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注]孔曰 弗擾為季氏宰하야 與陽虎共執季桓子하고 而召孔子하니라
疏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者, 弗擾, 卽左傳公山不狃也, 字,子洩,
為季氏費邑宰, 與陽虎共執季桓子, 據邑以畔, 來召孔子, 孔子欲往從之也.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者, 上下二之俱訓為適.
故不喜說, 且曰 “無可適也則止之, 何必公山氏之適也.”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為東周乎’者, 孔子答其欲往之意也.
注
○正義曰 : 案定五年左傳曰 “六月, 季平子行東野. 還, 未至, 丙申, 卒于房.
陽虎欲逐之, 告公山不狃, 不狃曰 ‘彼為君也, 子何怨焉.’
子洩怒, 謂陽虎 ‘子行之乎.’” “九月乙亥, 陽虎囚季桓子.” 是其事也.
至八年, 又與陽虎謀殺桓子, 陽虎敗而出. 至十二年, 季氏將墮費, 公山不狃‧叔孫輙率費人以襲魯,
공산불요公山弗擾가 비읍費邑을 점거占據[以]해 반란을 일으키고서 〈공자孔子를〉 부르니, 자子께서 가려 하셨다.
注
공왈孔曰 : 공산불요公山弗擾가 계씨季氏의 읍재邑宰가 되어, 양호陽虎와 함께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고서 공자孔子를 불렀다.
“갈 곳이 없으면 말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굳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려 하십니까?”
注
갈 만한 곳이 없으면 그만두실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굳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려 하십니까?
“저 나를 부르는 자가 어찌 공연히 부르겠는가?
만약 나를 등용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장차[其] 동방東方에 주周나라를 부흥復興시키겠다.”
注
주周나라의 도道를 동방東方에 부흥復興시킴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난적亂賊을 피하지 않으시고서 주周나라의 도道를 부흥復興시키고자 하심을 논한 것이다.
[公山弗擾以費畔 召 子欲往] 공산불요公山弗擾는 바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한 공산불뉴公山不狃로 자字가 자설子洩이다.
공산불요公山弗擾가 계씨季氏의 비읍재費邑宰가 되어 양호陽虎와 함께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고서 비읍費邑을 점거占據해 반란을 일으키고서 〈사람을 보내〉와서 공자孔子를 부르니, 공자孔子께서는 가서 그를 따르고자 하신 것이다.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위아래의 두 ‘지之’字는 모두 훈訓이 적適(감)이다.
자로子路는, ‘군자君子는 어지러운 곳을 피해 다스려진 곳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공자孔子께서는 도리어 어지러운 곳으로 가려 하신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좋아하지 않으면서 “가실 만한 곳이 없으면 그만두실 것이지, 무엇 때문에 굳이 공산씨公山氏에게 가려 하십니까?”라고 한 것이다.
[子曰 夫召我者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為東周乎] 공자孔子께서 자로子路에게 가고 싶어 하시는 뜻으로 대답하셨다.
‘저 사람이 나를 부르는 것이 어찌 공연히 부르는 것이겠는가?
반드시 장차 나의 도道를 쓰려 해서일 것이다.
만약 나의 도를 쓰는 자가 있다면 나는 주周나라의 도道를 동방東方에 부흥復興시켜 장차[其] 노魯나라를 주周나라가 되게 할 것이다.
나는 이 때문에 자리를 가리지 않고 가고자 한다.’고 말씀한 것이다.
注
○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정공定公 5년에 “6월에 계평자季平子가 동야東野를 순행巡行하고 돌아오다가 국도國都에 이르지 못하고 병신일丙申日에 방房(地名)에서 졸卒하였다.
양호陽虎가 여번璵璠(寶玉)을 관棺에 넣으려 하니, 중량회仲梁懷가 동의同意[與]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보폭步幅을 바꾸었으니 패옥佩玉도 바꾸어야 한다.’고 하였다.
양호陽虎가 그를 축출逐出하고자 하여 공산불뉴公山不狃에게 고告하니, 공산불뉴公山不狃가 말하기를 ‘저 사람이 주군主君(季平子)을 위해 그러는 것이니, 그대가 원망할 게 뭐 있는가?’라고 하였다.
장사葬事를 지낸 뒤에 계환자季桓子가 동야東野를 순행巡行하여 비읍費邑에 이르렀다.
자설子洩(不狃)이 비費의 읍재邑宰로 교외郊外까지 나와 맞이해 위로하니, 계환자季桓子는 그에게 경의敬意를 표하였다.
중량회仲梁懷를 위로하니 중량회仲梁懷는 경의敬意를 표하지 않았다.
자설子洩이 노하여 양호陽虎에게 ‘그대는 중량회仲梁懷를 축출逐出하십시오.’라고 하였다.”라고 하고, “9월 을해일乙亥日에 양호陽虎가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일을 말한 것이다.
8년에 이르러 또 양호陽虎와 더불어 계환자季桓子를 살해殺害하려고 모의하였다가 양호陽虎가 패배해 출분出奔하였고, 12년에 이르러 계씨季氏가 비읍費邑의 성城을 허물려 하자, 공산불뉴公山不狃와 숙손첩叔孫輒이 비인費人을 거느리고 와서 노魯나라를 습격襲擊하였다.
국인國人이
공산불뉴公山不狃의 군대를
고멸姑蔑에서 패배시키니,
공산불뉴公山不狃와
숙손첩叔孫輒이
제齊나라로 달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