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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3)

논어주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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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주소(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 季氏將伐顓臾러니 冉有季路見於孔子曰
계씨季氏전유顓臾를 정벌하려 하자, 염유冉有계로季路공자孔子를 뵙고 말하였다.
季氏將有事於顓臾로소이다
계씨季氏전유顓臾와 전쟁을 하려 합니다.”
[注]孔曰 顓臾 伏羲之後 風姓之國이라
공왈孔曰 : 전유顓臾복희伏羲후손後孫이니 풍성風姓의 나라이다.
本魯之附庸이러니 當時臣屬魯하니라
본래는 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었으나, 이때에는 나라에 신속臣屬하였다.
季氏貪其土地하야 欲滅而取之하다
계씨季氏가 그 토지土地를 탐하여 전유국顓臾國격멸擊滅하고서 그 토지土地를 취하고자 하였다.
冉有與季路為季氏臣하야 來告孔子하니라
계씨季氏가신家臣으로 있는 염유冉有계로季路가 와서 공자孔子께 고한 것이다.
孔子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염구冉求야!
無乃爾是過與
너의 잘못이 아니냐?
[注]孔曰 冉求為季氏宰하야 相其室하야 為之聚斂이라
공왈孔曰 : 염구冉求계씨季氏(家臣의 )가 되어 그 집을 도와, 계씨季氏를 위해 부세賦稅를 가혹하게 징수하였다.
故孔子獨疑求하사 敎之시니라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유독 염구가 계씨季氏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다고 의심하신 것이다.
夫顓臾 昔者先王以為東蒙主하시고
전유顓臾는 옛날에 선왕先王께서 동몽산東蒙山좨주祭主로 삼으셨고,
[注]孔曰 使主祭蒙山이라
공왈孔曰 : 몽산蒙山제사祭祀를 주관하게 한 것이다.
且在邦域之中矣
또 우리나라 강역疆域 안에 있으니
[注]孔曰 魯七百里之封 顓臾為附庸하야 在其域中이라
공왈孔曰 : 나라 700리의 봉강封疆부용국附庸國전유顓臾도 그 강역疆域 안에 포함되어 있다.
是社稷之臣也
이는 사직社稷의 신하이다.
何以伐為리오
칠 필요가 뭐 있는가?”
[注]孔曰 已屬魯하야 為社稷之臣하니 何用滅之為
공왈孔曰 : 이미 나라에 소속되어 사직社稷의 신하가 되었으니 격멸擊滅할 필요가 뭐 있는가?
冉有曰
염유冉有가 말하였다.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로이다
부자夫子(季氏)는 치고자 하지만 저희 두 신하는 모두 원하지 않습니다.”
[注]孔曰 歸咎於季氏
공왈孔曰 : 계씨季氏에게 허물을 돌린 것이다.
孔子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야!
周任有言曰 陳力就列하야 不能者止라하니
주임周任이 말하기를 ‘능력을 펼쳐 관직에 나아가서[陳力就列]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자는 그만두라.’고 하였으니,
[注]馬曰 周任 古之良史
마왈馬曰 : 주임周任은 옛날의 훌륭한 사관史官이다.
言當陳其才力하고度己所任하야 以就其位로되 不能則當止
자기의 재력才力을 펼쳐 자기가 맡을 직임職任을 헤아려 그 자리에 나아가되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면 그만두어야 한다는 말이다.
危而不持하며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리오
위태로운데도 잡아주지 못하고 넘어지는데도 부축하지 못한다면 장차 그런 (도우미)을 어디에 쓰겠느냐?
[注]包曰 言輔相人者 當能持危扶顚이라
포왈包曰 : 남을 도와주는 일을 맡은 자는 위태로우면 잡아주고 넘어지면 부축해야 한다.
若不能이면 何用相為리오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런〉 을 어디에 쓰겠는가?
且爾言過矣로다
또 너의 말은 틀렸다.
虎兕出於柙하며 龜玉毀於櫝中 是誰之過與
범과 외뿔소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귀갑龜甲이 궤 속에서 망가지는 것이 누구의 잘못이냐?”
[注]馬曰 柙 檻也 匱也
마왈馬曰 : 은 우리[檻]이고, 이다.
失虎毁玉 豈非典守之過邪
범을 잃고 옥을 망가뜨린 것이 어찌 맡아 지키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겠는가.
冉有曰
염유冉有가 말하였다.
今夫顓臾 固而近於費하니
“지금 저 전유顓臾성곽城郭이 견고하고 비읍費邑과 가까우니,
[注]馬曰 固 謂城郭完堅하고 兵甲利也
마왈馬曰 : 성곽城郭이 완전하고 견고하며 병갑兵甲(병기와 갑옷)이 예리함을 이른다.
季氏邑이라
계씨季氏이다.
今不取 後世必為子孫憂하리이다
지금 취하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자손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孔子曰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야!
君子疾夫
군자君子는 너처럼,
[注]孔曰 疾如女之言이라
공왈孔曰 : 너처럼 말하는 것을 미워한다.
舍曰欲之 而必為之辭니라
원한다고 말하지 않고, 굳이 말을 지어 변명하는 것을 미워한다.
[注]孔曰 舍其貪利之說하고 而更作他辭 是所疾也
공왈孔曰 : 이익을 탐한다고 말하지 않고 바꾸어 다른 말을 만들어 변명하는 것이 바로 〈공자孔子께서〉 미워하신 바이다.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하며
내가 듣건대, ‘나라를 가진 자와 집을 가진 자는 〈토지土地인민人民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정치가〉 균평均平(정치가 공평하여 혜택이 고루 미침)하지 못함을 걱정하며,
[注]孔曰 國 諸侯 卿大夫
공왈孔曰 : 나라를 가진 자는 제후諸侯이고, 집을 가진 자는 경대부卿大夫이다.
不患土地人民之寡少 患政理之不均平이라
토지土地인민人民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않고, 정치가 균평均平하지 못함을 걱정한다.
가난함을 걱정하지 않고 〈백성이〉 편안하지 못함을 걱정한다.’라고 하였다.
[注]孔曰 憂不能安民耳
공왈孔曰 :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는 것만을 걱정할 뿐이다.
民安則國富
백성이 편안하면 나라가 부강富强해진다.
蓋均이면 無貧이요 無寡이면 無傾이니라
대체로 균평均平하면 가난함이 없고, 화합和合하면 적음이 없고, 편안하면 기울어짐이 없다.
[注]包曰 政敎均平이면 則不貧矣 上下和同이면 不患寡矣 大小安寧이면 不傾危矣리라
포왈包曰 : 정치와 교화가 균평均平하면 가난을 걱정할 것이 없고, 상하上下화동和同(화목)하면 적음을 걱정할 것이 없고, 대소大小가 안녕하면 〈나라나 집이〉 기울어 위태로워짐이 없을 것이다.
夫如是
〈정치는〉 이와 같아야 한다.
故遠人不服이면 則脩文德以來之하고 旣來之 則安之니라
그러므로 먼 데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 오게 하고, 이미 저들을 오게 하였으면 안정시켜야 한다.
今由與求也 相夫子호되 遠人不服이로되 而不能來也하며 邦分崩離析이로되 而不能守也하고
〈그런데〉 지금 부자夫子를 돕되 먼 데 사람이 복종하지 않는데도 능히 오게 하지 못하고, 나라가 사분오열四分五裂하는데도 능히 지키지 못하고서
[注]孔曰 民有心曰分이요 欲去曰崩이며 不可會聚曰離析이라
공왈孔曰 : 백성들이 딴마음을 품은 것을 ‘’이라 하고, 떠나고자 하는 것을 ‘’이라 하고, 회취會聚(團結시킴)할 수 없는 것을 ‘이석離析’이라 한다.
而謀動干戈於邦內하니
나라 안에서 전쟁 일으키기를 꾀하니,
[注]孔曰 干 楯也 戟也
공왈孔曰 : 은 방패이고, 는 창이다.
吾恐季孫之憂不在顓臾하고 而在蕭牆之內也하노라
나는 계손季孫의 근심이 전유顓臾에 있지 않고 소장蕭牆 안에 있을까 두렵다.”
[注]鄭曰 蕭之言 肅也 謂屏也
정왈鄭曰 : 의 뜻은 (엄숙)이고, 장병墻屏(가림벽)을 이른다.
君臣相見之禮 至屏而加肅敬焉이라
군신君臣이 서로 만날 때의 장병墻屏에 이르러 더욱 엄숙히 공경한다.
是以謂之蕭牆이라
그러므로 이를 ‘소장蕭牆’이라 한다.
後季氏家臣陽虎 果囚季桓子하니라
뒤에 계씨季氏가신家臣 양호陽虎가 과연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었다.
[疏]‘季氏’至‘內也’
의 [季氏]에서 [內也]까지
○正義曰 : 此章論魯卿季氏專恣征伐之事也.
정의왈正義曰 : 이 나라 계씨季氏가 정권을 독점해 제멋대로 정벌征伐한 일을 논한 것이다.
‘季氏將伐顓臾’者, 顓臾, 伏羲之後, 風姓之國.
[季氏將伐顓臾] 전유顓臾복희伏羲의 후손으로 풍성風姓의 나라이다.
本魯之附庸, 當時臣屬於魯.
본래는 나라의 부용국附庸國이었으나, 이때는 나라의 신속臣屬(신하)이 되었다.
而季氏貪其土地, 欲滅而取之也.
계씨季氏가 그 토지土地를 탐하여 전유국顓臾國격멸擊滅하고서 그 토지土地를 취하고자 한 것이다.
‘冉有季氏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者, 冉有季路為季氏臣, 來告孔子, 言季氏將有征伐之事於顓臾也.
[冉有季氏見於孔子曰 季氏將有事於顓臾] 계씨季氏가신家臣으로 있는 염유冉有계로季路가 와서 공자孔子께 “계씨季氏전유顓臾를 정벌하는 전쟁을 벌이려 합니다.”라고 한 것이다.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者, 無乃, 乃也.
[孔子曰 求 無乃爾是過與] 무내無乃(곧)이다.
爾, 女也.
(너)이다.
雖二子同來告, 以冉求為季氏宰, 相其室, 為之聚斂,
비록 두 사람이 함께 와서 고하였으나, 염구冉求계씨季氏(家臣의 )가 되어 그 집을 도와 부세賦稅를 가혹하게 징수하였다.
故孔子獨疑求敎之, 言將伐顓臾, 乃女是罪過與.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유독 염구가 계씨季氏에게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다고 의심하시어, “전유顓臾를 치려 하는 것이 바로 너의 죄과罪過가 아니냐?”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與, 疑辭也.
의사疑辭이다.
‘夫顓臾 昔者先王以為東蒙主’者, 言昔者先王始封顓臾為附庸之君, 使主祭蒙山.
[夫顓臾 昔者先王以為東蒙主] 옛날에 선왕先王께서 전유顓臾부용국附庸國의 임금으로 삼아 몽산蒙山의 제사를 주관하게 하셨다는 말이다.
蒙山在東, 故曰東蒙.
몽산蒙山이 〈노성魯城〉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몽東蒙이라 한 것이다.
‘且在邦域之中矣’者, 魯之封域方七百里, 顓臾為附庸, 在其域中也.
[且在邦域之中矣] 나라의 봉역封域이 사방 700리인데, 부용국附庸國전유顓臾봉역封域 안에 있다.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為’者, 言顓臾已屬魯, 為社稷之臣, 何用伐滅之為.
[是社稷之臣也 何以伐為] 전유顓臾가 이미 나라에 하여 사직社稷의 신하가 되었으니, 쳐서 멸망시킬 필요가 뭐 있느냐는 말이다.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者, 夫子, 謂季氏也.
[冉有曰 夫子欲之 吾二臣者皆不欲也] 부자夫子계씨季氏를 이른다.
冉有歸其咎惡於季氏也,
염유冉有죄악罪惡계씨季氏에게 돌린 것이다.
故言季氏欲伐, 我二人皆不欲也.
그러므로 계씨季氏는 치고자 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者, 周任, 古之良史也.
[孔子曰 求 周任有言曰 陳力就列 不能者止] 주임周任은 옛날의 훌륭한 사관이다.
夫子見冉有歸咎於季氏, 故呼其名,
부자夫子께서 염유冉有가 허물을 계씨季氏에게 돌리는 것을 보셨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르시어
引周任之言以責之. 言為臣者, 當陳其才力, 度己所任, 以就其列位, 不能則當自止退也.
“남의 신하가 된 자는 자기의 재력才力을 펼치고 자기가 맡을 직임職任을 헤아려 그 자리에 나아가되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없으면 스스로 그만두고 물러나야 한다.”고 한 주임周任의 말을 이끌어 꾸짖으신 것이다.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者, 相, 謂輔相.
[危而不持 顚而不扶 則將焉用彼相矣] 보상輔相을 이른다.
焉, 何也.
(어찌)이다.
言輔相人者, 當持其主之傾危, 扶其主之顚躓,
남을 돕는 자는 마땅히 그 주인主人이 기울어 위태로워지려 하면 잡아줘야 하고, 그 주인主人이 엎어지거나 넘어지려 하면 부축해야 한다.
若其不能, 何用彼相為.
만약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런 (도우미)을 어디에 쓰겠느냐는 말이다.
‘且爾言過矣’者, 爾, 汝也.
[且爾言過矣] (너)이다.
汝為季氏輔相, 而歸咎於季氏, 自是汝之言罪過矣.
네가 계씨季氏보상輔相이 되어 허물을 계씨季氏에게 돌리니, 본디 너의 말이 죄과罪過(잘못)이다.
‘虎兕出於柙 龜玉毀於櫝中 是誰之過與’者, 此又為輔相之人作譬也.
[虎兕出於柙 龜玉毀於櫝中 是誰之過與] 이것은 또 보상輔相하는 사람을 위해 비유를 든 것이다.
柙, 檻也. 櫝, 匱也.
(우리)이고, 이다.
虎兕, 皆猛獸,
는 다 맹수猛獸이다.
故設檻以制之.
그러므로 우리를 만들어 가둔다.
龜玉, 皆大寳,
은 다 큰 보물이다.
故設匱以藏之.
그러므로 궤를 만들어 간직한다.
若虎兕失出於檻, 龜玉損毀於匱中, 是誰之過與.
만약 가 우리에서 뛰쳐나오고 이 궤 속에서 훼손된다면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言是典守者之過也.
이는 맡아 지키는 자의 허물이란 말이다.
以喻主君有闕, 是輔相者之過也.
군주君主에게 잘못이 있으면 바로 보상輔相하는 자의 허물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冉有曰 今夫顓臾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必為子孫憂’者, 此冉有乃自言欲伐顓臾之意也.
[冉有曰 今夫顓臾固而近於費 今不取 後世必為子孫憂] 이것은 염유冉有전유顓臾를 치고자 한 뜻을 스스로 말한 것이다.
固, 謂城郭完堅, 兵甲利也.
성곽城郭이 완전하고 견고하며 병갑兵甲이 예리함을 이른다.
費, 季氏邑.
계씨季氏이다.
言今夫顓臾城郭甲兵堅固, 而又近於費邑, 若今不伐而取之, 後世必為季氏子孫之憂也.
지금 저 전유顓臾성곽城郭갑병甲兵이 견고하고 또 비읍費邑과 가까우니, 만약 지금 쳐서 취하지 않으면 후세에 반드시 계씨季氏 자손子孫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孔子曰 求 君子疾夫舍曰欲之 而必為之辭’者, 孔子見冉有言將伐顓臾之意,
[孔子曰 求 君子疾夫舍曰欲之 而必為之辭] 공자孔子께서 염유冉有전유顓臾를 치려는 뜻을 말하는 것을 보셨다.
故又呼冉有名而責之, 如汝之言, 君子所憎疾.
그러므로 또 염유冉有의 이름을 부르시어 “너처럼 말하는 것을 군자가 미워한다.”고 꾸짖으신 것이다.
夫以舍其利之說, 而更作他辭, 是所疾也.
그 이익을 탐한다고 말하지 않고 바꾸어 다른 말을 만들어 변명한 것이 바로 〈공자孔子께서〉 미워하신 바이다.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者, 此下孔子又為言其正治之法, 以示非臆說, 故云丘也聞.
[丘也聞有國有家者 不患寡而患不均] 이 이하는 공자孔子께서 또 정치하는 법을 말씀하려 하면서 억설臆說이 아님을 보이기 위해 “구야문丘也聞”이라고 하신 것이다.
國, 謂諸侯, 家, 謂卿大夫.
을 가진 자는 제후諸侯를 이르고, 를 가진 자는 경대부卿大夫를 이른다.
言為諸侯卿大夫者, 不患土地人民之寡少, 但患政理之不均平也.
제후諸侯경대부卿大夫가 된 자는 토지土地인민人民이 적은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정치가 균평均平하지 못한 것만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不患貧而患不安’者, 言不憂國家貧, 但憂不能安民耳.
[不患貧而患不安] 국가國家가 가난한 것을 걱정하지 말고, 다만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없는 것만을 걱정해야 한다는 말이다.
民安則國富也.
백성이 편안하면 나라가 부강富强해진다.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者, 孔子旣陳其所聞, 更為言其理.
[蓋均無貧 和無寡 安無傾] 공자孔子께서 이미 들으신 말을 진술하시고서 다시 그 이치를 말씀하신 것이다.
蓋言政敎均平, 則不貧矣. 上下和同, 不患寡矣. 小大安寧, 不傾危矣.
정치와 교화가 균평均平하면 가난을 걱정할 것이 없고, 상하上下화동和同(화목)하면 적음을 걱정할 것이 없고, 대소大小가 안녕하면 〈나라나 집이〉 기울어 위태로워짐이 없다는 말이다.
如上所聞, 此應云 “均無寡, 安無貧”, 而此乃云 “均無貧, 和無寡, 安無傾”者,
위에서 들은 바와 같이 〈글을 만든다면〉 이곳에 응당 “균무과均無寡 안무빈安無貧”이라 해야 하는데, “균무빈均無貧 화무과和無寡 안무경安無傾”이라 한 것은,
欲見政敎均平, 又須上下和睦, 然後國富民多, 而社稷不傾危也,
정치와 교화가 균평하고 또 반드시 상하가 서로 화목한 뒤에야 나라가 부강해지고 백성이 많아져서 사직社稷이 기울어 위태로워짐이 없게 됨을 보이고자 한 것이다.
故衍其文耳.
그러므로 그 문구文句(和無寡)를 끼워 넣은 것[衍]뿐이다.
‘夫如是 故遠人不服 則脩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者, 言夫政敎能均平和安如此,
[夫如是 故遠人不服 則脩文德以來之 旣來之 則安之] ‘정치와 교화가 균평均平하고 화안和安함이 이와 같아야 한다.
故遠方之人有不服者, 則當脩文德, 使遠人慕其德化而來. 遠人旣來, 當以恩惠安存之.
그러므로 먼 데 사람이 복종하지 않으면 문덕文德을 닦아서 먼 데 사람들이 그 덕화德化를 사모해 오게 해야 하고, 먼 데 사람이 이미 왔으면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편안히 살게 해야 한다.’라는 말이다.
‘今由與求也 相夫子’者, 謂冉有季路輔相季氏也.
[今由與求也 相夫子] 염유冉有계로季路계씨季氏보상輔相함을 이른다.
‘遠人不服而不能來也’者, 謂不脩文德也.
[遠人不服而不能來也] 문덕文德을 닦지 않음을 이른다.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者, 民有異心曰分, 欲去曰崩, 不可會聚曰離析.
[邦分崩離析而不能守也] 백성들이 딴마음을 품는 것을 ‘’이라 하고, 떠나고자 하는 것을 ‘’이라 하고, 회취會聚(團結시킴)할 수 없는 것을 ‘이석離析’이라 한다.
言國內之民, 又不能以恩惠安撫, 致有異心, 不可會聚, 莫能固守也.
국내國內의 백성을 은혜로써 안무安撫하지 못해, 딴마음을 품어 서로 단결할 수 없게 하면 나라를 굳게 지킬 수 없다는 말이다.
‘而謀動干戈於邦內’者, 謂將伐顓臾也.
[而謀動干戈於邦內] 전유顓臾를 치려 함을 이른다.
‘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牆之內也’, 蕭牆, 謂屏也.
[吾恐季孫之憂 不在顓臾 而在蕭牆之內也] 소장蕭牆장병墻屏(가림벽)을 이른다.
蕭之言肅也, 君臣相見之禮, 至屏而加肅敬焉,
의 뜻은 (엄숙)이니, 군신君臣이 서로 만날 때의 장병墻屏에 이르러 더욱 엄숙히 공경한다.
是以謂之蕭牆.
그러므로 이를 ‘소장蕭牆’이라 한다.
孔子, 聖人, 有先見之明. 見季氏家臣擅命, 必知將為季氏之禍.
공자孔子성인聖人이시어 사태를 미리 보는 슬기가 있으셨으므로 계씨季氏가신家臣이 제 마음대로 명하는 것을 보고서 반드시 장차 계씨季氏가 될 것을 아셨다.
因冉有言顓臾後世必為子孫憂, 故言吾恐季孫之憂不遠在顓臾, 而近在蕭牆之內.
염유冉有가 “전유顓臾후세後世에 반드시 자손子孫의 근심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하기 때문에 “나는 계손季孫의 근심이 멀리 전유顓臾에 있지 않고 가까이 소장蕭牆 안에 있을까 두렵다.”라고 하신 것이다.
後季氏家臣陽虎果囚季桓子.
뒤에 계씨季氏가신家臣 양호陽虎가 과연 계환자季桓子를 잡아 가두었다.
○注‘孔曰’至‘孔子’
의 [孔曰]에서 [孔子]까지
○正義曰 云‘顓臾伏羲之後 風姓之國’者, 僖二十一年左傳云 “任‧宿‧須句‧顓臾, 風姓也,
정의왈正義曰 : [顓臾伏羲之後 風姓之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희공僖公 21년에 “宿수구須句전유顓臾풍성風姓이다.
實司太皥與有濟之祀.” 杜注云 “太皥, 伏羲.
실로 태호太皥유제有濟의 제사를 맡았다.”라고 하였는데, 두예杜預에 “태호太皥복희伏羲이다.
四國, 伏羲之後, 故主其祀.
네 나라는 복희伏羲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 제사를 주관한 것이다.
顓臾, 在泰山南武陽縣東北.” 是也.
전유顓臾태산泰山 남쪽의 무양현武陽縣 동북에 있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云 ‘本魯之附庸 當時臣屬魯’者, 王制云 “公侯田方百里, 伯七十里, 子男五十里.
[本魯之附庸 當時臣屬魯]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國土)은 사방 100리, 은 70리, 은 50리이다.
不能五十里者, 不合於天子, 附於諸侯, 曰附庸.” 鄭注云 “不合, 謂不朝會也.
50리가 되지 않는 나라는 천자天子의 조회에 참가하지 못하고 제후諸侯에게 부속附屬하니 이를 ‘부용附庸’이라 한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불합不合조회朝會하지 않음이다.
小城曰附庸. 附庸者, 以國事附於大國, 未能以其名通也.”
작은 을 ‘부용附庸’이라 하니, 부용附庸국사國事대국大國부속附屬(歸屬)시키고, 그 나라 이름으로 교통交通하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言此顓臾始封為附庸之君, 以國事附於魯耳, 猶不為魯臣,
전유顓臾가 처음 봉해져서 부용附庸의 임금이 되었을 때에 국사國事나라에 귀속시켰으나, 나라의 신하가 되지는 않았다.
故曰魯之附庸.
그러므로 나라의 부용附庸이라 한 것이다.
春秋之世, 强陵弱, 衆暴寡,
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강자强者약자弱者를 능멸하고 백성을 많이 가진 자가 적게 가진 자를 침포侵暴하였다.
故當此季氏之時, 而顓臾已屬魯為臣,
그러므로 이 계씨季氏 때에 전유顓臾가 이미 나라에 소속하여 신하가 되었다.
故曰當時臣屬魯也.
그러므로 “이때 나라의 신하가 되었다.”라고 한 것이다.
○注‘使主祭蒙山’
의 [使主祭蒙山]
○正義曰 : 禹貢徐州云 “蒙羽其藝.” 地理志云泰山蒙陰縣 “蒙山在西南, 有祠. 顓臾國在蒙山下.”
정의왈正義曰 : 《서경書經》 〈우공禹貢서주徐州에 “몽산蒙山우산羽山 일대가 경종耕種하게 되었다.”라고 하였는데,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의 태산군泰山郡 몽음현蒙陰縣 조에 “몽산蒙山은 〈몽음현蒙陰縣〉 서남쪽에 있는데, 사우祠宇가 있고, 전유국顓臾國몽산蒙山 아래에 있다.”라고 하였다.
○注曰‘魯七百里之封 顓臾為附庸 在其域中’
의 [魯七百里之封 顓臾為附庸 在其域中]
○正義曰 : 明堂位曰 “成王以周公為有勳勞於天下,
정의왈正義曰 :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성왕成王주공周公이 천하에 훈로勳勞가 있다고 여겼다.
是以封周公於曲阜, 地方七百里, 革車千乘.” 鄭注云 “曲阜, 魯地,
그러므로 주공周公곡부曲阜하여, 지역地域 사방 700리와 혁거革車 1천 을 가지게 하였다.”라고 하였는데, 정현鄭玄에 “곡부曲阜나라 땅이다.
上公之封, 地方五百里, 加魯以四等之附庸, 方百里者二十四,
상공上公봉지封地는 사방 500인데, 나라에는 사방 100가 24개인 네 등급의 부용국附庸國을 더해주었다.
五五二十五, 積四十九, 開方之, 得七百里.” 言其顓臾為附庸, 在此七百里封域之中也.
여기에 ‘5×5〓25’를 더하면 〈나라의〉 면적은 사방 100가 49개가 되는데, 이를 개방開方하면 사방 700가 된다.”라고 하였으니, 전유顓臾부용국附庸國이 되어, 이 700리의 봉역封域 중에 들어 있음을 말한 것이다.
○注‘周任 古之良史’
의 [周任 古之良史]
○正義曰 : 周大夫也, 與史侯‧臧文仲, 竝古人立言之賢者也.
정의왈正義曰 : 주임周任나라 대부大夫인데, 사후史侯장문중臧文仲 등과 함께 모두 고인古人 중에 입언立言현자賢者이다.
‘馬曰’至‘過邪’
의 [馬曰]에서 [過邪]까지
○正義曰 : 云‘柙 檻也’者, 說文云 “柙, 檻也.
정의왈正義曰 : [柙 檻也]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우리)이니, 호랑이나 들소를 가두어 기르는 것이다.”
檻, 櫳也.
(우리)이다.
이라고도 한다.”라고 하였다.
爾雅云 “兕, 牛.”
이아爾雅》에 “는 소와 유사한 것이다.”라고 한 에,
郭璞云 “一角, 靑色, 重千斤.”
곽박郭璞이 “외뿔이고 색깔이 푸르며 무게가 천 근이다.”라고 한 것과,
說文云 “兕如野牛, 靑毛, 其皮堅厚, 可制鎧.”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는 들소와 같은데, 털빛이 푸르고 그 가죽이 단단하고 두꺼워서 갑옷을 만들 만하다.”라고 한 것과,
交州記曰 “兕出九德,
교주기交州記》에 “구덕九德(地名)에서 생산된다.
有一角, 角長三尺餘, 形如馬鞭柄.” 是也.
뿔이 하나인데, 뿔의 길이가 세 자 남짓하고 모양이 말채찍의 자루와 같다.”라고 한 것이 모두 를 말한 것이다.
云‘櫝 匱也’者, 亦說文云也.
[櫝 匱也] 이것도 《설문해자說文解字》의 말이다.
○注‘孔曰 干 楯也 戈 戟也’
의 [孔曰 干 楯也 戈 戟也]
○正義曰 : 干, 一名楯, 今謂之旁牌.
정의왈正義曰 : 의 딴 이름은 인데, 지금은 방패旁牌라 한다.
方言云 “楯自關而東, 或謂之楯, 或謂之干. 關西謂之楯. 是干‧楯為一也. 施紛以持之.”
방언方言》에 “관동關東 지방에서는 이라 하기도 하고 이라 하기도 하며, 관서關西 지방에서는 이라 하니, 은 동일한 물건인데,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끈[紛]을 단다.”라고 하였다.
孔注尙書費誓云 “施乃楯紛.” 紛, 如綬而小, 繫於楯以持之, 且以為飾也.
상서尙書》 〈비서費誓공주孔注에 “너의 에 끈을 단다.[施乃楯紛]”라고 하였는데, 그 에 “은 작은 끈인데, 방패에 매어 손잡이로 삼고, 또 방패의 장식으로 삼는다.”라고 하였다.
干, 扞也, 竝之以扞敵,
은 막음이니, 나란히 붙여 을 막는다.
故牧誓云 “比爾干也.”
그러므로 《상서尙書》 〈목서牧誓〉에 “너의 방패를 나란히 붙이라.”고 한 것이다.
戈者, 考工記云 “戈, 六尺有六寸. 其刃廣二寸. 內倍之, 胡三之, 援四之.”
는 《주례周禮》 〈고공기考工記〉에 “는 자루가 여섯 자 여섯 치이고, 그 날의 너비가 두 치이며, (창날이 아래로 자루에 박힌 부분)의 길이는 날의 너비의 두 배인 네 치이고, (창날이 정자丁字 모양으로 굽어 아래로 숙인 부분)의 길이는 날의 너비의 세 배인 여섯 치이며, (가로로 뻗은 창날)의 길이는 날의 너비의 네 배인 여덟 치이다.”라고 하였고,
鄭玄注云 “戈, 今句戟也, 或謂之雞鳴, 或謂之擁頸.
정현鄭玄에 “는 지금의 구혈극句孑戟인데, 계명雞鳴이라 하기도 하고, 옹경擁頸이라 하기도 한다.
內謂胡以內接(祕)[柲]者也, 長四寸, 胡六寸, 援八寸.”
가 아래로 자루에 박힌 부분까지인데 길이가 네 치이고, 는 여섯 치이고, 은 여덟 치이다.”라고 하였다.
鄭司農云 “援, 直刃也, 胡, 其.”
정사농鄭司農(鄭衆)은 “은 날이 곧은 창이고, (날이 없고 갈고리로 된 창)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不患寡而患不均 不患貧而患不安 : 이에 대해, 兪樾은 《群經評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寡와 貧 두 글자는 傳寫하는 과정에서 〈위치가〉 서로 뒤바뀌었다. 이 말은 본래 ‘不患貧而患不均, 不患寡而患不安’으로 되어있었다. 貧은 財物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不均도 財物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財物은 당연히 均平해야 하니, 均平하지 않으면 재물이 없는 것만 못하기 때문에 ‘不患貧而患不均’이라 한 것이다. 寡는 사람을 가지고 말한 것이고, 不安도 사람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사람은 당연히 편안해야 하니, 편안하지 않으면 사람이 없는 것만 못하기 때문에 ‘不患寡而患不安’이라 한 것이다. 下文의 ‘均無貧’은 上句(不患貧而患不均)를 이어 말한 것이고, 또 下文의 ‘和無寡’와 ‘安無傾’은 下句(不患寡而患不安)를 이어 말한 것이다. ‘均無貧’이란 한마디 말로 보면 이 글이 〈위치가〉 뒤바뀌어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春秋繁露》 〈度制〉篇에 ‘孔子曰 不患貧而患不均’이라고 인용한 것에 의거해 訂正해야 한다.[寡貧二字 傳寫互易 此本作不患貧而患不均 不患寡而患不安 貧以財言 不均亦以財言 財宜乎均 不均則不如無財矣 故不患貧而患不均也 寡以人言 不安亦以人言 人宜乎安 不安則不如無人矣 故不患寡而患不安也 下文云均無貧 此承上句言 又云和無寡 安無傾 此承下句言 觀均無貧之一語 可知此文之誤易矣 春秋繁露度制篇引孔子曰 不患貧而患不均 可據以訂正]” 兪氏의 說이 매우 妥當한 것으로 생각된다.
역주2 [患] : 저본에는 없으나, “皇本에는 ‘不’ 아래에 ‘患’자가 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3 (畏)[異] : 저본에는 ‘畏’로 되어있으나, 皇侃의 《論語集解義疏》와 뒤의 疏에 모두 ‘異’로 되어있는 것에 근거하여 바로잡았다.
역주4 (大)[人] : 저본에는 ‘大’로 되어있으나, 四庫全書本에 의거하여 ‘人’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探)[貪] : 저본에는 ‘探’으로 되어있으나, “北監本과 毛本에는 ‘探’이 ‘貪’으로 되어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貪’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患] : 저본에는 없으나, 64쪽 注의 동일 내용에 대해 교감한 것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7 [者] : 저본에는 없으나, “浦鏜이 ‘也 아래에 者자가 빠졌다.’라고 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8 四等之附庸 方百里者二十四 : 네 등급의 부용국이란 侯에게 붙여주는 9同의 부용국, 伯에게 붙여주는 7同의 부용국, 子에게 붙여주는 5同의 부용국, 男에게 붙여주는 3同의 부용국을 말한다. 네 등급의 부용국을 모두 합하면 24同이 되는데, 同은 사방 100里의 면적 단위이므로 이와 같이 표현한 것이다. 《周禮 大司徒 鄭玄注》
역주9 (井)[幷]五五二十五……得七百里 : 上公의 봉지는 면적이 500里×500里=250,000里2 =10,000里2×25이므로 네 등급의 부용국 면적과 합하면 노나라의 총 면적은 다음과 같이 계산된다. 上公의 봉지 : 500里×500里=250,000里2=10,000里2×25 +) 네 등급의 부용국 면적 : 100里×100里×24 =10,000里2×24 魯나라 전체 면적 =10,000里2×49 開方은 어떤 수의 제곱근을 구하는 산법으로, 기하학적으로는 어떤 면적을 지닌 정사각형의 한 변의 길이를 구하는 셈이 된다. 노나라의 면적 10,000里2×49는 (100里×7)2과 같으므로 ‘사방 700리’로 표현된다.
역주10 (井)[幷] : 저본에는 ‘井’으로 되어있으나, 《禮記》 〈明堂位〉의 鄭玄 주에 근거하여 ‘幷’으로 바로잡았다. 井은 중국 고대의 토지 면적 단위 중 하나로, ‘1里×1里=1里2’에 해당한다. 《漢書》 〈刑法志〉에 “사방 1里의 땅이 井이고, 10井이 通이고, 10通이 成이니, 成은 사방 10里이다. 10成이 終이고, 10終이 同이니, 同은 사방 100里이다.”라고 하였다. 아래 주석에서 보듯이 네 등급의 부용국의 면적을 모두 합하면 사방 100里의 땅 24개이므로 24同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24井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역주11 [注] : 저본에는 ‘注’자가 없으나, 邢昺 疏의 체제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12 說文云……以藏虎兕 : 《說文解字》에는 “柙 檻也 以藏虎兕”와 “檻 櫳也 一曰圈”으로 되어있으므로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역주13 (野)[似] : 저본에는 ‘野’로 되어있으나, “《爾雅》를 살펴보면 野는 似가 되어야 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祕)[柲] : 저본에는 ‘祕’로 되어있으나, “監本과 毛本에는 ‘祕’가 ‘柲’로 되어있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柲’로 바로잡았다.
역주15 (矛)[孑] : 저본에는 ‘矛’로 되어있으나, “浦鏜이 ‘孑이 矛로 잘못되었다.’라고 한 말이 옳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孑’로 바로잡았다.
역주16 (子)[孑] : 저본에는 ‘子’로 되어있으나, “子는 孑이 되어야 한다.”라고 한 阮元의 校勘記에 의거하여 ‘孑’로 바로잡았다.

논어주소(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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