君들을 위해서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폐부肺腑(마음속)注+[頭註]과 통하니, 흉격胸膈(胸襟)이다. 에서 우러나온 진실된 말이다.
그러나 내가 거느리고 있는 군대를 곧바로 버리라고 하는 것은 실로 불가하니, 어째서인가?
진실로 내가 병권을 버리면 남에게 화를 당하게 될 것이요, 내가 실패하면 국가가 기울어져 위태로울까 두려워해서이다.
이 때문에 헛된 명성名聲을 사모하여 실제의 에 처할 수 없는 것이다.” 하였다.
유표劉表의 옛 관리와 군사들이 유비劉備에게 많이 귀부歸附하니, 유비劉備주유周瑜가 준 땅이 협소하여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용납할 수 없다 하여 마침내 직접 경구京口注+[通鑑要解]경구성京口城이요, 경사京師가 아니다. 에 가서 손권孫權을 만나 보고 형주荊州도독都督이 될 것을 요구하였다.
주유周瑜손권孫權에게 상소하기를 “유비劉備는 사납고 용맹한注+[頭註]는 용맹하고 굳셈이요, 무용武勇으로 일컬어짐이다. 자품으로 관우關羽장비張飛 등 곰과 범 같은 장수가 있으니, 반드시 오랫동안 굽혀 남에게 쓰여질 인물이 아닙니다.
교룡蛟龍이 구름과 비를 만나면 끝내 못 속의 물건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하였으나 손권孫權이 듣지 않았다.
유비劉備가 돌아와 이 말을 듣고 감탄하기를 “천하의 지모智謀 있는 선비는 소견이 대략 같다.
당시에 공명孔明이 나에게 가지 말라고 간하였으니, 그의 뜻이 또한 이것을 염려한 것이다.” 하였다.
주유周瑜경구京口에 가서 손권孫權을 만나 보고 청하기를 “분위장군奮威將軍(孫瑜)注+[原註]奮威는 손권孫權종제從弟손유孫瑜이다. [通鑑要解]奮威는 분위장군奮威將軍이니, 이때 손권孫權종제從弟손유孫瑜분위장군奮威將軍으로 있었다. 과 함께 전진하여 注+[原註]유장劉璋을 점거하였다.을 점령하고 장로張魯注+[原註]장로張魯한중漢中을 점거하였다. 를 겸병한 다음 인하여 분위장군奮威將軍을 남겨 두어 그 땅을 굳게 지키면서 〈적국의 침입이 있을 경우〉 서로 지원해 주기로 마초馬超注+[原註]마초馬超관중關中을 점거하였다. 와 약속하고,
저는 돌아와 장군將軍양양襄陽을 점거하여 조조曹操를 압박하면 북방北方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손권孫權이 이를 허락하였다.
주유周瑜강릉江陵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 병이 들자, 손권孫權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지금 조조曹操가 북쪽에 있어서 국경이 평안하지 못하고 유비劉備국중國中에 우거하여 범을 기르는 것과 같으니, 천하의 일이 그 결말을 알 수가 없습니다.
노숙魯肅은 충성스럽고 공렬功烈注+[頭註]이 빛나고도 성대한 것을 이라 한다. 이 있어 일을 당하면 구차하지 않으니, 저를 대신할 수 있습니다.
만약 제가 말씀드린 것을 따르신다면 저는 죽어도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마침내 파구巴丘에서 죽었다.注+[釋義]巴丘는 나라 장사군長沙郡 하준현下雋縣 지역이니, 삼국시대三國時代나라가 처음으로 파구巴丘라고 이름하였다. [通鑑要解]《삼국지三國志》에 제갈량諸葛亮이 세 차례 주유周瑜를 꺾어 죽게 하였는데, 주유周瑜가 죽을 때에 탄식하며 말하기를 “하늘이 나를 내시고 어찌 다시 제갈량諸葛亮을 내셨단 말인가?” 하고 격분하여 죽으니, 나이가 36세였다.
○ 처음에 정보程普는 자못 자신이 나이가 많다 하여 자주 주유周瑜를 능멸하고 업신여겼으나 주유周瑜는 예우하여 자신을 낮추고 끝내 따지지 않았다.注+[頭註]는 계교하는 것이니, 그와 더불어 곡직曲直(是非)을 따지지 않음을 말한다.
정보程普는 뒤에 스스로 존경하고 감복하여 그를 친애하고 소중히 여기면서 마침내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주공근周公瑾과 사귀는 것은 마치 물을 타지 않은 독한 술注+[通鑑要解]술에 물을 타지 않은 것을 순료醇醪라 한다. 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취함을 깨닫지 못한다.” 하였다.
손권孫權노숙魯肅으로 주유周瑜를 대신하여 군대를 거느리게 하니, 노숙魯肅손권孫權에게 권하여 형주荊州유비劉備에게 빌려 주어 함께 조조曹操를 막으라 하였는데, 손권孫權이 이를 따랐다.
○ 처음에 손권孫權여몽呂蒙에게 이르기를 “이 이제 요로要路를 담당注+[釋義]는 도로이니, 장강張綱이 말하기를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고 있으니, 어찌 여우와 살쾡이를 따지겠는가.” 하였다. 하여 일을 맡고 있으니,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여몽呂蒙군중軍中에 사무가 많음을 이유로 사양하자, 손권孫權이 말하기를 “내가 어찌 경서經書를 연구하여 박사博士가 되기를 바라겠는가?
다만 서책을 섭렵注+[釋義]섭렵涉獵은 널리 보고 두루 봄을 이르니, 비유하자면 물을 건너고 짐승을 사냥하는 것과 같이 하여 정밀하고 오로지하지 않는 것이다. 하여 지나간 옛일을 알게 할 뿐이다.
이 사무가 많다고 말하나 어찌 나만 하겠는가.
나는 항상 책을 읽음에 스스로 크게 유익한 바가 있다고 여긴다.” 하였다.
여몽呂蒙이 이에 비로소 학문에 나아갔는데, 노숙魯肅심양尋陽을 지나다가 여몽呂蒙과 의논을 해 보고는 크게 놀라며 말하기를 “지금 의 재주와 도략이 다시는 예전 오하吳下에 있을 때의 아몽阿蒙이 아니다.” 하니,
여몽呂蒙이 말하기를 “선비가 작별한 지 사흘이면 마땅히 눈을 씻고 상대注+[頭註]괄목刮目은 눈을 씻는 것이다. 해야 하니, 대형大兄은 어찌 일을 봄이 더디십니까?” 하였다.
노숙魯肅은 마침내 여몽呂蒙의 어머니를 배알하고 여몽呂蒙과 벗을 맺고 작별하였다.
유비劉備종사관從事官방통龐統으로 뇌양耒陽注+[釋義]뇌양耒陽의 이름이니 계양군桂陽郡에 속하였는데, 이제 뇌양耒陽으로 바꿨으니 호남湖南 형주로衡州路에 있다. 令을 맡게 하였는데, 이 다스려지지 않자 방통龐統을 파면하였다.
노숙魯肅유비劉備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방사원龐士元(龐統)은 백리百里 되는 을 다스릴 재목이 아닙니다.
그를 치중治中별가別駕注+[頭註]치중治中별가別駕후한後漢 때에 비롯되었으니, 본래 자사刺史가 직접 불러서 제수하였다. 별가別駕자사刺史를 따라 를 순행할 때에 별도로 한 대의 전거傳車를 타기 때문에 별가別駕라 이른다. 치중治中별가別駕는 모두 기강紀綱을 바로잡는 관직이다. 의 직임에 있게 하여야 비로소 그의 기족驥足(뛰어난 재능)을 펼칠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였고, 제갈량諸葛亮 또한 말을 하니,
유비劉備방통龐統을 불러 만나 보고 그와 함께 깊은 이야기를 하고는注+[頭註]과 같다. 다른 에는 자가 자로 되어 있으며, 《삼국지三國志》 〈방통전龐統傳〉에는 자가 없다. 큰 인물이라고 여겨 마침내 방통龐統을 등용하여 치중治中으로 삼고는 친애하고 우대하기를 제갈량諸葛亮 다음으로 하였다.


역주
역주1 : 효
역주2 忖度 : 촌탁
역주3 京口城 : 胡三省의 註에 “京은 京口城이다. 孫權이 이때 京口에 있었기 때문에 劉備와 周瑜가 모두 京口에 가서 孫權을 만난 것이다. 孫權은 뒤에 秣陵에 도읍하고 京口에는 京督을 두고 또 徐陵督이라 하였다. 《爾雅》에 ‘매우 높은 곳을 京이라 한다.’ 하였다. 京口城은 산을 따라 보루를 만들고 강을 따라 경계로 삼았으므로 인하여 京口라 이름한 것이다.[京 京口城也 權時居京故 劉備周瑜皆詣京見之 後都秣陵 於京口置京督 又曰徐陵督 爾雅 絶高曰京 其城因山爲壘 緣江爲境 因謂之京口]” 하였다.
역주4 : 축
역주5 : 역
역주6 : 삭
역주7 : 근
역주8 : 료
역주9 豺狼當道 : 當塗는 當道와 같은 바, 要職(要路)을 맡음을 이른다. 豺狼當道는 원래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고 있는 것으로 本文의 當塗掌事와는 뜻이 다르나 다만 當塗를 當道로도 쓰기 때문에 塗와 道가 같음을 밝히기 위하여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張綱이 말한 내용은 앞의 19권 順帝 漢安 元年條(142)에 보인다.
역주10 阿蒙 : 阿蒙의 阿字는 語助辭이다. 阿는 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에 사용하는 發語辭로 원래의 독음은 ‘악’이나 세속에서는 ‘아’로 읽는다. 阿字는 상대방의 이름이나 字, 또는 姓에도 魏‧晉 시대에 특히 유행하였다.
역주11 傳車 : 驛站에서 公文이나 사람을 遞送하는 수레를 말한다.
역주12 善譚 : 胡三省의 註에는 “善譚은 그 당시의 일을 劇論(깊이 논함)하는 것이다.[善譚者 劇論當世事也]” 하였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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