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或有一人言於夫子曰 “弟子冉雍, 雖身有仁德, 而口無才辯.” 或人嫌其德未備也.
‘子曰 焉用佞’者, 夫子語或人, 言 “仁人安用其佞也.”
‘禦人以口給 屢憎於人’者, 夫子更爲或人說佞人之短.
言佞人禦當於人以口才捷給, 屢致憎惡於人, 謂數爲人所憎惡也.
‘不知其仁 焉用佞’者, 言佞人旣數爲人所憎惡, 則不知其有仁德之人, 復安用其佞邪.
疏
○正義曰:‘屢 數也’者, 釋言云 “屢, 亟也.” 郭璞云 “亟, 亦數也.”
云 ‘佞人口辭捷給 數
人所憎惡’者, 案左傳云 “寡人不佞.” 服虔云 “佞, 才也, 不才者, 自謙之辭也.”
而此云 “焉用佞,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則佞非善事.
而以不佞爲謙者, 佞是口才捷利之名, 本非善惡之稱, 但爲佞有善惡耳.
爲善捷敏, 是善佞,
是也, 爲惡捷敏, 是惡佞, 卽
是也.
但君子欲訥於言而敏於行, 言之雖多, 情或不信, 故云 “焉用佞耳.”
어떤 사람이 “옹雍은 인仁하지만 말재주가 없다.”고 하자,
〈말을 잘하는 자는〉 민첩한 말재주로 남을 반박하다가 자주 남들의 미움을 받는다.
그가 인仁한지는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
注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말이 민첩하여 자주 남들의 미움을 받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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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이 장은 인자仁者는 반드시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부자께 말하기를 “제자 염옹冉雍은 비록 몸에 인덕을 지녔으나, 말재주가 없다.”고 하였으니, 혹인은 염옹의 덕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의심한 것이다.
[子曰 焉用佞] 부자께서 혹인에게 “인인仁人이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느냐.”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禦人以口給 屢憎於人] 부자께서 다시 혹인에게 말을 잘하는 사람의 단점을 말씀해주신 것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민첩하고 넉넉한 말재주로 남을 반박하다가 자주 남들의 미움을 부른다는 말이니, 자주 남들의 미움을 받는 것을 이른다.
[不知其仁 焉用佞]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주 남들의 미움을 받으니, 그렇다면 그가 인덕을 가진 사람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재주를 다시 어디에 쓰겠느냐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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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고찰하건대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仲尼弟子列傳〉에는 “염옹冉雍의 자字는 중궁仲弓이다.”라고 하였다.
정현鄭玄은 “노魯나라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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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義曰:[屢 數也] 《이아爾雅》 〈석언釋言〉에 “누屢는 극亟(자주 기)이다.”라고 하였고, 곽박郭璞은 “극亟도 삭數(자주 삭)이다.”라고 하였다.
[佞人口辭捷給 數爲人所憎惡]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성공成公 13년에 보이는 “과인불녕寡人不佞”을, 복건服虔은 “영佞은 재才이니, 부재不才는 스스로 겸양한 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는 “언용녕焉用佞 어인이구급禦人以口給 누증어인屢憎於人”이라고 하였으니, 영佞은 착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복건服虔이〉 불녕不佞을 겸양이라고 한 것은, 영佞은 말재주가 민첩함을 이른 말이고 본래 선악을 이른 말이 아니지만 영佞을 하는 목적에는 선과 악이 있기 때문이다.
선행을 하는 데 민첩한 것은 착한 영佞이니 ‘축타祝鮀의 영佞’이 이에 해당하고, 악행을 하는 데 민첩한 것은 나쁜 영佞이니 ‘영인佞人을 멀리하라’는 영佞이 이에 해당한다.
그러나 군자는 말에는 굼뜨고 행동에는 민첩하고자 하니, 가령[雖] 말이 많다면 진정眞情을 혹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느냐.”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