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始有 曰苟合矣’者, 家始富有, 不言己才能所致, 但曰苟且聚合也.
‘少有 曰苟完矣’者, 又少有增多, 但曰苟且完全矣.
‘富有 曰苟美矣’者, 富有大備, 但曰苟且有此富美耳, 終無泰侈之心也.
疏
遂適衛, 說蘧瑗‧史狗‧史鰌‧公子荊‧公叔發‧公子朝 曰‘衛多君子, 未有患也’” 是與蘧瑗‧史鰌竝爲君子也.
자子께서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을 논평論評하셨다. “〈그는〉 거실居室(家事의 처리)을 잘하였다.
注
왕왈王曰 : 형荊과 거원蘧瑗과 사추史鰌가 모두 군자君子이다.
처음 가산家産을 소유하자, ‘대충 모여졌다.’라고 하고, 조금 더 소유하자, ‘대충 완전해졌다.’라고 하고, 풍부히 소유하자, ‘대충 아름다워졌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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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 : 이 장章은 공자孔子께서 위衛나라 공자公子 형荊이 군자君子의 덕德을 가졌다고 칭찬하신 것이다.
[善居室] 집안에서의 생활에 조리가 있음을 말한다.
[始有 曰苟合矣] 가산家産이 비로소 풍부해지자, 자기의 재능으로 인해 이룩된 것이라고 말하지 않고 단지 ‘대충 모여졌다.’라고 하였을 뿐이다.
[少有 曰苟完矣] 또 조금 더 많아지자, 단지 ‘대충 완전해졌다.’라고 하였을 뿐이다.
[富有 曰苟美矣] 풍부하여 크게 갖추어지자, 단지 ‘대충 이러한 부미富美를 가졌다.’라고 하였을 뿐, 끝내 사치하려는 마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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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왈正義曰 :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9년에 “오吳나라 공자公子 계찰季札이 〈노魯나라에〉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마침내 위衛나라로 가서, 거원蘧瑗‧사구史狗‧사추史鰌‧공자형公子荊‧공숙발公叔發‧공자조公子朝를 좋아하여 ‘위衛나라에 군자君子가 많으니 환란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하였으니, 이것이 형荊을 거원蘧瑗‧사추史鰌와 함께 모두 군자君子라고 한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