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伯氏食邑三百家를 管仲奪之하야 使至疏食호되 而沒齒無怨言은 以其當理也라
疏
‘或問子産’者, 或人問於夫子曰 “鄭大夫子産何如人也”
‘曰 人也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者, 此答言管仲是當理之人也.
伯氏食邑於騈邑三百家, 管仲奪之使貧, 但飯疏食, 至於終年, 亦無怨言, 以其管仲當理故也.
疏
云‘子産 古之遺愛’者, 昭二十年左傳曰 “子産卒, 仲尼聞之, 出涕曰 ‘古之遺愛也’”
疏
○正義曰 : 云‘子西 鄭大夫’者, 案左傳子駟之子公孫夏也.
疏
毛傳云 “伊, 維也” 鄭箋云 “伊, 當作繄, 繄, 猶是也.
어떤 사람이 자산子産〈의 인품〉을 묻자,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注
자산子産의 사랑은 고인古人의 유풍遺風이 있다.
자서子西〈의 인품〉을 묻자,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注
마왈馬曰 : 자서子西는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피재피재彼哉彼哉는 거론擧論할 가치도 없다는 말이다.
혹자或者는 “〈자서子西는〉 초楚나라 영윤令尹 자서子西이다.”라고 하였다.
관중管仲〈의 인품〉을 묻자, 자子께서 말씀하셨다.
注
〈인야人也는〉 《시경詩經》에 말한 ‘소위이인所謂伊人’과 같다.
백씨伯氏의 〈식읍食邑인〉 병읍騈邑의 300호戶를 빼앗아 거친 음식을 먹게 하였으되, 종신終身토록 〈관중管仲을〉 원망하는 말이 없었다.”
注
공왈孔曰 : 백씨伯氏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다.
관중管仲이 백씨伯氏의 식읍食邑 300가家를 빼앗아 백씨伯氏로 하여금 거친 음식을 먹는 데 이르게 하였으되, 〈백씨伯氏가〉 종신終身토록 〈관중管仲을〉 원망하는 말이 없었던 것은 관중管仲의 처사處事가 도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자산子産‧자서子西‧관중管仲의 사람됨을 차례로 논평論評한 것이다.
[或問子産] 혹인或人이 부자夫子께 “정鄭나라 대부大夫 자산子産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물은 것이다.
자산子産은 사람들에게 인자한 은혜를 입히니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問子西] 혹인或人이 또 정鄭나라 대부大夫 자서子西의 행실을 물은 것이다.
[曰 彼哉 彼哉] 피彼는 자서子西를 가리킨다.
저따위 사람이여!”라는 말이니, 거론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問管仲] 혹인或人이 또 제齊나라 대부大夫 관이오管夷吾〈의 인품〉을 물은 것이다.
[曰 人也 奪伯氏騈邑三百 飯疏食 沒齒無怨言] 이것은 관중管仲이 합리적合理的인 사람이라고 대답하신 말이다.
‘인야人也’는 관중管仲을 가리키니, ‘차인야此人也’라는 말과 같다.
병읍騈邑은 지명地名이다 몰치沒齒는 수명壽命을 다함을 이른다.
백씨伯氏의 식읍食邑인 병읍騈邑의 300가家를 관중管仲이 빼앗아 가난하게 만들어 단지 거친 음식만을 먹게 하였으되, 〈백씨伯氏가〉 종신토록 원망하는 말이 없었던 것은 관중管仲의 처사處事가 도리에 맞았기 때문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惠 愛] 《이아爾雅》 〈석고釋詁〉의 글이다.
[子産 古之遺愛] 소공昭公 20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자산子産이 죽자, 중니仲尼께서 그 소식을 들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며 ‘자산子産의 인애仁愛는 고인古人의 유풍遺風이 있다.’라고 하셨다.” 하였다.
두예杜預의 주注에 “자산子産이 보인 인애仁愛는 고인古人의 유풍遺風이 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 : [子西 鄭大夫]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고찰하건대, 〈자서子西는〉 자사子駟의 아들 공손하公孫夏이다.
[或曰 楚令尹子西]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을 고찰하건대, 〈자서子西는〉 공자신公子申이다.
낭와囊瓦의 뒤를 이어 영윤令尹이 되었다가 백공승白公勝에게 피살被殺된 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시詩는 《시경詩經》 〈진풍秦風 겸가蒹葭〉의 글이다.
《모전毛傳》에는 “이伊는 유維이다.”라고 하였고, 정현鄭玄의 전箋에는 “이伊는 ‘예繄’字가 되어야 하니, ‘예繄’는 ‘시是’와 같다.
이인伊人은 시인是人(이 사람)이란 말과 같다.”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