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 : 云‘魯襄公二十三年 武仲爲孟氏所譖 出奔邾’者, 此及下至‘致防而奔齊’ 皆左氏傳文也.
案彼傳云 “季武子無適
彌長, 而愛悼子, 欲立之, 訪於臧紇, 紇爲立之”.
孟氏閉門, 告於季孫曰 ‘臧氏將爲亂, 不使我葬’ 季孫不信. 臧孫聞之, 戒.
冬十月, 孟氏將辟,
除於臧氏, 臧孫使正夫助之, 除於東門, 甲從己而視之.
云‘自邾如防 使爲以大蔡納請’者, 傳又曰 “初, 臧宣叔娶于鑄, 生賈及爲而死. 繼室以其姪, 穆姜之姨子也.
臧武仲自邾使告臧賈, 且致大蔡焉曰 ‘紇不佞, 失守宗祧, 敢告不弔.
賈曰 ‘是家之禍也, 非子之過也. 賈聞命矣.’ 再拜受龜,
云‘紇非
害也 知不足也’者, 此下皆彼傳文, 言使甲
己, 但慮事淺耳.
云‘苟守先祀 無廢二勳’者, 二勳, 文仲‧宣叔.
云‘敢不辟邑 乃立臧爲 紇致防而奔齊 此所謂要君’者, 據邑請後, 故孔子以爲要君.
注
공왈孔曰 : 방防은 무중武仲의 고읍故邑(代代로 지켜온 봉읍封邑)이다.
노魯나라 양공襄公 23년에 무중武仲이 맹씨孟氏의 참소讒訴를 입고 주邾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주邾나라에서 방읍防邑으로 가서 〈노魯나라에〉 장위臧爲를 보내어 대채大蔡(龜甲)를 바치고서 〈후계자後繼者를 세워주기를〉 청請하기를 “제가 남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었으나, 지혜智慧가 부족不足하였습니다.
〈종족宗族을 위해 청請하는 것이지〉 감히 저 개인個人을 위해 청請하는 것이 아니니, 진실로 선대先代의 제사祭祀를 지켜 조부祖父 문중文仲과 부친父親 선숙宣叔의 공훈功勳이 폐기廢棄되지 않게 하신다면 어찌 감히 방읍防邑을 떠나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였다.
노魯나라가 장위臧爲를 후계자로 세우니, 장흘臧紇(臧武仲)은 방읍防邑을 〈국가國家에〉 바치고서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疏
○정의왈正義曰 : [魯襄公二十三年 武仲爲孟氏所譖 出奔邾] 여기서부터 아래의 ‘치방이분제致防而奔齊’까지는 모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의 글이다.
고찰하건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3년에, 계무자季武子는 적자適子가 없고, 〈서자庶子 중에〉 공미公彌가 장자長子였으나 도자悼子를 사랑하여 그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우고자 하여 장흘臧紇(臧武仲)에게 물으니, 장흘臧紇이 계무자季武子를 위하여 도자悼子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워주었다고 하였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맹손孟孫(孟莊子)은 장손臧孫(臧紇)을 미워하고 계손季孫(季武子)은 장손臧孫을 좋아하였다.
맹씨孟氏의 어추御騶(말 기르는 일과 수레 모는 일을 겸한 관직官職) 풍점豐點이 갈羯(孟莊子의 서자庶子)을 좋아하였다.
맹장자孟莊子가 병病을 앓자, 풍점豐點은 공서公鉏에게 말하기를 ‘만약 갈羯을 〈맹씨孟氏의 후계자後繼者로〉 세워준다면 〈내가 갈羯에게 청請하여〉 장씨臧氏를 원수怨讐로 여기게 하겠다.’라고 하였다.
맹장자孟莊子가 죽자, 드디어 갈羯을 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
맹씨孟氏가 문門을 닫고서 계손季孫에게 고告하기를 ‘장씨臧氏가 난亂을 일으켜 우리의 장사葬事도 지낼 수 없게 하려 합니다.’라고 하니, 계손季孫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장손臧孫은 그 소식을 듣고 경계警戒하였다.
겨울 10월에 맹씨孟氏가 묘도墓道를 닦으려고 장씨臧氏에게 제도除徒(길을 닦는 역도役徒)를 빌리기를 청하니, 장손臧孫은 정부正夫(遂正이 관리하는 역도役徒)를 보내어 돕게 하고서 동문東門 밖에 묘도墓道를 닦을 때에 장손臧孫이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가서 일하는 것을 시찰視察하였다.
맹씨孟氏가 또 계손季孫에게 고告하니, 계손季孫은 노怒하여 명命을 내려 장씨臧氏를 공격攻擊하게 하였다.
을해일乙亥日에 장흘臧紇이 녹문鹿門의 빗장[關]을 자르고 주邾나라로 달아났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自邾如防 使爲以大蔡納請]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또 “당초에 장선숙臧宣叔이 주鑄나라의 여자女子를 아내로 맞이하여 장고臧賈와 장위臧爲를 낳았다. 그 아내가 죽자, 장선숙臧宣叔이 아내의 질녀姪女를 계실繼室로 삼았으니 그녀는 목강穆姜(宣公의 부인夫人)의 이종姨從(姨母의 딸)이었다.
그녀가 장흘臧紇을 낳아 궁중宮中에서 기르니 목강穆姜이 장흘臧紇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장흘臧紇을 장선숙臧宣叔의 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
장고臧賈와 장위臧爲는 노魯나라를 떠나 주鑄나라에 가서 있었다.
장무중臧武仲이 주邾나라에서 장고臧賈에게 사람을 보내어 고告하고, 또 대채大蔡(큰 귀갑龜甲)를 바치며 말하기를 ‘제가 불민不敏하여 종조宗祧를 지킬 수 없게 되었으니, 감히 저의 부조不弔(無能)를 고告합니다.
저의 죄罪가 제사祭祀를 단절斷絶하는 데는 미치지 않았으니, 형님께서 이 대채大蔡를 노魯나라에 바치고서 〈후계자後繼者로 세워주기를〉 청請하시면 아마 들어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장고臧賈가 말하기를 ‘이는 우리 가문家門의 재화災禍이지 그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 나는 그대의 명命을 따르겠다.’라고 하고서 두 번 절하고서 대귀大龜를 받았다.
그리고는 장위臧爲를 보내어 대귀大龜를 노군魯君께 바치고서 〈자기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워주기를〉 청請하게 하였는데, 〈노군魯君은〉 드디어 장위臧爲를 〈장선숙臧宣叔의〉 후계자後繼者로 세웠다.
그러자 장손臧孫이 방읍防邑으로 가서 〈노군魯君에게〉 사람을 보내어 고告하였다.”라고 한 것이 이것이다.
두예杜預의 주注에 “대채大蔡는 대구大龜이다.”라고 하였다.
[紇非能害也 知不足也] 이 이하는 모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23년의 글인데 갑사甲士로 하여금 자기를 시종하게 한 것은 일을 고려考慮한 것이 얕아서였을 뿐이라는 말이다.
[非敢私請] 그 선인先人을 위해 청請한다는 말이다.
[苟守先祀 無廢二勳] 이훈二勳은 장문중臧文仲과 장선숙臧宣叔이다.
[敢不辟邑 乃立臧爲 紇致防而奔齊 此所謂要君] 읍邑을 점거하고서 후계자後繼者를 세워주기를 청하였기 때문에 공자孔子께서 ‘요군要君’이라고 하신 것이다.