注
後尅爲夫子御하야 至於匡하니 匡人相與共識尅하고 又夫子容貌與虎相似라
注
[注]孔曰 玆는 此也니 言文王雖已死나 其文見在此라
注
言天將喪此文者ᄂ댄 本不當使我知之어늘 今使我知之하니 未欲喪也라
疏
記者以衆情言之, 故云 “子畏於匡.” 其實孔子無所畏也.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者, 孔子以弟子等畏懼, 故以此言諭之.
言文王雖已死, 其文豈不見在我此身乎. 言其文見在我此身也.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者, 後死者, 孔子自謂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者, 如予何, 猶言奈我何也.
疏
顔尅爲僕, 以策指之曰 ‘昔日吾入此, 由彼缺也.’
注
포왈包曰 : 광읍匡邑 사람들이 부자夫子를 양호陽虎로 오인誤認하고서 포위한 것이다.
양호陽虎가 전에 광읍匡邑에서 포악한 짓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부자夫子의 제자弟子 안극顔尅이 양호陽虎와 함께 갔었다.
그 뒤에 안극顔尅이 부자夫子의 복어僕御(御者)가 되어 광읍匡邑에 이르니 광인匡人들이 안극顔尅을 알아보았고, 또 부자夫子의 용모容貌가 양호陽虎와 비슷하였다.
그러므로 광인匡人이 병기兵器를 들고 와서 부자夫子를 포위한 것이다.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나, 문文은 나에게 있지 않은가?
注
공왈孔曰 : 자玆는 차此(여기)이니, 비록 문왕文王은 이미 죽었으나, 그 문文이 지금[見] 여기에 있다는 말이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셨다면 내가 이 문文에 참여하지 못했을 터이지만,
注
공왈孔曰 :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므로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후사後死’라고 하신 것이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였다면 본래 나로 하여금 이 문文을 알지 못하게 하였을 것인데, 지금 나로 하여금 〈이 문文을〉 알게 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이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지 않으셨으니, 광인匡人이 장차[其] 나를 어찌하겠는가?”
注
마왈馬曰 : ‘기여여하其如予何’는 ‘내아하奈我何(나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과 같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지 않았으니 내가 응당 그 문文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광인匡人들이 나를 어찌하고자 하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고 자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천명天命을 아셨음을 기록한 것이다.
[子畏於匡] 광인匡人들이 병기兵器를 들고 와서 공자孔子를 포위한 것을 이른다.
이 장을 기록한 자가 〈포위당했던〉 여러 사람들의 심정心情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공자께서 광읍匡邑에서 두려워하셨다.”라고 한 것이니, 실제로 공자孔子께서는 두려워하신 바가 없으셨다.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공자孔子께서는 제자弟子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 말씀으로 제자들을 깨우치신 것이다.
‘비록 문왕文王은 이미 죽었으나, 그 문文이 어찌 지금[見] 내 몸에 있지 않으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니, ‘그 문文이 지금 나의 이 몸에 있다.’는 말이다.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不得與於斯文也] 후사자後死者는 공자孔子가 자신을 이르신 것이다.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스스로 자신을 후사자後死者라고 하신 것이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였다면 본래 응당 나로 하여금 이 문文을 알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미 나로 하여금 이 문文을 알게 하였으니, 이것은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려 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말이다.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여여하如予何는 내아하奈我何라는 말과 같다.
‘하늘이 이 문文을 없애지 않았으니, 내가 응당 그 문文을 전해야 한다.
그런데 광인匡人들이 장차 나를 어찌하겠느냐?’라고 하였으니, ‘광인匡人들이 하늘의 뜻을 어기고서 나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이다.
疏
○정의왈正義曰 : 이 주注는 모두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의 내용을 요약要約하여 공자孔子께서 광匡에서 두려움을 겪으신 이유를 서술한 것이다.
고찰하건대 〈공자세가孔子世家〉에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를 떠나 진陳나라로 가실 때, 광읍匡邑을 지나셨다.
이때 안극顔尅이 〈공자의〉 수레를 몰았는데, 채찍으로 한 곳을 가리키며 ‘전일에 제가 이 읍邑으로 들어갈 때는 저 무너진 성벽城壁 틈을 통해 들어갔습니다.’라고 하였다.
광인匡人들은 그 말을 듣고서 공자孔子를 노魯나라의 양호陽虎로 오인하였다.
양호陽虎가 전에 광인匡人들에게 포악한 짓을 한 적이 있었으므로 광인匡人들이 마침내 공자孔子의 길을 막았다.
공자孔子의 용모容貌가 양호陽虎와 비슷하였기 때문에 〈광인匡人들은 공자를 양호로 오인하여〉 5일 동안 억류抑留하였다.
광인匡人들이 공자孔子를 더욱 사납게 구금拘禁하니 제자弟子들이 두려워하였다.
그러자 공자孔子께서 ‘문왕文王이 이미 죽었으니 문文이 나에게 있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다.”라고 하였다.
이하以下의 글도 《논어論語》의 글과 일치하니, 이것이 바로 그 일을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