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注]王曰 臣之與君行禮者
는 成禮成禮
어늘 時臣驕泰
라 故於上拜
라
疏
古者績麻三十升布以爲之, 故云 “麻冕, 禮也.”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雖違衆 吾從下’者, 禮, 臣之與君行禮者, 下拜然後升成拜, 是禮也. 今時之臣, 皆拜於上, 長驕泰也.
疏
○正義曰 : 云‘冕 緇布冠也’者, 冠者, 首服之大名, 冕者, 冠中之別號,
士
曰 “
, 緇布冠
, 靑組纓屬于(頍)[缺].”
曰 “始冠, 緇布之冠也.
其緌也, 孔子曰 ‘吾未之聞也. 冠而敝之, 可也.’”
云‘古者績麻三十升布以爲之’者, 鄭注喪服云 “布八十縷爲升.”
疏
○正義曰 : 云‘臣之與君行禮者 下拜然後升成禮’者, 案燕禮, 君燕卿大夫之禮也.
其禮云 “公坐取大夫所媵觶, 興以酬賓, 賓降西階下, 再拜稽首.
公命小臣辭, 賓升成拜.” 鄭注 “升成拜, 復再拜稽首也.
又覲禮 “天子賜侯氏以車服, 諸公奉篋服,
于其上. 升自西階東面,
.
升成拜.” 皆是臣之與君行禮, 下拜然後升成禮也.
“마포麻布로 치포관緇布冠을 만드는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순純(生絲)으로 만드니 검약儉約하다.
注
옛날에는 30새[升]의 삼베를 짜서 면관冕冠을 만들었다.
순純은 사絲(生絲)이니, 생사生絲로 30승포升布를 짜기는 쉽다.
당하堂下에서 절을 하는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당상堂上에서 절을 하니 교만驕慢하다.
비록 대중大衆을 어기는 것이지만 나는 당하堂下에서 절하는 예禮를 따르겠다.”
注
왕왈王曰 : 신하臣下로서 임금과 예禮를 행하는 자는 당하堂下에서 절을 한 뒤에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쳐야 하는데, 당시 신하臣下들은 교만방자驕慢放恣하였으므로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절을 하였다.
“나는 당하堂下에서 절하는 예를 따르겠다.”라고 하신 것은 공손한 예禮를 따르겠다는 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공손恭遜과 검약儉約을 따르신 일을 기록한 것이다.
[麻冕 禮也 今也純 儉 吾從衆] 면冕은 치포관緇布冠이다.
옛날에는 30새[升]의 삼베를 짜서 면冕을 만들었기 때문에 “마포麻布로 면冕(緇布冠)을 만드는 것이 예이다.”라고 한 것이다.
순純은 생사生絲이니, 생사로 30승포升布를 짜기는 쉽다.
그러므로 “지금은 순純(生絲)으로 만드니 검약儉約하다.”라고 하신 것이다.
생사生絲를 사용하는 것이 비록 예禮에 맞지 않지만, 검약하여 만들기 쉽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그것을 따르신 것이다.
[拜下 禮也 今拜乎上 泰也 雖違衆 吾從下] 예禮에 신하臣下로서 임금과 예禮를 행하는 자는 당하堂下에서 절을 한 뒤에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치는 것이 예인데, 당시의 신하臣下들은 모두 당상堂上에서 절을 하여 교만驕慢함을 키웠다.
공자孔子께서는 신하들이 교만驕慢하면 공손恭遜하지 못하다고 여기셨다.
그러므로 대중大衆을 어기더라도 당하堂下에서 절하는 예禮를 따르신 것이다.
당하堂下에서 절을 하는 것이 공손한 예禮이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冕 緇布冠也] 관冠은 머리에 쓰는 복식服飾의 총칭總稱이고, 면冕은 관冠의 일종이다.
《의례儀禮》 〈사관례士冠禮〉에 “진복陳服하되, 치포관의 결항缺項은 푸른 실을 꼬아 만든 끈이 달려있다.”고 하였고, 기記에 “〈관례冠禮를 행할 때〉 처음에 씌우는 관冠은 치포관緇布冠이다.
태고시대太古時代에는 백포관白布冠을 썼고, 제사 때에만 백포관白布冠에 검은 물을 들여 썼다.
고대古代의 관冠에 관유冠緌(늘어진 갓끈)가 있었는지에 대해 공자孔子께서 ‘나는 듣지 못하였으니, 시가始加의 예禮를 마치고는 치포관을 폐기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다.”라고 하였다.
[古者績麻三十升布以爲之] 정현鄭玄의 《의례儀禮》 〈상복喪服〉 주注에 “베 80올[縷]이 1승升이다.”라고 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 : [臣之與君行禮者 下拜然後升成禮] 고찰하건대 연례燕禮는 임금이 대부大夫들과 연음宴飮(잔치를 열어 술을 마심)하는 예禮이다.
《의례儀禮》 〈연례燕禮〉에 “공公(임금)이 앉아서 대부大夫가 올린 치觶(술잔의 일종)를 들고 일어나 〈서계西階 위로 가서〉 빈賓에게 술을 권하면 빈賓이 서계西階 아래로 내려가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공公이 소신小臣을 보내어 사양辭讓하는 말을 전하면, 빈賓이 서계 위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친다.”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의 주注에 “승성배升成拜는 다시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림이다.
이는 앞서 〈서계 아래로 내려갔을 때에〉 임금이 사양辭讓하였으므로 예禮를 완성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라고 하였고,
또 《의례儀禮》 〈근례覲禮〉에 “천자天子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후씨侯氏[諸侯]에게 거복車服을 하사下賜하면 〈천자天子의 명命을 받은〉 제공諸公(天子의 제공諸公)이 명복命服이 담긴 상자를 받들고 그 위에 명서命書(車服을 하사下賜하는 조서詔書)를 올려놓고서, 서계西階로부터 〈당堂으로 올라가〉 동향東向해 서고, 태사太史는 제공諸公의 오른쪽에 선다.
후씨侯氏는 〈조계阼階(東階)로부터〉 당堂 위로 올라가 서향西向해 선다.
태사太史가 천자天子의 명서命書를 읽으면 후씨侯氏는 당堂에서 내려와 양계 사이에서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린다.
〈태사가 후씨에게 당하에서 절하지 말라고 사양하면〉 당堂 위로 올라가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배례를 마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모두 신하臣下가 임금과 예禮를 행할 때에 당하堂下에서 절을 한 뒤에 당상堂上으로 올라가서 배례拜禮를 마치는 것이 예임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