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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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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入太廟하사
[注]包曰 太廟 주공周公
孔子仕魯 魯祭周公而助祭也
每事問하신대 或曰
孰謂鄹人之子知禮乎
入太廟하야 每事問이온여
[注]공자曰 鄹 공자孔子숙량흘叔梁紇所治邑이라
時人多言孔子知禮하니 或人以爲知禮者 不當復問이라
聞之曰
是禮也
[注]孔曰 雖知之라도 當復問 愼之至也
[疏]‘子入’至‘禮也’
○正義曰:此章言夫子愼禮也.
入太廟’者, , 謂공자孔子.
太廟, 주공周公廟.
孔子仕, 祭周公而助祭,
故得入之也.
‘每事問’者, 言太廟之中, 禮器之屬, 每事輒問於也.
‘或曰 孰謂추인鄹人之子 知禮乎 入太廟 每事問’者, 孰, 誰也, 추인鄹人, 魯추읍鄹邑大夫孔子父숙량흘叔梁紇也.
或有人曰 “誰謂鄹大夫之子知禮者也.”
時人多言孔子知禮, 或人以爲, 知禮者不當復問, 何爲入太廟, 而每事問乎.
意以爲孔子不知禮.
‘子聞之曰 是禮也’者, 孔子聞或人之譏, 乃言其問之意, 以宗廟之禮, 當須重愼, 不可輕言,
雖已知之, 更當復問, 愼之至也.
[疏]○注 ‘包曰’至‘助祭也’
○正義曰:云 ‘太廟 주공周公廟’者, 문공十三年춘추공양전公羊傳曰 “주공周公稱太廟, 노공魯公稱世室, 群문공稱宮.”
故知太廟周公廟也.
云 ‘공자세가孔子仕魯’者, 사기史記공자세가孔子世家云 “공자세가孔子貧且賤,
及長, 嘗爲季氏위리, , 嘗爲, 而畜蕃息, 由是, 爲사공司空.
其後정공定公以孔子爲중도中都宰, 一年, 四方皆則之.
중도中都재상, 爲사공司空, 由사공司空, 爲대사구大司寇, 攝재상事.” 是仕.
由是故得與助祭也.
[疏]○注 ‘孔曰’至‘復問’
○正義曰:云 ‘鄹 孔子父叔梁紇所治邑’者, 古謂大夫守邑者, 以邑冠之, 呼爲某人.
孔子父, 추읍鄹邑大夫.
춘추좌씨전춘추좌씨전稱 “추인흘鄹人紇.” 故此謂孔子爲추인흘鄹人之子也.
춘추좌씨전춘추좌씨전성공二年云 “신축新築人仲叔우해于奚.” 두예注云 “우해于奚, 守신축新築大夫.” 卽此類也.


께서 태묘太廟에 들어가시어
포왈包曰:태묘太廟주공周公이다.
공자께서 노나라에 벼슬하시어 노나라가 주공의 제사를 지낼 때에 제사를 도우신 것이다.
일마다 물으시니, 어떤 자가 말하였다.
“누가 추인鄹人의 아들을 를 안다고 하는가?
태묘太廟에 들어와서 일마다 묻는구나.”
공왈孔曰:공자孔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이 다스리던 이다.
당시에 공자를 일러 예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 혹인或人이 “예를 아는 자는 응당 다시 묻지 않을 것이다.”라고 비꼬아 말한 것이다.
께서 이 말을 듣고서 말씀하셨다.
“이것이 이다.”
공왈孔曰:비록 알더라도 응당 다시 물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삼가는 것이다.
의 [子入]에서 [禮也]까지
○正義曰:이 장은 부자夫子께서 를 삼가신 것을 말한 것이다.
[子入太廟] 공자孔子를 이른다.
태묘太廟주공周公이다.
공자께서 나라에 벼슬하시어, 노나라가 주공의 제사를 지낼 때 제사를 도우셨다.
그러므로 태묘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每事問] 태묘 안의 예기禮器 등에 대해 일마다 번번이 영장令長에게 물으신 것이다.
[或曰 孰謂鄹人之子 知禮乎 入太廟 每事問] (누구)이고, 추인鄹人은 노나라 추읍鄹邑의 대부를 지낸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叔梁紇을 이른다.
어떤 사람이 “누가 추읍 대부의 아들을 일러 예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느냐.”고 한 것이다.
당시에 공자를 일러 예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으니, 혹인或人이 “예를 아는 사람은 응당 다시 묻지 않을 것인데, 어째서 태묘에 들어와 일마다 묻느냐?”고 한 것이다.
그의 생각에는 공자가 예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여긴 것이다.
[子聞之曰 是禮也] 공자께서 혹인의 비꼬는 말을 들으시고서, 곧 일마다 물으신 뜻을 말씀하시어, “종묘의 예는 모름지기 신중해야 하고 가벼이 말해서는 안 된다.
비록 이미 알고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마땅히 다시 물어야 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지극히 삼감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의 [包曰]에서 [助祭也]까지
○正義曰:[太廟 周公廟] 문공文公 13년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주공周公태묘太廟라 칭하고, 노공魯公(伯禽)의 묘를 세실世室이라 칭하고, 군공群公의 묘를 이라 칭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태묘가 주공의 임을 안 것이다.
[孔子仕魯]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가 소년기에는 생활이 빈궁하고 신분이 비천하였다.
성장한 뒤에 계씨季氏위리委吏가 되셨을 때는 요량料量이 공평하고, 사직리司職吏가 되셨을 때는 가축이 번식하니, 이로 인해 사공司空이 되셨다.
그 뒤에 정공定公이 공자를 중도中都읍재邑宰로 삼으니, 1년 만에 사방이 모두 공자들 본받았다.
중도中都읍재邑宰에서 승진하여 사공司空이 되고, 사공司空에서 승진하여 대사구大司寇가 되어 재상宰相의 일을 대리代理하셨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나라에 벼슬하신 것이다.
이로 인해 〈태묘에 들어가서〉 제사를 돕는 〈반열에〉 참여하신 것이다.
의 [孔曰]에서 [復問]까지
○正義曰:[鄹 孔子父叔梁紇所治邑] 옛날에 을 지키는 대부를 지칭할 때, 읍명邑名을 위에 붙여 모인某人이라고 호칭하였다.
공자의 아버지는 추읍鄹邑의 대부였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추인흘鄹人紇”이라고 칭하였기 때문에 여기에서 공자를 “추인鄹人의 아들”이라고 한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성공成公 2년에 “신축인중숙우해新築人仲叔于奚”라는 말이 보이는데, 두예杜預에 “우해于奚신축新築을 지키는 대부이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런 이다.


역주
역주1 令長 : 縣令을 이르는데, 여기서는 宗廟의 일을 맡은 長官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역주2 料量平 : 《孟子》에는 ‘會計當(회계를 맞게 함)’으로 되어있다. 料量은 計算이니, 곧 장부에 기재된 숫자와 在庫物의 수량이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말이다.
역주3 司職吏 : 職은 樴(말뚝)의 假借字이니, 곧 가축의 飼養을 맡은 말단관리이다.

논어주소(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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