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者에 由也聞諸夫子하니 曰 親於其身為不善者는 君子不入也라하니이다
不曰堅乎아 磨而不磷하며 不曰白乎아 涅而不緇니라
注
言至堅者는 磨之而不薄하고 至白者는 染之於涅而不黑이니 喻君子雖在濁亂이라도 濁亂不能污라
疏
‘佛肸召 子欲往’者, 佛肸為晉大夫趙簡子之中牟邑宰, 以中牟畔, 來召孔子, 孔子欲往從之也.
‘子路曰 昔者 由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為不善者 君子不入也’者, 言君子不入不善之國也.
‘佛肸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者, 言今佛肸以中牟畔, 則是身為不善, 而子欲往, 如前言何?
‘子曰 然 有是言也’者, 孔子答云, 雖有此不入不善之言也.
‘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者, 孔子之意, 雖言不入不善, 緣君子見幾而作, 亦有可入之理,
“至堅者, 磨之而不薄, 至白者, 染之於涅而不黑.”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者, 孔子又為言其欲往之意也.
吾自食物, 當東西南北, 不得如不食之物, 繫滯一處.
欲往之意, 以示無係, 以觀門人之意. 如欲居九夷, 乘桴浮于海耳.
子路見形而不及道, 故聞乘桴而喜, 聞之公山而不說,
注
공왈孔曰 : 〈필힐佛肸은〉 진晉나라 대부大夫 조간자趙簡子의 읍재邑宰이다.
“전에 제가 부자夫子께 들으니, ‘직접 자신이 불선不善을 한 자〈의 나라〉에는 군자君子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필힐佛肸이 중모中牟를 점거占據해 반란을 일으켰는데, 자子께서 가신다면 〈전에 하신 말씀을〉 어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이〉 말하지 않더냐? ‘〈지극히〉 견고한 것은 갈아도 얇아지지 않으며, 〈지극히〉 흰 것은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注
지극히 견고한 것은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지극히 흰 것은 열涅로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고 말했으니, 군자君子는 비록 탁란濁亂한 곳에 있어도 탁란濁亂이 더럽힐 수 없음을 비유한 것이다.
어찌 한곳에 매달려 먹지 않을 수 있겠느냐?”
注
‘뒤웅박이 한곳에 매달려 있는 것은 〈음식을〉 먹지 않는 〈식물植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본래 〈음식을〉 먹어야 하는 〈동물動物〉이니,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지 않는 식물植物처럼 한곳에 매어 있을 수 없다.’는 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 또한 공자孔子께서 지방地方을 가리지 않고 정치를 펴고자 하심을 말한 것이다.
[佛肸召 子欲往] 필힐佛肸이 진晉나라 대부大夫 조간자趙簡子의 중모읍재中牟邑宰가 되어, 중모中牟를 점거해 반란을 일으키고서 〈사람을 보내〉와서 공자孔子를 부르니, 공자孔子께서 가서 그를 따르고자 하신 것이다.
[子路曰 昔者 由也聞諸夫子曰 親於其身為不善者 君子不入也] 군자君子는 불선不善한 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佛肸以中牟畔 子之往也 如之何] 지금 필힐佛肸이 중모中牟를 점거해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는 자신이 불선不善을 한 것인데, 자子께서 가려 하신다면 전에 하신 말씀을 어찌 〈설명〉하겠느냐는 말이다.
[子曰 然 有是言也] 공자孔子께서 비록 ‘불선不善한 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기는 하다고 대답하신 것이다.
[不曰堅乎 磨而不磷 不曰白乎 涅而不緇] 공자孔子는 비록 ‘불선不善한 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하였으나, 군자君子는 기미를 보면 일어나기 때문에 〈불선한 나라라 하더라도〉 들어가야 하는 이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다.
열涅은 수중水中의 흑토黑土인데 검은 물을 들일 수 있다.
“지극히 견고한 것은 갈아도 얇아지지 않고, 지극히 흰 것은 열涅에 물들여도 검어지지 않는다.”라고.
〈이 말로〉 군자君子는 비록 탁란濁亂한 곳에 있어도 탁란濁亂이 더럽힐 수 없음을 비유하셨다.
[吾豈匏瓜也哉 焉能繫而不食] 공자孔子께서 또 가고자 하는 뜻을 말씀하셨다.
뒤웅박이 한곳에 매달려 있는 것은 〈음식을〉 먹지 않는 〈식물植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본래 〈음식을〉 먹어야 하는 〈동물動物〉이니, 동서남북을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해야 하고 음식을〉 먹지 않는 식물植物처럼 한곳에 매어 있을 수 없다.
“부자夫子께서 어찌 진실로 공산불요公山弗擾와 필힐佛肸에게 가고자 했겠는가?
가고자 하는 뜻으로 매임이 없음을 보이시어 문인門人들의 뜻을 보고자 하신 것이니, 예컨대 ‘욕거구이欲居九夷’와 ‘승부부우해乘桴浮于海’ 같은 것이다.
자로子路는 형상만을 보았을 뿐, 도道에 미치지 못하였기 때문에 ‘승부乘桴’를 듣고는 기뻐하고, 공산불요公山弗擾에게 가시려는 것을 듣고는 좋아하지 않았다.
당堂에만 올랐을 뿐, 실내室內에 들지 못했으니, 어찌 성인聖人의 지취志趣를 알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