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論語注疏(1)

논어주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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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의읍봉인封人請見曰
[注]鄭曰 儀이라
봉인封人 官名이라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라하야늘
從者見之한대
[注]包曰 從者 弟子隨孔子行者
通使得見이라
出曰
二三부자何患於喪乎
天下之無道也久矣
[注]孔曰 語諸弟子言호되 何患於夫子聖德之將喪亡邪
天下之無道已久矣 極衰必盛이라
天將以夫子爲木鐸이시리라
[注]孔曰 木鐸 施政敎時所振也 言天將命孔子制作法度하야 以號令於天下
[疏]‘儀封’至‘木鐸’
○正義曰:此章明夫子之德, 天將命之使其定禮樂也.
의읍封人請見’ 의읍儀邑典封疆之人, 請告於孔子從者, 欲見孔子也.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者, 此所請辭也.
嘗, 曾也. 言 “往者, 有德之君子至於我斯地也, 吾嘗得見之, 未曾有不得見者也.”
‘從者見之’者, 從者, 謂弟子隨孔子行者.
旣見其請, 故爲之紹介, 通使得見也.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者, 의읍封人見夫子, 出門乃語諸弟子曰 “二三子何須憂患於夫子聖德之將喪亡乎.”
‘天下之無道也久矣’者, 此封人又說孔子聖德不喪之由也.
言事不常一, 盛必有衰, 衰極必盛. 今天下之衰亂,
無道亦已久矣, 言拯興衰, 屬在夫子.
‘天將以夫子爲木鐸’者, 木鐸, 金鈴木舌, 施政敎時所振也.
言天將命孔子制作法度, 以號令於天下, 如木鐸以振文敎也.
[疏]○注 ‘鄭曰 儀蓋’ ‘官名’
○正義曰:云 ‘이의蓋衛邑’者, 以춘추좌씨전춘추좌씨전 “衛侯入於이의夷儀.” 疑與此是一,
故云 “蓋邑也.”
云 ‘封人지관名’者, 주례周禮 “封人掌爲畿封而樹之.” 정현鄭玄云 “畿上有封, 若今時界也.”
天子封人職典封疆, 則知諸侯封人亦然也.
춘추좌씨전춘추좌씨전言 “영곡潁谷封人”‧“祭仲足爲祭封人.”‧“宋고애高哀封人.” 此云儀封人, 皆以地名, 封人蓋職典封疆, 居在邊邑.
영곡潁谷‧儀‧祭, 皆是國之邊邑也.
[疏]○注 ‘包曰’至‘得見’
○正義曰:云 ‘通使得見’者, 見, 謂爲之紹介, 使之見也.
춘추좌씨전춘추좌씨전云 “乃見전설제鱄設諸焉.”‧“齊豹見종로宗魯공맹公孟.” 亦然.
[疏]○注 ‘孔曰’至‘天下’
○正義曰:云 ‘木鐸 施政敎時所振也’者, 禮, 有金鐸‧木鐸. 鐸, 是鈴也.
其體以金爲之, 明舌有金‧木之異, 知木鐸是木舌也.
주례周禮.” 대사마大司馬 “敎, 兩대사마司馬執鐸.” 명당위明堂位云 “振木鐸於朝.” 是武事振金鐸, 文事振木鐸.
此云 ‘木鐸 施政敎時所振’者, 所以振文敎, 是也.


의읍儀邑봉인封人공자孔子를 뵙기를 청하며
정왈鄭曰:나라 인 듯하다.
봉인封人관명官名이다.
말하였다.
군자君子가 이곳에 왔을 적에 내 일찍이 만나보지 못한 적이 없었소.”
종자從者가 공자를 만나뵙게 해주자,
포왈包曰:종자從者는 공자를 수행하는 제자이다.
공자께 알려 만나뵙게 한 것이다.
〈봉인이 공자를 뵙고〉 나와서 말하였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부자夫子성덕聖德이〉 상망喪亡할 것을 걱정하십니까?
천하天下무도無道(昏亂)한 지 오래이니,
공왈孔曰:제자들에게 “무엇 때문에 부자夫子성덕聖德이 장차 상망喪亡(멸망)할 것을 걱정하십니까?
천하가 혼란한 지 이미 오래이니, 쇠란衰亂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흥성興盛해지는 것이오.”라고 말한 것이다.”
하늘이 장차 부자를 목탁木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
공왈孔曰:목탁木鐸은 정치와 교화를 펼 때에 흔드는 것이니, 하늘이 장차 공자에게 명하여 법도를 제정하여 천하를 호령號令(統治)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의 [儀封]에서 [木鐸]까지
○正義曰:이 장은 부자夫子는 덕이 있으므로 하늘이 장차 부자에게 명해 예악禮樂을 제정하게 할 것임을 밝힌 것이다.
[儀封人請見] 나라 의읍儀邑봉강封疆을 맡아 지키는 사람이 공자의 종자從者에게 고해주기를 요청하여 공자를 만나보고자 한 것이다.
[曰 君子之至於斯也 吾未嘗不得見也] 이것은 요청한 말이다.
(일찍이)이니, “지난날 내가 지키고 있는 이 지역에 덕이 있는 군자가 왔을 적에 나는 일찍이 그들을 만나보았고, 만나보지 보지 못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다.
[從者見之] 종자從者는 공자를 수행한 제자들을 이른다.
이미 봉인의 청을 받았기 때문에 그를 위해 공자께 소개해 알려 만나뵙게 한 것이다.
[出曰 二三子何患於喪乎] 의읍儀邑의 봉인이 요청하여 부자를 만나고 나서 문을 나와 제자들에게 “여러분들은 부자의 성덕聖德상망喪亡할 것을 걱정할 필요가 뭐 있습니까?”라고 말한 것이다.
[天下之無道也久矣] 이것은 봉인이 또 공자의 성덕이 상망喪亡하지 않을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일은 항상 일정하지 않아서 성하면 반드시 쇠함이 있고 쇠함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다시 흥성해진다.
지금 천하가 쇠란하여 무도한 지 또한 이미 오래이니, 위란을 구제하고 쇠한 나라를 부흥시키는 일이 부자에게 달렸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天將以夫子爲木鐸] 목탁木鐸동제銅製 방울에 나무 혀를 단 것이니, 정치와 교화를 펼 때에 흔드는 것이다.
하늘이 장차 공자에게 명하여 법도를 제정하여 천하를 호령하기를 마치 목탁이 문교文敎(예악禮樂법도法度)를 떨쳐 일으키듯이 할 것이라는 말이다.
의 [鄭曰 儀蓋]에서 [官名]까지
○正義曰:[儀蓋衛邑] 〈정현鄭玄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양공襄公 25년에 보이는 “위후입어이의衛侯入於夷儀(위후衛侯이의夷儀로 들어갔다.)”의 ‘이의夷儀’를 이곳의 ‘’와 동일한 것으로 의심하였다.
그러므로 “나라 인 듯하다.”고 한 것이다.
[封人 官名] 《주례周禮》 〈지관地官 사도司徒〉에 “봉인封人왕기王畿의 네 변경에 흙으로 두둑을 쌓아 경계를 만들고서 그 두둑 위에 나무를 심는 일을 관장한다.”고 하였는데, 그 정현鄭玄은 “왕기王畿의 네 변경에 있는 두둑은 지금의 경계와 같다.”고 하였다.
천자의 봉인封人봉강封疆의 일을 관장하니, 그렇다면 제후의 봉인도 그 직무가 그와 같음을 알 수 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은공隱公 원년元年의 “영곡봉인潁谷封人(영곡潁谷봉인封人)”과, 환공桓公 11년의 “채중족위제봉인祭仲足爲祭封人(채중족祭仲足봉인封人이 되다.)”과, 문공文公 14년의 “송고애위소봉인宋高哀爲蕭封人(나라 고애高哀봉인封人이 되다.)”과, 이곳의 “의봉인儀封人”에 모두 지명地名을 붙였으니, 봉인封人은 대체로 변읍邊邑주재駐在하며 봉강封疆의 일을 관장하는 사람인 듯하다.
영곡潁谷는 모두 그 나라의 변읍邊邑이다.
의 [包曰]에서 [得見]까지
○正義曰:[通使得見] 은 그를 위해 공자께 소개하여 뵙게 한 것이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소공昭公 20년의 “내견전설제언乃見鱄設諸焉(이에 전설제鱄設諸초공자楚公子 에게 알현謁見시키다.)”과, “제표현종로어공맹齊豹見宗魯於公孟(제표齊豹종로宗魯공맹公孟에게 알현시키다.)”도 이와 같다.
의 [孔曰]에서 [天下]까지
○正義曰:[木鐸 施政敎時所振也] 금탁金鐸목탁木鐸이 있으니, (방울)이다.
그 몸통은 금속으로 만들지만 혀를 만드는 재료는 쇠와 나무의 다름이 있음을 밝힌 것이니, 목탁은 그 혀를 나무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주례周禮》 〈고인鼓人〉에 “고인鼓人에게 금탁金鐸을 흔들면 모두 북을 치도록 가르친다.”고 하고, 《주례周禮》 〈대사마大司馬〉에 “진려振旅를 가르쳐 두 사마司馬가 방울을 잡게 한다.”고 하였으며, 《예기禮記》 〈명당위明堂位〉에 “조정에서 목탁을 흔든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보면 무사武事에는 금탁金鐸을 흔들고, 문사文事에는 목탁木鐸을 흔드는 것이다.
이곳 에 말한 “목탁木鐸 시정교시소진施政敎時所振”은 〈목탁을 흔들어〉 문교文敎를 떨쳐 일으키는 것이다.


역주
역주1 (請旣)[旣請] : 저본에는 ‘請旣’로 되어있으나, 阮刻本에 의거하여 ‘旣請’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弱)[溺] : 저본에는 ‘弱’으로 되어있으나, 문맥을 살펴 ‘溺’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至] : 저본에는 ‘至’가 없으나, 문맥을 살펴 보충하였다.
역주4 敎鼓人以金鐸通鼓 : 《周禮》에는 “鼓人掌敎六鼓”로 되어있다. 金鐸通鼓는 두 司馬가 金鐸을 흔들면 軍將 이하가 즉시 북을 치는 것이다.
역주5 振旅 : 군대가 나가는 것을 治兵이라 하고, 들어오는 것을 振旅라 하는데, 모두 군사를 訓練시킴이다.

논어주소(1)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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