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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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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齊人歸女樂하니 季桓子受之하고 三日不朝어늘 孔子行하시다
제인齊人(齊君)이 여악女樂을 보내니, 계환자季桓子가 이를 받고, 3일 동안 조회朝會하지 않자, 공자孔子께서 〈나라를〉 떠나셨다.
[注]孔曰 桓子 季孫斯也
공왈孔曰 : 환자桓子계손사季孫斯이다.
使定公受齊之女樂하고 君臣相與觀之하야 廢朝禮三日하니라
정공定公으로 하여금 나라의 여악女樂을 받아들이게 하고서 군신君臣이 함께 구경하면서 3일 동안 조례朝禮정폐停廢하였다.
[疏]‘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의 [齊人歸女樂 季桓子受之 三日不朝 孔子行]
○正義曰 : 此章言孔子去無道也.
정의왈正義曰 : 이 공자孔子께서 무도無道한 나라를 떠난 일을 말한 것이다.
桓子, 季孫斯也.
환자桓子계손사季孫斯이다.
使定公受齊之女樂, 君臣相與觀之, 廢朝禮三日, 孔子遂行也.
계손사季孫斯가〉 정공定公으로 하여금 나라의 여악女樂을 받아들이게 하고서 군신君臣이 함께 구경하면서 3일 동안 조례朝禮정폐停廢하니, 공자孔子께서 드디어 떠나셨다.
案世家 “定公十四年, 孔子年五十,
고찰하건대,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에 “정공定公 14년에 공자孔子의 나이 56세였다.
由大司寇行攝相事.
대사구大司寇로서 승상丞相의 일을 대행하였다.
於是誅魯大夫亂政者少正卯, 與聞國政三月, 粥羔豚者弗飾賈, 男女行者別於塗, 塗不拾遺, 四方之客至乎邑者不求有司, 皆予之以歸.
이때 나라의 정사政事를 어지럽히는 대부大夫 소정묘少正卯주살誅殺하고서 국정國政에 참여하시니, 3개월 만에 양과 돼지를 파는 장사치가 물건 값을 속여서 비싸게 부르지 않으며, 길을 가는 남녀男女가 길을 달리하며, 길에 흘린 물건을 줍지 않으며, (魯나라의 )에 온 사방의 여객旅客유사有司(官吏)에게 청구請求하지 않아도 모두 〈필요한 물자를〉 주어 돌려보냈다.
齊人聞之而懼曰 ‘孔子為政必, 霸則吾地近焉, 我之為先幷矣.
제인齊人(齊君)이 〈나라의 상황을〉 듣고 두려워하여 말하기를 ‘공자孔子가 정치를 하면 반드시 패자霸者가 될 것이고, 패자霸者가 된다면 우리나라가 가장 가까우니, 우리나라를 먼저 병탄倂呑할 것이다.
盍致地.’ 犂鉏 ‘請先嘗沮之, 沮之而不可則致地, 庸遲乎.’
그러니 어찌 〈먼저〉 토지土地를 바쳐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하니, 이서犂鉏가 말하기를 ‘먼저 시험 삼아 〈노국魯國선정善政을〉 저지沮止해보고, 저지할 수 없으면 〈그때 가서〉 토지土地를 바쳐도 늦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於是選齊國中女子好者八十人, 皆衣文衣而舞康樂, 文馬三十駟, 遺魯君.
이에 나라 안의 미녀美女 80인을 선발하여, 모두에게 문의文衣(화려한 옷)를 입히고 강악무康樂舞를 〈교습敎習시켜,〉 문마文馬(몸에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말) 120[三十駟]과 〈함께〉 노군魯君에게 보냈다.
陳女樂於魯城南高門外. 季桓子微服往觀再三, 將受, 乃語魯君為周道, 往觀終日, 怠於政事.
여악女樂문마文馬나라 성남城南고문高門 밖에 진열陳列하니, 계환자季桓子미복微服 차림으로 두세 차례 가서 구경하고는 받아들이고자 하여, 노군魯君에게 도로(各地)를 두루 돌아다니며 유람遊覽하자고 말하고서 〈노군魯君과 함께〉 가서 종일토록 구경하고 정사政事에 태만하였다.
子路曰 ‘夫子可以行矣.’ 孔子曰 ‘魯今且郊, 如致膰乎大夫, 則吾可以止.’
자로子路가 ‘부자夫子께서는 〈이 나라를〉 떠나셔야 합니다.’라고 하니, 공자孔子께서 ‘나라가 이제 곧 교제郊祭를 지낼 것이니, 대부大夫들에게 번조膰俎를 보내면 내가 오히려 머물러야 한다.’라고 하였다.
桓子卒受齊女樂, 三日不聽政, 郊又不致膰俎於大夫. 孔子遂行, 宿乎屯.
계환자季桓子가 마침내 나라의 여악女樂을 받아들이고서 3일 동안 정무政務를 살피지 않았으며, 또 교제郊祭를 지내고서 대부大夫들에게 번조膰俎를 보내지도 않으니, 공자孔子가 드디어 〈나라를〉 떠나 에서 하룻밤을 묵으셨다.
而師己送曰 ‘夫子則非罪.’
악사樂師 가 와서 전송하며 말하기를 ‘부자夫子(季氏)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하니,
孔子曰 ‘吾歌可夫.’
공자孔子께서 ‘내가 노래로 〈내 생각을 전해도〉 좋겠는가?’라고 하고서,
歌曰 ‘彼婦之口, 可以出走, 彼婦(人)之, 可以死敗. 蓋優哉游哉, 維以卒歲.’
‘저 부인婦人의 입이 〈사람을〉 출주出走(出奔)시킬 수 있고, 저 부인婦人청알請謁(請託)이 〈사람을〉 패망敗亡시킬 수 있지, 한가로이 지내며 일생을 마쳐야지.’라고 노래하셨다.
師己反, 桓子曰 ‘孔子亦何言.’
악사樂師 가 돌아가니, 계환자季桓子가 ‘공자孔子가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물었다.
師己以實告, 桓子喟然歎曰 ‘夫子罪我以群婢故也.’
악사樂師 가 사실대로 아뢰니, 계환자季桓子가 탄식하며 ‘부자夫子군비群婢(女樂)의 일로 나를 죄책罪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孔子遂適衛矣.”
공자孔子는 드디어 나라로 가셨다.”라고 했다.
역주
역주1 (八)[六] : 저본에는 ‘八’로 되어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六’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稱)[霸] : 저본에는 ‘稱’으로 되어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霸’로 바로잡았다.
역주3 [曰] : 저본에는 ‘曰’字가 없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4 (焉)[文馬] : 저본에는 ‘焉’으로 되어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馬’로 바로잡고, 그 앞에 ‘文’字를 보충하였다.
역주5 (所)[游] : 저본에는 ‘所’로 되어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游’로 바로잡았다.
역주6 (尤)[猶] : 저본에는 ‘尤’로 되어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猶’로 바로잡았다.
역주7 (人) : 저본에는 ‘人’字가 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아래도 같다.
역주8 (謂)[謁] : 저본에는 ‘謂’로 되어있으나, 《史記》에 의거하여 ‘謁’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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