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思其人而不得見者는 其室遠也는 以言思權而不得見者는 其道遠也라
疏
‘可與適道 未可與立’者, 言人雖能之道, 未必能有所立,
‘可與立 未可與權’者, 言人雖能有所立, 未必能隨時變通, 權量其輕重之極也.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者, 此逸詩也.
誠思其人而不得見者, 其室遠也. 以喩思權而不得見者, 其道遠也.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者, 言夫思者, 當思其反常, 若不思是反, 所以爲遠.
疏
舍人曰 “唐棣, 一名栘.” 郭璞曰 “似白楊, 江東呼夫栘.”
詩召南云 “唐棣之華” 陸機云 “奧李也. 一名雀梅, 亦曰車下李.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함께 도道에 이를 수는 없으며,
注
비록 배우더라도 〈배운 것이〉 혹 이단異端에서 얻은 것이라면 반드시 도道에 이를 수는 없다.
함께 도道에 이를 수는 있어도 함께 세울 수는 없으며,
注
비록 도道에 이를 수는 있어도 반드시 수립樹立하는 바가 있을 수는 없다.
함께 세울 수는 있어도 함께 행권行權할 수는 없다.”
注
비록 수립樹立한 바가 있을 수는 있어도 반드시 그 경중輕重의 극치極致를 권량權量(헤아림)할 수는 없다.
어찌 너를 생각지 않으랴마는 집이 멀어서란다.
注
당체唐棣는 체栘(산앵두나무)이니, 꽃잎이 뒤집힌 뒤에 합쳐진다.
이 시詩를 지은 사람은 이를 가지고 권도權道도 〈당체唐棣의 꽃처럼〉 상도常道와 반대가 된 뒤에 대순大順(常道)에 이름을 말하였다.
그 사람을 생각하지만 만날 수 없는 것은 그의 집이 멀어서라고 한 것은, 권도權道를 생각하지만 알 수가 없는 것은 그 도道가 심원深遠하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생각을 하지 않아서이니, 어찌 멂이 있겠는가?”
注
생각하는 자는 〈상도常道와〉 반대로 하기를 생각해야 하는데, 반대로 하기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집이 멀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기를 생각한다면 어찌 멂이 문제가 되겠는가?
〈이것은〉 ‘권도權道는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오직 생각할 줄을 몰라서 〈알지 못할〉 뿐이다.
순서에 따라 생각한다면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권도權道를 논한 것이다.
[子曰 可與共學 未可與適道] 적適은 지之(감)이다.
사람들이 비록 함께 배울 수는 있어도 그 사람들이 배운 것이 혹 이단異端에서 얻은 것이라면 반드시 정도正道에 이를 수는 없다는 말이다.
[可與適道 未可與立] 사람들이 도道에 이를 수는 있어도 반드시 수립樹立하는 바가 있을 수는 없다는 말이다.
[可與立 未可與權] 사람들이 비록 수립樹立한 바가 있을 수는 있어도 반드시 때에 따라 변통變通하여 그 경중輕重의 극치極致를 헤아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唐棣之華 偏其反而 豈不爾思 室是遠而] 이는 일시逸詩이다.
그 꽃잎이 편연偏然(뒤집히는 모양)히 뒤집힌 뒤에 합쳐진다.
이 시詩를 지은 사람은 〈이를 가지고〉 권도權道도 〈당체唐棣의 꽃처럼〉 상도常道와 반대가 된 뒤에 대순大順(常道)에 이름을 말하였다.
진실로 그 사람을 생각하지만 만날 수 없는 것은 그의 집이 멀기 때문이라는 말인데, 이는 권도權道를 생각하지만 알 수가 없는 것은 그 도道가 심원深遠하기 때문임을 비유한 것이다.
[子曰 未之思也 夫何遠之有] 생각하는 자는 상도常道와 반대로 하기를 생각해야 하는데, 반대로 하기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집이 멀다고 하는 것이다.
반대로 하기를 생각한다면 어찌 멂이 문제가 되겠는가?
〈이것은〉 ‘권도權道는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오직 생각할 줄을 몰라서 〈알지 못할〉 뿐이다.
만약 순서에 따라 잘 생각한다면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을 〈비유해〉 말한 것이다.
이 장을 기록한 자가 〈공자의 말씀이〉 시詩의 말과 뒤섞일 것을 염려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아爾雅》 〈석목釋木〉의 글이다.
사인舍人(顧野王)은 “당체唐棣는 일명一名 체栘이다.”라고 하였고, 곽박郭璞은 “백양白楊과 비슷한데, 강동江東에서는 부체夫栘라고 부른다.”라고 하였다.
《시경詩經》 〈소남召南〉의 ‘당체지화唐棣之華’에 대해, 육기陸機는 “오리奧李이니, 일명一名 작매雀梅이며, 또 차하리車下李라고도 한다.
도처의 산山에 모두 있는데, 그 꽃이 희기도 하고 붉기도 하다.
열매의 크기가 자두만 한데, 먹을 수 있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